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킬 존' 만들고 우크라 장비 소진시키려는 전략 펼쳐
겹겹이 둘러친 러 방어선… 우크라이나군 진격 '난항'
우크라 특수부대, 러시아 참호 침투 영상 공개… 참혹한 백병전

사진 = 대반격 나섰다가 파괴당한 우크라의 서방제 기갑차량들 / EPA / 연합뉴스 / 겹겹이 쌓인 '킬 존', 목숨 걸고 전진하는 우크라이나
사진 = 대반격 나섰다가 파괴당한 우크라의 서방제 기갑차량들 / EPA / 연합뉴스 / 겹겹이 쌓인 '킬 존', 목숨 걸고 전진하는 우크라이나

[문화뉴스 우현빈 기자] 반격이 선언된 이후 우크라이나군이 전선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지만,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뚫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쟁의 장기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교착 상태를 깨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이 전방위에 걸쳐 공격을 개시했다. 서부 전선에서는 바흐무트 방면, 남부 전선에서는 자포리자 방면에 우크라이나군의 공세가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진격 속도는 하루 수백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바흐무트 주변 지역과 자포리자 근방에서 마을의 탈환과 소규모 전진이 이뤄지고 있으나 그조차 그리 수월하지는 않은 모양새다.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탐색전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이 지원받은 장비의 대부분은 아직 전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일부 장비와 병력을 이용해 러시아의 방어선 사이로 약점을 찾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사진 = 탈환한 블라호다트네 마을을 둘러보고 있는 우크라이나 병사의 모습 / AP통신 / 연합뉴스 / 겹겹이 쌓인 '킬 존', 목숨 걸고 전진하는 우크라이나
사진 = 탈환한 블라호다트네 마을을 둘러보고 있는 우크라이나 병사의 모습 / AP통신 / 연합뉴스 / 겹겹이 쌓인 '킬 존', 목숨 걸고 전진하는 우크라이나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이 정말 탐색전 단계의 작전을 수행하고 있더라도, 최전선에서 그 탐색을 위해 전진하는 병사들은 심각한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 러시아군의 방어전략이 그만큼 위협적인 탓이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정책연구소 롭 리 선임연구원은 러시아군의 방어전략이 우크라이나의 전력을 미리 소진시키는 데에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군은 현재 주 방어선 전방 지대를 살상지대로 만들어 둔 상태다. 살상지대, 일명 '킬 존'은 주로 방어하는 쪽에서 효과적으로 적을 격멸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한 지역을 말한다. 대개 지형과 장벽 등을 이용해 적을 불리한 상황으로 유인하거나 특정 지역으로 집결하도록 만든 후, 병력이나 화력을 집중시켜 적을 격멸하는 방식이 이용된다.

블라호다트네를 탈환한 우크라이나군 역시 이 '킬 존' 앞에서 몸을 숙이고 있다. 러시아 주 방어선에서 불과 15km 떨어진 블라호다트네 마을 앞 들판에는 지뢰밭과 참호, 장갑차 저지용 도랑, 콘크리트 장애물(일명 용의 이빨)이 빽빽하게 놓여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장애물을 헤치고 러시아군의 방어선으로 향해야 하는데, 이 장애물 개척 작업 자체도 위험하지만, 개척 과정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에 노출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블라호다트네의 제68정찰여단 세르히이 구바노우 병장은 "러시아군이 로켓포와 곡사포, 박격포, 헬기, 드론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 타임스(NYT)가 해당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에도 마을에 포격이 떨어지면서 지하실에 숨어있던 병사들이 급히 바닥에 엎드리기도 했다.

사진 = 러시아 방어선 중 하나인 벨고로드주 '노치라인'의 모습. '용의 이빨'이라 불리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원형 가시철조망이 길게 늘어서있다 / 벨고로드주 공식 텔레그램 채널 / 겹겹이 쌓인 '킬 존', 목숨 걸고 전진하는 우크라이나
사진 = 러시아 방어선 중 하나인 벨고로드주 '노치라인'의 모습. '용의 이빨'이라 불리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원형 가시철조망이 길게 늘어서있다 / 벨고로드주 공식 텔레그램 채널 / 겹겹이 쌓인 '킬 존', 목숨 걸고 전진하는 우크라이나

진격을 위해서는 이처럼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군의 공격을 피해 지뢰를 걷어내야 하는데, 지뢰 제거 작업 자체도 녹록잖은 상황이다. 랜드 연구소의 군사 전문가 다라 마시코트는 "러시아군은 방어 계획을 세우는 데에만 몇 달을 보냈으며, 참호를 파고 6개월간 들어앉아 지뢰와 함정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뢰밭이 러시아군 진지 앞에서부터 몇 킬로미터 떨어진 도로, 들판에 깔렸고, 우크라이나는 장비가 이미 많이 파괴돼 이 지뢰밭을 뚫고 지나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지뢰 제거 장비를 요청했던 것은 이러한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참호 자체도 큰 문제다. 장비의 전진이 쉽지 않은 우크라이나로서는 러시아군의 참호를 빼앗고 그만큼 통제지역을 넓히는 것이 장애물이나 지뢰 제거를 조금이나마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특수부대는 지난 19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참호전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는 러시아군 참호에 잠입, 참호를 지키던 10명의 병사를 근접 사격과 수류탄으로 사살했다. 우크라이나 특수부대는 이 영상을 '특수부대의 일상적이고 고된 일'이라고 표현하며 작전 수행 능력을 과시했다.

사진 = 러시아군 참호에 침투한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원이 러시아군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다 / 우크라이나 특수부대 공식 텔레그램 채널 / 겹겹이 쌓인 '킬 존', 목숨 걸고 전진하는 우크라이나
사진 = 러시아군 참호에 침투한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원이 러시아군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다 / 우크라이나 특수부대 공식 텔레그램 채널 / 겹겹이 쌓인 '킬 존', 목숨 걸고 전진하는 우크라이나

이러한 동영상 공개는 참호전 성과를 과시하려는 용도인 동시에, 목숨을 걸고 백병전을 치러야 하는 우크라이나군의 상황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이 동영상을 "남부 전선에서 벌어진 잔인한 참호 근접 전투"라고 표현했다. 1차 대전을 그토록 참혹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참호전이었던 만큼, 우크라이나가 이 같은 방식으로 겹겹이 파인 참호를 점령하고 '킬 존'을 뚫어내더라도 많은 희생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지난 2주간의 반격을 통해 전선 전체에서 113㎢가량의 영토를 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국방부의 한나 말랴르 차관은 러시아군이 방어에 전력을 다하고 있어 아군의 진격이 상당히 어렵다며, "적은 진지를 쉽게 내주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힘든 싸움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해 현재 대반격이 힘든 국면에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한나 차관은 우크라이나군이 계속되는 작전 가운데 계획된 대로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며, "최대 타격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해 공세가 더욱 강화될 것임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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