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장면이 계속해서 이어져,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 관객 A
"우선 사람들이 '왜 이 땅에 '여성혐오'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 배우 백석광
 
연극 '로베르토 쥬코'를 관람한 관객들의 리뷰를 여러 건 읽어보면, 공통적인 키워드가 존재했다. 바로 불편함이다. 여성을 대하는 남성들의 적나라한 폭력 장면이 연이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35년 전 유럽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이탈리아의 연쇄 살인마 '로베르토 쥬코'가 각종 범죄가 만연한 2016년 대한민국에 나타났다"는 작품 홍보 글귀가 갑작스레 떠올랐다.
 
연습실 공개 당시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로베르토 쥬코'가 써진 1980년대만 하더라도, 이 작품은 사실주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부조리적인 미학이며, 주인공의 동기가 없는 살인 등은 사실주의를 초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늘날 악과 폭력이 선과 평화를 압도하는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이 작품처럼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로베르토 쥬코'는 현대에 와서 사실주의적인 작품이 된 것이다. 현대 사회를 들여다봐야 하는 국립극단 관점에서 시의 충만한 작품이라 생각했다"고 연극을 올린 배경을 밝혔다.
 
그렇다고 이 작품은 그저 '미소지니(여성혐오)'를 중심으로 한 작품은 아니다.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작가의 유작인 '로베르토 쥬코(Roberto Zucco)'는 대표적 현대 프랑스 연극 레퍼토리 중 하나다. '세상의 모든 폭력'이 스며들어 있는 작품이라 인정받으며, 현대사회의 타락, 모순, 자본주의에 토대한 난폭한 인간관계, 가족관계의 분열, 소통의 부재 등을 고발한다. 실제 인물인 '로베르토 주코(Roberto Succo)'를 모티브로 했기 때문에, 프랑스 일부 지역에선 작품이 발표되고 몇 년간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 연극 '로베르토 쥬코'의 한 장면. ⓒ 국립극단
 
'로베르토 쥬코'는 분명 청소년 관람불가로 공연하기 때문에, 폭력 장면이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현상자체를 다루기보다 근저에 자리 잡은 인간의 폭력과 악을 근원적으로 다뤘다. 단순히 살인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살인자와 피살자 사이의 관계, 군중 속에서의 독백을 통한 인간관계의 단절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다면 그 '로베르토 쥬코'를 연기한 배우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로베르토 쥬코'를 연기한 배우는 2004년 제34회 동아무용콩쿠르 창작부문 남자부 대상을 받았던 '무용수'출신의 백석광이다. '운명'처럼 그는 무용에서 연극에 입문하게 됐다. 그리고 '혜경궁 홍씨'(2014년)의 '사도세자', '문제적 인간 연산'(2015년)의 '연산', '토막'(2015년)의 '삼조' 등을 통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윤택 연출의 '혜경궁 홍씨'와 '문제적 인간 연산'을 통해 백석광은 연기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본인의 장기인 신체 표현이 탁월하게 작품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체 표현은 '로베르토 쥬코'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처절한 그의 움직임은 문이라는 열림과 닫힘, 소통과 단절이라는 의미에서 시너지 효과를 줬다. 
 
16일까지 막이 오르는 '로베르토 쥬코'에서 소름이 돋는 연기를 펼치고 있는 백석광을 공연 장소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공연 3주차에 접어든 그에게 앞서 이야기한 '여성혐오'에 관한 본인의 생각, 프랑스, 스위스 공동연출가에 대한 생각, 작품에 남아 있는 '영웅 심리', 작품의 주요 장면을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했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작품 결말이 인터뷰 후반부에 있는 가운데, 먼저 작품과 배역에 대한 소개를 영상으로 살펴본다.
 
 

 
대학교 때 처음 작품을 읽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엔 어떤 느낌이었나?
ㄴ 연출을 전공한 터라 작가 공부나 연출가 연구가 수업의 커리큘럼이었다. 그래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작가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그의 작품인 '서쪽 부두'와 '로베르토 쥬코'를 같이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말의 방향성 때문에 작품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전체적인 뉘앙스가 어려운데 느낌이 있다는 정도였다. 자세하게 들어가서 읽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학생이어서, 연극적인 깊이도 부족했었다.
 
