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큰절을 올리고 있다.

[문화뉴스] 앞날의 행복을 기원하는 '비나리'가 펼쳐졌다. 연희단거리패를 이끌어 온 연출가, 이윤택 예술감독이 제일 먼저 큰절을 올린다. 이윽고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를 비롯한 단원들, 연극계 인사들도 큰절을 올렸다. 이렇게 연희단거리패가 '30스튜디오' 시대를 열었다. 

 
지난 10월 27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명륜3가에 있는 연희단거리패 '30스튜디오'가 개관식을 진행했다. 이날 개관식엔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 김소희 대표를 비롯해 '백석우화'에 출연한 오동식, '길 떠나는 가족'에 출연한 윤정섭 배우를 포함한 연희단거리패 단원들, 개관 기념 공연인 '서울시민'의 히라타 오리자 연출이 참석했다.
 
'비나리'를 마친 후, 김소희 대표는 "'30스튜디오'가 뭐냐고 묻는 분들이 많으셨다"며 입을 열었다. 김 대표는 "올해 연희단거리패가 창단 30주년이다. 30주년을 기념하고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지난해 11월 불이 난 집이고, 여기가 막다른 집이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생존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게릴라극장처럼 객석도 작아서 상업 공연을 할 수 없는 곳이다. 극장과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표방하고 싶어서 스튜디오를 붙이게 됐다"고 밝혔다.
 
   
▲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실제로 30스튜디오의 입구엔 카페를 통해 연극인들이 자연스럽게 담화를 나눌 수 있도록 구성이 됐다. 김 대표는 "이 공간이 작지만, 굉장히 내실 있다. 어디에 형식만 있어서 지방 공연을 가면 텅텅 비어 있는 그런 공연장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고 예술의 향기가 느껴질 수 있는 그러한 공간으로 힘을 다해서 만들어 보자고 했다. 여기 카페에 언제든지 오시면, 차도 드시면서 예술가들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도록 다목적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30주년을 맞이한 연희단거리패는 2006년 창단 20주년 당시 '오프 대학로'라고 할 수 있는 '혜화 로터리' 인근에 80석 규모의 소극장인 게릴라극장을 운영하게 됐다. 그러나 극단의 재정 문제로 인해, 게릴라극장은 현재 매물로 내놓여진 상황이다. 김소희 대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 30스튜디오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오게 됐다. 연극은 점점 더 가난해질 텐데, 우리 힘으로 살아남는 그런 곳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윤택 선생님이 강력하게 주장하셨다"고 말하며 마이크를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에게 넘겼다.
 
박수와 함께 등장한 이윤택 예술감독은 "지난해부터 게릴라극장이 이 상태로는 힘들다고 했다. 적자도 늘어났다. 게릴라극장은 원래 연희단거리패를 중심으로 한 극장이 아니고,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기회의 극장이었다. 대관료를 거의 받지 않는 곳으로 운영됐다. 지원금을 1억 8천 정도 매년 받아왔는데, 작년부터 지원이 없어져 버렸다. 한 푼의 지원금도 받지 않는데, 요새 우리나라의 젊은 연출가들이 편협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
 
   
▲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이 30스튜디오로 옮긴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어 이 예술감독은 "게릴라극장이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같이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연극을 본 사람들이 그냥 흩어지고 가버린다. 연극의 힘이 만나고 대화하는 데서 생긴다. 그런 대화의 공간도 없고, 공연은 피곤하게 계속하고, 관객도 오지 않아서 이렇게 하다가는 다 지쳐서 나가떨어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극의 힘을 회복할 방법이 뭘까 생각해서, 1970년대를 선택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이윤택 예술감독은 "전열을 정비하자는 뜻이다. 콘셉트가 있는 공연만 선보일 것이다. 이유가 없는 공연은 하지 않을 것이다. 공연은 금·토·일만 하고, 월·화·수·목은 워크숍, 세미나, 리딩 모임을 하려고 한다. 유럽 공연을 가면, 연극 하는 시간보다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다. 커피나 맥주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데, 한국에선 그런 시간이 없다. 그래서 커피숍을 운영해서, 공연을 보러 온 관객과 관계자가 모여서 밤을 새워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소극장 운동을 통해 연극의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이윤택 예술감독은 예산이 줄었더라도, 출연자를 줄이지는 않았다. 30스튜디오 개관 개막작으로는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일본극단 청년단의 히라타 오리자 연출 작품 '서울시민'과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 연출 작품인 '서울시민 1919'이 소개됐다. 전혀 다른 두 명의 연출가가 같은 세트 위에서 한 작품을 공연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묘한 관계 속에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는 '서울시민'이라는 작품을 색다른 성향으로 표출했다.
 

