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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만 살아왔던 세대. 우리 시대에는 갖은 고초를 온갖 인내로 견뎌야만 했던 세대가 존재한다. 그런 세대를 위한 공연이 있다. 바로 뮤지컬 '서울 1983'이다.

어느 세대가, 어느 개인이 인내와 시련의 혹독한 시절을 견뎌보지 않았겠냐마는, 우리가 위로하고 상처를 보듬어주기에 인색한 세대가 있었다.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아들의 눈이 멀고, 동생이 팔을 잃고. 돌산댁(나문희)은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홀로 남겨져 남편 없이 4남매와 남동생을 이끌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 돌산댁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셋째이자 하나밖에 없는 딸이 가수의 꿈을 키우다 냉혹한 세상에 온몸이 찢겨져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둘째는 깡패들과 연루되어 어머니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희망이었던 첫째는 술과 여자에 빠지고, 남동생은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시름시름 앓다 저세상으로 향한다. 게다가 막내는 장님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돌산댁에게는 처참한 비극들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그러나 이게 실제로 그동안 우리가 뒤돌아보지 않았던 전후 세대들에게 닥쳤던 시련의 현실이었다면, 우린 그분들께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요즈음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어른은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다.
어른으로서의 일들에 바빴을 뿐이고, 나이의 무게감을 강한 척으로 버텼을 뿐이다.
어른도 아프다."

아팠지만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던 세대. 어른이었고 부모였고 가장이었기 때문에 티를 낼 수 없었던, 아니, 아플 수조차 없었던 세대. 돌산댁은 수십 년이 지나 어렵게 만난 남편 양백천(박인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동안 나 어찌 살았는지 아시오? 어찌 연락 한 번 안할 수가 있소?" 이후 남편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역력하자 그녀는 곧 더 미안한 기색으로 "그냥 서러워서, 야속해서 한 소리요."라고 덧붙인다.

 

   
 

지독했던 세월들이 서러워 내뱉었던 자그마한 투정도, 그들에게는 조금도 용납되지 않는지, 그들은 원망 섞인 한 마디조차 내뱉기가 힘겹다. 공연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잔인했던 그 시절을 겪어낸 세대들을 위로하려 한다. 뮤지컬 '서울 1983'은 뛰어난 스토리 구성이나 뮤지컬 스타, 혹은 화려한 스펙터클로 관객들을 맞이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대에는 국민배우 나문희와 박인환, 그리고 서울시뮤지컬단이 함께 만들어가는 진정어린 연기가 있었다.

 

   
 

더구나 배우 나문희가 내뿜는 '한'의 정서는 그 잔혹한 세월을 견디지 않은 세대일지라도, 기어이 눈물을 머금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구수한 내용과 웃음 코드가 우리 시대의 '어른'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파도 버틸 수밖에 없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해도 맘껏 쏟아낼 수 없었던 어른들께 말씀드린다. 맘껏 아프시고, 맘껏 눈물지으시고, 맘껏 웃으시라고 말이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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