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2.29
캐스팅: 박정원, 황순종, 한동훈, 홍준기
장소: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좌석: 무대석 4열

“우리가 친구라면 손을 잡아”

우리가 ‘연극’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인물을 딱 한 명만 꼽으라면 단연 셰익스피어일 것이다. 연극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그의 작품들은 이미 전 세계에서 수많은 형태로 각색되어 공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내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연극 ‘알앤제이’는 고전 중의 고전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독창적인 작품이다. 원작의 매력에 강렬한 욕망을 더해 창조한 이들의 이야기는 황홀하고 경이롭다.

갑갑한 가톨릭 학교의 규율에 갇혀 살던 네 명의 소년은 밤마다 학교를 빠져나와 그들만의 연극을 펼친다. 연극의 대본은 로미오와 줄리엣. 배우가 되어 대본을 연기하던 소년들은 학교에선 배우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감정들에 점점 빠져들어 간다. 온갖 금기로 가득 찬 낮의 현실과 자유롭게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밤의 시간 사이에서 소년들은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들의 연극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사진=강시언 / [리뷰] 연극 ‘알앤제이’, 한여름 햇빛처럼 붉게 빛나던 소년들의 어젯밤 꿈
사진=강시언 / [리뷰] 연극 ‘알앤제이’, 한여름 햇빛처럼 붉게 빛나던 소년들의 어젯밤 꿈

 

로미오와 줄리엣은 수많은 연극, 뮤지컬에서 수도 없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여러 극을 관람하다 보면 이 작품을 스쳐가는 대사로나마 몇 번이고 마주하게 될 정도이니 무대 예술계에서의 그 명성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이는 곧 많은 관객이 이미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야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 ’알앤제이’ 역시 그렇고 그런 뻔하고 익숙한 느낌이 아닐까, 예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접어두셔도 좋다고 단호히 말씀드리고 싶다. 연극 ‘알앤제이’는 기존의 클래식한 느낌을 탈피한, 완전히 독보적인 매력을 지닌 작품이니 말이다.

차가운 현실과 강렬한 환상 같은 꿈, 그리고 그 꿈속을 수놓는 붉은 천. 이 확연하고 잔인하게 느껴지는 온도 차는 소년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처럼 펄럭이며 무대를 휘젓는 붉은 천의 유연한 움직임과 소년들의 갈망이 어우러져 이 아름다운 비극의 명암을 더 확연히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다. 소년들의 목을 죄는 교복 넥타이와 그들의 손을 미끄러져 빠져나가는 천의 모양새가 꿈과 현실이 선사하는 비극과 참 많이도 닮아 있다.

사랑과 욕망, 꾹꾹 눌러 참아온 원초적 감정들을 연극 안에서 폭발시키는 소년들의 눈빛은 처음 서로를 눈에 담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것처럼 반짝인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설렘,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표출하는 이들의 밤은 언제 깰지 모르는 꿈처럼 위태롭기에 더 아름답다. 소년들이 저마다의 열정으로 연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듬어지지 않은 풋풋한 떨림으로 가득하다. 대사 한 줄, 동작 하나에 담긴 순간순간의 소중함이 감명 깊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연극 ‘알앤제이’의 무대는 책상을 겹겹이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로 되어 있다. 소년들은 이 책상들을 오르고 달리며 종횡무진 무대를 누빈다. 얇은 책상다리가 소년들의 무대를 지탱하는 것을 보며 이 또한 언제 와르르 무너질지 모르는 꿈만 같아 조마조마하면서도 그 위에서 땀방울을 흘리는 이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뭉클함이 밀려온다. 소년들의 걸음걸음마다 그들의 열망이 깊숙이 다가와 꽂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알앤제이는 특유의 강렬함으로 완벽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낸다. 극장을 가득 채우는 발소리, 흩날리는 붉은 천, 울림을 더하는 음악 같은 요소들이 이들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완벽히 뒷받침한다. 이 중에서도 붉은 천이라는 오브제를 작품의 정체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붉고 달콤한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이미지를 구현하는 천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보인다. 영원히 타오를 불길처럼 뜨겁기도 하고 말이다. 

사진=강시언 / [리뷰] 연극 ‘알앤제이’, 한여름 햇빛처럼 붉게 빛나던 소년들의 어젯밤 꿈
사진=강시언 / [리뷰] 연극 ‘알앤제이’, 한여름 햇빛처럼 붉게 빛나던 소년들의 어젯밤 꿈

 

학생들을 연기한 네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동선이 매우 복잡하고 이동량이 많아 체력적으로 지칠법한데도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연극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어 극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 대사를 그대로 읊으며 연기하는 장면에서도 밋밋하지 않게 저마다의 느낌을 담아 구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배우들의 노력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연극 ‘알앤제이’는 금기에 갇힌 소년들의 꿈을 그린 매혹적인 작품이다. 작품을 보고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이 들끓는 뜨거운 감정이 마음속 깊이 남았다. 지금 곱씹어 보아도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는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이 소년들이 그린 환상 속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렬한 꿈의 비극으로 빠져들고 싶다면 연극 ‘알앤제이’의 여정에 함께 해 보기를 추천한다. 다만 무대석의 경우 좌석의 특성상 약간의 불편이 따를 수 있으므로 평소 척추나 주변 관절 등에 쉽게 피로를 느끼는 경우 예매 시 충분한 유의를 요한다. 한편, 연극 ‘알앤제이’는 오는 4월 28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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