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배우 김영호가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연습실에서 본지와의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문화뉴스] 거친 남성의 기운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배우 김영호는 알면 알수록 더욱 궁금해지는 사람이다. 우리는 여러 방면의 일에 능통한 사람을 보고 '팔방미인'이라 부르곤 하는데, 배우 김영호에게 '팔방미인'이라는 수식어는 전혀 아깝지 않은, 딱 제 것의 수식어였다. 그는 뮤지컬, 연극, 영화, 드라마 등의 배우가 활동할 수 있는 여러 영역을 수시로 넘나들 뿐만 아니라, 사진, 동양화, 노래, 복싱, 시작(詩作)까지, 도통 그 구분을 한정지을 수 없는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다재다능한 배우 김영호는 처음부터 배우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연기와는 무관한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연찮게 시작하게 된 음악감독의 길에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연극과 뮤지컬 등의 공연계에 진출하게 됐다. 이후 연기에 보다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게 돼 현재 우리에게 친근하게 알려진 '배우 김영호'의 모습으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됐다.

얼마 전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뛰어난 노래 실력까지 여실히 보여준 배우 김영호가 이번에는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하 한밤개)'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연극 이야기부터 배우 김영호와 아빠 김영호의 모습까지. 시원시원한 어조로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연극 '한밤개'에서 '에드' 역을 맡은 배우 김영호 ⓒ 아시아브릿지컨텐츠

현재 연극 '한밤개'에 출연하고 있다. 맡은 역할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ㄴ 주인공 '크리스토퍼'의 아빠인 '에드' 역을 맡고 있다. 크리스토퍼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소년이다. 에드는 소중한 크리스토퍼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아내와의 불화를 숨기는데, 크리스토퍼는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만다. 그래도 에드는 점차 아이에게 진실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이다.

'자폐아 소년의 아버지'라는 역할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ㄴ 극중 아빠 에드는 자상한 부분이 별로 없다. 본의 아니게 크리스토퍼의 갈등 대상이 된다. 무서운 아빠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실제로 극에서는 에드의 일상생활을 비춰줄 장면이 거의 없는데, 에드가 크리스토퍼라는 남자 주인공이 이끄는 극의 전개선에 따라가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의 갈등 전개를 서브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따스함과 사랑을 보여주기 보다는, 주로 갈등 전개에 기여하는 역할이다 보니까, 아빠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다 보여줄 수는 없다.

 

   
 

그동안 강한 역할의 캐릭터들을 많이 맡아왔다.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에 맡은 에드 역도 '무서운 아빠'로도 비춰질 수 있는데, 본인이 갖고 있는 '강한 남성'의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이번에는 남성성이 돋보이기보다는, 극 전개 상 갈등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아빠 중심으로 극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아들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딱히 어떤 강렬한 이미지를 내뿜지는 않는다. 대신 전개가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연기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특정 이미지에 얽매인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말하고 싶다.

꼭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ㄴ 그런 게 어디 있나. 벌써 연기 인생 25년이다. 해볼 것은 다 해봤다(웃음). 하루 이틀도 아니고 25년이다 보니 수많은 역할을 겪어 왔다.

 

   
연극 '한밤개'에 같이 출연 중인 배우 배해선(왼쪽)과 배우 김영호(오른쪽) ⓒ 아시아브릿지컨텐츠

'김영호'라는 본명을 사용하기 이전에, '한반도'라는 예명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ㄴ 예전에 연극 생활 초반에 한반도라는 예명을 썼다. 관객이나 제작자들에게 특별히 각인되기 위해 썼던 예명은 아니었고, 그냥 재밌어서 사용했었다. 지인이 지어줬던 이름이다. 연극할 때까지는 예명을 쓰다가 영화와 드라마 등에 진출하고 나서 본명으로 바꿨다. 영화에서도 초반까지는 예명을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유령(1999)'이라는 작품을 찾아보면 내 예명이 나올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이나 작품을 꼽는다면?

ㄴ 뮤지컬 '애니(2006)'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에서 했던 그 공연이 우리나라에서의 초연이었다. 애니의 양부인 '워벅스' 역할을 맡았는데, 그 작품이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다. 내용도 따뜻하고, 더구나 아이들과 하는 작품이라서 좋았다.

 

   
 

현재 아내와 자녀들은 외국에서 지내는 걸로 알고 있다. 곧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다. 가족들이 더욱 생각나고 그리워질 텐데 언제 가장 견딜 수 없을 만큼 보고 싶은지?

ㄴ 현재 딸이 다시 국내에 들어와 함께 지내고 있다. 그리고 가족들이 가까운 필리핀에 있어서 자주 볼 수 있다. 실제로 가족들이 한국에 일 년에 열다섯 번 정도는 오는 것 같다. 이미 방송에서도 한 번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 독수리 아빠다. 가족들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보러 가려면 금방 갈 수 있다.