"아직 '로베르토 쥬코'가 이런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긴 어렵다. 연습하면서 계속 찾아 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연습실 공개 당시 밝혔다. 이제 프리뷰 공연을 포함하면 3주차에 진입했다. '로베르토 쥬코'는 어떤 사람인가?
ㄴ '쥬코'는(약 10초간 생각한 후에) '충동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추구하는 인물이다. 이 세상 속에 그런 인물을 상상해봤을 때, 과연 자신의 충동을 그대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정신병 환자일 수도, 작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세상에 존재할 수도 없는 인간일 수도 있다.
 
'쥬코'는 자신의 충동을 가감 없이 쫓아다니는 인물이다. 그런 순간이 가끔 있다. '쥬코'의 대사 중에 "난 여자가 좋아요"가 있다. "모든 여자가 좋아해요. 지나치게 좋아요"가 있다. 그런 말을 거리낌이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다. "소변이 마려우면 소변을 지리고"라는 말처럼 주변에 보기 쉽지 않은 인물이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충동이 존재하는데 그 근원 같은 인물이 아닌가 싶다.
 
   
▲ 작품의 2장에서 '로베르토 쥬코'는 어머니를 죽이고 자리를 떠난다. ⓒ 국립극단
 
'로베르토 쥬코'는 고전 작품의 선과 악을 대입한 인물과는 확실히 달랐다. 2장에서 어머니를 죽이는 비열함과 6장에서 노인을 대하는 모습이 그랬다. 어떻게 해석한 후에 연기하려 했나?
ㄴ 2장은 굉장히 단순하다. '쥬코'는 카멜레온이나 투명인간처럼 자기 자신을 보이지 않으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전략이 있다. 그래서 군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군복을 주지 않는다면 엄마라도 죽이려는 강렬한 욕구가 있다. 충동을 제어하는 기관이 없는 존재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맹렬하게 군복을 오롯이 가져간다. 2장에 들어가기 전에 군복만 가져간다고만 생각하고 연기한다.
 
6장은 정말 어렵다. 이 세계에 수학의 난제가 있는 것처럼 6장은 콜테스 연극의 난제다. 이 6장을 구현하는 연출은 다른 장면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두 다를 것이다. 모두가 끄덕이고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고 본다. 거기서 쓰이는 인물이 희곡 안에서는 바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6장 장면만큼은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했다. 위치를 바꿔보거나, 장면의 목적들을 바꿔가며, 구현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를 바꿔나가면서 끝없이 시도해 현재의 장면으로 오게 된다.
 
지금 6장에선 관객분들도 아마 '노인'의 말이 잘 안 들릴 거라 생각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내용이다. 그냥 텍스트로 읽어도 잡히지 않는 내용인데, '쥬코'는 그 내용을 듣는다. '쥬코'라는 사람은 이런 부분에서 선악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것 같다. 그냥 어떠한 '노인'이 자기를 여기서 구해달라고 하는데, '쥬코'는 구해준다.
 
연출은 '노인'에 대해 '예언자'라는 표현을 썼다. 현대적인 예언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장면을 만약 객석에서 10번이나 20번을 본다 하더라도 느끼는 점은 매번 다를 것이다. '쥬코'가 '노인'을 도와준다는 게 중요하다. '충동 그 자체'만 있는 사람이 타인을 돕는다는 행위는 치명적일 것이로 생각했다. 그래서 '신탁'이나 '예언'이 강력한 존재인 '쥬코'가 자멸해나가는 포인트가 되지 않나 싶다. 그전엔 군복도 어고, 소녀도 얻고, 총을 얻으려고 형사를 죽이는 존재가 그 순간부터 추락하지 않나 싶다.
 
   
▲ '로베르토 쥬코'는 '노인'을 이끌고 무대를 빠져 나온다. ⓒ 국립극단
 
작품엔 '비극적 영웅'이라는 키워드가 계속 등장한다. '로베르토 쥬코'라는 인물은 과연 '영웅'이었을까?
ㄴ '쥬코'는 결코 영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쥬코'가 영웅화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고, 관객에게 그럴싸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선 '쥬코'를 영웅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작품이 '쥬코'를 영웅화시키면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른말을 하더라도, '쥬코'는 살인자다. 그 살인자의 속내를 사유할 수 있어도, 감정의 동조는 다른 문제라고 본다.
 
'쥬코'는 영웅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을 오롯이 추구하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고 본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내가 배우로 있으면서 좋은 연기를 추구하려는 그런 마음은 아름다운 마음이다. 그것과 유사한 지점이 발견되는데, '쥬코'의 인간적인 면모라고 본다. 내가 배우인데 좋은 연기를 추구하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추구하며 배우 생활을 한다면 덜 아름답다고 본다. '쥬코'는 완벽히 자신에게 집중한다. 거기에서 오는 기이한 감각이 있다.

