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하성광, 정영숙 배우, 구태환 연출이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우리나라에 보기 힘든 캐나다 연극이 한국에 찾아온다.

 
11월 22일부터 12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가 열린다. 이번 공연은 2014년 '별무리', '수상한 수업', 2015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이어 만들어지는 예술의전당 브랜드 'SAC CUBE' 2인극 레퍼토리로 선보여진다.
 
'고모를 찾습니다'는 캐나다의 국민작가로, 캐나다의 올리비에상인 '거버너 리터러리 포 드라마'를 두 번(연극 '지구의 끝'(1994년), 연극 '금붕어항 안의 소녀'(2004년) 받은 모리스 패니치의 대표작이다. 그는 심각한 정치 또는 사회 문제들보다 삶의 사소한 문제들로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주로 선보이며 '유쾌한 허무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무엘 베케트의 정서를 품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그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신선한 접근을 선보인다.
 
이번에 국내에 초연되는 '고모를 찾습니다'는 1996년 발표된 후 19년 만에 현대 고전으로 불리며, 전 세계 26개국에서 공연됐다. 이 작품은 30년간 연락이 닿지 않은 조카 '켐프'가 고모 '그레이스'로부터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는 편지를 받고, 고모를 만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켐프'의 독백과 '그레이스'의 침묵이 상호작용하며 기존 2인극에선 볼 수 없는 신선함을 준다.
 
'고모를 찾습니다'의 기자간담회가 19일 오전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 스코필드홀에서 열렸다. 전해웅 예술의전당 예술사업본부장은 "최근 외국 연극이 유럽에 치중됐다. 그래서 북미, 남미, 아프리카 등 유럽 외 작품을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중 하나로 흔히 소개되지 않은 캐나다 작품을 하게 됐다. 특히 이번 공연에선 캐나다 대사관에서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도와줬고, 이 점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 에릭 월시 주한 캐나다 대사가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에릭 월시 주한 캐나다 대사도 "바쁜 와중에 캐나다 '거버너 리터러리 포 드라마'를 두 번 받은 모리스 패니치의 공연 기자간담회에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이번 캐나다 연극이 다음 달부터 한국에 가장 권위 있는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되어 매우 시기적절하다고 본다. 한국 관객들은 외국 희곡 작품도 보셨겠지만, 캐나다 작품을 만날 기회는 많이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선정된 것은 저희로도 의미가 깊은 일이다. 이번 캐나다 작품 공연을 통해, 캐나다와 한국의 문화예술 협력관계가 굳건해지고, 더 많은 캐나다 작품이 한국 관객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공연은 2005년 서울연극제 인기상을 받았고, '나생문', '클로져', '고곤의 선물', '친정엄마와 2박 3일', '황색여관', '사랑별곡' 등을 연출한 구태환 연출이 작품을 맡았다. 구태환 연출은 "연출과 연기자의 해석에 따라 크게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총 36개로 많은 장면이 연결됐다"며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친척일 수 있는 고모를 다뤘다. 우리 사회에선 이모가 더 친숙할 수 있는데, 고모의 임종을 기다리는 모습을 다뤘다"고 밝혔다.
 
고모 '그레이스' 역은 드라마 '불굴의 차여사', '웃어야 동해야', '인어아가씨' 등 브라운관에서 활동했고, 1983년 제19회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는 관록의 배우 정영숙이 맡았다. 정영숙은 "'그레이스'는 임종을 앞둔 고독한 사람이고, 침묵을 지킨다. 그래서 이 작품이 느낀 것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조카 '켐프' 역엔 지난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배우 하성광이 연기한다. 하성광 배우는 "'켐프'는 약간 이상한 이웃사람인데, 고모를 찾는다는 것이 이웃에 관한 관심도 부족하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구태환 연출, 정영숙, 하성광 배우가 참석한 기자간담회 질의응답을 소개한다.
 
   
▲ '고모를 찾습니다'의 기자간담회가 19일 오전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 스코필드홀에서 열렸다. ⓒ 예술의전당
 
왜 '고모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바뀌게 됐나?
ㄴ 구태환 : 원작의 제목은 '비질(Vigil)'로 '임종'이다. 고모가 준 편지를 받고, 30년 만에 고모를 찾는 내용이다. 모리스 패니치 작가는 많은 가족과 친척이 있을 텐데 왜 조카에게 편지를 보냈는지 궁금했다. 가족이 해체되고, 고립화된 모습의 단면을 두 배우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고모'일 것 같았다. 우리는 이모나 엄마와 같은 '모계사회'에 의해 길러지는 전통이 있다. 서양도 마찬가지일 텐데 고모는 멀리 있고,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일 수도 있다. 고모의 자식이 있을 수도 있는데,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조카가 고모의 임종을 맞이한다는 자체가 시사하는 것이 크다고 봤다.
 