'아빠' 김영호의 모습이 궁금하다.

ㄴ 다를 게 뭐가 있나(웃음). 여느 가족의 구성원처럼 설거지, 빨래, 청소도 하고, 아빠로서 아이들 챙겨주는 일도 다 맡아서 하고 있다. 시간 날 때마다 집안 살림을 챙기고 있다. 아이들하고 놀아주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뮤지컬, 연극, 영화, 드라마 등의 배우 뿐 아니라, 가수, 사진, 제과, 복싱, 동양화 등의 폭넓은 일들을 주저 없이 도전하고 실행하고 있다. 언뜻 보면 취미와 직업에 대해 뚜렷한 경계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ㄴ 특별할 것 없다.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하다 보니 이렇게까지 오게 됐다. 나이가 있다 보니 조금씩 해왔는데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던 듯싶다. 늘 기회가 좋았다. 사진전도, 그림도 모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재능이 없다면 하지 못하는 일들 아닌가?

ㄴ 세상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다 운이 좋아서 하는 거다. 나도 딱히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많이 밀어준 것도 있다(웃음). 좋아해서 하다 보니까 즐기게 되고,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재능 있다고 말씀해주신 거다.

 

   
연극 '한밤개' 공연 모습 ⓒ 아시아브릿지컨텐츠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로 예술가의 길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인 청년예술가들을 지원하는 기구인 '아시아 청년예술가협회(AYAA)' 홍보대사를 맡으셨다.

ㄴ 앞으로 이 협회가 잘 운영되어서 보다 많은 청년예술가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 멘토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글을 좋아하고, 많이 쓰기도 했다. 처음 고문직을 제안한 배우 박리디아(본지 부사장, 아시아 청년예술가협회 이사장)가 판단하기에, 나의 그런 분야를 눈여겨보고 추천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도 내 시를 낭송하는 자리를 가졌다는 연락이 왔다.

 본인이 쓴 시 중에, 문화뉴스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시가 있다면?

ㄴ 그동안 시를 워낙 많이 썼다. 대략 합쳐보면 10,000편 정도 될 것이다. 그중에서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방금 박리디아 이사장이 낭송했다고 언급한 시다. 제목은 '그대를 위하여'다. 

 

   
배우 김영호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귀

 

그대를 위하여

아침이 오면 저 높은 산 뒤로

해가 뜰 거라 믿었으면 합니다

바람이 낮게도 풀숲을 흔들면

촉촉하게 비가 대지를 적셔줄거라

믿었으면 합니다

흰 눈이 소박하게 바람에 날리면

겨울이 많이도 깊게 와 있다 믿었으면 합니다

이 모든 게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그대 곁에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

믿었으면 합니다

그대가 얼마나 멋지고 예쁜 사람인지

그대가 알았으면 합니다

그대의 인생이 지금부터

늘 밝고 행복할 거라 굳게 믿었으면 합니다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게 이루어졌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그대가 얼마나 값진 축복 속에

태어나고 살아가는지 믿었으면 합니다

그대가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그 엄청난 일들이

그대의 인생에 준비되어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이 모든 행복과 이 모든 일들이

그대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운명이란 걸 가슴 속

깊이 믿고 살았으면 합니다

아무리 봐도 그대는 그런 사람인걸

그대만 모르고 사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무심히 돌아서 보여진 그대가

그대에 축복을 믿지 못하고 사는 게

우리가 사는 인생인가 봅니다

그대는 너무나 멋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축복 받은 그런 사람입니다

- 2013년 9월의 어느 날

 

 

 

   
 

"세상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다 운이 좋아서 하는 거다"고 말하는 배우 김영호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명쾌하게 인생의 섭리를 말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시공간을 잘못 만나 빛을 발하지 못했던 불운의 천재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 김영호의 다재다능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말하는 시기적절한 '운'도 큰 부분을 차지했겠지만, 그의 호방한 성격도 한몫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일에서든 주저하지 않는 그 호기가 배우로서의 당당함,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든든함을 갖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한 인간으로서의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는 근간이 되기도 했을 테고 말이다. 내년 1월 31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한밤개'는 배우 김영호의 거친 모습과 함께, 아들을 향한 섬세한 사랑의 모습까지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방송, 영화, 공연계의 구분을 두지 않고 열심히 연기 활동을 하는 그가 내년에는 영화감독으로서 또 하나의 경계를 넘어서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제대로 좋아할 줄 아는, 인생을 그 자체로 즐길 줄 아는 '인간' 김영호의 모습을 계속 응원한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영상]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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