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3.14
캐스팅: 이지혜, 옥주현, 윤소호 외
장소: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좌석: 9열 중앙

혁명의 피로 물든 프랑스, 그 한가운데에 잔인한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왕비가 있었다. 루이 16세와의 정략결혼으로 프랑스 땅을 밟게 된 오스트리아 왕실 출신의 소녀, 마리 앙투아네트.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된 어린 왕비는 고귀하고 아름다웠다. 새하얀 백합처럼 순수했던 왕비는 흰 드레스 자락 위로 붉은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도 모른 채 마음껏 춤추고 노래했다. 그림 같은 성에서 황실의 삶을 누리던 그녀는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민중들의 무리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보석 새장 안에서 지저귀던 작은 파랑새의 목을 꺾은 이들의 심판은 정당했을까.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꺾은 합당한 정의라는 것은 존재했을까.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으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중심으로 사회의 정의와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미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지만 정작 그녀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물으면 사치와 허영, 단두대에서의 처형 정도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라는 발언을 떠올릴지도 모르고 말이다. 물론 이 말조차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로 잘못 알려졌을 뿐, 실제 그녀가 한 말은 아니다. 

우리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름과 소문 뒤에 숨겨진 ‘진짜’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아니, 어쩌면 별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자한 악명과 무성한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그녀를 단두대로 내몰던 잔인한 혁명의 무리의 모습과 현재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무엇이 다른가? 몇백 년 전 과거 마녀사냥의 역사를 보며 지금 우리 사회의 정의를 돌아보게 된다. 피로 세운 정의의 탑은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며 탑 마루에 꽂힌 붉은 자유의 깃발 역시 그대로이다. 진정한 정의와 자유의 의미를 찾는 여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가 남긴 피와 눈물의 발자국을 되짚어보는 이 작품의 이야기가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은 화려하고 빛났다. 프랑스 황실이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그윽한 향이 나는 차를 마시고 꽃들이 만개한 정원을 거닐며 인생을 즐겼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재정이 바닥난 것을 알면서 분에 맞지 않는 목걸이를 산 것도, 어린 아들과의 부적절한 관계도 모두 근거 없는 헛소문에 불과했다. 어느새 사실이 되어 떠돌던 이 거짓들은 칼날이 되어 그녀의 목을 내리쳤다. 굶어 죽어가는 민중들에게 호의호식하는 귀족의 모습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릇된 판단으로 다른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 얻은 자유가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을 과연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감상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부분에의 깊은 이입이 가능하다. 고통으로 얼룩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에 시선을 맞추어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사를 조명할 수도, 혁명을 일으킨 시민들의 분노와 잔인한 사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진실된 정의에 대해 고찰할 수도 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밀도 높은 스토리 구성과 다채로운 연출을 통해 이 시대에 얽힌 이야기를 잘 설명하고 있으므로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관람하든 충분히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작품답게 화려하고 풍부한 무대의 구성도 인상적이다. 360도 회전하는 무대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흥미를 더한다. 로코코 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의상들도 놀라움을 선사한다. 시선을 빼앗는 눈부신 드레스와 온갖 장식들은 보면 볼수록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엄청난 수준이다. 이외에도 거대한 사자상과 빛나는 목걸이 등 눈길을 사로잡는 요소들이 즐비하여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다. 대극장이라는 공간적 이점을 200% 활용한 영리한 무대 연출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장 화려한 곳에서 가장 밑바닥으로 향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불행한 생애는 지금 이 작품을 마주하는 우리에게까지 짙은 씁쓸함을 남긴다. 불필요한 죽음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을 만들지 않도록 우리의 오늘을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거짓된 추문과 의혹에 휩싸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짧았던 생에 안타까움을 전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한편, 10주년을 맞이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5월 26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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