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화하기 위해 나름 오랜 시간 고민한 적이 있다. 극단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공연예술의 적합한 표현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일 수 있다.
우리 전통의 몸짓과 소리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그 고민의 흔적 중 대표적인 둘을 고르자면, 하나는 ‘택견아리랑’이고 또 하나는 ‘천년의 기억’이다. 그 외에 ‘춘향전’, ‘방자전’, ‘흥보전’, ‘아리수별곡’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전통관련 작룸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린 편이다.
‘택견아리랑’은 2005년 문화관광부 연희부문 당선작으로 국립국악원 등 무대에 올려졌고, ‘천년의 기억’은 2011년 국립극장과 거창연극제에 올려졌다.
늘 석연치 않다. 태생적인 한계가 내재 되어 있기 때문일까. 전통을 입힌 연극, 연극적인 전통의 표현, 재료만 전통일 때, 자칫하면 변화가 아니라 변질이라는 오명을 쓰기 쉽다. 더구나 서로의 전문가 고집이 있으니 그 인식의 벽을 허물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공연예술로서의 전통적인 표현이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의문점을 하나 던진다. 왜 최선을 다했는데 최고가 되지 못하는가.
우리의 전통을 어떻게 생물화시킬 것인가. 그때의 고민을 옮겨본다.
<극 전체가 일종의 제의다. 이 극에서 소리꾼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혼과의 교감을 통해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속인 역할을 대신한다. 판소리의 아니리와 창으로 극이 시작되면 단오날 서울 근교에서 성행했던 택견판이 신명나게 재현된다.
우리나라를 ‘동북아공영’의 수단으로 침탈하고자 했던 일본의 야욕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발발되고, 우리의 근대사는 일대의 격변을 맞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제물로 희생된 우리 선조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더 이상 민족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를 되새김으로써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우리 민족의 메시지를 담기위한 수단으로 제의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당시 ‘택견아리랑’ 기획의도다.
무속인의 춤과 동작은 한 맺힌 이야기가 내재 되어 있다. 이미 설정 자체가 춤과 연극적 상황이 동시에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무속인의 춤이 전통춤이냐 민속춤이냐 이런 논쟁은 필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관객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궁금증에 추리력까지 동원된다. 집중력이 시작되었으니 춤에 대한 관심도 출발했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동작도 방향도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춤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빠진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혼연일체가 되어가면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컨센서스를 경험한다. 과거를 끄집어냈지만 곧 현실이요 미래의 방향까지 감지된다.
위의 설명은 일종의 극적 프로세스다. 하지만 이 부분을 소화해내기 위해선 많은 장치와 노력이 필요하다. 한 순간 한 장면을 놓치게 되면 관객들에겐 다른 감정이 이입되어 극적 갈등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처럼 공연예술은 그에 맞는 격식이 필요하다. 형식적인 면은 무대의 장치이고 표현의 극대화를 위한 조건일 뿐이다.
필자가 다루는 것은 내용적인 부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이고 그 안에 기승전결이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이다. 갈등이 없다면 연극일 수 있겠는가. 기승전결은 조건을 던지고 그 조건이 충돌하여 갈등이 생기고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이다. 이를 풀어헤치는 과정이 극적 재미다.
갈등이라는 요소가 빠지면 연극은 아무런 맛을 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전통춤에 갈등이 어느 정도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극적 매력을 전통춤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가. 순수한 춤의 동작을 시연하고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필자의 제언은 필요없다. 단지 대중이 더 사랑하고 관객이 원하는 궤도에 들어서려면 이야기와 갈등이라는 요소에 좀더 귀기울여야 한다.
전통이란 이름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예술의 극대화를 위해 남의 표현은 곁눈질해도 자신을 버리고 상대와의 과감한 융합을 피하려는 속성이 있다. 구조의 틀을 점검해보자.
예를 들어보면, 평생 배우고 익혀 무형문화재가 되신 선생님이 계시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어느 날 기준에서 벗어난 변형된 몸짓을 보고 그 제자를 응원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는가. 자신의 정체성에 휘말리기 전에 존재성을 먼저 드러내는 게 전통의 속성이다.
오래된 전통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 하지만 전통을 지키다 목숨을 뺏길 수는 없지 않은가. 창작전통도 전통이다. 무대에서만큼은 현실적이고 즉시적인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그렇다고 전통을 재료로 사용하며 파괴를 일삼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전통춤이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려면 이야기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움직임 자체가 기능적인 부분만 강조하여 근거없이 방향을 제시하는 것보다 하나하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연극의 대사는 일상적인 잡담이 아니다. 절제된 단어들의 집합들이다. 이처럼 춤의 동작도 절제된 표현에서 나오겠지만 다시 한 번 섬세한 묘사에 대해 관객이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연극의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연극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전통춤도 관객훈련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노력이 없으면 전통은 핵심이면서도 자칫하면 재료로서 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결론적으로 전통춤의 조형화 과정에서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전문적인 창작자가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다.
춤꾼이 춤을 이어갈 수 있지만 이야기는 이야기꾼이 꾸려나가야 한다. 전문가랍시고 모든 것을 조건부터 나열하지 말고 그 반대로 기존의 모든 조건을 내려놓고 새로운 융합의 길을 나서야 한다. 그야말로 전문가답게. 그렇게 한다면 오래된 전통의 힘이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글 : 김대현(극작가, 극단창작마을 대표, 옥당국악국극보존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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