그렇다면 백석광 배우가 생각하는 '영웅'은 무엇인가?
ㄴ 내가 생각하는 영웅은 계속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주위를 바라보고, 교류를 멈추지 않는 존재인 것 같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 대단하게 느껴진다. 자기 자신의 관계와 함께 타인의 관계를 깊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러한 인간형은 사회적 지위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런 인간형이 영웅일 것 같다.
 
   
▲ 백석광 배우가 직접 프레임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을 본 관객 중에 일반적인 서사 구조가 아니어서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ㄴ 희곡 자체가 그렇게 쓰여 있었다. 기승전결을 완벽하게 가진 구조가 아니었고, 인과관계가 선명하지 않다. 오히려 계속해서 장면 자체가 제시되는 듯한 식으로 쓰여있다. 아마 고전적 기승전결의 극작법을 토대로 만든 작품을 '관극'하신 방식으로는 이 작품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으실 것이다. 기존 영화, 연극, 뮤지컬의 서사구조를 보는 프레임이 이 정도 크기(백석광 배우는 위 사진과 같은 포즈를 취했다)라면, '로베르토 쥬코'를 볼 수 없게 된다. 관극하는 프레임을 젖혀두고, 이해가 되지 않은 지점이 있더라도 편안하게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면 작품 안에 들어오기가 쉽다.
 
프랑스 연출가 장 랑베르-빌드와 스위스 연출가 로랑조 말라게라에게 많은 것을 배웠을 것 같다.
ㄴ 준비를 아주 많이 하시는데, 두 연출가가 대본에 대한 해석이 있다. '로베르토 쥬코'를 연출할 때, 당연한 지리적 이점이 있을 수밖에 없을 거라 본다. 성공하거나 실패한 여러 '로베르토 쥬코'를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봤다고도 이야기를 했다. 콜테스 작가의 친형을 만나고 올 정도로 사전조사와 작품에 대한 시각이 아주 명료한 상태여서, 오랫동안 연극을 사랑하고 열심히 만들어온 좋은 기술이 있었다.
 
물론 국내에도 이러한 연출가는 당연히 있다. 재밌었던 것은 언어가 다름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앞에서 어떤 배우가 어떤 것을 집중하고 무엇을 연기하는지 매우 선명하게 대화가 됐다. 그게 참 신기했다. 도대체 언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작품에 나오는 무대장치인 문은 '11번째 배우'라는 인상이 강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문의 의미는?
ㄴ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이 안에 갇혀있는데, 심지어 '쥬코'도 갇혀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쥬코'는 추락이라는 죽음을 통해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마치 이 세상 같았다.
 
   
▲ 위기의 순간, '로베르토 쥬코'는 '소녀'를 찾아간다. ⓒ 국립극단
 
작품에 나오는 '소녀'는 다른 이야기의 축을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DC 코믹스의 '조커'와 '할리퀸'처럼 보이기도 했다.
ㄴ 작품에서 '소녀'는 성폭행당했다고 나오고, 사회적 시각에서도 '쥬코'는 '소녀'를 성폭행했다고 한다. '쥬코'에 입장에선 아름다운 존재를 만나 사랑을 했는데, 강제였는지 아니었는지에 대해 작품엔 언급이 없다. 그 경험을 통해 '소녀'는 지옥 같은 가정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맞이한다. 이것은 '쥬코'가 '소녀'를 구해주기 위해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우연을 통해 '소녀'는 가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본다. 우연의 근원이 '쥬코'였다.
 
그래서 막연하게 '소녀'가 '쥬코'를 다시 찾아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각은 원인과 결과라기보다 마냥 누군가를 보고 싶은 감정인데, 아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 본다. 아주 저 밑에 있는 감각이라고 본다. '쥬코'는 처음 '소녀'와 만난 자리에서 "이름을 말해주면 나는 죽게 될 거야"라고 하는데, 다시 '소녀'를 만날 때는 '쥬코'가 죽음을 향해서 간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므로, 스스로 종국을 향해 가는 선택을 한다고 봤다. 비극적인 사랑이라고 봤다.

