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뮤지컬의 '새로운 시도'로 나아가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기존의 좋은 것들을 함께 가져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김준수, 박은태, 최재웅이란 화려한 캐스트에 신예 홍서영의 합류에 이지나 연출, 김문정 음악감독, 조용신 작가라는 최고의 창작진들이 모여 작품 제작 당시부터 줄곧 기대감을 모았던 작품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원작으로 해 만들어낸 작품은 19세기 말 신앙에 의지하던 세계가 뒤집히며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유미주의와 탐미주의를 파고든다. 신만이 하늘 위에 존재하던 시대를 벗어나 '사람이 하늘을 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본 리뷰는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에 대한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류학자인 '헨리 워튼'은 옥스포드 대학의 절친 '배질 홀워드'가 매료된 아름다운 소년 '도리안 그레이'를 만나게 된다. '헨리'는 '도리안'을 보고 자신이 찾던 유미주의에 부합한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소년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접근한다. '도리안'은 그런 '헨리'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아름다움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유미주의에 점점 빠져들고, '배질'이 그려준 아름다운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영원히 초상화처럼 젊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 영혼도 맞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초상화에는 점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도리안'의 마음이 타락해갈수록 초상화가 늙고 추해져 간다.

하지만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관객의 마음에 어느 정도 전해질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스럽다. 인간이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을 배척하고자 했던 청교도적 사상이 가득한 19세기 런던에서 벌어지는 일이 21세기에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데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보여지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1막을 예로 들면 등장인물들이 생각하는 '유미주의'와 '탐미주의'가 구체화하고 실체화되지 않는다. '시빌'을 통한 '도리안'의 첫 번째 타락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지만, 워낙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전하는 바가 방대해 지나치게 축약하고 현학적으로 압축해도 시간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시빌 배인'을 통한 '도리안'의 첫 타락이 관객에게 전해지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시빌'과 '도리안'의 가슴 설레는 첫사랑은 은유적으로 작품 내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나오는 만큼 진실하고 목숨을 걸 사랑으로 표현돼야 하지만, 짧은 러닝 안에 넣기 위해 둘의 관계가 몇 가지의 장면을 통해서만 비친다.

'시빌'이 '도리안'에게 버림받은 것으로 하루 만에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하면 훨씬 더 지독한 사랑과 지독한 이별을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시빌'은 그저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별 통보에 죽음을 택하고 만다. 죽음보다 훨씬 더 약한 타락으로 인해 초상화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도리안'이 점점 더 쾌락과 타락으로 무너져 가면 더 효과적인 전달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도리안'의 처음 캐릭터 설정에 조금 더 깊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몇 세의 소년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떠한 사람이란 부분이 타인의 입을 통한 설명뿐이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면 어땠을까.

반면 2막은 1막의 아쉬움을 날려버릴 정도로 훌륭해진다. 지나치게 심플한 창틀이나, 계단만이 반복적으로 사용된 미니멀한 무대의 아쉬움이 '새로운 시도'인 영상의 사용으로 지워진다. 특히 샬롯과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 장면에서 쓰인 영상은 극적인 몰입을 순간적으로 만들고 샬롯이 떨어져 죽는 장면까지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체코 로케이션까지 다녀오며 창작진이 강조한 '새로운 시도'가 아쉬움에 남지 않고 분명한 성과를 거두는 지점으로 보인다.

또 2막의 첫 번째 넘버인 '또 다른 나'도 마찬가지다. 진태화가 연기한 초상화의 의인화와 앙상블들의 열연은 김준수의 극적인 음색과 결합해 전에 보기 힘든 새로운 무대를 연출한다. 틀을 뛰어넘어 '도리안'에게 달려드는 '초상화'는 단순히 기괴하게 변해가는 이미지 이상의 효과를 전달한다.

다음으론 앞서 아쉽다고 이야기한 '구체화하고 실체화된' 도리안의 '유미주의'가 눈에 띈다. 1막의 마지막에선 '그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아느냐'는 대사 정도로만 표현된 '도리안'의 행위들이 갈등이 깊어지면서 직접 보이는 것. '샬롯'을 본의 아니게 죽이고 '배질'마저 죽인 '도리안'이 '앨런'을 통해 '배질'의 시체를 처리하게끔 만드는 장면이 그렇다. 그 전까진 마약에 찌든 정도로만 묘사되는 '도리안'의 '타락'이 극단적으로 보이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추해진 정도가 아니라 흉물스러워진 초상화도 힘을 더한다.

하지만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앞서 말한 것들이 아니라 사소한 만듦새다. 무대 세트의 불규칙한 퀄리티나 상세하게 표현되지 않은 '돈 많은' 도리안의 집 내부 표현은 미장센을 위한 선택일 수 있지만, '도리안 그레이'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인 '늙지 않는' 도리안에 대한 표현이 빈약한 점이 그것이다. 이는 '도리안'이 20년 동안 전혀 늙지 않았다고 놀라워하기엔 '앨런'이나 '브랜든 부인'이 노화에 대한 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배질'도, '헨리'도 외관상 전혀 늙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관객이 상상으로 둘이 늙었고 도리안만 젊고 아름다운 그대로라고 생각하기엔, 뮤지컬은 너무 '볼거리'가 중요한 장르가 아닐까.

여러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늘 그렇듯 훌륭하다. 신인으로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받은 홍서영 역시 만족스러운 매력을 선보인다. 특히 '헨리'의 맞춤이라고 할 수있는 박은태는 슈트가 잘 어울리는 비주얼과 여기까지라고 생각될 때 한 번 더 터트려주는 가창력이 김준수의 극적인 음색, 독특한 분위기와 결합돼 시너지를 일으킨다. '도리안 그레이'인만큼 '도리안'에게 입체적인 면이 집중된 것이 아쉬울 정도다.

전체적으로 볼 때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아직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신선한 새로운 시도들과 배우들의 매력을 끌어내는 부분이 있지만, 대마가 세계 곳곳에서 합법화되고 LGBT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21세기에, 성인들이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세 배우의 유미주의를 탐구하며 보기에는 '13세 이상 관람가'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보여줄 또 다른 '새로운 시도'를 기대해 본다.

뮤지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도리안 그레이'는 성남아트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10월 29일까지 공연된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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