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 소극장 무대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 김민주.

[문화뉴스] 콜롬버스의 달걀이란 일화가 있다. 실제로 그가 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되는 이야기다. 누가 알았을까. 공연을 공연장에서 즐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뮤페'는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로 자리 잡았다. 무슨 '락페'니, '뮤페'니 하는 축제들이 거의 매주 서울에서, 지방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 그중 서울 잠실 주 경기장과 함께 '페스티벌의 성지'로 불릴만한 자라섬에서 새로운 '뮤페'가 열렸다. 바로 '뮤지컬 페스티벌'이다.

   
 ▲ 토요일 밤에 열린 DJ 시파티

PL엔터테인먼트에서 주최한 '자라섬 뮤지컬 페스티벌 2016(이하 자뮤페)'이 지난 3, 4일 이틀 동안 자라섬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56명, 밴드 12명, DJ 4명 등 총 75명의 출연진과 25인조 오케스트라가 참여한 이번 페스티벌은 다들 '뮤직 페스티벌'로만 생각하던 '뮤페'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셈이 됐다.

   
 ▲ 토요일 밤에 대극장에서 열린 영화 '시카고' 심야 상영

토크 콘서트, 어린이 뮤지컬, 뮤지컬 음악 콘서트, 뮤지컬 영화 상영, DJ 파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무장한 '자뮤페'는 EDM과 재즈라는 거대한 흐름을 따라가는 페스티벌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는 기존의 뮤지컬 관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뮤페'에서도 조용하게 감상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공연은 공연장에서 죽은 듯이 봐야 했던 그동안의 관람 매너를 벗어나 자유롭게 맥주를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감상하게끔 한 것이다.

   
 ▲ '자뮤페' 앞 만남의 광장에는 여러 가지 상점도 들어와 있었다.

또 대극장 무대의 경우 자연스럽게 메인 구조물을 자연에 녹아들게 만들어 자연과 함께하는 쾌감을 극대화했다. 구조물에 설치된 LED를 통해 배경이나 공연되는 노래에 맞춰 자연스러운 영상이 흘러나왔고, 무대 뒤편의 백스크린은 개폐할 수 있어 마치 대자연이 무대 세트가 된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야외 뮤지컬 페스티벌인 만큼 아쉬운 점도 있었다. 좋은 공연을 만들었지만 즐기기 어려운 주변 환경이 기다리고 있던 것. 바로 푸드존과 화장실, 주차 공간이 협소했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이런 대규모의 인원이 함께하는 자리였기에 사전 데이터가 없던 만큼 거쳐야 할 과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평소 뮤지컬 관객의 성비에 맞춰 화장실을 남자 1칸, 여자 7칸을 만들었지만, 예상외로 가족 단위나 연인들이 많이 '자뮤페'를 즐기러 옴으로서 남자 화장실의 줄이 길게 늘어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도 연출됐다. 여자 화장실 역시 7칸이었지만 그런데도 화장실 앞은 계속해서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토요일 6천여 명, 일요일 1만여 명이란 기대 이상의 인기가 불러온 웃지 못할 장면이었다.

   
 

푸드존 역시 줄을 서긴 마찬가지였다. 최고 인기를 자랑하던 스테이크 판매점의 경우 공연이 시작되기 전인 정오부터 이미 줄을 설 지경이었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이슬톡톡'과 '망고링고'를 준비했던 주류판매점의 경우 금방 바닥나 이후로는 줄곧 일반 생맥주만 팔기도 했다. 이외에도 즉석에서 조리해 판매하는 푸드점의 특성상 이틀 내내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는 없었다. 물론 '페스티벌'의 기본 소양이 음식을 용기에 담아오는 것이긴 하지만 '대치맥의 시대'를 상상하며 자라섬에 모인 뮤지컬 관객들에겐 아쉬움이 됐으리라.

   
 

주차장 역시 준비된 주차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차량이 몰렸지만, 전문 주차요원의 수가 적어 차량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진행요원이 배치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주차장의 주차 가능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공간이 있음에도 먼 곳으로 가 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번 '자뮤페'는 꼭 가야 할 '잇 페스티벌'이었다. 자라섬의 푸른 신록 속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수많은 배우의 노래를 들을 기회는 오직 1년에 한 번, '자뮤페'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페스티벌'이라서 가능한 것은 돗자리를 깔고 눕는 것만이 아니었다. 바로 가족 단위 관객들이 많이 자라섬을 찾은 것. 평소 같으면 아이를 데리고 오기에 어려움을 겪었을 관객들이 마음껏 가족과 함께 텐트와 돗자리를 펼치고 함께 공연을 보는 장면은 특히나 어린이 뮤지컬 '구름빵' 공연 때 더 빛났다. 마치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가면 아이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는 부모들이 생각나는 광경이었다.

