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준모 바리톤(위)과 오미선 소프라노(아래)가 오페라 '맥베드' 중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문화뉴스] "최순실 같은 사람과 등장하는 것과 내용이 비슷하지 않나요? 이 시대의 거울처럼 보입니다." 

 
명작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명작이 된다. 명작을 통해 현재를 거울삼아 볼 수 있고, 미래를 발전시킬 수 있다. 여기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맥베드'가 그러한 이야기를 담았다. 오페라 '맥베드'는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화려하고 매혹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 '맥베드'를 원작으로, 이탈리아 작곡가 쥬세페 베르디가 완성한 오페라다.
 
'맥베드'는 용맹한 장군이자 야심가인 '맥베드'가 마녀의 사주를 받아, 자신이 섬기는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의 역사적 인물을 다루고 있고, 현재 대한민국의 '비선 실세' 최순실이 문득 떠오르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맥베드'는 역사적인 사건 자체보다는 이로 인해 빚어지는 인물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1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올리며, 20년 만에 서울시오페라단이 소개한다.
 
3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내 연습실에서 오페라 '맥베드'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기자간담회엔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장을 비롯해 오페라 '맥베드'의 고선웅 연출, 구자범 지휘, '맥베드' 역의 바리톤 양준모, 김태현, '맥베드 부인' 역의 소프라노 오미선, 정주희가 참석했다. 출연진과 제작진들이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와 함께, 출연 소감 등을 들려줬다.
 
   
▲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장이 공연을 올리게 된 배경을 전하고 있다.
 
오페라 '맥베드'를 올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ㄴ 이건용 : 이 작품을 택하게 된 이유는 올해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작품에 감동도 한 적이 있고, 이 시대에 '맥베드' 이야기를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시대는 욕심을 공공연히 자랑하고, 탐욕을 에너지로 삼는다. 탐욕이 심지어 미덕이고, 자랑하는 시대가 됐다. 탐욕은 자연스럽게 악함과 연결된다. 그래서 악함에 대한 불감증이 우리에게 있는 것 같다. 그 탐욕과 악함의 불감증은 결국, 중독으로 나타난다. 악한 일이 주는 것과 중독에 걸려있는 우리 시대가 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결국, 이 작품은 파멸로 향한다. 이처럼 탐욕과 악의 중독은 파멸로 간다고 본다. 셰익스피어는 통렬하게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400년이 지난 지금 경고를 한다. 그 경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베르디가 정말 극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와 베르디가 만나 오페라가 탄생했다. 문학뿐 아니라, 음악과 기악도 언어로 구성된다. 그래서 이 작품에 성공하기 위해 꼭 맞는 예술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당대 최고의 두 예술가를 모셨다.
 
먼저 구자범 지휘자는 독일 하노버 국립극장, 다름슈타트 극장 등지에서 오페라 지휘자로 활동하셔서, 그 경험을 충분히 쌓으신 분이다. 고선웅 선생님은 사실 잘 몰랐다. 작년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관심을 가지며 작품을 몇 작품 보게 됐다. 이미 '칼로막베드'라는 연극을 만드셔서 너무나 잘됐다고 했다. 텅 빈 무대인데도, 공간과 상황을 만드는 점에서 감동을 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같은 엄청 큰 무대를 잘 요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맥베드'를 볼만한 작품으로 만들 것 같아 모시게 됐다. 안심하고 연습을 지켜보고 있다.
 
   
▲ 구자범 지휘가 공연 소감을 말하고 있다.
 
작품을 지휘하게 된 소감을 들려 달라.
ㄴ 구자범 : 사실 '맥베드' 원작을 썩 좋아하지 않아서, 제의를 주셨을 때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다 다시 작품을 보면서 이건 할만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 속 마녀 셋이 이 작품에선 합창단으로 나온다. 마녀를 왜 구성했는지 살펴보자,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됐다.
 
여러 대사가 있는데, 한 마녀가 "나한테 잘못한 놈이 있어서, 걔가 타고 있는 배를 침몰시킬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자 다른 마녀들이 "북풍을 빌려줄게", "암초를 빌려줄게"라면서 둥글게 돌면서 이야기한다. 마녀가 합창하는 이 부분은 재벌, 검찰이나 경찰, 언론 등 권력층이 '우리끼리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빗대고자 했는데, 이 시점의 거울처럼 보인다.
 
