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임과 와일드 켓츠 음악이 다시 역주행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나의 뮤즈들이 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흑백 TV시절 색을 구분할 수 없었던 시절에도 임종님과 와일드 켓츠 무대는 화려했다. 왠지 버터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 당시 국내 가수와는 달라도 많아 달랐다. 마치 주한미군방송(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 AFKN)​ 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밴드를 우리나라 방송에서 보는 것 처럼 신기했고 한국말로 팝송을 노래하는 것도 남달랐다.

임종님과 들고양이들 LP 
임종님과 들고양이들 LP 

어린 나이에 엄마뻘 되는 고 임종님 가수를 꽤 나 사랑했었다. 당시 보기 드문 서양인의 얼굴과 복장이 까까 머리 사춘기 소년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마력 마치 엄마 아빠 몰래 주한 미국 방송을 훔쳐보는 듯한 야릇함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변해갔다. 그동안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돌아서던 그 사람 혼자 남으니 쓸쓸하네요 내 마음 허전하네요 생각하면 그 얼마나 정 다웠던가 나 혼자서 길 을 가면 눈 앞을 가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네...  의 주인공은 민해경, 정수라, 이은하 등으로 바뀌어 갔고  기억 속에 잊혀져 갔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은 필연 인 것이다. 죽음을 피할 수 도 없고 연기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하는 환경 만큼은 누구나 공평했으면 좋겠다. 불가능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안다. 대부분 화려한 인생을 살았던 아름다웠던 나의 뮤즈들은 쓸쓸한 죽음을 알린다. 고 임종님도 1949 12월 ~ 2023년 8월28일 오늘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임종 한것으로 보도됐다. 3자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는 것으로 보아서는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유언도 없고 남긴 것도 없다. 대신 추도의 말 한마디 한다면 당신은 들 고양이가 도둑 고양이로 천대 받던 시절 와일드 케츠라는 이름으로 들 고양이의 위상을 달리 만든 아름다운 심성의 밴드 보컬 이었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켓츠의 일레인 페이지(1981년 초연 글리자벨라 역) 보다 선구자이자 아름다운 뮤지션이었다.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한다.   

임종임은 그룹 이름에 걸맞게 당시로서는 과감한 쇼트커트 헤어스타일로 무대에 올라 시원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해 그룹의 인기를 주도했다.1969년 주한 미8군 쇼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그는 1971년 와일드 캣츠로 데뷔했다. 이 그룹은 '원조 역수입 K팝 그룹'이었다. 1971년 데뷔해 홍콩 등 해외에서 앨범 '뉴 프롬 더 와일드 캣츠' 등을 내 인기를 끈 뒤 뒤늦게 국내로 귀국해 1979년 앨범 '더 와일드 캣츠/들고양이들'을 냈다. 이 앨범에 실린 '마음 약해서'는 이듬해인 1980년 동명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인기를 바탕으로 와일드 캣츠는 같은 해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1980년 홀로서기에 나선 임종임은 1981년 디스코 팝 그룹 보니엠의 히트곡 '바하마 마마'를 번안한 '말하나마나'를 불러 인기를 이었다. 이 노래는 유재석 등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멤버들이 '하나마나송'(2007)으로 각색해 방송에서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무대를 떠난 뒤 독신으로 지낸 그는 지난해 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 서울 강남구에서 주점 '와일드캣츠'를 운영하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 적십자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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