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우리의 시간은 1초도 멈추지 않고 지나갑니다. 지구를 멈춰 시간을 조종할 수 없으니, 우리가 직접 뛰고 달리면서 시간을 조종해야 하죠.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시간을 조종하는 엄청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춤으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비보이 디퍼, 혹은 '프리즘 댄스 스튜디오' 원장 김기현 님을 모시고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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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 행 자 : 이우람 (문화뉴스 편집장· 마포 FM_100.7MHz 이우람의 트렌드픽업쇼DJ)
▶ 게 스 트 : 디퍼(Differ) 김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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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디퍼 김기현 님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ㄴ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비보이 김기현입니다. 98년도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고 2002년과 2007년에 UK 비보이 챔피언십에서 대한민국 최초 프로젝트 코리아라는 팀으로 우승했습니다. 최근 2012년도에는 래드불 비씨원이라는 경기에서 준우승, 2015년에는 미국 프리스타일 세션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98년부터 춤을 추었다고 했는데 춤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ㄴ 당시에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복도에서 춤을 췄다. 나도 따라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 내심 오기가 생겨서 기술을 열심히 연습했다. 그게 '나인틴(물구나무를 서서 한 손으로 회전하는 기술)'이라는 기술이었는데 정말 기뻤다. 땀을 흘리고 내 몸을 써서 움직인 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 시대에는 '힙합'이라는 만화도 유명했다. 어렸을 때 동경하던 댄스팀이 있었나?
ㄴ 우리 세대에는 딱 한 팀이 있었다. 피플크루. 같은 크루로서 춤을 춘다던가 함께 연습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피플크루에는 못 들어갔고 '장독대'라는 팀에 들어갔다. 그때가 15살 때였다. 어릴 때만 해도 지금처럼 유튜브나 영상 자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토막토막 잘린 비디오를 구해서 보고 연습했다.
학교에서 연습하는 것 말고 본격적으로 추게 된 계기는?
ㄴ 학창시절에 딱히 관심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춤을 접하게 되니 계속 연습하게 됐다. 단지 ‘잘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내가 춤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해진 것 같다. 당시에 마포나루 축제에 학교 대표로 참가하게 됐고 그 축제를 준비하면서 홍대 지하철역 근처 지하도에서 연습했다. 그 과정이 인생에 진하게 기억된 것 같다.
19살 때 세계 대회 진출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니 춤을 추는 것과 학업을 병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정했고 가족들도 처음에는 엄청 반대했었다. 당시에는 대안학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대단히 큰 선택이었다.
학교를 그만둔 후 T.I.P라는 팀에 합류했고 새벽, 낮, 밤 할 것 없이 연습에 임했다. 당시 팀 선발전에서 단일팀으로 본선에 진출하게 됐고 우리나라 대표로 영국까지 가게 됐다. 일본을 거쳐서 영국으로 갔는데 생전 처음 해외에 나가 본 경험이었다.
당시 영국에 도착하고 UK 비보이 챔피언십에 임한 소감은?
ㄴ 8명이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영국으로 떠난다는 게 안 믿겼다. 그래서 연습을 더 많이 했다. 실제 무대에 올랐을 때는 오히려 '우리가 연습을 너무 많이 했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무대가 굉장히 편하게 느껴졌다. 결승까지 가고 우승했다는 게 꿈만 같았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당시에 심사위원이었던 분들과 요즘 함께 대회 심사위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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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에는 정말 대단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 ||
본인이 자신 있는 춤 기술이나 비보잉 외에 관심 있는 춤 분야가 있는지
ㄴ 현대무용 분야에 관심이 많다. 국립현대무용단과 여러 프로젝트를 같이 한 적도 있는데 사실 비보잉을 오래 해오다 보니 다른 춤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릴 땐 현대무용이나 다른 춤 장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질투 아닌 질투와 비보잉만 바라보려고 했다. 그런데 다양한 협업을 거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홍대 '프리즘 댄스 스튜디오' 원장으로 일을 맡고 있다고 했는데 어떤가
ㄴ FRZM Dance Studio에서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원장이라는 이름과 교육자라는 일이 많이 어색하다. 하지만 댄서로서 사는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서 힘들지만 재미있게 하려고 한다. 나의 지식과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게 의미 있다.