여기에 최순실 같은 사람인 '맥베드 부인'이 '맥베드'에게 "네가 왕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을 속삭이고 조종한다. 또한, 권력을 위한 탐욕으로 왕을 죽인 '맥베드'와 '맥베드 부인'이 아무것도 모르는 듯 "암살자를 처단해달라"고 하는 가증스러운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어쩜, 저렇게 뻔뻔하지'라는 생각도 한다. 결국, '맥베드'는 마녀들과 접촉하고, 마녀들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고 파멸한다. '맥베드'를 파멸시키는 사람은 민중들이었다. 이처럼 이 작품이 우리 시대의 거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연출하게 된 소감은?
ㄴ 고선웅 : 오페라가 처음이라 어떻게 발을 내디뎌야 하나 했다. 조금씩 하면서 다듬어진 후엔,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오페라가 워낙 대단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늘 경외감을 가졌다. 구자범 지휘자 등 모든 분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좋은 일만 가득하게 잘 공연하겠다.
 
   
▲ 양준모 바리톤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페라 '맥베드' 출연 소감을 말해 달라.
ㄴ 양준모 : 좋은 선생님들과 공연하는데, 좋은 작품을 선보이도록 하겠다.
 
김태현 : '맥베드'로 한국에서 첫 작품에 데뷔하게 됐다. 좋은 분들과 같이해서, 좋은 공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오미선 : '라 트라비아타' 같은 작품만 하다가 처음으로 드라마틱한 작품이자, 내가 맡은 역할 중 가장 '악녀'를 연기하게 됐다. 성악가는 노래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탄탄한 발성은 기본으로 생각하는데, 연기도 중요시하고자 한다. '레이디 맥베드'가 남편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찾으려 한다. 이 시대의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리트머스 종이처럼 물들어가는 역할을 하기 위해 평소에도 그렇게 노력하는데, 이번 역할은 매우 나쁜 역할이라 어느 정도 악해질지 궁금하다.
 
4분의 1 정도 준비했는데, 역할 맡겨주셔서 감사드린다. 구자범 지휘자님과 같이 함께하게 되어 감사드린다. 예전에 지휘자님과 오페라 작업한 적이 있는데, 오케스트라 연습 때 자막을 보여주신다. 한 마디 한 마디 언어를 해석해 주신다. 이 지점에서 푸치니나 베르디가 이렇게 작곡해서, 이 선율이 나온다고 정확하게 짚어주신다. 이처럼 정확히 짚어주시는 오페라 지휘자는 처음 뵌 것 같다. 정말 많은 감동을 해서, 저런 분들이 오페라 무대에 계속 서주시길 바랐다. 이번에 만나게 되어 정말 좋다.
 
정주희 :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고, 행복하다. 파트너들과 연기도 배우고, 음악에서도 자세하게 도와주셔서, 하나하나 기쁜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다. 많이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 3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내 연습실에서 오페라 '맥베드'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세종문화회관
 
3년 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에서 성희롱 누명, 단원들 간의 갈등 등으로 물러난 후 공식 무대에 섰다. 복귀 소감을 듣고 싶다.
ㄴ 구자범 : 3년 전엔 진짜로 못할 것 같아서 안 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다짐을 하고 있다.

오페라 첫 연출을 하는데, 힘들지 않았나?
ㄴ 고선웅 :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시, 희곡, 소설 모두 다 똑같다고 본다. 오페라도 창극, 연극, 뮤지컬 등을 다 해보니까 비슷하다고 본다. 물론, 누가 창극은 창극이고, 연극은 연극이 아니냐고 말한다면 여기에도 100% 동의한다. 다만, 연출이라면 한 작품에 마음이 움직이고, 생각이나 시선이 따라가서 이야기하면 되는 것 같다.
 
