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간담회에 앞서 낭독공연 '허난설현'의 한 장면이 시연됐다.

[문화뉴스]

"문화예술계에 활동하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이나 작가가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해서,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놓으면서,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나혜석은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다. 그 당시 시대의 문화계 아이콘 같은 여류작가이자 서양화가였다. 그녀의 삶이 왜 그렇게 파멸로 갈 수밖에 없었을까?"
 
11일 오후, 대학로에 있는 알과핵 소극장에서 제4회 한국여성극작가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지난 9일 전옥주 작가와 강영걸 연출의 초청강연 '나의 삶, 나의 무대'로 막을 올린 이번 작가전은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주관하고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한다. 
 
1988년 박현숙의 제1회 세계여성극작가대회(IWPC) 참가를 계기로 한국여성연극협회는 1994년 출범했다. 이후 세계여성극작가대회 참가와 올빛상 제정 및 시상 등을 통해 여성 연극인들의 활동을 고취하고 세계 여성 연극인들과 교류했다. 2013년 한국여성연극협회 출범 20주년을 기념해 '제1회 한국여성극작가전'을 개최했고, 매해 여성극작가들의 다양한 신작을 소개, 여성연극인들의 창작활동 장려에 앞장서고 있다.
 
   
▲ '제4회 한국여성극작가전' 참여 작가와 연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여성연극협회 류근혜 회장은 "여성이 예술인으로서의 권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희곡들을 재조명했다"며 "회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자 시대, 장르에 구분 없이 확장하고 내실을 다져왔다. 4회를 맞이한 올해는 고전과 근·현대 및 동·서양 그리고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을 선정해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됐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낭독공연 '허난설현'과 '조카스타'(11일부터 13일까지 연속공연), 무대공연 '진통제와 저울'(16일부터 20일까지), '눈물 짜는 가족'(23일부터 27일까지), '경희 원한 현숙'(30일부터 12월 4일까지)이 알과핵 소극장에서 열린다. 11일 열린 기자간담회엔 '허난설현'의 최명희 작가(한국여성연극협회 이사), 김국희 연출(한국여성극작가전 기획), '조카스타'의 이지훈 작가, 이정하 연출, '진통제와 저울'의 최은옥 작가, 백순원 연출, '눈물 짜는 가족'의 김혜순 작가, 송미숙 연출, '경희 원한 현숙'의 백은아 연출이 참석했다.
 
자리에 참석한 '제4회 한국여성극작가전' 참여 작가와 연출에게 이번에 올리는 공연 소개와 함께 최근 쟁점이 된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의 의미,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작가로 최근 들어서야 조명받고 있는 나혜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허난설현'의 최명희 작가(왼쪽)와 김국희 연출(오른쪽)이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허난설현'을 낭독공연으로 올리는 소감은?
ㄴ 최명희 : 재공연 의욕을 다들 표명하셨는데, 문학적으로 좀 더 값어치가 있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낭독공연에 적합하다고 생각해 하게 됐다. 본 공연과는 달라서 길이는 반으로 줄었지만, 집중도가 높아졌다. '허난설현' 여인의 정수를 소개하는데 대단히 적합한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견 연출가인 김국희 선생께 의뢰하게 됐다. '허난설현' 작품은 대중적으로 여태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뮤지컬이 한 번 있었고, 지방에서 공연이 있었던 거로 알고 있다. 그렇게 퍼지지 않았으나, 문학계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소중한 보물을 한 번 더 확인할 기회가 되리라 본다.
 
김국희 : 낭독은 형식이 필요해 보였다. 읽기만 해선 안 되는데, 무대화하기도 어려웠다. 그렇지만, 감질나면서도 재미난 무대 공연과는 다른 묘미가 있다. 그래서 즐겁게 작업하고 있는데, 작가님의 의도에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작가님의 좋은 글을 통해 예술인으로의 혼과 삶에 대해 고민을 하는 저도 많이 공감한 부분이 많다.
 
