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아빈(婀贇) kim.abin.beautiful@mhns.co.kr 시인 겸 철학자.

[문화뉴스] '문자도, 책거리'라는 말이 생소한 사람이 많다.

사실 민화, 궁중화에 속하는 이 그림의 카테고리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던 것이 사실이니까. 보통 우리는 조선시대 그림이라 하면, 수묵화, 풍속화를 떠올리기 마련이고, 그 이외의 그림은 막연히 소수의 것들로 치부했다. 그런데 이런 <문자도·책거리 展>이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단독으로 조명받으면서 열리게 된다 해서 매우 새롭고 기대가 되었다.

 

   
 

'책거리'는 사실 서양에서 전래한 문화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스투디올로(studiolo)'가 중국의'다보격경(多寶格景)'으로 전래하고, 우리나라의 책거리로 이어져 새롭게 재탄생했다. 그러다 보니 서양의 화법인 명암법, 투시도법이 잘 나타나 있다. 한국형 서양 정물화라 칭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가장 안쪽에 밝은 청색을 칠한다든지, 조금은 비현실적인 구도와 색감을 나타낸 기물을 통해 한국적인 미를 살렸다. 조선의 이상과 가치가'책거리'라는 그림의 매개로 새롭게 표현된 것이다.

   
 

이런 면이 잘 나타난 작품이 편파구도가 조화된 책거리 민화이다. 조선시대 유행했던 산수화의 편파구도가 민화에 접목시킨 것도 흥미롭지만, 그 전체적으로 은은하게 들려오는 품위와 생동감이 양반 특유의'풍류'를 연상시킨다. 책거리지만 책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가구가 중심이고 문방사우와 그 외 기물들의 조화가 아늑하다. 밑에는 책상이 두 개이던지, 꽃신과 수박, 칼, 벼루 등이 재미나게 나와 있어 그림을 보는 내내 심심하지 않다. 이 화가는 정도와 위트를 갖춘 선비 중의 선비가 틀림 없다.

   
 

문자도는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의 유교적 덕목을 담은 8폭의 병풍이다. 중국, 베트남 등 다른 나라에서는 길상적인 의미의 복록수(福祿壽) 문자도가 유행했지만, 유교를 중시하는 풍토와 맞물려 한국에서는 교훈적인 의미를 담은 문자도가 유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리 8글자로만 이루어진 문자도가 오래 전해진다면 지루해질터, 사람들은 같은 글자 안에 자신의 영혼과 사상과 미감을 불어 넣었다.

보통 문자도는 한자에 각 맞는 고사에서 유래한 이미지가 합치된 켈리그라피 같은 느낌이지만, 어떤 문자도는 모란, 연꽃, 국화, 매화, 해당화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으로 장식성을 더했다. 굵은 글씨체 안에 직선과 곡선의 느낌이 조화를 이루어서, 그린 사람의 성품이 곧지만 유연성도 갖추고 여림도 있는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림만으로 우리는 조선 후기에 대가의 민중 화가들과 마주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짜릿한 일인가?

   
 

문자도는 또한 지역을 특색도 잘 표현하고 있다. 육지에서 시작되었지만, 제주는 그들만의 오름과 바다의 문화로 문자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이젠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형된 꽃과 나무와 동물들의 그림은 어쩌면 더 이상 문자도에 속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시작은 다르지만 끝이 같은 그림들이 얼마나 세상에 많은가. 그들은 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정조는 책을 매우 사랑해서 책거리를 그리지 못한 화원들을 귀양시키기도 했다. 문자도는 유교적 덕목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선조들의 정신세계가 서려있다. 임금도 백성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결같고 가치를 지키고 아름다움까지 생각하는 슬기로운 사람들이었으리라 확신한다.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고 조금은 풍류를 떠올릴 수 있는 소중한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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