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남자 #009 - 김정훈 감독의 '탐정 : 더 비기닝'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추석엔 성동일이라며 유쾌한 미소를 보내는 성동일 씨, 아내가 사춘기 소녀 같다는 권상우 씨의 화기애애한 인터뷰 속에 김정훈 감독님이 질문 하나를 받습니다. "이 영화가 여성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여혐'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 이에 감독님은 살짝 당황하셨고, 인터뷰 후 추가 답변을 마련하실 정도로 신중하셨습니다. 여기서 영화 읽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이번 주 영읽남은 코믹범죄추리물 '탐정 : 더 비기닝'(이하 '탐정')을 여성혐오라는 코드로 풀어봤습니다.

※ 영읽남은 기사 특성상 '탐정 : 더 비기닝'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남편 - 남성의 연대
'탐정'에는 두 부류의 남편이 등장합니다. 강대만(권상우), 노태수(성동일)는 집에서는 아내에게 구박받고, 밖에서는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있다며 허세를 보이는 인물입니다. 이들은 불안한 경제 수입만큼, 불안정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가장입니다. 이들은 설거지, 음식물, 재활용쓰레기 등을 처리하고 잡혀 사는 남자들로 묘사됩니다.

집안에서 남자의 위치는 강대만이 아들에게 자신만의 공간을 존중해달라는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의 공간은 거실의 귀퉁이, 좁은 구석에 있는 작은 탁자 하나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밖에서는 까칠하고 카리스마 있던 태수도 별반 다르지 않았죠. 집 밖에서는 남자가 집안일을 왜하느냐며 잡혀 사는 대만을 욕했지만, 실제로는 그도 아내에겐 구박받고 군말 없이 설거지를 해야 하는 남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남자가 코미디 코드로 사용한 집안일에 대한 시선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설거지, 음식물·재활용 쓰레기에 대한 그들이 불평한다는 것 자체를 이렇게도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이건 여자가 할 일 아냐?"(대만)의 아내가 '워킹맘'이란 것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앞의 질문자는 이런 장면들에서 여혐을 우려했을 수 있습니다.

두 남자 모두 잡혀 사는 불쌍한(?) 남편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서로를 인정한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대개의 버디 무비에서는 두 사람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마음을 열고 콤비가 됩니다. 하지만 '탐정'에서 대만과 태수는 사건 해결 이전에, 불쌍한 남편이라는 서로의 처지를 연민하며 하나가 되어갑니다. SBS의 '웃찾사'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남자끼리'라는 코너도 떠오르네요. 요즘 세상에 남자는 약자이기에 돕고 살아야 한다는 남자들끼리의 연대. 그런데 이 연대가 여성 때문에 형성된 공감대라면 반여성적인 시선을 우려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두 가지 남편 - 타락한 여성의 죽음
대만 태수와 다른 부류의 남편은 아내가 외도하고 상처를 받는 남자입니다. 세 명의 여성 피해자를 이어주는 고리는 '외도'였죠. 이들은 남편과 가정을 배신한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흡사 그들의 죽음은 여자들의 타락과 가정의 붕괴에 대한 보복, 응징으로 비칠 여지가 있습니다.

버림받은 남편/타락한 아내. 이렇게 남녀가 반대항을 이룬다면, 이는 착한 남편/악한 아내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적이고, 처벌(죽음)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생각할 수 있죠. 즉, '탐정'을 보고 죽음의 원인이 여자에게 있었다고 인식할 수 있고, 여기서 여성혐오를 우려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감독은 여성이 왜 가정을 벗어나려 했는지를 말하려 했죠. 하지만 여성들 개개인의 사연을 잊게 할 정도로 그녀들의 외도가 돌출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녀들의 외도가 피 튀는 결과로 관객에게 강렬히 전달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탐정' 속의 여성을 '여성=타락=응징'이라 단순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죠.

정말 공평한 시선이었다면, 외도 전에 원인을 제공한 남편에 대한 응징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고, 인내하지 못한 여성의 외도와 그에 대한 처벌을 다루고 있습니다. 원인을 먼저 제공한 것은 남성인데 그들은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최후엔 피해자가 되죠. "배우자의 외도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취지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탐정'에서 아내를 잃은 남편들에게도 문제가 있었지만 그를 묻어두고 영화를 전개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누군가는 영화의 결말을 통해 그 남편들도 벌을 받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벌을 받은 것은 살인에 대한 죗값이었지, 그들이 제공한 원인에 대한 대가는 아니었습니다.
 

   
 


코미디를 정색하며 바라보는 이유
'탐정'은 여성을 살해한 살인마를 찾아가는 추리물로서의 외연을 가집니다. 그리고 이 살인마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들이 처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 교훈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한 트릭도 신선했기에 장르적 특징을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 조립된 이야기이지만 여성을 향한 시선에는 끝내 의문을 남겨둡니다.

이 이야기를 더 뜯어보면, 범죄추리물이라는 장르 안에 하나의 이야기가 더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만과 태수라는 억압받는 남편들이 부인이라는 장애물을 딛고, 자신들의 꿈과 정의를 실현하는 플롯이 감춰져 있죠. 이 이야기에서 여성은 남성의 적대자이고, 남성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기능합니다. 영화의 후반부, 병실 안에서 불쌍한 남편들이 모여 서로를 연민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탐정'에서 남자들은 끝까지 구박받는 위치를 배정받은 거죠. 이처럼 이 영화엔 은근히 남자 대 여자의 구도를 유도하는 장면들이 전체에 걸쳐 섞여 있어 여혐을 우려하게 합니다.

이번 글은 코믹범죄 추리물을 '정색'하고 바라본 것이 맞습니다. '탐정'은 굳이 여혐 코드로 풀어가지 않고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명절 영화이죠. 감독이 여성혐오를 의도했다고도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글은 정색하고 이 영화를 끝까지 '여혐'코드 풀려고 애썼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아내에 대한 이미지들이 은근히 이 영화에 녹아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무의식적인 것이 더 무서운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적인 공간에서의 코미디·유머와 대중문화에서의 그것은 분명 다르기에 이런 식으로 여성을 표현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한 글입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코미디 코드화·일반화되는 것들이 모여 거대한 갈등을 만들고,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해 보기 위한 오지랖이기도 했죠. 그런데 일베와 IS 등에서 보여주는 병리적 여성혐오 및 범죄가 매우 심각한 상황까지 온 지금, 더 큰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 이런 오지랖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글] 아띠에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영화리뷰 웹진 '무빗무빗'의 에디터. (movitmov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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