'조카스타'의 낭독공연 소감을 들려 달라.
ㄴ 이지훈 : '오이디푸스'를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오이디푸스'의 아내인 '조카스타'에 대한 궁금증을 상당히 오래 가지고 있었다. 찾아보니 '조카스타'에 관한 작품을 쓴 작가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 궁금증을 써보게 됐다. '조카스타'를 중심으로 작품을 이어갔다. '오이디푸스' 못지않은 고뇌와 운명의 질곡을 견뎌왔기 때문에, 충분히 극화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낭독공연이라 무대화가 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정하 연출이 좋은 무대화를 해줄 거라 믿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정하 : 이지훈 선생님을 만나 이 작품을 읽고, 내면적 갈등, 왕비와 어머니 등 다변화된 인생 모습을 살아온 '조카스타'를 밀도 있게 그리려 했다. 초점을 맞춘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원본과 선생님께서 각색하면서 나온 인간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즐겁고 재미난 작업이었다. 배우들이 심도 있게 작품을 분석하고, 극작가전 취지에 걸맞게 했다. 연출적으로 욕심부리면 많은 걸 추가할 것 같아 최대한 줄였다. 글의 구성적 플롯을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이번 한국여성극작가전에 참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 '조카스타'의 이정하 연출(왼쪽), 이지훈 작가(오른쪽)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진통제와 저울'의 무대공연을 올린다. 어떤 작품인가?
ㄴ 최은옥 : 2012년에 썼던 작품이다. 좋은 기회를 맞이해 이번에 공연하게 됐다. 글쓰기의 성찰적이고 반성하는 기능을 돌아봤으면 했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출판인, 작가, 비평가로 구성했다. 이 세 명은 글쓰기라고 하는 공간 안에 있는 하나의 기호적 존재다. 평론하는 남자와 소설 쓰는 여자의 사랑이 나오는데, 출판하는 여자와 평론하는 남자는 부부 관계로 나온다. 사제간의 불륜 이야기가 내러티브 안에 포함된 것이다.
 
최근 SNS(소셜미디어)에서 문단 내 성폭력이 문제 되는 걸 봤다. 현실사회 모습으로 보기보단 정신적인 의미로 작품을 봐줬으면 한다. 불륜 관계는 작품 안에서 관객을 만나기 위해 내러티브로 만들었지만, 작품을 쓰는 사람으로 소설을 쓰고 공부를 하는 여자가 기성세대의 사회 제도에 의해 훼손되는 내면적 모습을 담고자 했다. 우리 사회가 기능적인 측면들만 많이 대접한다. 그러다 보니 예술을 하거나 글을 쓰는 행위의 사회적 구성이 많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글쓰기 행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백순원 :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문학 하는 사람, 예술을 하는 사람이 공통점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 흐름이 다른 작품과 다르다. 선생님께서 말한 것처럼 소설 쓰는 여자가 어떻게 시간 흐름에 따라 변질하고 변형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순수하게 시작된 글쓰기, 예술 행동, 창작활동이 사회적 제도와 만나 어떠한 고통을 겪고, 진통을 겪게 되는지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중점으로 공연을 만들고자 했다. 
 
   
▲ 백순원 연출(왼쪽)과 최은옥 작가(오른쪽)의 연극 '진통제와 저울'이 공연된다.
 
'눈물 짜는 가족'에 대해 소개해 달라.
ㄴ 김혜순 :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다. 열심히 사는 가족이 흘리는 눈물에 대한 의미를 담았는데, '양호'네 가족을 통해, 가족의 눈물 속에 고여있는 사랑, 희생, 희망, 치유에 힘에 관해 이야기한다.
 
송미숙 : 보통 연극을 하면서, 오늘, 여기, 지금 일어나는 일에서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주제나 메시지를 원한다. 연극인들이 가족이 없는 것처럼 산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는데, 가족이 정말 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작가님이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가 어머니라는 사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공유하는 작품 같았다. 무대나 의상, 조명, 소품에서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열심히 준비했다. 대사를 재밌게 써줘서, 관객에게 잘 전달하려 한다. 눈물을 진정 흘렸던 때는 언제였고, 그 울음을 통해 치유가 이뤄지도록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했다.
 
   
▲ '눈물 짜는 가족'의 송미숙 연출(왼쪽)과 김혜순 작가(오른쪽)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경희 원한 현숙' 작품은 어떤 내용인가?
ㄴ 백은아 : 작가가 없고, 나만 혼자 이 자리에 있어서 약간 외롭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최명희 선생님이 각색 분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작가 선생님과 저의 씨름도 있었고, 배우들이 열심히 준비했다. 의미 있는 작품이 나오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나혜석 씨의 세 단편 작품을 모아 하나로 각색했다.
 
