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재진부터 연출가 고선웅까지, 문화예술계 10人의 강렬한 한 마디

[문화뉴스] 한 해를 되돌아볼 무렵. "다사다난했던 해였어"라는 한마디와 함께 이 험난한 한 해를 견뎌왔다는 안도의 한숨과 탄식이 곁들여 나오는 '연말'이다. 문화뉴스가 연말을 맞아 올해 문화계는 어떤 다사(多事)와 다난(多難)이 있었는지에 대한 결산을 준비했다. 대한민국 문화계 소식을 전하기 위해 현장을 누비며 뛰어다녔던 문화뉴스 기자들이, 올해를 되돌아볼 수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강렬한 한 마디 10개를 뽑아본다.


1. 배우 정재진, "서울시의 대표적 문화 아이콘인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했지만, 문화·예술인은 오히려 대학로에서 쫓겨나고 있다."

   
 

지난 3월 대학로에서는 상여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대학로극장이 임대료를 낼 수 없어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꽃상여와 150여 명의 연출가, 배우, 원로 연극인을 포함한 연극 관계자들이 대학로의 입구에서 중심인 마로니에 공원을 향해 움직였다. 28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로극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유는 표면적으론 건물주의 임대료 상승 요구로 인해 월세를 내지 못해서다.

활기차고 즐겁게만 보였던 대학로의 이면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금의 대학로가 있기까지, 많은 노력과 헌신을 바쳤던 문화인들이다. 문화지구에서 쫓겨나는 문화예술인들을 대표해 정재진 배우는 현재 대학로 소극장의 실태를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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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립극단 예술감독 김윤철, "연극을 잘 만들면 관객은 있다. '관객이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폄하는 불필요한 기우다."

   
 


올해 혁신적인 안건들로 국립극단의 새로운 모습을 도모한 국립극단 김윤철 예술감독이 지난 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불필요한 기우를 언급했다. 명동예술극장과의 통합, 시즌단원제 도입 등 올해 국립극단을 바라보는 관객들과 연극인들의 우려의 시선은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연극 '시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문제적 인간 연산' 등의 작품들에 상당한 호평이 이어지며 국립극단의 쇄신적인 변화는 성공을 이룬 듯해 보였다.

김윤철 예술감독은 국립극단의 연말을 결산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연극을 잘 만들면 관객은 있다. '관객이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폄하는 불필요한 기우다. 잘 만들고, 소통하게 하고, 새롭게 만들면 우리 이야기가 무대에서 재현되는 것을 관객들은 반드시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다. 명동예술극장과의 통합 때문에 우려하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좋은 부분은 계승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기획하고 있다. 현재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같은 경우는 명동예술극장에서 기획했던 부분인데, 우리가 수용한 작품이다. '아버지와 아들', '리어왕'도 그런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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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우 조재현, "딸(조혜정)이 출연하는 드라마 보지 않는다"

   
 


한국 초연 40주년을 기념해 연극 '에쿠우스'가 올해에 두 번이나 개막했다. 40주년 첫 번째 공연은 지난 9월에 충무아트홀 중극장에서 개막한 무대였고, 그리고 두 번째 공연은 얼마 전 DCF대명문화공장 비발디파크홀에서 개막한 무대였다. 작품에서 알런 스트랑, 다이사트 역을 모두 맡아보고 연출까지 맡아본 바 있는 조재현 배우는 프레스콜 자리에서 농담 섞인 자신의 연기 철학을 내비춘 바 있다.

현재 방영중인 딸(조혜정)의 드라마를 보고 있냐는 질문에 "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어 "후배들에게도 직접적인 연기 조언을 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학생이나 후배들을 연기를 수업할 때도 구체적으로 연기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며 덧붙였다. 그는 "구체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가르치지도 않는다. 연기하기 전 단계의 마음과 다양한 느낌, 정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딸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다."라며 자신의 연기 스승으로서의 철학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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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배우 박정자, "만 명이 넘으면 모든 스태프분들께 양해를 구해서 한 회 엑스트라 공연을 하고 싶다."