일반인 외에 입시반 친구들도 있나
ㄴ 입시반 친구들에게는 하드 트레이닝을 해주고 특별히 대화도 많이 하려고 한다. 직접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훨씬 많은 노하우를 전달해주고 그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친구들 나이에 나도 치열하게 춤을 췄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 친구들을 대하면서 예전과 달라진 점들이 있다면?
ㄴ 나도 아직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 친구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무언가를 하고, 춤을 출 때 '다음 단계'를 염두에 두려고 한다.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쪽이 무엇일까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럼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후회하는 게 있나
ㄴ 2012년 세계 대회 결승에서 1:1 대결을 5라운드로 펼친 적이 있다. 그때 상대 선수에게 졌다. 당시에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많이 지쳐있을 때였는데 그걸 극복하지 못했다. 정말 아쉬웠다.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할걸’ 이 생각을 끊임없이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결국, 연습의 중요성을 다시 언급했다. 효율적으로 연습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ㄴ 몸이 흘러가는 대로 프리스타일 연습 방법도 좋은데, 자기 연습 장면을 촬영해 보면서 어느 부분이 부족하고 이상한지를 점검해가면서 그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게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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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댄스 스튜디오 홈페이지 | ||
세계 대회나 여러 가지 무대를 다니면서 다양한 나라에 가봤다고 하던데
ㄴ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를 가봤다. 나라마다 주는 느낌이 다르지만, 특히 스웨덴에 갔을 때 북유럽 문화가 주는 인상이 남달랐다.
대학을 늦게 들어갔다고 들었다. 이미 세계적인 댄서였는데 다시 학교에 간 이유가 있나
ㄴ 사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교수' 이미지를 많이 풍기는 학생이었다. 그렇지만 이론적인 부분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레포트라는 걸 처음 써봤는데 신세계였다. 억지로 해보다가도 한 번씩 읽게 되고 그걸 우연히 무대 준비하면서 써먹게 됐다. 재미있었다.
비보잉, 현대무용과의 협업, 방송활동 등 많은 활동을 해왔는데 요즘 가장 집중하는 일은?
ㄴ 요즘에는 스튜디오와 강연 등 교육적인 업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 스튜디오에 자녀를 맡기시는 학부모님들과 대화를 해야 해서 조금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집중하려고 한다.
교육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댄서 혹은 댄스 문화 사업 시장에 대해 어떻게 보나
ㄴ 공무원처럼 안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근 10년 사이에 이렇게 성장했고, 댄서들이 설 수 있고 주목받을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러므로 앞으로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절대 예전과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또 하나의 '한류'를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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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퍼킴닷컴 (http://differkim.com)은 그의 열정이 잘 묻어난 곳이다. | ||
본인이 가진 춤 이외의 경쟁력이 있다면?
ㄴ 호기심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 편집 툴에 대해서도 혼자 연습을 했다. 영상 툴이나 포토샵 툴에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춤을 잘 추는 것 이외에 이런 것도 할 줄 알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여기에 직접 춤을 추는 감각이 더해져 좋은 영상과 사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춤, 영상 편집 외에 취미가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
ㄴ 어렸을 때 취미가 바로 영상 편집, 사진 편집이었다. 그런데 이게 일의 연장선이 되다 보니까 요즘엔 가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건강 관리가 중요한 것 같은데 본인만의 관리 노하우가 있나
ㄴ 최근에는 근육 만들기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재활을 겸한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병원에도 꾸준히 다니면서 검사를 받으려고 한다.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춤추고, 더 열심히 관리한다.
운동신경은 집안 내력인가?
ㄴ 우리 형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해서 대기업에 취직했고 어머니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과거에 운동을 하셨다. 체력적인 것이나 운동 신경은 많이 닮은 것 같다.
인생에 좌우명이 있다면
ㄴ '생각난 것은 바로 한다', '바로 행동에 옮긴 것은 끝까지 유지한다' 이 두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통 무언가 하나를 위해서는 열심히 하는데, 그 하나가 끝나버리면 목적을 잃어버리고 나태해진다. 그래서 평상시에도 긴장과 목적성을 되새기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게 또 실력과 다른 사람에게 주는 신뢰의 기반이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독자들에게 한마디
ㄴ 그동안 많은 활동을 해왔는데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TV보다 훨씬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가는 것 같다. 앞으로도 김기현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감사합니다.
문화뉴스 최예슬 dptmf6286@mhn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