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버지', '어머니' 리뷰

   
연극 '아버지' 공연 사진 (왼쪽부터) 배우 김정은, 박근형

[문화뉴스] 뜨거운 여름, 가슴을 서늘하게 적시는 두 편의 연극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는 14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Florian Zeller)의 대표작 '어머니(Le Mére, 2010)'와 '아버지(Le Pére, 2012)'가 국립극단에 의해 동시에 공연이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동시에 떠올려볼 수 있게 됐다.

 

 

   
연극 '어머니' 공연 사진 (왼쪽부터) 배우 이호재, 윤소정

나를 가장 잘 알아주는 그들, 그러나 그들을 모르는 게 당연한 나

내리사랑.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인정하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그 일방적 관계는 연극을 통해 적나라하게 구현되고 있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앙드레(박근형 분)는 딸 안느(김정은 분)와 그의 남자친구 피에르(최광일 분)와의 갈등을 통해 요양원에 옮겨진다. 매일 기억을 잃는 앙드레는 요양원 간호사에게 매번 상황 설명을 듣는다. 그렇게 앙드레는 매일 버려지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한편,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어머니' 안느(윤소정 분)는 늙은 어머니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아들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상실감을 느낀다. 그의 공허와 허무함은 공감을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고, 그의 상실감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집착적인 상태의 것으로 불리곤 한다. "이게 다 뭘 위한 거야"라고 묻는 그녀에게, 우리는 그녀의 삶 전체를 아우르고 있던 기둥의 붕괴를 무어라 해석하지도 위로하지도 않는다.

치매, 빈 둥지 증후군, 우울증 등. 우리를 길러낸 양육자들의 질병에 철저히 무관심한 우리의 냉소적인 시선. 연극은 그 시선들을 꼬집어 낸다. 그들은 우리를 잘 아는 것이 당연하고, 우리가 그들을 잘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하는 일방적 관계에 대한 합리화. 드라마 '닥터스'의 유혜정(박신혜 분)은 '부모 자식 관계도 인간관계'라고 말한다.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 가장 기본의 것을 지키지 않는 이기심. 부모들의 고통을 목격하는 순간, 자녀들은 자신의 이기심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연극 '어머니' 공연 사진

더 이상은 그들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특별한 극적 구성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앙드레의 인식대로 구성된 연극 '아버지'는 언제나 타자적 상태에 놓였던 '치매'를 주체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매일 모르는 사람과 지내야 하는 아버지, 모르는 사람이 모르는 일 때문에 다그치는 것을 견뎌야 하는 아버지, 요양원에 옮겨진 이후부터는 매일 버려졌다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아버지. 서사의 논리적 전개 대신 그가 기억하는 대로, 사건을 파편화된 조각처럼 배열하는 구성을 통해 우리는 앙드레가 느껴야 하는 답답함과 배신감, 억울함과 분노를 함께 느끼게 된다.

연극 '어머니'의 구성 또한 평범하지 않다. 4막으로 구성된 이 연극은 하나의 장면과 그것을 변주한 장면의 반복으로 구성됐다. 하나는 안느가 받아들여야 하는 실제 현실이며, 다른 하나는 그녀의 환상이다. 안느의 환상에서는 남편에게 심한 욕을 내뱉을 수 있고, 아들에게 격한 애정 표현을 나타낼 수 있으며, 아들의 애인에게 매몰찰 수 있다. 수면제를 많이 먹고 쓰러진 현실, 그러나 그녀는 환상 속에서 니콜라에 의해 목 졸린다. 물리적 세계에서 매몰찬 외면을 감내해야 했던 그녀의 심리 세계는, 그녀 자신의 고통을 물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들의 고통을 진지하게 마주해볼 기회가 없었던(아니, 그런 노력을 해보지 않았던) 관객들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구성이 아닌, 그들의 심리를 반영한 파격적 구성은 그 고통을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길 수 있게 하는 여지를 제공한다.

 

 

   
연극 '아버지' 공연 사진

대배우 박근형과 윤소정, 그들의 아우라

대배우들의 활발한 연극 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요즈음, 국립극단 또한 대배우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보다 깊은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40년 만에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배우 박근형과 5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책임감 있는 배우로 지켜온 윤소정.

이 시대의 고독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기하기로 한 그들의 결심에는 원작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가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내 온 그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이야기, 더구나 아버지와 어머니로서의 세월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배우'로서 지내 온 그들이었다.

시계에 집착하는 아버지 앙드레는 극중 "몇 신지는 알겠는데, 그 시간에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대사를 남긴다. 또한 수면제를 많이 먹고 쓰러진 어머니 안느는 불신했던 남편에게 "애들이 우리 추억 속으로 돌아갔어"라는 대사를 남긴다.

하나의 대사가 호흡부터 발화의 순간까지 오롯이 그 배우 본연의 것으로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다면, 그 순간 배우와 역할의 경계에 대한 인식을 잊은 관객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최고의 무대를 선물 받은 느낌이 든다. 앞서 언급한 대사들의 발화 순간은, 두 배우의 연기력에 대해 감히 판단하기 힘들게 만드는 강력한 아우라를 머금고 있었다.

배우와 역할의 싱크로율을 떠나, 개개의 역할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박근형, 윤소정. 우리는 그들을 '대배우'라 부르며, 대배우의 무대는 연극의 본질을 더욱 또렷하고 찬연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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