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육군 25사단 GOP 장병 대상 발레교실 진행

   
▲ 육군 25사단 GOP 장병들이 17일 오후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발레 연습을 하고 있다.

[문화뉴스] "처음엔 남자들이 무슨 발레를 하느냐고 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클래식 음악도 들리고 발레 용어를 외친다. 흔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연습 공간인 국립발레단 연습실의 일반적인 풍경은 그렇다. 하지만 17일 오후, 이곳을 방문한 17명의 연습자는 군인들이었다. 국방의 의무를 다녀온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트레이닝 복들을 입은 군인들이 왜 이곳에 와있을까?

바로 육군본부와 국립발레단이 협조해 시작된 육군 25사단의 'GOP 발레 교실' 때문이었다. 육군 25사단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다. 이번 발레 교실은 지난 5월 13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GOP후방 CP에 모여 수업이 진행됐다. 국립발레단 박상철 발레마스터와 이향조 단원의 지도아래 이들은 부드러운 몸짓을 개인정비 시간에 펼쳤다. 오직 소수에게만 허락된 최전선 GOP에서 발레교실이 낯설 수도 있지만, 장병들의 열정에 찬 눈망울과 절도와 패기를 가미한 부드러운 발레 동작을 보고 있노라면 우려와 걱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발레교실에 열정이 피어났던 것은 아니다. 철야근무와 발레교실을 진행하기 위한 공간과 준비물까지 쉽지 않은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았다. 부대 면회실을 활용해 발레 교습용 바닥을 설치했고, 정비대대에선 스트레칭과 동작 연습 시 활용될 바(Bar)를 제작하고 지원했다. GOP 장병들 또한 경계근무로 피곤한 몸으로도 휴식시간엔 반드시 발레수업에서 배운 동작은 연습해보고 자기 전 스트레칭을 하는 등 수업에 열정을 다해 준비하고 임했다.

그 열정에 감동한 GOP 발레 교실의 교사 국립발레단 박상철 발레마스터와 이향조 단원은 단순한 이벤트성 교육을 넘어 손끝 하나 세심한 발놀림 하나까지도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다. 7개월이 지난 지금 장병들도 굳었던 몸과 찢어지지 않았던 다리는 이제 턴을 하고 발끝 포인트를 해도 흔들림이 없는 크나큰 발전을 하였으며, 장병들의 마음속에는 긍정의 꿈과 희망이 피어났다.

   
▲ 이향조 발레리나(가장 왼쪽)가 GOP 장병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습을 앞두고 이향조 발레리나는 "처음엔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성과가 짧은 시간에 많이 늘어났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특히 자세가 굉장히 좋아졌다"며 "그동안 장병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자세가 좋지 않아서 스트레칭을 통한 근육 강화를 진행했다"고 성과를 이야기했다. 이어 "처음엔 인사나 농담을 잘 안 받을 정도로 무뚝뚝했는데, 이제는 발레를 즐기는 것 같고, 농담도 많이 하는 등 밝게 변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연습엔 세계적인 발레리나이자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인 강수진이 직접 장병들을 격려해주고 자세를 잡아주기도 했다. 장병들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인, 다리를 찢는 스트레칭을 같이하면서도 잘한 장병에겐 "브라보"라고 외치며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강수진 예술감독은 "군대도 그렇지만, 발레도 나름대로 '규율'이 있다"며 "정신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지금 장병들도 보면 힘들지만, 하려고 하는 그 집중력이 보인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면 자기가 빨리해야 한다. 그러면 두뇌 회전도 좋아야 한다"며 취재진과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래서 발레는 건강 증진과 스트레스 해소에 많이 여러모로 도움된다. 나이가 몇이든지 상관없이 취미로도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강 예술감독은 이어 "하고 싶었던 장병이 처음엔 훨씬 더 많았다고 들었다"며 "그런데 엄청나게 힘들어서 두 번째 할 땐 이탈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여기 있는 17명은 진짜 좋아서 하는 이들이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혼자 연습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이지, 레슨 때만 하면 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니 그래서 정말 행복하다. 지금 보러왔는데 너무 놀랐고, 이 중에서 진짜 한두 명은 능력과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웃음꽃을 피웠다.

끝으로 강 예술감독은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하나에 몰입할 수 있다는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며 "내년에도 꾸준하게 되도록 더 많은 장병이 할 수 있도록 추진하려 한다. 그래서 장병 중 한 명이라도 발레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두고,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장병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한 장병은 "발레는 교양적인 것 같아서 나와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생각해보니 상당히 재밌고, 실제로 오늘 구경도 하니까 매력 있는 하나의 운동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GOP 장병들은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 전막 리허설을 관람하고 연습에 참여했다. 이 장병은 "발레를 군대에서 한다고 처음 들었을 땐 웃겼다. 워낙 여성성이 강한 운동이라 생각했고, 군대는 남성성이 강한 집단이어서 너무 반대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런 점에서 끌리게 됐다"고 밝혔다.

   
▲ 강수진 예술감독(오른쪽)이 GOP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발레를 하면서 좋았던 점을 묻자 이 장병은 "처음에 할 땐 다리가 욱신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하다 보니 스트레칭을 하면서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군대에서 일과를 하고 나면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게 해소가 됐다"고 털어놨다.

오는 24일을 마지막으로 GOP 발레 교실의 정식 교육 일정은 종료된다. 그리고 24일 육군 25사단 사단사령부 강당에서 열리는 장병종합예술제에서 '백조의 호수' 중 일부 장면을 선보일 예정이다. '진짜 사나이'들의 발레 도전은 막을 내리지만, 이들의 발레 열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