가족으로부터 전파되는 저주의 트라우마 '유전'
관계의 상실과 분열에서 시작된 비극 '미드소마'
편집증을 앓는 보의 초현실적 여정 '보 이즈 어프레이드'

사진=영화 '유전', '미드소마', '보 이즈 어프레이드' 포스터
사진=영화 '유전', '미드소마', '보 이즈 어프레이드' 포스터

[문화뉴스 임효정 기자] 무더운 여름 날씨에는 공포 영화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는 무언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이른바 '점프 스케어' 연출 기법이 주를 이루지만, 아리 에스터의 공포 영화는 그렇지 않다. 그의 영화는 점진적으로 사람의 심리를 자극한다.

아리 에스터는 미국의 영화감독으로, 지난 2018년 개봉한 장편 공포영화 '유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공포 영화는 다소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며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상징적인 소재로 나타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떤 누군가는 현실에서 겪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로 섬뜩함을 자아내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공포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유전 (Hereditary, 2018)

사진=영화 '유전' 스틸컷
사진=영화 '유전' 스틸컷

영화 '유전'은 2018년에 개봉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자신의 가정사에 대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저주받은 가족'이라는 데서 소재를 착안해 '유전'의 각본을 썼다.

그는 인물 중심의 정교한 구성으로 전개 과정에서 서서히 충격을 주는 60-70년대 영화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기에 다세대 가족 문제와 공포적 요소를 결합해 영화를 완성시켰다.

'유전'은 할머니의 죽음에서 시작된 저주로 인해 헤어날 수 없는 공포에 지배당하게 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그레이엄 가족은 엄마인 애니와 남편 스티브, 그리고 사춘기 아들 피터와 막내딸 찰리로 구성된다.

영화는 애니의 어머니 엘렌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애니는 자신의 어머니가 항상 비밀이 많고 이상한 집단과 어울린다는 내용의 조사를 읽는다. 조사 내용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흐름을 함축하고 있다.

어머니를 잃은 애니에게 조안이라는 여자가 다가오며 죽은 이의 혼령과 교류를 시도하는 모임에 참석하라고 설득하고 영화는 가족적 이야기에서 초자연적 상황으로 이어진다.

사진=영화 '유전' 스틸컷
사진=영화 '유전' 스틸컷

그레이엄 가족은 할머니 엘렌의 죽음 이후 일련의 섬뜩한 사건들로 고통받기 시작한다. 엘렌에게서 찰리, 애니, 피터에게로 점점 전파되는 기이한 사건들은 '유전'이라는 제목에 의미를 더한다.

영화 속에서 가족이 겪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현실에서 쉽사리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지만,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 가족 내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스스로 선택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가족'이라는 존재를 통해 전해져오는 근본적인 무력감은 연출로 단순히 깜짝 놀라게 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공포를 자아낸다.

애니는 자신의 가족에게 있는 문제를 알고 있지만 이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인물이다. 극중 그녀의 직업은 디오라마 아티스트로, 실제로 가족이 겪은 시련을 묘사한 예술품을 만들며 불안감을 달랜다. 완벽한 모형은 삶과 경험, 기억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기를 원하는 애니의 심리를 상징한다.

가족 문제와 초자연적 현상을 결합해 신선한 공포감을 주는 영화 '유전'을 감상해 보자.

미드소마 (Midsommar, 2019)

사진=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사진=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미드소마'는 '유전'의 바로 다음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또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가 겪은 이별로부터 나온 감정이 영화의 토대가 됐다.

영화는 가족의 상실로 슬픔에 잠긴 대니가 남자친구와 스웨덴의 한 마을에서 90년에 한 번 열리는 신비한 축제에 참여하면서 겪는 기이한 일들을 그린다.

대니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으로 인해 끊임없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생이 저지른 사건으로 가족을 전부 잃게 된 트라우마를 지닌다.

한편 대니에 대한 애정이 점점 식어가는 그녀의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은 친구들과 함께 스웨덴의 호르가 마을에 여름휴가를 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 대니가 합류하며 어색한 동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도착한 호르가 마을에서는 흰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그들을 상냥한 웃음으로 맞이한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와 음식들, 마음 사람들의 기이한 행동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길함을 자아낸다.

사진=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사진=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밤이나 어두운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것은 공포영화의 공식과도 같다. 하지만 미드소마는 그 클리셰에서 벗어나 밝고 아름다운 배경이 주를 이룬다.

다소 어두운 가정을 배경으로 한 '유전' 이후, 아리 애스터는 귀신이나 초자연적 현상과는 다른 결의 영화를 그리고자 했다. 그는 '미드소마'에서 공격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끊임없이 빛나는 마을을 만들어냈다.

계속해서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공간에서 오는 공포감은 굉장히 색다르며, 이에 대해 아리 에스터 감독이 또 한 번 공포영화의 틀을 깼다고 설명해도 무관할 것이다.

'미드소마'는 주제적 측면에서 전작 '유전'과 연결고리를 가진다. 영화에서 대니는 엄청난 고통을 겪지만,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학문과 친구들과의 우정을 더 중요시하며 관계는 분열되고, 이는 결국 비극으로 이어진다.

애써 외면하고 묵혀둔 관계의 분열이 비극의 시작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감독이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어렴풋 짐작할 수 있다.

대낮처럼 환하지만 어딘가 수상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린 영화 '미드소마'를 감상해 보자.

보 이즈 어프레이드 (Beau Is Afraid, 2023)

사진=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사진=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올해 7월 5일 개봉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으로,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가 주인공을 맡아 주목받고 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편집증을 앓는 보와 그를 집착적으로 사랑하는 엄마 모나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중년 남성 보가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 하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여러 초현실적인 상황과 직면하게 되며 기억과 환상, 현실이 뒤섞인 공포를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차에 치인 보는 어떤 부부의 집에서 눈을 뜨게 된다. 그레이스와 로저 부부는 자신들로 인해 사고가 났기 때문에 이를 책임지겠다며 그를 보살핀다. 다정한 이 부부는 보가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고 하자, 회복이 멀었다며 만류하는데 왠지 수상함이 느껴진다.

사실 보가 편집증을 앓고 있다는 설정으로 인해 영화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사건사고들이 그의 상상인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차 사고와 수상한 부부조차도 말이다.

이러한 환각과 같은 요소는 전작인 '유전', '미드소마'에도 자주 등장하며 아리 에스터 감독만의 상징적 메타포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사진=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사진=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를 시각화한 영화다. 통제 욕구가 강하고 집착이 심한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성인이 되어서도 벗어나지 못한 보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과정을 예술적으로 풀어냈다.

이번 영화는 블랙 코미디 장르가 섞여 많이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전통적 호러 영화는 아니며, 전개가 다소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다. 이렇게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고 있지만 주인공 보의 심리 탐구에 집중해 감상하면 임팩트가 있다고도 한다.

아리 에스터 감독 영화의 키워드는 '가족', '트라우마', '관계의 재정립'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가족 간의 불안한 관계와 그로부터 발생한 트라우마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연결되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개봉으로, 비로소 아리 에스터 감독의 트라우마 3부작이 완성됐다.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날, 아리 에스터 감독의 공포영화 '유전', '미드소마',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감상하며 색다른 공포에서 오는 서늘함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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