   
 


존경받는 배우 박정자가 지난 1월 연극 '해롤드 앤 모드' 프레스콜에서 조심스런 공약을 내걸었다. 19세 소년과 80세 할머니의 범상치 않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 연극 '해롤드 앤 모드'의 누적 관객 수가 만 명을 초과하면 엑스트라 공연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실제로 연극은 연일 매진과 객석 점유율 95%를 기록하며, 누적 관객 1만 명 돌파했다.

이후 엑스트라 공연은 제작사 샘컴퍼니에 의해 문화 나눔 도네이션 특별공연으로 진행됐다. '나눔'이라는 모토를 기반으로 문화 소외계층에게 문화를 통해 따뜻한 희망을 전한다는 취지로 배우와 스태프 전원이 재능기부를 통해 진행돼 온 행사며, 누적 관객 1만 명 돌파 기념으로 행사 5회째를 기록한 것이다. 배우 박정자의 발언과 연극 '해롤드 앤 모드'의 도네이션 특별공연은 단순한 시선끌기의 차원에서 벗어나, 건강한 공약과 이행의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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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배우 박해미, "2인극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소통에 대한 극적인 탐구다."

   
 


지난 11월, 마로니에 야외공연장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그리고 스튜디오 76에서 '2인극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2인극 페스티벌은 인간과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고찰을 통한 우수 공연 레퍼토리 발굴로 2000년 1회 개최 이후, 14년간 위상을 공고히 다진 연극계의 큰 축제다. 이번 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배우 박해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인극'에 대한 애정과 깊은 생각을 내보였다.

2인극에 대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소통에 대한 극적 탐구"라 말하는 박해미는 "기회가 되면 직접 출연을 하거나, 연출하고 싶다"라 말하며 이번 페스티벌에 대한 포부의 운을 뗐다. 그는 "2인극이 가볍지 않으면서도 즐겁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전하며, "2인극은 배우들에게도 도전해보고 싶은 형식이다. 여러 장치를 활용해서 관객들이 배우의 에너지와 밀도 있는 연기에 근접한 곳에서 즐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2인극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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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故임홍식 배우 추모사

   
 


지난 달 19일,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출연 중이던 배우 임홍식이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무대에 올라 자신의 역할에 온 기력을 다해 바친 후 숨을 거뒀기에 그를 기리는 연극인들의 마음은 쓰라리면서도 애달팠다. 그와 함께 작업했던 연극인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

-국립극단 예술감독 김윤철, "한 번이라도 같이 겪으면 깊은 인상을 받을 만큼 인간미가 훈훈했던 그런 배우셨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연출가 고선웅, "대쪽같은 분이셨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프라이드가 매우 강하셨다."
-연극 '차이메리카' 연출가 최용훈, "정말 양반이셨다. 본인 역할에 충실했고, 후배들에게 많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분이셨다. 선비처럼 꼿꼿한 분이셨다."
-연극 '허물' 연출가 류주연, "과장됨 없이, 흔들림 없이 연기하셨다. 여기에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권위적으로 후배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 젊은 후배 배우들에게 애정을 갖고 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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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연극인 이병복, "내 체취가 이로운지 아닌지는 다음 세대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평할 일이다. 내 할 일을 다 한다는 것이 신조다."

   
 


지난 8월, 연극인 이병복의 인생이 담긴 구술채록 '우리가 이래서 사는가 보다'의 출간기념회가 열렸다. 이병복은 1966년 연출가 김정옥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단해 2006년까지 극단 대표로 40여 년을 이끌어왔으며, 1987년엔 한국무대미술가협회를 발족해 회장직을 맡은 바 있는 대한민국 연극계를 이끌어온 원로 연극인이다.

