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10여 년 전, '싱글즈'라는 영화로 20대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이들의 불안과 고민, 사랑을 이야기했던 감독이 이번에는 40대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가 우아한 맛은 있지!"라고 외치는 세 여자, 엄정화가 분한 어린 남자와 연애하는 골드미스 '신혜', 문소리가 맡은 남편과의 섹스를 당당하게 원하는 주부 '미연', 그리고 조민수가 연기한 딸 몰래 연애하는 싱글맘 '해영 '.

이들이 보여주는 연애와 인생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얻을 수 있을까?

   
 

하나, '신혜'의 이야기는 '능력 있는 골드미스'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오해를 보여준다. 똑똑한 척, 당당한 척하는 그녀는 일에 있어 누구보다도 프로답지만, 사랑이라는 감정과 엮이는 순간 '여우'는커녕 순 '곰팅이'가 되는 여자다. 함께 일하는 상사였던 남자의 기획안을 대신 써 주고, 남들 다 꺼리는 프로그램을 자진해 떠맡으며 그의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해주고, 심지어 국장 자리를 양보해주면서까지 ' 키워(?) 놓았건만' 그렇게 헌신을 다한 그녀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는 새파랗게 어린 그녀의 여후배를 임신시켜 결혼한다며 이별을 통보한다.

여느 드라마나 영화가 그렇듯, 이별한 그녀에게는 더 어리고 파릇파릇한 매력이 넘치는 젊은 남자가 다가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인 그와는 달리, 그녀가 보이는 모습은 처량하리만큼 안타깝다. 과거의 사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자신을 좋아하는 상대를 믿지 못하고, 쿨한 신여성인 척하다 결국 상대에게 마음을 내어주게 되자,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적인 면에서 아직 아마츄어인 그의 기획안을 스스로 도맡아 마무리해주는 그녀. 그 모습은 과거 그녀의 연애를 마치 데쟈뷰처럼 떠오르게 한다.

   
 

둘, '미연'과 그 남편의 이슈는, '성욕이 활발한 아내'와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약한 남편'이다. 둘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동원해 노력하지만 결국 그 끝에는 '남자의 바람'으로 인한 갈등이 발발한다. 대화보다 섹스가 더 중요했고, 약해지는 남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밀어붙인 그녀는 분명 잘했다고 할 수 없지만, '외도'라는 명백한 잘못을 한 것은 그의 남편인데, 영화는 그의 외도에 대해서는 생각만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외려,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다른 낯선 남자와 엮여보려 일탈을 꿈꾸었던 '미연'이 '유혹 '이 아닌 '뻑치기'를 당하면서 더없이 비참해지고, 툴툴대고 삐죽거리면서도 다시금 남편을 받아줄 고민을 하도록 여지를 준다. '그냥 넘어가기는 억울하니, 100일간 괜찮은 남자가 있는지 탐색해보고 없으면 재결합하겠다'고 나름 콧대를 높이며 말하는 그녀이지만, 그 시간 동안 '미연'이 정말 적극적으로 다른 남자를 찾아볼 의지를 발휘하거나,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게 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셋, 남편 없이 딸 하나 키워온 싱글맘 '해영'의 이야기. 그녀는 여전히 소녀 같고, 해맑은 마음으로, 순정어린 사랑을 한다. 이전에 사랑은 해보았을지언정 상처받아본 적은 없는 사람처럼, 천상 여자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맛있는 걸 해 먹이며 행복해하고, 그와의 새로운 시작,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그런 '남들처럼 평범'한 생활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이미 우리 둘 다 결혼이라는 것은 한번 해보지 않았느냐고, 결혼은 '생활의 방식'이지, '사랑의 방식'은 아니니, 당신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지금처럼 연애하는 기분으로 사는 게 좋아 결혼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는, 일면 이해가 가면서도 참 이기적이다. 그런 '해영'이 갑작스레 대장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아무런 설명 없이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홀로 수술을 받는 과정이나, 이후 딸에게서 사정을 전해 듣고 그녀를 다시 찾아온 그와 재회해 맞이한 절정의 순간에 복부에 차고 있던 배변주머니가 터져버려 여성으로서의 수치심으로 그에게 차마 안기지도 못하고 오열하는 장면은 안쓰럽기 그지없다.

혹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도 이야기하지만, 영화는 예상했던 만큼 에로틱했고, 그렇다고 에로물의 경계선으로 넘어가지는 않는 정도의, 로맨스물로서의 수위를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녀들의 삶이 평범한 40대 한국 여성의 모습인지, 이 스토리 가운데 무엇이 과연 영화의 제목에서 말하는 '관능'인지에 대해서는 갸우뚱거려진다.

   
 

10년 전 '싱글즈'를 만들었듯, 이번에는 30-40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며,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누군가의 열정과 로맨스의 대상이 되고 싶은 그녀들에게 지금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지만, 과연 영화가 그녀들에게 공감과 응원을 전하고 있는지, 아니면 지극히 현실적인 것에 대해, 어쩌면 현실보다 더 쓰라린 것을 마주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들의 '꽤 우울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삶은 쉽지 않고 자꾸만 우리를 지치고 울게 한다 할지라도, 결국 그녀들에게 남은 것은 '사랑'이다.

나이와 경력의 간극이 큰 그가 내 능력이 아닌 정말 나를 순수히 사랑하는 건지, 그가 이전의 누군가처럼 변하지는 않을 건지 믿지 못해 밀어냈던 그녀, 나와의 섹스를 피하고 대화가 필요했다며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렸던 그의 마음을 믿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던 그녀, 나와 연애는 하지만 결혼은 원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그의 사랑을 믿지 못했던 그녀. 이런 그녀들이 말미에 모여 웃으며 '우리 하루하루 늙어가겠지? 그래도 우리가 또 우아한 맛은 있잖아'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게 진심인 단 한 명의 사랑'을 확인했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글] 아띠에떠 미오 artietor@mhns.co.kr

미오(迷悟):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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