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뮤지컬을 보러 가서 오케스트라 피트를 한 번이라도 들여다봤던 사람이라면 주목해보자.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가? 보통의 관객이라면 그들이 들려줄 연주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신기함이 더 컸을 것이다. 객석에 앉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공간에서 공연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악기를 조율하고, 연습하고. 그렇다면 그렇게 신기하게 쳐다본 연주가 모두 끝났을 때 수고했다며 박수를 쳐주었는가? 커튼콜이 끝나자마자 바로 공연장을 나서기에 분주해 채 끝나지 않은 오케스트라 연주는 뒷전이지 않았는지.

이처럼 한 번쯤 궁금해하지만 누구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뮤지컬이 싫다고 큰소리로 외치는, 인터미션은 관객이 아닌 자기들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뮤지컬 '오케피'다. '오케피'를 통해 들여다본 연주자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상상 초월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우아하게 연주할 줄 알았는데 끊임없이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하고, 심지어 콧대 높은 주연 배우의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 배우들의 컨디션이나 공연 사정에 따라 편곡하는 건 예삿일이고 사람이 부족해 악기를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건 부지기수다. 그러니 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왜 갑자기 노래를 부르냐고
간단하게 말로 하면 삼십 분이면 끝나는 별거 아닌 이야기
소리치고 싸우다 왜 갑자기 Dancing
옆구리에 칼침 맞고 왜 갑자기 Singing
총 맞아서 죽어가며 네버엔딩 Singing"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뮤지컬 '오케피'는 보통의 뮤지컬과 굉장히 색깔이 다르다. 뮤지컬을 바라보는 시선이 신랄하고 직설적이다.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어도 힘차게 노래 부르는 주인공 등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날카로움 속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 요소도 숨겨놓았다. '나도 그래'며 연주자들의 말에 맞장구치고 싶을 정도다. 당연히 주인공이 마법을 부리거나 고양이가 두 발로 움직이는 식의 초현실적인 설정도 전혀 없다.
 

   
 

또 하나의 특징은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밖에서 바라보게, 즉 그들의 모습을 그저 관찰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오케피'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관객을 향해 오케피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관객이 극에 빠져드는 걸 처음부터 차단하는 셈이다. 이런 구성은 다양한 극에서 시도되며 메시지 전달에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위험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관객이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면 다소 과감한 설정이나 전개도 그럭저럭 용인되지만, 관찰자의 시선에선 흐름을 끊는 요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위험부담과 함께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방식이란 점도 걸림돌이다.

다행히 '오케피'는 작품의 특성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며 불호의 요소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오케스트라 악기가 다양한 것처럼 그를 연주하는 사람도 가지각색이다. 열 명 남짓한 배우들이 한 무대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이야기는 하나의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관객의 몰입까지 요구했다면 관객은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바빠 정작 작품 전체를 보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을 거다. 이야기 흐름이 바뀔 때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바꿀 수 있는 관객(그리고 구성방식) 덕분에 이야기 완성도가 더욱 높아진다.

방향은 달라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공통으로 이르는 목적지가 있다. 공연 곡을 연주하면서 오늘 저녁을 걱정하고, 다른 연주자에게 반해 어떻게 마음을 전할지 고민하고. 지극히 현실적이라 특별한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그 현실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 희망으로 가득 찬 분위기 속에 들뜬 주인공이 이 같은 말을 했다면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관객은 꿈에서 깨듯 그 분위기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하지만 오케피에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서,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주연 배우 기분에 맞춰줘야만 하는 게 오케피의 현실이라서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진정성 있게 들린다.
 

   
 

한편 '오케피'는 일본인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첫 뮤지컬이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뮤지컬보단 연극에 가까운 편이다. 앞서 말한 대로 관객과 작품 사이 거리감도 있는 편이고, 전체적으로 음악보단 이야기가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이야기가 갑자기 허무맹랑한 방향으로 흘러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만, 뮤지컬임에도 기억에 남는 넘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극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입에 맴돌만한 넘버가 한두 개쯤 있었으면 좋았겠단 아쉬움이 든다.

지극히 '오케피'다운 방식으로 인터미션을 알리면서, 인터미션 때 자기들을 신기한 사람 쳐다보듯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지휘자가 이렇게 소리친다. "우리는 동물원 원숭이가 아니야!" 다시 한 번 뮤지컬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들을 신기함보다는 기대감으로 가득한 시선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적어도 극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오케스트라가 주목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 '오케피'를 봤다면 말이다.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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