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자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잠금해제 청구할 수 없어

사진= pixabay 제공

[MHN 문화뉴스 황보라 기자] 변호사 나깜빡 씨는 사무실을 청소하던 중 반가운 물건을 발견했다. 바로 몇 년전 퇴사한 법무법인에서 복지 차원으로 지급해준 아이패드였다. 한동안 아이패드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나깜빡 씨는 정상 작동이 되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설정해놓은 비밀번호가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결국 암호 입력에 연이어 실패한 나깜빡 씨는 애플에 아이패드의 잠금을 해제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애플은 나깜빡 씨가 Apple ID 및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문제된 아이패드의 제품식별번호가 기재된 나깜빡 씨 명의의 구매영수증도 제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나깜빡 씨는 제 본업에 충실하게 매진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애플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1. 애플은 아이패드를 제조·판매한 자로서 사용자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렸을 경우 잠금을 해제하여 이를 사용하게 할 계약상·신의칙상 의무를 부담한다.

2. 애플은 아이패드와 함께 iTunes Store와 같은 Apple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였고, 서비스 이용 기간에 제한을 두지도 않았으므로, 아이패드의 잠금을 해제하여 위 서비스를 이용하게 할 계약상 의무를 부담한다.

3. 애플은 사용자의 신원이 확인된 경우 잠금을 해제하여 준다고 공지하였으므로 위 공지를 이행할 계약상·신의칙상 의무를 부담하는데, 본인은 아이패드를 수년간 점유하고 있었고, 구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를 제출하였으므로 애플은 아이패드의 잠금을 해제하여야 한다.

이에 애플은 나깜빡 씨에게 소유자임을 입증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했고, 아이패드 사용설명서와 홈페이지에서도 잠금해제에 관한 주의사항을 안내해왔기 때문에 잠금을 해제해줘야 할 책임이 없다고 응수했다.

아이패드의 잠금해제 청구라는 초유의 법적공방이 성사된 가운데 법원은 과연 누구의 편에 섰을까?

법원은 애플이 자사의 태블릿 피시 잠금해제 요구에 대해 제조물 책임법상 제조업자로서의 책임 및 매매계약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을 뿐더러, 태블릿 피시의 잠금을 해제하여 줄 신의칙상 의무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서울중앙지법 2019. 3. 29. 선고 2018가합555404 판결).

나깜빡 씨가 아이패드의 잠금해제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여 아이패드가 비활성화 상태가 된 것은 제조물 책임법 제2조 제2호에서 규정한 제조물의 결함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애플은 제조물 책임법상 제조업자로서 문제된 아이패드에 관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계약상의 의무 부담 또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변호사인 나깜빡 씨가 이전에 근무했던 법무법인에서 아이패드를 교부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으나, 전자세금계산서에 제품식별번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나깜빡 씨가 문제된 아이패드를 매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므로 애플은 매매계약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Apple 서비스 이용 계약상 의무 역시 부정됐다. 애플은 Apple 미디어 서비스 이용약관에 동의한 소비자들과 Apple 서비스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는데, 나깜빡 씨가 약관에 동의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므로, 애플은 Apple 서비스 이용 계약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나깜빡 씨가 위 약관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해당 약관은 Apple 서비스에 대한 이용계약일 뿐 애플이 아이패드의 잠금 상태를 해제해 줄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재판부는 판시했다.

한편, 재판부는 사용자가 애플의 아이디(ID) 계정 페이지를 통하여 비밀번호를 재설정하거나 기기를 구매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면 기기의 잠금을 해제하여 줄 신의칙상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애플은 제3자에 의한 정보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기기의 점유자가 소유자인지 여부를 엄격하게 확인해야 하므로, 비밀번호 재설정도 하지 못했고 아이패드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도 부족한 나깜빡 씨에게 아이패드의 잠금을 해제해줄 신의칙상 의무는 없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애플이 나깜빡 씨의 잠금해제 요구를 거절한 것은 합당한 조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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