배우들 역시 늘 그렇듯이 제 몫을 다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 정문성과 앵그리인치가 함께한 '헤드윅'

또 토요일과 일요일 공연의 컨셉이 나뉜 양상을 보였는데, 토요일에는 정문성과 앵그리인치의 '헤드윅'을 오프닝 공연으로 해서 김우형, 이안 존 버그, 전나영이 오페라의 유령,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노트르담 드 파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맨 오브 라만차 등의 노래를 선보였다. 뒤이어 김세용, 정진호, 박준형, 이성호, 김범준의 '빌리 엘리어트' 무대는 2017년 재연을 앞둔 '빌리 엘리어트'의 1대 빌리와 마이클이 모여 어느새 훌쩍 지나간 시간만큼 성숙해진 모습을 선보이며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뒀다.

   
 ▲ 1대 빌리 & 마이클의 마지막 무대 모습.

뒤는 이번 여름 대학로를 강타한 '알타 보이즈'의 배우들의 신나는 무대와 '곤 투모로우'와 '잃어버린 얼굴 1895'에 출연 예정인 박영수가 노트르담 드 파리의 '달'과 프랑켄슈타인의 '난 괴물'을 불렀다. '자뮤페'를 위해 괴물이 되겠다는 노래 전 멘트처럼 괴물 같은 그의 가창력에 자라섬의 밤이 환하게 밝아졌다.

   
 ▲ 진짜 아이돌 그룹 같았던 '알타 보이즈' 팀

다음 바통은 서경수와 이지혜, 이창용이 이어받았다. 특히나 서경수는 유쾌한 유머 감각과 폭풍 성량을 자랑했다. '넥스트 투 노멀'의 '인생캐' 게이브의 '난 살아있어'로 무대를 달구기 시작한 그는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로 관객의 폭발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시간 관계상 이들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하고 집으로 향하는 관객들이 조금씩 생겼다. 그들의 아쉬움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 늘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하는 뮤지컬 배우 서경수.

마지막 무대는 서문을 연 김우형과 강필석, 조정은, 김선영이 이어갔다. 레미제라블 이후 활동이 없어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내던 김우형과 조정은은 물론 2년 만에 복귀하는 김선영까지 토요일의 '자뮤페'는 명작 라이선스 뮤지컬의 주인공들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특히 김선영은 그간의 공백기를 지워버릴 듯이 아이다, 지킬앤하이드, 캣츠, 위키드, 엘리자벳까지 여러 작품의 노래를 선보였다. 마무리로 토요일의 엔딩곡은 레미제라블의 1막 엔딩곡인 'One day more'였다.

   
 ▲ '자뮤페'가 아니면 보기 힘들 김선영과 조정은의 듀엣.

일요일의 '자뮤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내일이 되면 신의 뜻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더니 과연 가사대로였다. 토요일에 비해 해가 들지 않아 훨씬 선선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물론 공연 전까진 쨍쨍한 햇볕이 쏟아졌지만, 공연이 시작할 무렵부턴 무척 쾌적한 날씨가 만들어졌다.

   
 ▲ 토요일 커튼콜 현장.

그 기분 좋은 날씨를 받아 출발한 팀은 소울트레인이었다. '천변카바레'에 출연 예정인 소울트레인은 어제의 '헤드윅' 못지 않게 열정적인 오프닝 공연을 선보였다. 관객들 역시 선선한 날씨에 부채질할 손을 박수에 보태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본격적인 시작은 '잭더리퍼'에 출연 중인 카이가 맡았다. 남심마저 녹일듯한 눈웃음을 지은 카이는 외모와 달리 폭발적인 성량을 자랑하며 팝페라 가수 출신의 위엄을 마음껏 뽐냈다. 기자의 주변 자리에는 '카이 공연 한 번 봐야겠다'는 관객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다음 바통은 최현주가 받았다. 안재욱의 부인으로도 알려진 그녀는 황태자 루돌프 이후 오랜만의 복귀여서 무척 떨린다고 말하면서도 카이와는 로맨틱한 화음을, 최민철과는 멋진 대립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포스'는 13층과 15층에 재즈와 오페라 가수를 이웃으로 둔 14층 소녀의 이야기로 만든 'The girl in 14g' 에서 나왔다. 최현주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여린 소녀의 목소리와 오페라 가수, 그루브한 재즈 가수까지 1인 3역으로 자라섬을 뒤집어 놨다.

   
 ▲ 토요일에 출연했던 서울예술단의 박영수.