오페라는 줄거리가 비약되기도 하고, 드라마가 쭉쭉 나가고 반복되기도 한다. 노래 자체로도 완성도가 있지만, 시각적으론 약간 지루할지도 모른다. 연극 연출을 해 본 사람이니, 어떻게 하면 드라마틱하게 하고, 배우에게도 연기 동선을 분배하면서 강약 조절을 한다면, 다른 '맥베드'가 나올 것으로 봤다. 지휘자, 스태프 모두 훌륭하시니 또 다른 '맥베드'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맥베드'와 '맥베드 부인'에 총 4명이 캐스팅됐다. 각자의 매력이 다를 것 같다.
ㄴ 고선웅 : 늘 '사람이 나무다'라는 생각이 있다. 나무의 이파리도, 나무의 그늘도 다르게 생겼듯이, 사람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 고선웅 연출이 다른 장르 공연 연출과의 차이점을 말하고 있다. ⓒ 세종문화회관
 
다른 배우들에 대한 장점을 말한다면?
ㄴ 오미선 : 정주희 선생님을 말씀드리면, 나보다 키가 크다. '레이디 맥베드'가 팔 하나를 휘두르는 장면이 있는데, 나보다 나을 것이다. 대중가수인 박진영 씨도 다른 분들보다 팔을 더 휘두르는 게 더 좋다고 하는데, 그런 의견엔 찬성이다. 하지만 소리에 대해 말씀드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각자 타고난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양준모 선생님과 같이하는 건 처음인데, 경험 많으신 분이라 묻어간다. 김태현 선생님은 굉장히 성실하고 잘하신다.
 
김태현 : 나는 처음 한국 무대에 데뷔한다. 그래도 양준모 선생과는 대학교 입학 동기여서, 같은 선생님 제자이고, 입시를 본 날부터 친구가 되어서, 졸업할 때까지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다. 유학도 거의 같은 시기에 하면서, 독일에서 같이 살고, 자주 만나 휴가도 보낸 적 있는 요즘 말로 하면 '절친'이다. '절친'과 같은 작품에서 같은 역할을 해서 감회가 뿌듯하다. 소리도 캐릭터도 아주 달라서, 서로 보면서 공부가 된다.
 
정주희 선생님은 '레이디 맥베드'라고 하기엔 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키가 저와 비슷하면서 크시고, 날씬하신데, 연기하면서 편한 부분이 있다. '레이디 맥베드'가 '맥베드'를 아들처럼 다그치는 장면도 나온다. 덩치가 저와 비슷해서 힘의 균형이 잘 맞는다. 반응하는 연기에서 수월한 면이 있다. 처음 같이하는데도 다른 걸 다 떠나, 열심히 준비하셔서 자극도 된다.

구자범 지휘와 작업을 같이 하는 소감을 들려 달라.
ㄴ 고선웅 : 구자범 선생님을 모시다시피 한다. 워낙 탁월하게 작품 작업을 하셔서 따라간다. 그래도 연출이니까 내가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걸 자연스럽게 한다. 일부 장면에선 동선도 바꿔봤다. 와서 보시면, 고선웅은 이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 작품의 한 장면이 연습 시연됐다.
 
고선웅 연출과 작업한 소감은?
ㄴ 양준모 : 유럽 무대에선 연극 연출하신 분들이 오페라도 하고 있어서,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몸으로 느낀다.
 
정주희 : 세세한 걸음걸이나 자세, 어떤 면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를 잘 전달해주시고 있다. 무대에서 가장 예쁘고, 멋있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고선웅 : 사실 숨을 못 쉬겠다. (웃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양준모 : 옛날부터 베르디의 젊은 시절 쓴 작품인 '맥베드' 대신 말년에 쓴 '오텔로'가 흥행했다. '오텔로'는 테너가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높은 소리에 기대하게 된다. 여기는 그 주역이 바리톤이다. 일반적으로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듣기엔, 심심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 실패를 경험하니, '오텔로'는 무조건 테너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기에 드라마는 극적이어야 하고, 구조적으로 탄탄해야 한다. 이 작품은 그렇지 못했다. 전문가가 쓴 것을 각색한 것이 아니라, 베르디가 욕심을 부리면서 자신이 직접 써서 살짝 날린 것이 있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동, 베르디 작품에서 느끼는 감동은 차원이 다르다. 베르디의 눈으로 본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해 우리가 감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베르디의 셰익스피어 해석 작품을 해석해야 한다. 베르디가 말한 것에 공감대를 얻어 작업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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