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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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순간은 짧았다. 장장 140여 분의 러닝타임 중 복수의 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20여년에 걸친 조씨 가문의 복수극을 그린다. 그러나 권력욕에 사로잡혀 고아의 할아버지 조순을 모함으로 몰아넣은 도안고를 향한 복수심은, 고아의 것이 아니었다. 조씨도 아닌, 조씨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는 '정영'의 것이었다. 갓난아기였던 조씨고아가 장성하기까지 정영이 그의 복수심을 대신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은 복수의 순간이 아닌, 그 이외의 시간들에 집중한다. 1막은 조씨고아의 가문이 어떤 위기를 맞았는지, 그리고 도안고로부터 조씨고아를 지키기 위해 희생됐던 인물들에 대해 소개된다. 이어 2막에서는 장성한 조씨고아가 복수심을 품을 수 있도록 정영이 그간의 일화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전개되며 조씨고아의 복수가 실현된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동양의 햄릿'이라고 불리던 조씨고아와 햄릿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햄릿은 복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심하지만, 고아는 결심이 선 순간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어째서 고아는 아무런 고뇌나 가책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복수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복수'란 이런 것이었는가.

 

   
 

빠르게 실천된 고아의 복수는 당연했다. 왜냐하면 복수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뇌, 복수심을 품어온 마음의 고통, 복수 이후의 시간을 두려워할 가책의 순간. 이 모든 것을 정영이 대신 짊어졌기 때문이다. 정영은 조씨 가문에 은혜를 입었던 데에서 비롯해 자신의 인생 송두리째를 그 가문의 존립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는 조씨고아의 죽음 대신 어렵게 낳은 자신의 자식을 희생했는데, 그 충격으로 인해 정영의 아내는 자살을 택하고 만다. 도안고는 조씨고아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정영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도대체 네 인생은 뭐였어? 다 늙어버렸잖아. (너와 나) 서로가 비슷하구나." 그리고 정영 또한 고아에게 전한다. "당신은 드디어 성씨를 찾았군요. 난 이제 할 일이 없어졌어요."

 

   
 

복수만을 꿈꿨던 인생의 허무함, 덧없음. 우리는 지금껏 수많은 캐릭터들의 복수를 엿보며, 복수 그 이후의 공허함을 잘 알고 있는 존재다. 그리고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며 역설하는 존재다. 복수와 은혜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그 메커니즘은 같다. 불행한 사건이든 행운의 사건이든, 이전 사건의 주체에게 신세졌던 것들을 '갚기' 위함이다. 정영은 은혜를 갚기 위해 복수를 갚는 길을 선택했고, 그 복수는 정영의 인생 전부를 요구했다.

 

   
 

고선웅 연출가는 이 시대에 대해 "말의 깊이가 가벼워졌으며, 식언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정영이라는 인물은 가볍고 의미 없는 말들을 발설하는 우리에게 말의 무게를 재고하게 해주는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복수 행위의 주체냐 아니냐를 떠나서, 복수심을 떠안고 산 이의 불행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이 내뱉었던 말의 무게, 복수의 무게를 모두 떠안고 살았던 정영은 결국 처량한 뒷모습을 남긴다.

 

   
 

"이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
북소리, 피리소리에 맞춰 놀다보니 어느 새 봄.
어느새 늙어버렸네. 금방이구나, 인생은.
부디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마지막에 연극은 우리의 인생이 부디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고선웅 연출가다운 표현이었다. 연극은 단조로운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간결한 오브제만으로 진행된다. 배우들의 속사포 대사는 배경을 묘사하는 오브제가 되기도 하고, 사건을 진행하는 해설이나 지문이 되기도 한다. 비통한 이야기 전반에 희극적 요소를 관통하는데, 이것은 연출가 고선웅의 특징이다. 연극을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전개하며, 비극과 희극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복잡하고 번잡한 인생을 간결하게 표현하면서도, 인생 자체를 단조롭게 정의 내리지 않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고선웅 연출가와 그의 작품들은 멀리서 보아 '비극이기만' 한 인생을, 가까이서 보게 함으로써 '희극일 수 있다'는 점을 밝혀준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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