'경희'라는 작품은 1918년에 써졌다. 당시 관습이나 사회상을 돌파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한 일본 유학생 '경희'의 이야기다. 옛날 작품답지 않게, 내면적인 심리묘사가 빼어난 작품이다.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다. '원한'은 1920년대 나혜석 작가가 쓴 작품이다. 타자에 의해 자신의 주체적 의지와 상관없이 삶을 망친 한 여자의 기구한 이야기인데, 한국판 '테스'다. 끝으로 '현숙'은 당시 카페의 직업여성에 대한 생소한 이야기다. 나혜석 작품 중 가장 파격적이고, 오늘날 봐도 모호하고, 상징적이고, 매혹적인 작품이다. 
 
이 세 작품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들을 하나의 무대로 불러내 그들의 삶, 고통, 고뇌, 그리고 시대와 맞설 수밖에 없는 주제에 욕심을 가지고 덤볐는데, 힘들기도 했다. 세 여성이 위태로운 벼랑 끝에선 삶의 모습인데, 2016년 현재 지금 여성이 직면한 문제와 비슷하다고 봤다. 100년이 지난 동시대에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인데, 오늘날 관객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 '경희 원한 현숙'의 백은아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작품 선정은 어떻게 이뤄졌나?
ㄴ 최명희 : 올해로 4회가 되었는데, 지난해부터 공연 편수를 줄여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성과를 보고 있다. 본 공연 3편, 낭독 2편을 지난해처럼 하면서, 우리가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임원들이나 중요한 역할을 맡으신 선생님들의 의견을 수렴할 회의를 했다. 2013년 제1회 당시, 나혜석 작가에 대해 쓴 것이 있었는데 많은 관심을 주셨다. 나혜석이라는 분은 미술계부터 문학계까지 여러 분야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 같다. 우리가 그런 네트워크에 가치몰이를 하지 않았지만,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 발견했고 시도를 했다.
 
연출과 작가를 맺고 공연을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회의 때, 작품과 작가를 정한 후에 며칠간 치열한 고민을 하면서 어떤 연출가가 맞을지 결정했다. 나는 연출가가 아니어서, 연출가 선생님끼리도 고민했다. 결정됐는데, 결과적으로 잘 나온 것 같다. 특별한 불만도 없고, 다들 어찌나 열심히 하시는지 열기가 대단하다.
 
최근 SNS상에서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여성작가로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ㄴ 이지훈 : 최근 회자하고 있는 소설가에게 식사 자리에서 약간의 성추행 비슷한 분위기를 견뎌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추문이 터질 때, 드디어 꼬리가 길어 밟혔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다. 10명 중의 7명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뉴스도 봤다. 소설가나 예술가들이 자기는 자유인이고,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핑계를 내세우면서 여성의 인격, 주권을 짓밟는다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문화예술계에 활동하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이나 작가가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해서,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놓으면서,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문화계가 제일 늦게 나온 것 같다. 학교나 공공기관에선 그런 교육을 하는데 반해 문화예술계는 자유롭다는 핑계로 더디게 이뤄지지 않았나 싶다. 여성에 대한 모독이 고쳐지지 않았다.
 
   
 
 
나혜석 작가의 삶이 지난봄 '강남역 사건'으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ㄴ 백은아 : 지난해 낭독 공연도 진행했는데, 개인적으로 나혜석 씨의 삶에 매료가 많이 됐다. 심정적으로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나혜석은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다. 그 당시 시대의 문화계 아이콘 같은 여류작가이자 서양화가였다. 그녀의 삶이 왜 그렇게 파멸로 갈 수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나혜석 작가에 대해 전체적으로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진보적인 의식이 굉장히 뛰어났었던 멋진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나라가 담아나기엔 시대가 비좁았고, 미개한 상태였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한국여성극작가전의 발전 방향은 어떻게 되는가?
ㄴ 김국희 : 지금까지는 자리를 잡는 상태였다. 앞으로 새로운 작품을 하려는 의지를 잡고 있다고 류근혜 회장님도 말씀하시고 있다. 지난해 낭독작품 공연을 올해 무대화해서 올렸고, 지방에 있는 작가님들도 모셔왔다.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대해 작가의 작품을 모셔와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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