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엇을 위해 '페스트'와 싸우나

   
 

[문화뉴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서태지와 까뮈의 만남으로 주목받은 뮤지컬 '페스트'가 드디어 7월 20일 개막했다. 미래의 가상 도시 '오랑시티'를 배경으로 원인 불명의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하지만 뚜껑을 열기 전 받은 관심에 비해 작품은 다소 거칠어 보인다. 뮤지컬 '페스트'가 문화대통령 '서태지', 노벨문학상 수상자 '까뮈'라는 '천재와 천재의 만남'을 조화롭게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뮤지컬 '페스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은 역시 음악이다. 전작 '에드거 앨런 포'에서 신들린 지휘 솜씨와 울프 에릭슨의 곡들 사이에서도 위화감이 없는 놀라운 작곡 능력을 선보였던 김성수 음악감독은 뮤지컬 '페스트'에서도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서태지에게 '곡을 마음대로 다뤄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런 만큼 작품 속에서 선보이는 일부 장면들은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라이브 와이어', '죽음의 늪', '시대유감', '코마' 등의 넘버는 쥬크박스 뮤지컬로서의 가치를 매우 확고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코타로가 부르는 '시대유감'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노래를 편곡했음에도 곡의 오리지널리티는 잃지 않으며 '페스트'가 쥬크박스 '뮤지컬'. 그것도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블록버스터급의 뮤지컬임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페스트'는 너무 오랜 시간 들인 공이 막바지에 휘청거렸기 때문인지 전반적인 작품의 내용이 쥬크박스 뮤지컬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바로 원작 '페스트'의 배경을 미래의 오랑시티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는 20세기를 그대로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을 피하고자 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지나친 욕심으로 보인다. '쥬크박스 뮤지컬' 최대의 강점이자 단점은 극의 설명과 감정 전달을 해야 할 넘버의 가사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공간적으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공연예술 작품에서 최첨단의 테크놀로지가 작동하는 근미래를 보여주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랑베르가 손에서 빛을 내며 허공에 휘두르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2096년의 기자'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라면 CG로 처리된 가상의 스크린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관객에게 설정을 이해시키겠지만 공연에서는 다소 어려워 보인다. 반면 무대 위 허공에 직접 설치된 영상 스크린에서 리샤르 시장이 말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효과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미래다워' 보인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조명, 영상의 활용등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비주얼을 선사하지만 그런만큼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등장할 경우의 괴리감은 커진다.

근미래라는 설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원작 '페스트'의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라고 추정되지만 2096년에 지금과 같은 구식 총을 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2016년은 이미 경찰이 테이저건을 쏘고, 레이저 무기에 대한 개발이 다가오거나 이뤄지는 시점이다. 그런데 2096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무기의 발전이 없는 것일까? 1막 시작 부분에서 이뤄지는 영상 설명만으로는 이해에 한계가 있다. 테러가 일어났고 세계 통일 공화국이 생겨났다는 식의 이야기로는 '왜 그렇게 됐을까?'란 부분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설정대로 20세기 박물관이 존재한다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총도 레이저 무기 등에 밀려서 거기 전시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까? 반면 다른 부분에선 지나치게 빠른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2096년의 성인들. 즉 우리의 손자, 증손자 정도인 사람들이 '결혼'이나 '프로포즈'를 보고 우스꽝스럽다며 비웃는다. 게다가 에릭 클랩튼이 그만두긴 했지만 '기타'마저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도대체 8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16년의 우린 아직 몇백년 전의 클래식, 국악이 뭔지도 알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채워야만 화려한 비주얼이 보여주는 근미래가 '진짜'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 식의 설정은 작품의 핵심 중 하나인 '페스트'에도 이어진다. '페스트'는 1300년대 유럽에 창궐해 인구의 30%가량이 죽게끔 한 치명적인 병이다. 그런 만큼 작품에서도 '페스트'에 걸리면 온 몸에 출혈성 염증을 통해 림프샘이 부어오른 뒤 혈액을 타고 온몸에 감염된 뒤 종국에는 허파에 감염돼 치사율 100%에 이른다는 점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하지만 이 '페스트'가 사람들의 중요도에 의해 선택적으로 걸린다는 점이 문제다. 기침하며 죽어가는 것으로 보아 '타루' 역시 허파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지만 아주 예쁘게 천천히 죽어간다. 바로 전의 희생자인 잔처럼 온몸에 병의 증세가 보이거나 발작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일반 시민들 역시 역사 박물관에서 웃다가 갑자기 걸리거나 어떤 이는 순식간에 죽거나 어떤 이는 병원에서 고통스럽게 죽기도 한다. 과연  이 모두가 '페스트'인 것일까? '페스트'가 무균 세상에 가까운 미래에 병균 감염의 수도꼭지 역할을 했다거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작품 내에서 이런 병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전염병'이지만, 나도 죽을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거침 없이 손을 내미는 것이 작품에서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가 폭발하는 지점이 아닐까. 하지만 스킨십이 초반부터 줄곧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기에 리유와 타루의 키스신에서도 힘이 다소 빠지게 만든다.

   
 

그로 인해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큰 문제가 생겨난다. '페스트'가 왜 생겨났고 왜 사라지는지 언급이 안 되는 것이다. 생겨난 것은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날 수 있지만 보건대의 활약과 시민들의 '어떠한' 노력이 있어서 치사율과 발병률이 줄어들었는지 엔딩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 요소를 만들어내야 할 '페스트'에겐 의문만이 남는다.

이러한 점들을 걷어내고, 드라마만을 보자면 제작진이 주의한 '히트곡을 위해 무리한 끼워 넣기'는 확실히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리유와 타루가 보여주는 희생과 시민들과 함께하는 연대, '너무 현실적인 악역' 코타로와 리샤르 등에 대한 저항이 소위 '오글거릴' 정도로 투박하고 진심 어린 대사로 빛을 내야 하는 타이밍에 앞뒤가 안 맞는 설정에 대해 고민하게끔 만드는 점이 아쉽다.

   
 

뮤지컬인만큼 '넘버'에 대한 비중도 중요한데 현재로썬 주인공인 '리유'가 연기를 통한 감정 표현 위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아쉽다. 좋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만큼 무언가 더 채울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반면 '타루' 역의 오소연 배우와 걸그룹 피에스타 출신의 린지 배우에게는 본인의 매력을 200% 이상 보여줄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뮤지컬 '페스트'는 넘치는 것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말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신선한 근미래 설정, 원작 소설이 가지는 문학적 가치, 서태지의 아름다운 음악. 이 모든 것을 다 얻고자 한 욕심에 관객들은 넘버 하나 듣기 위해 몇십 분 동안 배우들의 장면 설명을 들어야 한다. 뮤지컬 '페스트'야 말로 '기억제거장치'와 '욕망해소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뮤지컬 '페스트'는 엘지아트센터에서 9월 30일까지 공연된다. 프리뷰 공연 이후 계속해서 더 나은 해법을 찾기 위해 적극적인 피드백을 통해 노력하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더 나은 공연을 계속해서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은 영화와 달리 지속해서 수정하며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이 공연에 대한 기대를 안고 빨리 예매했던 관객에 대한 진심이 될 것이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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