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저주토끼’ 이어 국내 네 번째 최종 후보
영국·미국 등 번역 출간... “역사와 문화 관통하는 마법의 서사시”

사진=지난 23일(현지시간) 개최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에 참여한 '고래'의 천명관 작가(오른쪽)와 김지영 번역가 / 연합뉴스 제공
사진=지난 23일(현지시간) 개최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에 참여한 '고래'의 천명관 작가(오른쪽)와 김지영 번역가 / 연합뉴스 제공

[문화뉴스 백승혜 인턴기자] 천명관 작가의 장편소설 ‘고래’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지 못했다.

영국 최고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은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Time Shelter)에 돌아갔으며, 번역가 안젤라 로델이 함께 상을 받았다.

'타임 셸터'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유망한 치료법을 제공하는 한 진료소에 관한 이야기로, 부커상 심사위원단은 "아이러니와 우울함으로 가득 찬 훌륭한 소설"이라며 "우리의 기억이 사라지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루는 심오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사진=책 '타임 셸터' 표지 / 부커상 홈페이지 제공
사진=책 '타임 셸터' 표지 / 부커상 홈페이지 제공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세계적인 권위의 시상식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은 영어로 번역된 비영어 문학작품에 주는 부커상의 한 부문이다. 부커상과는 별도로 시상한다. 상금은 5만 파운드로, 작가와 번역가가 절반씩 나눠받게 된다.

천명관 작가의 ‘고래’는 한국 작품으로선 네 번째로 부커상 인터내셜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6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올라 최종 수상을 거머쥐었으며, 이후 2018년 한강 작가의 ‘흰’과 지난해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04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고래'는 출간 이후 국내에서 꾸준히 사랑받았고 이번 후보 지명으로 또다시 주목받았다.

‘고래’는 ‘금복’과 ‘춘희’ 모녀, ‘노파’의 여성 3대 일대기다. 금복은 갖은 고초 가운데 탁월한 감 덕에 벽돌공장 사장에 오르는 주인공이다. 코끼리 곁에서 태어난 금복의 딸 춘희는 사람과는 말할 줄 모르나 코끼리와는 대화한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하지만, 사물과 자연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으로 세상 최고의 벽돌을 만들어낸다. ‘노파’는 금복 윗세대 여성의 고난과 복수를 상징한다.

사진=책 '고래' 표지 / 부커상 홈페이지 제공
사진=책 '고래' 표지 / 부커상 홈페이지 제공

천 작가는 무성영화의 ‘변사’ 역할로서 세 여성이 겪은 파란만장한 흥망성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물 내면이나 배경 설명은 최대한 생략하고, 오로지 등장인물들이 겪은 사건사고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또한 일제 강점기, 군사독재, 남북 대치 등 한국 근현사의 시공간을 어렴풋이 드러내면서도 특정 시대와는 무관한 신화적 요소를 끌어들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천 작가는 최종 후보에 오른 뒤 부커상 측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한이라는 것은 우리뿐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다. 예를 들어서 아메리카 남부 목화밭에서 일하던 그때 그 하늘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한보다 절대 가볍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래’ 안에는) 그런 슬픈 정서도 있지만, 또 에너제틱하고 명랑하고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그런 넘치는 에너지들도 그만큼 가지고 있다. 어떤 명랑한 성적 에너지 같은 것들도 넘쳐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래’는 출간된 지 19년 만인 올해 1월 영국에서 번역됐고, 지금까지 독일어, 러시아어, 일본어, 튀르키예어로 번역 출간됐다. 이달 초 미국에서도 번역서가 출간됐고, 현재 이탈리아어 번역도 진행 중이다.

부커상 측은 '고래'에 대해 "한국이 전기근대에서 후기근대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경험한 변화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품"이라며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롤러코스터적인 모험, 삶과 죽음 등에 대한 마법의 서사시"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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