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박 대령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보직 해임
박 대령 "尹 대통령 지시대로 엄정 수사"
군인권센터, 채수근 상병 순직은 해병대의 무리한 지시 탓

사진=채수근 상병 안장식 / 연합뉴스
사진=채수근 상병 안장식 / 연합뉴스

[문화뉴스 안성재 기자] 군 당국이 8일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을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에 대한 보직 해임을 의결하면서 군의 '수사 축소' 의혹이 일고 있다. 

해병대는 8일 오전 해병대사령부에서 정종범 부사령관을 심의위원장으로 하는 보직해임심의위원회를 열어 박 대령을 보직에서 해임하고 당사자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정 부사령관은 서면 통보에서 "채수근 상병 사건 수사결과 이첩 시기 조정 관련 사령관 지시사항에 대한 수사단장의 지시사항 불이행은 중대한 군 기강 문란"이라며 "'보직해임 심의위원회 의결 전 보직해임의 사유'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수사단장의 직무 수행이 곤란하다고 판단돼 수사단장에서 보직 해임하는 것으로 의결했다"고 명시했다.

앞서 박 대령은 지난 2일 오전 경북경찰청에 채 상병 사망 사건 조사보고서를 이첩했고, 국방부는 같은 날 오후 경찰로부터 사건을 회수했다.

국방부는 이와 동시에 수사단장 박 대령을 보직 해임했으며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보직해임심의위원회는 중대한 군기문란에 대해서는 즉각 보직 해임이 가능하지만, 일주일 안에 심의위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군인사법에 따라 열린 것이다.

해병1사단 사단장은 혐의자에서 제외하라

사진=국방혁신위 2차 회의 참석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 연합뉴스
사진=국방혁신위 2차 회의 참석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 연합뉴스

국방부가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그가 소속됐던 해병1사단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고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경북 예천 수해복구 작전을 지휘한 박상현 여단장을 포함한 8명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자료를 경찰에 인계할 예정이었다.

지난해 7월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면서 범죄에 의한 군인 사망 사고와 관련해선 민간 경찰이 수사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체 조사 결과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차례대로 보고됐으며,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안인 만큼 지난달 31일 언론 브리핑과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도 예고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종섭 장관은 지난 4일 우주베키스탄으로 출국하기 직전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으며, 특히 이 과정에서 임 사단장과 박 여단장은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해병대 수사단에 전달됐다고 군 소식통은 전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조사에 따라 책임이 드러난 이들은 모두 혐의를 적시해 경찰에 인계해야 하는 게 맞다고 판단, 지난 2일 오전 경북경찰청에 자체 조사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국방부 검찰단은 곧바로 경찰에 자료 반환을 요청하고, 같은 날 오후 회수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 장관이) 국외 출장 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요소가 없도록 이첩을 보류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실치사 등 혐의가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던데, 그것은 법적으로 수사해야 할 부분인데 (해병대가) 단정해서 넘기면 경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그래서 (과실치사) 그걸 빼고 넘기자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수사가 잘못돼서 보직 해임을 한 게 아니라 해병대 사령관의 정당한 지시를 불응하고 무단으로 (자료를 이첩)했기 때문에 군기 위반 사항이라고 판단하고 보직 해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지시대로 엄정 수사했다

사진=해병 대령 박정훈 수사단장 입장문
사진=해병 대령 박정훈 수사단장 입장문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자신이 보직해임당한 것과 관련해 9일, "사건발생 초기 윤석열 대통령님께서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셨고, 저는 대통령의 지시를 적극 수명했다"고 밝혔다.

박 대령은 이날 변호인 김경호 변호사를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수사 결과 사단장 등 혐의자 8명의 업무상 과실을 확인했고,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내용을 해병대 사령관·해군참모총장·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 보고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방부 장관 보고 이후 경찰에 사건을 이첩할 때까지 저는 그 누구로부터도 장관의 이첩 대기 명령을 직·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며 "다만 법무관리관의 개인 의견과 차관의 문자 내용만 전달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령에게 사건 이첩 보류 명령을 통보한 사람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라고 김 변호사는 전했다. 유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과 5차례 이상 통화하면서 '최초 보고서에서 죄명을 빼라, 혐의자 및 혐의사실을 빼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박 대령은 유 법무관리관에게 "수사 결과 사단장 등에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것을 유가족에게 이미 설명했는데, 이제 와서 사단장 등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는 것이 문제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 대령을 수사하는 국방부 검찰단은 직권남용과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혐의도 추가로 적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 변호사는 "박 대령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집단항명의 수괴라고만 돼 있고 누구의 명령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복종하지 않았다는 사실 적시가 전혀 없다"며 "직접 증거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병대 성과' 이미지 위해 무리하다 채상병 순직

사진=군인권센터, 고 채수근 상병 사건 제보 내용 공개 / 연합뉴스
사진=군인권센터, 고 채수근 상병 사건 제보 내용 공개 / 연합뉴스

군인권센터(이하 센터)는 고(故) 채수근 상병의 순직이 해병대 지휘부의 무리한 지시 탓이라고 8일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날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채 상병이 소속됐던 중대의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 동료 병사들의 제보 등을 근거로 자체로 재구성한 사고 경위와 원인 분석을 발표했다.

센터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하기 전날인 지난달 18일 채 상병 소속 부대 해병대원들은 안전을 위해 물에 들어가지 않은 대신 1열로 서서 수면 위 부유물을 확인하거나 풀숲을 뒤지는 방식으로 수색했다.

수색을 마친 뒤 오후 4시 22분께 중대 카카오톡 대화방에 "1열로 비효율적으로 하는 부대장이 없도록 바둑판식 수색 정찰을 실시할 것"이라는 임 사단장의 지시사항이 전달됐다.

센터는 "당일 숙소에 도착한 이후에도 대화방에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이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이 지시는 같은 날 저녁 점호 시간에도 반복해서 전파됐다"고 주장했다.

또 이날 저녁 점호 이후에 '(수색 중) 장화를 착용하라'는 복장 지침에 중대 간부들이 안전재난수칙상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선 안된다며 전투화를 신어야 한다고 상부에 건의했지만 묵살됐다고 센터는 지적했다.

한편, 한 언론은 신범철 차관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임성근) 사단장은 빼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신 차관은 해병대 사령관에게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고와 관련한 문자를 보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특정인을 언급한 바 없다"며 정정보도 요청과 함게 법적 절차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했다는 논란이 갈수록 커지자 해병대 수사담당자와 언론에 '법적 대응'을 통해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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