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3.06
캐스팅: 김신록
장소: 국립정동극장
좌석: A열(좌측 블럭)

[문화뉴스 강시언] 살아있다는 것은 곧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 이 당연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심장은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 소리친다. 나는 뛰고 있어, 너는 살아있어, 하고. 그 매서운 외침은 우리의 몸을 휘감고 돌며 검붉은 생명력을 마음껏 내뿜는다. 우리는 심장을 통해 숨을 쉬고 말을 하며 사랑하고, 절망한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은 심장을 통해 이뤄지며 심장에 기록된다. 심장이 격렬히 뛰던 순간부터 고요히 침묵하던 순간, 그리고 다시 뛰기 시작하던 순간까지 삶의 곡선을 고스란히 간직한 위대한 기록자의 이야기가 지금, 무대에 펼쳐진다.

젊고 열정 가득한 청년 '시몽 랭브르'는 불의의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다. 사망선고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빠르게, 가쁘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을 두고 가족들은 고뇌한다. 그가 남긴 조각들로 다른 이들의 생명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그의 심장이 온전히 그를 위해 뛸 수 있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삶의 갈림길을 두고 흩날리는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땀방울들은 어디로 흐르게 될까?

한 명의 서술자가 자아내는 이들의 삶의 모습은 바쁘고 치열하다. 그중에서도 살아있는 심장의 주인공인 시몽은 눈으로는 바다의 아름다움을 담고 귀로는 웅장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온몸으로는 물살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렇게 온전히 바다의 일부분이 되기를 자청한 이 젊은 청년은 차디찬 바다와는 다르게 금방이라도 끓어오를 듯한 불덩이 같다. 스스로를 태워 삶의 위대함을 찬양하던 그의 생이 얼어붙은 암흑으로 변하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의 삶은 한순간 사라질 빛을 좇으려 그렇게도 뜨거웠던가. 어차피 사그라들 불꽃이라면 그것을 피워 내려 노력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으랴.

사진=강시언 / [리뷰]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살아있음을 외치는 심장의 거대한 울림
사진=강시언 / [리뷰]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살아있음을 외치는 심장의 거대한 울림

의식을 상실하고 떠도는 그의 영혼에 깊은 슬픔과 절망이 느껴질 즈음, 아직 식지 않은 그 심장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시몽은 삶을 등지고 떠났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그가 살아온 삶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그와 모든 시간을 함께하며 그가 태어나 기고, 걷고, 뛰고, 헤엄치고, 바다 위를 나는 모습을 지켜본 그의 조각이자 그의 모든 것, 그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요란한 박동으로 울렸다. 마치 그 작은 조각에 보관한 시몽의 거대한 인생을 모두 꺼내어 보여주려는 듯이 말이다. 심장은 외친다. 시몽, 너의 삶은 뜨거웠어. 너의 삶은 빛났어. 너의 삶은 아름다웠어, 하고.

시몽과 함께 땅을 거닐고 바다를 누비며 세상에 군림했던 그의 심장은 차갑고 딱딱한 판 위에 그와 함께 누웠다. 한순간 일어난 끔찍한 사고 이후로 심장이 기록한 것은 의사와 수술실, 삭막한 공기뿐이었으리라. 가족들은 그와 그의 심장을 빙 둘러싸고 모여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그의 심장을 다른 어떤 누군가의 삶으로 보내주기로. 시몽의 심장이 다른 이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보고, 듣고, 걷고, 뛸 수 있게 하기로. 그 위대한 결정이 끝난 뒤 시몽의 심장을 둘러싼 모든 이들과 그들의 심장은 바쁘게 뛰기 시작한다. 심장의 새로운 동반자를 찾고, 그를 향해 달리고, 그의 안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발소리가 쿵쿵, 가열차게 울린다. 그리고 마침내 쿵쿵, 심장이 다시 힘찬 박동을 시작한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 그 끝은 동이 터 오는 수평선 끝자락의 햇빛처럼 희망차고 아름답다. 아니, 어쩌면 그 빛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고통스러운 사고의 기억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찬사와 새로운 삶을 향한 열정을 더욱 크게 비춘다. 떠난 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 이의 삶을 추억하는 동시에 그의 생이 또 다른 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끝이 아닌 시작, 장기기증을 통한 생명의 연결고리를 그려내는 극의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준다. 

장기기증은 온전히 개인의 선택에 맡길 문제이고 그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그 선택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 죽음을 맞이한 후일지라도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는 자신만의 것이다. 이는 극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장기기증을 거부할 수도, 찬성할 수도 있으며 이것은 존중받아야 할 권리임이 분명하다. 극에서는 이것을 기본 전제로 삼되, 장기기증이 삶이 간절한 이들에게 큰 희망이 된다는 내용을 담는다. 어쩌면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장기기증이 죽음이 끝이 아닌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많은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시몽과 그의 심장, 시몽의 부모와 주변 인물들, 의사와 이식 코디네이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서술자는 단 한 명의 배우이다. 인물들이 숨차게 뛰는 만큼 배우도 쉼 없이 뛰어야 하고, 깊은 고뇌의 대화를 나누는 만큼 배우의 입은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100분이라는 긴 시간을 혼자의 힘으로 묵직하게 끌고 가야 하는 1인극의 압박이란 실로 어마어마한 무게일 것이다. 그러나 김신록 배우는 이런 무게를 짊어지고도 무대를 자유롭게, 사뿐히 누비며 흐르는 물길처럼 부드러운 연기를 펼친다. 때로는 깊은 물 속에 잠긴 고뇌를, 때로는 솟아오르는 파도의 열정을, 때로는 발치에 감겨오는 얕은 바닷물의 잔잔함을 넘나들며 관객들과 심장 박동 소리를 맞춘다. 이야기 속에 완전히 잠식된 듯한 일치감으로 평생 잊히지 않을 커다란 감동을 선사해 준 김신록 배우에게 다시 한번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당신은, 나는, 우리는 살아있다. 우리의 심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뜨겁게 뛰며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때로는 뛰어오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온전히 느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위대한 삶의 존재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느끼며 밝아오는 또 다른 아침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한편,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3월 10일을 마지막으로 국립정동극장에서 1월부터 이어진 약 3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