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여기 아주 평범한 이야기가 있다.

일상의 무료함에 지친 한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로 시간 여행을 떠나 과거(혹은 미래)의 인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해 한 단계 성장한다는 이야기. 어디선가 많이 보았을 법한 흔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진부한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과 만나 팩션으로 다가올 때 이 '흔뮤'는 '훈뮤'가 된다.

※본 리뷰는 뮤지컬 '명동 로망스'의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뮤지컬 '명동 로망스'의 주인공 2016년의 장선호 역시 그러한 인물이다. 또래가 보기엔 성공한 9급 공무원인 그는 하루하루 일상과 싸우며 지쳐간다. 아주 오래된 명동의 로망스 다방 주인에게 재건축 허가서를 받기 위해 들린 그는 벽장 속에 빠져 시간 여행을 떠나 60년 전인 1956년 명동 한복판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곳에는 '예술가'라 서로를 부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바로 이 예술가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덧입혀 주인공 선호의 시간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 낸다. 1956년 로망스 다방에서 만난 이들은 바로 박인환, 전혜린, 이중섭인 것.

지금에야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작품 속에선 말 그대로 '돈 안 버는 이상한 사람들'에 불과하다. '이상한 건 죄가 아니지만 수상한 건 죄가 된다'는 명동 경찰의 말처럼 그저 '이상한 사람들'에 불과한 이들은 마담의 도움 아래 예술적 생활의 낭만을 누린다.

선호는 이 이상한 무리에 편입돼 그들과 교류한다. 1956년 세상의 '이상한 사람들'인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산다. 당장 가족들의 생계조차 책임질 수 없을 만큼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해 그림을 접으려는 이중섭, '문인'이 되고 싶지만, 가슴속 열정을 글로 옮기지 못한 채 안락한 부르주아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혜린, 동시대의 문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의 고민은 결국 그들이 고민하는 지점이 어떠한 '현상'인가를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그 고민의 '본질'이 결국 선호가, 아니 공연을 보는 관객의 고민과 일치하는 것이다.

선호는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어느새 공무원 시절과 다르게 '살아있는' 삶을 사는 자신을 발견하고 1956년에 남으려고 하지만, 그 방법이 바로 신분증을 만들어 평범하게 살아가게 해주겠다는 경찰의 제안이다. 당시의 독재 권력의 요구에 응해 선전 활동을 하려는 것이다. '그저 말 몇 마디일 뿐'이란 선호의 변명을 매섭게 꾸짖는 예술가들의 모습은 60년을 넘어 2016년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기주의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도 선호라는 방패가 앞에서 대신 맞아주기에 한결 수월하게 해체된다.

또 인물의 1950년대를 재현한 말투나 의상을 비롯 각 인물의 친밀한 관계 형성에 상당히 공을 들이기에 인물들의 외침이 지나치게 계몽적으로 보이지 않은 점도 호평할 만하다. 다만, 오히려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이 110분의 뮤지컬에 셋이나 엮이기엔 지나치게 유명한 감이 있어 이중섭을 제외한 인물들의 입체적인 면이 발휘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신세대 여자답게 먼저 선호에게 키스신을 선보이는 혜린의 모습은 작품의 제목에 걸맞은 유일한 '로망스'를 선보이지만, 당시 시대상을 고려할 때 서울대-독일 유학파 출신 엘리트 여성의 역할을 '사랑하는 존재'로 풀어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뮤지컬 '명동 로망스'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은 이런 재밌으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낸 주제 의식에 집중한 나머지 서사적 재미를 다소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선호가 '아무 이유 없이' 시간 여행에 빠져든 것처럼 '아무 이유 없이' 시간 여행에서 빠져나와 버리기에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명동 로망스' 자체가 제목에서 의미하듯 선호와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2016년의 우리에게 보내는 일종의 로망스라면 이 '흔한 시간여행'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8월 27, 28일 서울 투어를 시작으로 10월 29일,30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11월 5일, 6일 목포문예회관, 11월 12일 영주 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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