관객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싶은가?
ㄴ 구태환 : 항상 작품을 하면서, 연극은 우리 사회를 투영해서 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이 단순히 문학적 의미로 한정 짓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모습과 같다고 봤다. 이 작품을 거울삼아 우리의 문제를 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에 작업하고 있다.
 
무언 연기를 해야 하는데 힘이 많이 들 것 같다.
ㄴ 정영숙 : 이번엔 무언 연기를 해야 한다. 평소에 생각하길 무언 연기를 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치고 나니 힘들었다. TV나 영화에선 내가 없을 땐 연기가 안 보이는데, 무대에서 한 번도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다 보니 고민이 많다. 작품에 푹 빠져서 하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 봤다. 그래서 지금은 연구 중이다.
 
   
▲ 고모 '그레이스' 역을 정영숙 배우가 연기한다. ⓒ 예술의전당
 
첫 2인극을 하게 됐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ㄴ 정영숙 : 사실 TV는 흘러간다. 흘러가서 그 순간을 놓치면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TV의 큰 문제가 있다. 물론 작품이 들어가기 전에 인물을 분석하고 가지만, 정작 들어가서는 순발력으로 작품을 돌려야 해서 대사가 급급해다. 참 어려운 상황이 많다. 그러나 연극은 인물이라도 만들 수 있는 순간을 주기 때문에, 안 되는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도전이 있다. 안 되는 인물을 만들 때의 쾌감이 연기자로 있다.
 
한정된 시간에 나를 다 던져서 만들어야 하는 연기의 참모습이 있어서, 연기자가 습관적으로 하는 연기에서 한 번 몸을 던져 훈련해야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나도 나이가 들을 만큼 들어서 한 번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2인극을 하게 됐다.
 
작품을 하게 된 소감을 들려 달라.
ㄴ 하성광 : 나 역시 항상 도전이다. 첫 만남이 낯설고 익숙해져 가는 시간이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처음에 작품 의뢰를 받고, 별로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작품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 연극이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해서 흔쾌히 응했고, 불러주셔서 감사했다. 도전에서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남기도록 하겠다.
 
'켐프' 캐릭터를 어떻게 풀어나갔나?
ㄴ 하성광 : '켐프'는 성격적인 결함을 다채롭게 갖고 있다. (웃음)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다. 되짚어 보면, 내 안에 그런 면이 조금씩 남아있고, 겹쳐지는 부분도 많다. 그것을 극대화하는 순서를 거치는 게 연습 과정인 것 같다. 아주 쉽지도 않지만, 어렵지도 않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하겠다. 
 
   
▲ 하성광 배우가 조카 '켐프'를 맡았다. ⓒ 예술의전당
 
한국 사회에 고독사나 노인 빈곤 문제가 많다. 그런 접점이 실제로 있었는가?
ㄴ 정영숙 : 나는 시아버지도 한 10년간 모셔봤다. 그리고 아버님의 외로움이 큰 것을 느꼈다. 사회가 점차 핵가족이 되어가고 있는데, 살면서도 바쁜 생활 속에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아주 적어진다. 식사하거나, 잠깐 담화를 할 때 빼고 노인의 고독은 굉장히 많이 있다. 특별히 소외된, 외로운 이들의 삶은 매우 크리라 본다.
 
우리 작품은 노년을 주제로 한 외로움이지만, 바쁜 생활에 쫓기다 보면 젊은 사람도 외로움이 있다. 이 사회에 한 번 외로움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싶었다.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볼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렇게 임하게 됐다. 바쁜 사회 속에서 나는 외롭지 않다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어린아이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ㄴ 정영숙 : 이 작품의 매력은 보시면 알겠지만,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다. 작품을 우선 결정하기 전에 대본을 봤다. '어어어' 하면서 전개가 되다가, 반전이 확 나오는 탄탄한 내용이 있어서 작품성이 보여 서 하게 됐다.
 
2인극은 두 배우의 호흡이 중요하다. 대사의 양을 보면, 주고받는 것보다 '켐프'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대사 호흡을 어떤 방법으로 맞추고 있는가?
ㄴ 정영숙 : 워낙 지금 '켐프'의 대사가 많다. 대사가 익숙해 지려면, 호흡이 필요하다. 이제 대사가 완성되어서 호흡 작업도 시작될 것 같다.
 