작품에서 '소녀'를 대하는 남성 '가족'들의 시선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여성혐오'가 올해의 이슈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가운데, 본인의 생각을 듣고 싶다.
ㄴ 우선 사람들이 '왜 이 땅에 '여성혐오'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실제 유교는 그렇지 않지만, 잘못 전승이 되어 온 유교의 관습, 가부장제, 사회적 구조가 '여성혐오'를 낳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이 인간이라는 개별적 존재로 느끼지 않고, 다른 프레임을 통해 여성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모두 태어날 때, '응애응애' 하고 태어나는데 그 프레임을 어디서 얻었을까? 타인이 가진 프레임으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 '소녀'는 '오빠'로부터 폭력을 당한다. ⓒ 국립극단
 
이 작품에서 '포주'나 '소녀의 오빠'가 있다. '오빠'로 예를 들면, '오빠'는 '소녀'가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다. 순결이라는 관념 안에 이 사람은 갇혀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여동생의 존재를 그대로 보지 못하고 폭력이 자행된다. 이 작품의 가족이라는 관념은 역설적이다. 우리가 중요하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관념도 의심하게 하는 장치가 있다. 이러한 점을 작품은 지적하고 있고,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눈앞에 자행되는 폭력의 껍데기로만 작품을 본다면, 이 작품은 불편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이 작품이 폭력적인지를 보게 된다면 다르게 다가오리라 본다.
 
융·복합 예술이 대세인 시대에 백석광 배우가 그야말로 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 시절 무용을 한 것부터 영화 연출 및 시나리오 작업, 여기에 연극배우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재다능의 비결은 무엇일까?
ㄴ 입시 교육 때문인 것 같다. (웃음) 그것에 대한 질문을 예전부터 받아오면서 대답이 바뀌었는데, 이젠 생각이 정리된 것 같다. 내가 어떠한 것을 해야 할 지 모른 채 무용을 시작한 것 같다. 숙명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계속 찾으려 노력한 것 같다. 그러면서 유랑을 좀 하게 됐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 있던 문제점을 보면서 다양한 곳으로 여행이 된 것 같다.
 
최근 출연작을 살펴보면 무용처럼 '신체 언어'로 표현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힘이 들진 않았나?
ㄴ 무용에서의 몸과 연극에서의 몸이 차이가 크다. 무용이 몸을 위한 움직임이라면, 연극은 그 움직임이 구체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연극 안에서 신체가 구체화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내가 가진 신체적 요소가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도 딱딱해지고 여기저기 부상이 쌓이면서 걱정도 된다. 하지만 연극은 몸과 마음이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계속 추구하면서 갈고 닦아서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혜경궁 홍씨', '문제적 인간 연산'을 연출한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예술감독의 영향도 컸을 것 같다.
ㄴ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윤택 연출님이 "가장 높은 지성 너머의 야성을 무대 위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다. 그 말을 가슴 속에 항상 새기고 있다. 작품에 접근할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유, 분석, 해석, 사회적, 정치적 이슈 관계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하려 한다. 내가 가진 모든 지성을 통해 좌표를 포착하고, 지성을 넘어서는 야성으로 향하는 노력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이윤택 연출은 최근 연출작인 '길 떠나는 가족'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예술인은 힘들다"는 말을 어렵게 남겼다. 작품을 같이한 후배 연극인으로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ㄴ 분명 연극인들은 금전적인 부분으로 힘든 것이 있다.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그것이 개선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지속하는 것은 모두가 연극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문제 말고도 자기 자신과의 대화도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수많은 유혹이 온다. 정말로 나의 예술혼을 불태워서 작품을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깨달음을 얻어야 하고, 매번 고쳐나가야 한다. '완성'이라는 의미가 없어서, 작품의 시선은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작품을 보는 사람과의 대화를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중에 하나라도 안 되면 정말 힘들다.

'솔로 36분'(2008년)으로 제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사랑에관한짧은필름'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바 있다. 작품도 쓰고 연출도 했는데, 시나리오 작가로는 앞으로 인연이 없는 것인가?
ㄴ 작품을 쓰고 만드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당연히 할 것이다. 아직 무언가를 쓰고 만들기엔 이 세상을 잘 모르고 인간을 잘 모르겠다. 그것을 공부하려면 끝 이 작품과 관계 맺음을 해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세상을 경험해야 한다. (꼭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 같은 명배우가 되길 바란다.) 감사하다. (웃음)
 
   
 
 
끝으로 앞으로 계획을 듣고 싶다.
ㄴ 다음 공연으로 '실수연발'이 있다. 그 이후엔 전혀 계획이 없다. 누군가가 나를 원한다면 어디서든지 작품을 하고 싶다. 그리고 다양한 배역과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기 위해 끊임없이 갈고 닦을 것이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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