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현빈, 한지민, 정재영, 조정석, 김성령, 조재현. 이름만 들어도 빛나는 배우들이 출연하여 화제를 모은 <역린>은 시사회부터 혹평을 받기 시작했다. 블로그 리뷰 및 많은 기사가 <역린>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 쏟아내었다. 필자는 이 모든 반응을 처음부터 믿지는 않았다. 분명 부족한 점은 있겠지만, 드라마 PD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재규 감독에 대한 영화계의 텃세도 있었을 것이며, 가정의 달 연휴 대목을 맞아 경쟁하게 된 또 다른 영화 <표적>과의 서로의 언론플레이도 있었을 것이다. (<역린>은 롯데엔터테인먼트, <표적>은 CJ E&M이 각각 투자·배급한 대작이다)

물론 혹평보다는 볼 만한 영화다. 하지만, 최근 흥행한 사극 영화들을 생각해봤을 때 <역린>은 뭔가 부족한 작품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했던 군주, 정조 … 불안, 불안, 불안 그리고 끝 조선은 철저한 성리학의 세계로 '이(理)'로 상징되는 절대불변의 진리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논리 앞에서 임금은 빈틈없이 완벽한 존재여야 했고, 인간은 정해놓은 방식에 맞춰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작디작은 '객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조가 즉위하게 되면서 조선은 그동안 나라를 이끌어왔던 가치관이 흔들리게 된다. 죄인이었던 자의 아들이 왕이 되면서 가장 완벽해야할 군주가, 가장 완벽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기존 세력은 정조를 해하려 하고,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버린 정조는 자신을 지킴으로써 조선의 근대를 열고자 한다. 그래서 정조라는 인물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기 어렵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소재다. 고독하지만 열정적이고, 불안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현빈이 그려낸 정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안하기만 하다. 자신을 죽이려 하는 정순왕후(한지민 분)와 노론벽파들에 맞서지만 이는 영화 속에서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아직도 왜 정조를 해하려고 했던 장군이 정조의 몇 마디에 그 칼을 내려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현빈의 정조는 불안함으로 모든 수분까지 말라버린 것 같은 홀쭉한 얼굴과 불안을 이겨내고자 남들 몰래 단련해온 근육으로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중요한 인물들에게서 관객들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어떠한 고민과 가치관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에 공감하지 못하고, 내용 전개를 이해하지 못한다. 너무 많았던 그들 … 무슨 말이 하고싶은 거니? 이러한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너무 많은 등장인물, 즉 너무할 말이 많았던 그들에게서 있다. 이와 비슷하게 전개되었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하선, 허균이라는 두 축에 의해서 전개되어 하선을 통해 바람직한 군주상을 관객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정조를 등장시킨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김홍도와 신윤복이라는 화원들의 삶을 통해 조선의 근대를 보여주었고, 정조의 삶 전체를 그리고 싶었던 드라마 <이산>은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77부작 동안 그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역린>은 135분이라는 꽤 긴 러닝타임 동안 정조, 정순왕후, 혜경궁 홍씨, 내시 상책, 살수 을수, 살수를 길러내는 광백 등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킨다. 심지어 이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어 이를 풀어내는 것만도 벅차다. 가장 중요한 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쓰여야 할 시간들이 주변인물들에게 소비되었고, 이 때문에 우리는 왜 이들이 이렇게 서로를 죽이려 하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지 이해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받은 느낌은 무언가가 툭툭 끊긴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이가 등장하고, 새로 등장한 그는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니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면서 피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모>때부터 보여준 이재규 감독의 영상미는 <역린>에서도 물론 빛이 난다. 을수(조정석 분)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장면은 색감도, 화면 그 자체도 아름다워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영상미가 그 장면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역린>이 정조의 암살을 둘러싸고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을 그려낸다고 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정조'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살았던 격변하는 조선을 어떻게 그려낼 것 인가였다. 하지만, 너무나 아쉽게도 <역린>은 살아남아야 했던 왕의 '불안감'과 그를 죽이려고 했던 세력의 '행동'만을 그리는데 그치고 만다. 그래서 <역린>은 혹평보다는 기대 이상이었지만, 역시나 너무 부족했다.

[글] 아띠에떠 원 artietor@mhns.co.kr

팝 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을지로 Oneway 티켓으로 인해 조금은 어렵고 즐거운 서울살이 경험 중. 일코 해제 후 실천하는 청춘이 되려고 노력 중인 24시간이 모자라는 여자.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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