하성광 : '켐프'가 말이 매우 많다. (웃음) 저 캐릭터는 왜 말이 많고, 저 캐릭터는 말이 왜 없을까는 같은 값인 것 같다. 듣고자 하는 자와 말하고 하는 자가 만나는 것 같아서, 그것만 뚫어내면 별문제 없을 것 같다. 왜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은지를 찾아낸다면 재밌을 것 같다.
 
   
▲ 구태환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예술의전당
 
노년의 삶을 다룬 작품을 많이 했는데, 이 작품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노년의 삶을 많이 이야기하는 연극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나?
ㄴ 구태환 : 고모의 임종이 모티브여서 노년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작품은 '켐프'의 유년시절이 많이 등장한다. 하성광 배우가 성격장애를 이야기했는데, 성격장애 유형 공부를 많이 했다. '왜 그렇게 많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성격에 타고난 유전자가 있을 수도 있지만, 고립된 환경 속에 어떻게 양육됐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이렇게 됐다고 유추한다.
 
이 작품이 건드리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핵가족화되면서 부모에게 양육될 기회가 상실된 아이들의 고통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간직하는 문제를 같이 다룬다. 묘한 작품이다. 거기서 나오는 중년의 고독을 선생님들이 대본을 보면서 수긍했다. 왜 말을 잃었을까? 고독하다 보면 혼자 살 때도 있는데, 대화할 상대가 없어진다. 혼자 가만히 있게 된다.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어서 화석처럼 굳어지는 상황인데, 결론은 '켐프'가 말하게 끌어낸다. 그게 큰 감동이었다. 그런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노년 이야기는 계속 다뤄질 것이다. 그 부분이 우리 사회의 문제여서 연극이나 다른 예술에서 다뤄질 것이라고 본다.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이유는 무엇인가?
ㄴ 정영숙 : 연극을 1974년에 처음 했고, 그다음부터 굉장히 바빴다. 다작을 하다 보니 연기하면서도 빠지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한 번 좀 시간을 가지고 몰입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배우가 연수 기간도 있어야 하는데 전혀 가지지 못했다. 이제 작품에 몰입할 시간을 얻어서, 매력을 느끼고 하고 있다. (웃음)
 
2인극 연출을 어떻게 풀어갔나?
ㄴ 구태환 : 계속 고민을 하고 있다. 빠른 템포를 통해 관객이 유쾌하게 느끼는 실제 체감시간이 짧도록 했다. 대신 배우들이 그렇게 연기 하시려면, 정말 힘들게 준비해야 한다. 그 템포를 잡아가시려면, 더 달리셔야 한다. 특히 어두운 이야기를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양식으로 쓰여 있어서 위트있게 해야 한다. 원작이 강조하는 방식으로 연출할 계획이다.
 
   
▲ 하성광(왼쪽), 정영숙(오른쪽) 배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예술의전당
 
2인극 작품을 두 번 볼 때, 양 측의 입장으로 연극을 보면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도 있다. 이 작품도 그러한가?
ㄴ 구태환 : 앞서 말씀드렸듯이, 노년의 고립된 삶이 정면으로 들어간다. 후면에서 찾아오는 '켐프' 삶도 드러난다. 둘의 공통점도 등장하다. 친구도 없고, 대화 상대도 없는 분들이다. 고모를 찾고 열심히 들어주는 상황에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정말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작품의 소품이 상당히 중요할 것 같다.
ㄴ 구태환 : 소품의 연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소품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말씀 못 드리지만, 유학 시절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정년으로 퇴임하신 지도교수님 찾아뵈러 가면 노년의 주거환경을 볼 수 있다. 인생을 거듭해와서 수십 년 정도 퇴적된 물건들이 있다. 여기서 퇴적은 더러운 의미가 아니다. 그런 것이 무대에 어떻게 구현될지 보여주려 한다.
 
이 작품은 '죽음'을 유쾌하게 마주하며, 무거운 주제를 웃음으로 치환한다. 배우들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ㄴ 하성광 : 죽음은 숙제 같다. '알 수 없음'이 주는 의미가 있다. 죽음도 어찌 보면 삶 같다는 생각을 해보긴 한다. 아버지가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계속 나한테 살아있고, 남아있다. 죽음이 어떤 끝이고, 시작인지 모르겠다. 더 명확해지면 그때 답변 드리겠다. (웃음)
 
정영숙 : 희망을 품었기 때문에, 죽음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쪽이다. 그리고 우리 삶이라는 게 나이가 들어보니 순응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픔도 순응해야 하고, 죽음도 겪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시아버님도 모셔보고 친정아버지 돌아가시는 것도 봤는데 살다가 없어지는 게 죽음이었다.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대신 희망을 품어서, 나도 죽으니 대비를 하며 산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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