이병복은 척박한 우리나라의 문화적 토양 위에 무대미술 장르를 개척한 이병복은 스스로를 무대 뒤의 '뒷광대'라고 표현한다. 그는 출간기념회에서 "무대의 소품도 내 새끼들이다. 내 영혼이 들어가니 내가 뭘 공개하면 내 체취가 난다. 모든 것이 발전하지만, 체취는 어떻게 속일 수 없다. 자기의 성실한 체취가 가장 중요하다. 내 체취가 이로운지 아닌지는 다음 세대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평할 일이다. 내 할 일을 다 한다는 것이 신조다."라 얘기하며, 살아온 인생을 종합하는 한 마디를 남겼다. 여성이 연극하기 힘든 시절부터 현실적인 사람이 연극하기 힘든 이 순간까지, 연극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온 연극인 이병복.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워진 이 시대, 당당히 '내 할 일을 다 한다'는 것이 신조라고 말하는 연극인 이병복의 삶이 더욱 부럽고 존경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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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화감독 임흥순, "들어주는 것 자체가 그분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될 수 있다."

   
 


미술과 영화, 두 예술 분야의 조합으로 이뤄진 작품 '위로공단'은 한국 역사 중 노동사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을 인터뷰와 추상적인 영상과 함께 보여준다. 1970년대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부터 캄보디아 유혈사태에 관련한 내용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까지. 임흥순 감독은 시사회에서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 수상에 대한 소감과 당부를 함께 밝혔다.

그는 인터뷰 연출 에피소드, 퍼포먼스를 중간에 넣은 이유, 작품의 인터뷰 내용이 정치적 해석 논란이 이뤄질지도 모르는 우려에 대해 "정치적 해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덧붙여 "부정적인 시선의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이고, 실제 존재했던 피켓도 그분들의 과거와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그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삶의 문제는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그것은 여당, 야당, 진보, 보수 모두 불편해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모두 미안함의 감정을 갖는 것이 바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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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서울연극협회 회장 박장렬, "2015년은 연극 역사상 참극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9월에는 문화연대, 서울연극협회, 한국작가회의가 공동주최한 '한국문화예술을 염려하는 문화 예술인들 기자회견'이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예술가의 집에서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사 과정에서 특정 작가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선정된 작품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사실이 밝혀지며, 문화예술에 대한 정치적 검열을 우려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뭉친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체제 안에 있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의 기본적인 목적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의 발전과 문화의 융성도 일어난다. 하지만 그 비판적 잣대가 정치적 검열의 잣대로 막는다면 저희는 이와 같은 시위 행위를 예술이 아니라 광장이나 공공기관 앞에서 할 수밖에 없다."며 밝혔다. 더불어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은 "2015년은 연극 역사상 참극의 해로 기록될 것"이라며 "서울연극제 폐관 사태부터 이어 검열 사태까지 대학로 날씨는 좋은데 마음은 겨울처럼 차갑고 얼어붙었다."며 연극계에 불어 닥친 암담한 세파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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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연출가 고선웅, "애타게 하고 싶은 말을 찾아야 한다."

   
 


올 한해 더욱 연극계를 풍성하게 만든 연출가 고선웅이 지난 11월 본지와의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연출가 고선웅은 연극 '푸르른 날에', '홍도', '강철왕',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뮤지컬 '아리랑' 등의 뛰어난 각색 및 연출 실력을 입증하며, 연출가들이 만장일치로 봅은 '올해의 연출가'로 선정된 바 있다. 더불어 지난 8일에는 제5회 아름다운예술인상의 연극예술인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뛰어난 연출력과 유려한 언변 솜씨의 비결에 대해 그는, "비결은 딱히 없다. 하고 싶을 때에야 말을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말하고 싶지 않을 때 말을 만들면 이상하기 마련이다. 말을 하고 싶을 때는 그 사람의 논리가 정연하든 하지 않든, 그 맥락이 분명하게 전달된다. 그렇지 않으면 애매하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배우 또한 "극본에 쓰여 있는 것을 그냥 표현하면 그 배우가 애타게 하고픈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배우도 자신 안의 애타게 말하고픈 상태를 유지해야 관객이 주목하고 사랑하는 배우가 될 수 있다, 누구든 그렇다. 안에 '애타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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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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