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최고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니지만, 단 하나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찾아왔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가문의 대립을 배경으로 한 원작을 완전히 새롭게 각색해 핵전쟁 이후 사람들이 지하철 역에 숨어 사는 세상을 배경으로 했다. 그중 몽타궤 역에 사는 돌연변이들의 리더 로미오와 카풀렛 역에 사는 인간 소녀 로미오의 사랑을 그린 독특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완전히 새롭다고 했지만,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에게 있어 익숙한 뉴클리어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핵전쟁 이후 방사선 물질을 피해 지하철역에 숨어 산다는 설정 역시 '메트로2033' 이후 많이 차용된 형태의 설정이다(최근 국내의 한 웹툰은 거의 동일한 설정으로 표절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그러한 설정 외에도 연출 본인이 직접 간담회에서 밝혔듯 각종 아포칼립스물의 아이디어를 가져왔고, 특히나 이를 무대에서 구현한다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라 부를 수 있다. 특히 정성이 느껴지는 거대한 세트는 이 '무대에서 구현한다'는 점을 충실히 반영하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또 기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를 감옥으로 바꾼다거나, '누굴까'라는 넘버의 리프라이즈를 통해 인간 본연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장면을 데칼코마니 형태로 표현하는 등의 아이디어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나온 수많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도 손꼽히는 독특함이라 할 수 있다.

음악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이 기성세대의 반목 속에서 탄생한 비극적 사랑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저항의 상징'인 락 음악을 베이스로 해 호쾌함을 준다. 계속해서 수정 중인 사운드 밸런스는 조금 아쉬움이 있지만, 프리뷰 이후 빠른 피드백이 이어지는 창작 초연인 만큼 더 나아진 모습이 기대된다.

   
 

사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표방한 만큼 조금 더 시나리오 전개에 힘을 썼으면 어떨까 하는 점이다. 원작의 것이 거의 남지 않았다곤 하지만, 그래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큰 줄기를 그대로 따라가게 되면서 전개에 비약이 다소 생긴다. 단적인 예를 들면 줄리엣은 로미오와 결혼을 하며 '우리의 사랑이 이 다툼을 멈추게 되길 희망하는' 데 원작에서는 그들이 각각 가문의 후계자 위치였기에 이러한 생각이 가능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빼어난 인재라고 해도 일종의 국가, 시스템 속에 자리한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이 가능할까 싶다. '아이다'의 경우 국가 권력 순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장군인 라다메스와 붙잡혀오긴 했지만, 공주였던 아이다조차 멀리 도망가 함께 살자고 한다. 130분(인터미션 포함)의 짧은 러닝타임은 사실 오후 8시에 공연을 봐야 하는 관객들에게도 환영받을 요소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를 위해 너무 많은 가지를 걷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이렇게 아쉬운 점을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되는 작품이지만 확실한 작품의 색깔이 장점으로 작용하기에 단점을 수정해 가지게 될 작품의 생명력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기존 뮤지컬의 색깔에 지루함을 느끼거나 새로운 뮤지컬이 보고 싶은 관객. 락 음악을 선호하고, SF 작품에 흥미를 느끼는 관객이라면 꼭 지켜볼 가치가 있다. 2017년 3월 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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