▲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이윤택 예술감독은 "이곳에서 21명이 나와서 연극을 한다"며 "소극장의 힘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인 힘에 있다. 집단적인 앙상블, 연기 조직력을 회복하고자 한다. 아시다시피 연극의 역사적인 의무도 있다. 우리 연극이 많이 잃어버린 집단성, 역사성, 제의성이 있다. 이런 것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냐 싶다. 1970년대 연극을 한다는 행위가 일상과 구분되는 특별한 선택이었다. 1980년대로 가면, 현실에 참여하고 시대적인 정신을 보여준 전통이 있다. 연극인들이 지금은 다 연예인이 되어버렸다. 재능있는 배우들이 연예인이 되어가고 있는데, 연극이 연예화되는 이 풍조에 안티테제가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30스튜디오는 지난해 중국인 유학생이 화재로 목숨을 잃은 흉가 터를 복구한 곳이다. 이 예술감독은 "이 건물을 우리가 샀다니, 동네 사람들이 전부 다 놀라서 '정말 샀어요'라고 물어봤다.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고 사람들이 놀랐는데, 우리가 싸게 샀다. 그리고 건물 근처에 창경궁이 있다. 창경궁은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궁인데, 일본 사람들이 동물원으로 만든 곳이다. 다시 궁이 회복되는 역사적인 배경이 된 터가 센 이곳에서 연극을 지녀야 할 본래 힘을 회복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개관식엔 개관 축하 공연을 연출하기 위해 참석한 히라타 오리자 연출이 참석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직전의 서울에 사는 일본인 일가 생활을 담은 '서울시민', 1919년 3월 1일 한나절의 일본인 일가의 모습을 그린 '서울시민 1919',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과 일본 가족 이야기 '강건너 저편에' 등 꾸준히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90년대 일본 연극계에서 이른바 '조용한 연극' 붐을 일으키며 극리얼리즘(하이파리얼리즘)의 새바람을 몰고 왔다고 평가받고 있다.
 
   
▲ 히라타 오리자 연출이 소감을 전하고 있다.
 
히라타 오리자 연출은 능숙한 우리말로 "안녕하십니까?"로 인사말을 남긴 후, "이렇게 오픈 공연에 초대받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 도쿄에서도 이렇게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는데, 젊은 연출가들의 교류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통역의 도움 없이 말을 하며 객석의 박수를 받았다.
 
30스튜디오의 개관식 '집들이'는 액을 쫓기 위한 '씻김굿'으로 마무리됐다. 이윤택 예술감독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씻김굿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단체가 우리다.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씻김굿을 무대화시켜달라는 제안을 해서, 직접 굿을 무대에 올렸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예술감독은 "시대적인 정신을 정치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문화로 풀어내려는 상생의 굿판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굿을 했던 곳이, 세월호가 침몰한 곳이다. 12월에 세월호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위한 '씻금'을 올릴 예정이다. 시대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 평화적으로 풀어내려는 의식을 연말에 보여드리고자 한다"고 앞으로 계획을 밝혔다.
 
   
▲ 30스튜디오의 개관식 '집들이'는 액을 쫓기 위한 '씻김굿'으로 마무리됐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