다음은 최민철이었다. '천변카바레'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등장한 그는 최현주와의 듀엣에서 원래 멋진 러브송을 불러볼까 하다가 바깥양반이 두렵다며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했다. 이후 안재욱이 깜짝 등장해 셋 리스트에 없는 황태자 루돌프의 듀엣 무대를 선보였다. 그 기세를 이어 한지상과 전나영, 홍광호, 윤공주, 최현주가 각각 원스의 'Falling slowly'와 레미제라블의 'In my life + A heart full of love'를 선보였다.

뒤는 마이클리와 전나영이 변희석 음악감독과 함께 피아노 스페셜을 선보였다. 마이클리는 자기는 한국말을 잘하지만 '자뮤페'가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므로 영어와 함께하겠다고 재치있게 말하며 자체적으로 영어-한국어 통역을 선보여 깨알 웃음을 줬다. 그렇다고 웃음만 준 것이 아니었다. 'It all fades away'처럼 평소 국내에서 듣기 힘든 넘버를 감미롭게 선사한 그는 분위기를 바꿔 헤드윅의 'Tear me down'로 열정적인 무대를 시작해 한지상과 함께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Heaven on their minds'로 잔잔하게 진행되던 일요일의 '자뮤페'를 불타오르게 했다.

   
 ▲ 피아노 스페셜이란 이름에 걸맞게 자연을 배경 삼았던 마이클리의 무대.

그 열기를 이어받은 '한지상'은 출연 중인 드라마가 시청률이 10%밖에 안 나오니 여기 계신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한다는 멘트로 웃음을 줬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에서 가장 어려운 노래를 부르려고 한다"며 온몸에 벌레가 붙은 상황에서도 신경쓰지 않고 관객들을 위해 '난 괴물'과 '너의 꿈속에서'를 열창했다. 자신을 '호불호가 갈리는 배우'라고 소개한 한지상은 다시 뮤지컬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정승준, 강민석과 함께 언니쓰의 'Shut up', 빅뱅의 '붉은 노을'로 자신을 기다린 팬들에게 짧은 작별 인사를 고했다.

   
 ▲ 다시 돌아올 것 같은 녹색 세상. 윤공주가 부른 위키드의 'Defying gravity'

다음은 윤공주의 차례였다. 노련한 베테랑답게 무대의 완급을 조절한 그녀는 위키드의 'Defying gravity'로 힘찬 시작을 하고,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과 페임의 'Fame'을 선보였다. 자신이 해보지 않았던 공연의 노래만 부르게 됐다는 그녀는 곡에 맞춰 3분 만에 의상을 갈아입고 나오는 프로다운 모습을 선보이며 미녀는 괴로워의 '마리아'로 관객을 전원 기립시키며 열정적인 끝을 맺었다.

마지막 차례는 '자뮤페'에서 모두가 기다려온 배우 홍광호의 차례였다. 자신의 대표곡 중 하나인 빨래의 '참 예뻐요'를 부르며 등장한 그는 아직 윤공주 배우의 무대로 열기가 식지 않은 관객들에게 '이제 앉아서 들으시라'며 편안하게 자라섬 무대를 주도해갔다. 뒤이어 선보인 곡은 전국 투어와 서울 앵콜 공연을 앞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표곡이자 홍광호 특유의 변주를 선보인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였다. 그는 노래가 끝나자 붉어진 눈시울과 함께 '지금은 맨정신으로 불렀지만 참 슬픈 노래다. 두시간 반 동안 공연을 쭉 따라가다 마지막에 이 노래를 부르면 정말 눈물 콧물 다 흘러 나온다'고 곡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다'는 홍광호, 최민철의 'Golden key' 무대.

홍광호는 이날 파격적인 모습을 계속해서 팬들에게 선보였다. '한번 불러보고 싶었다'며 그랭구와르의 '달'을 부르고, 최현주와 오페라의 유령 넘버 'All I ask of you'를 부를 땐 갑자기 마이크를 하나 내려놓고 마이크 하나로 두 사람이 듀엣을 부르는 달달한 모습도 선보였다. 또 '늘 자기는 침착한 노래만 불러서 색다른 시도를 하고 싶었다'며 셋 리스트에 없는 곡을 두 곡이나 불렀다. 관객보고 '뛰어!' 외치고 싶었다는 그는 노래 중간중간에도 한참이나 그동안 못한 토크를 다 풀어내는 모습이었다. 본인의 학업이나 앨범 이야기까지 넌지시 비친 그는 최민철이 말하길 '우리 둘이 불러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겜블러의 'Golden Key로 긴 '자뮤페'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오케스트라의 'One day more'에 이은 커튼콜은 뮤지컬 올슉업의 'Can't help falling in love'가 장식했다. 토요일에 이어 커튼콜로 꼭 맞는 선곡이었다. 수없이 외치는 '사랑해' 속에서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에, 관객과 배우들 모두 내년 이 시간의 자라섬을 기약했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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