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더없이 잔인해지는 '두 사람의 끝나지 않는 사랑'에 대해

[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두 달여 전, 개봉을 앞둔 영화 '페이스 오브 러브'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사랑했던 이를 닮은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 그것은 분명 위험한 요소들을 담고 있지만, 사람이든 사물에 대한 것이든 우리의 취향이라는 것은 본디 쉽게 변하지 않고,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 어쩌면 '오마쥬'를 넘어선 또 다른 사랑이 될 여지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본 영화 '페이스 오브 러브'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한층 더 무거운, 어쩌면 무서운 이야기였다.

   
 

세상의 전부였던, 너무나 사랑했던 남편을 갑작스레 잃은 '니키'. 시간이 흘러도 사그라들지 않는슬픔을 지닌 그녀 앞에, 그와 똑같이 생긴 '탐'이 나타난다. 그녀는 단지 닮았기 때문에, 그녀가 좋아하는 외양의 남자여서 죽은 남편을 닮은 그에게 끌렸던 것일까?

정신장애의 진단에 있어, '사별' 후 2개월간의 슬픔을 정상적인 것이라 본다. 물론 그 2개월이라는 기간은 너무도 짧은 것이어서 재고의 여지가 있고, 실제 임상 장면에서 만난 누군가가 2개월 혹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별한 대상을 잊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가 있는 상태라고 쉽게 단정 짓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그만큼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키'의 경우는 조금 더 병리적이다. 남편이 떠나고 5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피하고, 여전히 그의 꿈을 꾸며, 일상의 곳곳에서 불현듯 그의 흔적을 떠올리고 느낀다. 그와 닮은 뒷모습에도 흠칫 놀라며 따라가는 그녀는, 과거를 그저 회상하는 것인지, 때때로 그의 환영을 보는 것인지조차 명료하지 않아 보이는 하루 하루를 산다.

   
 

그런 그녀의 눈에 그가 들어왔다. 사랑했던 그와 거짓말처럼 똑 닮은 남자. 처음, 그녀는 내가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워하며 멈추려 하지만, 그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결국 죽은 남편에 대한 죄책감을 덜 나름의 방법을 택한다. 바로 그를 '개럿'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생각은, 남편이 죽어버렸다는, 지금 내 앞에 있는 그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그는 사실 남편이 아니라는 아픈 현실에서, 그녀를 도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를 이용하여, 그녀는 다시 갈 수 없는 행복한 순간으로 돌아가, 그 때를 재현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꿈꾼다.

그렇게 공고해지는 그녀의 믿음은 점차 '망상(delusion)'에 가까워진다. 그녀는 그를 '개럿'이라 여기고, 그런 스스로 생각에 점차 빠져들어 마치 그 생각이 사실인 것처럼 믿는다. '망상'은 정신분열병의 주된 증상이다. 하지만, 망상이 있는 이가, 현실에 대한 감각이나 판단력은 유지하고 있다면, 또 일상에서 자신이 하던 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면, '망상장애(Delusional Disorder)'의 가능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녀는 그를 닮은 '탐'이 '개럿'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공고히 해가지만, 이외 일상적인 모든 것에 대한 그녀의 판단력은 비교적 정상적이었다. 이는 죽은 남편의 친한 친구나 자신의 딸에게 '탐'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그녀의 모습에서도 일면 반영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니키'는 사랑했던 자신의 '개럿'과 함께 있다는 자신만의 판타지 월드(fantasy world)에 빠져있는 상태를 보인다.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당신'이라 지칭하며, 몇 년 만에 여전히 함께인 모습으로 온 그들을 반기는 요리사에게 굳이 그가 '개럿'이 아님을 설명하지 않는다. 함께 멕시코로 여행을 떠나, '아직도 이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믿어져요?'라고 묻는 그녀의 말은, 어쩌면 변함없이 존재하는 도시에 대한 감탄처럼 들리지만, 실은 그를 '개럿'이라 인식하고 있는 내면을 여실히 드러내어 준다. 얼굴이 닮은 것으로 시작했으나, 새로운 사랑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녀가 그를 그의 진짜 이름인 '탐'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나고 만다.

   
 

'니키'는 '탐'을 사랑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이 익사한 이후 물에 들어가지 못했던 그녀가 다시 수영을 하며 환히 웃는 모습은, '탐'과의 만남이 죽은 남편에 대한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마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던 그녀를 조금은 치유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가 '탐'에 대해 가졌던 감정 역시 어쩌면 다른 종류의 '사랑'이었음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혹 '사랑'이라 부른다 해도, 이것은 그 과정이 너무도 병리적이었던, 지독하게 왜곡된 사랑이었다.

만약 잃어버린 대상이 '남편'이 아닌 '딸'이었다면 어땠을까. 길에서 만나 죽은 내 아이와 똑닮은 외모를 가진 아이를 데려와, 내 아이에게 주었을 만한 사랑을 주는 것을 넘어서, 전혀 다른 하나의 인격체인 그를 '내 아이'로서 키운다면…이것은 법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정신적인 학대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니키'는 이기적이지만, 영화는 '탐'이 어차피 시한부 인생이었고, 그녀가 화가인 그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주었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제공해 준다. 끔찍하고 무서운 짓을 저지른 그녀가 용서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아름다웠기에', '누군가를 잃고 이렇게 지독히 병들어버릴 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고 어찌되었든, '그녀가 '탐'에게 사랑 받았기 때문'이었다.

'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그녀는 고마운 대상일 수 있다. 10년 전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며 자신을 떠나간 전부인, 언제 생을 마감하게 될지 모르는 심장병, 다시 사랑을 하게 되리라 꿈꾸지 않았던 중년을 넘어선 그에게, 그녀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을 만큼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 일으켜 주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할 수는 없지만, 그녀를 안쓰러워하고, 아파한다. 사랑은 그렇게, 때로 논리적이거나 간단한 가감산으로, 윤리적인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덧붙여,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사랑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 하나에 대해 짚어보자.

사랑을 시작하기 전, 상대방이 자꾸만 머뭇거리고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 듣는 편이 좋다. 그것은 과거의 아픈 사랑이 남긴 상처일지도, 혹은 그가 지닌 현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실은 오래 만나 온 애인이 있다든지, 당신과의 관계를 시작함에 있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당신이 상처받고 오해할 만한 부분이 있는지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바보처럼 '모두 다 괜찮다고,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감당할 수 없을 말을 내뱉기 쉽다. 그 비밀이 어떤 것인지 알기 두렵고, 또 지금의 반짝이는 사랑을 시작하는 우리라면 어떤 문제든 감당하고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과도한 믿음으로 인해.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당신이 상대의 '비밀'을 지금 이 순간 듣고 소화해낸다면, 이후 그로 인해 관계가 다시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지만, 비밀을 간직한 채 불안정하고 의뭉스럽게 시작한 관계는 그것을 이유로 조금씩 삐걱거리기 쉽고, 그렇게 관계가 더 깊어지고, 그 삐걱댐을 힘겹게 여길 때쯤, 그제야 알게 된 진실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모두 괜찮을 거라' 상대방을 다독이며 위로했던 스스로 모습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글] 아띠에떠 미오 artietor@mhns.co.kr

 

미오(迷悟):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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