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배우 최나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문화뉴스] 당신은 '젠더 스와프'라는 말을 아는가?
 
직역하면 '성별 교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젠더 스와프'(Gender Swap)는 최근 대중문화의 트렌드다. 영화를 예로 들면, 남성 4인조 '고스트 버스터즈'들이 여성 4인조로 리부트됐고, 남성 스키점프 선수들로 구성된 '국가대표'가 속편 '국가대표 2'에선 여성 아이스하키 선수들로 구성됐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남성 MC 중심의 '라디오 스타'를 바꾼 여성 MC 중심의 '비디오 스타'가 등장했다.
 
공연계에서도 이러한 바람은 불고 있다. 2011년 초연된 뮤지컬 '셜록홈즈'에서 박혜나는 원작에서 남성 캐릭터였던 '왓슨'을 연기했다. 올해 여름, '평균연령 68.5'세로 구성되어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햄릿'에서도 역시 원작 캐릭터인 '호레이쇼' 역할을 김성녀가 연기했다. 하지만 일부 캐릭터만 '젠더 스와프'됐을 뿐, 이 두 작품의 '주인공'은 남성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소개하는 '함익'이라는 연극은 어떨까? 서울시극단이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함익'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모티브로 한다. 하지만 그대로 '햄릿' 캐릭터를 여성으로 옮긴 것은 아니다. '햄릿'의 심리적 고독에 주목하며, '햄릿'의 섬세한 심리와 남성적인 복수극 뒤에 숨어있는 '햄릿'의 여성성을 중심으로 재창작됐다. 
 
   
▲ 최나라 배우가 '함익' 캐릭터를 연기한다. ⓒ 세종문화회관
 
이처럼 기본적인 가족 구도와 인물 관계를 유지하면서 캐릭터의 성격과 역할을 새로 창조한 '함익'은 주인공 '함익'의 심리적 흐름으로 구성되어 원작 '햄릿'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선보여진다. '함익'은 재벌 2세이자 대학교수로 완벽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이다. '함익'은 고독한 복수심으로 병들어 있고, 사람과 만나는 방법, 진솔한 인간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인간미를 잃어버리고 가면을 쓰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연극 청년 '연우'를 만나게 되고 외형만 화려했던 '함익'의 고독한 내면은 조금씩 흔들리게 된다.
 
연극 '함익'은 서울시극단의 예술감독이자 2016년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김광보 연출과 '달나라 연속극', '로풍찬 유랑극단', '뻘' 등 고전희곡의 한국적 재해석으로 '재창작의 귀재'라고 불리는 김은성 작가의 만남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중 '함익'을 연기한 8년차 서울시극단 단원 최나라를 만났다. 여성 캐릭터가 희곡 주인공이 작품이 드물다고 말한 최나라 배우에게 작품 캐릭터 설정부터 '젠더 스와프'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들었다. 먼저 작품 소개 인사말 영상으로 문을 연다.
 
 

 
'함익'의 대본을 처음 읽은 후 어떤 생각이 들었나?
ㄴ '햄릿'을 모티브로 창작이 됐다고 해서, '햄릿'과 어떤 지점이 닮았을까 기대하고 읽었다. '햄릿'의 한 지점을 갖고 와서 다시 쓰인 전혀 다른 이야기였고, 그게 첫 느낌이었다. 과연 '햄릿'과 맞닿은 지점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두 번 읽으면서 연출님, 작가님, 사람들과 이야기했다. 작가님이 의도를 말씀하시고 나니, 셰익스피어 '햄릿'의 인간 고독을 모티브로 갖고 와서, 한 여자의 고독으로 쓰인 이야기라는 판단이 들었다. 셰익스피어의 고독이 현대 여자인 '함익'에게 비치고, 여성성을 발견한다고 하셨다.
 
혼자 웅크리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묻어 있고, 그것이 섬세한 여성성인 '함익'이라는 인물로 내면의 병든 모습을 다루고 있다. 결국, 건강하고, 순수한 젊은 연극학도 '연우'를 만나며 '줄리엣'을 만나게 된다는 플롯으로 간다. 마음이 병든 여자에게 다가오는 청년 '연우'도 '햄릿'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연우'의 '햄릿', 그리고 '함익'의 '햄릿'이 맞닿아있다. 원작 속 '햄릿'의 정치적, 시대적 배경, 기타 사안은 우리 작품에 존재하지 않고, '함익'을 중심으로 한 여자의 고독, 고독 속에 등장하는 사랑 등 여성 이야기로 갔다.
 
   
▲ 최나라 배우가 8일 오전 열린 '함익' 제작발표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세종문화회관
 
2011년 서울시극단 '햄릿' 공연 당시엔 '오필리어'를 맡았다. 이번엔 그 반대 역할인데, 당시 '햄릿'을 어떻게 바라봤는가?
ㄴ 나도 연극을 전공했는데, 전공 당시 '햄릿'을 분석하는 일이 있었다. '햄릿'에겐 고민하는 모습과 고민을 쉽게 실천하지 않는 모습이 있어서, 혹자는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바라본다는 설을 냈다. 주인공이라면 사람들은 온전하고 완전할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오델로', '리어왕'의 비극처럼 '햄릿'도 내면의 갈등을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문제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익'을 하고 나서 '햄릿'을 바라봤다. '연우'라는 학생의 대사엔 "우리 생활에서 누구나 갈등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바꾸고, 이루고, 행동하기까지 갈등은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있다. '햄릿'이 우유부단하기보다 누구나 고민할 수 있다. '오필리어'를 할 땐, '햄릿'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각으로 바라봤다. 이번엔 그 고독이나 고민을 표면적으로 느끼고,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지점으로 받아들였다.
 
이번 작품엔 '함익'의 또 다른 자아가 나오는데, 본인의 해석은?
ㄴ '함익'의 또 다른 자아는 '함익'이다. 두 명의 '함익'이 등장하는 것 같다. 가면을 쓰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권위라는 힘에서 오는 '아빠'의 폭력이 존재하고, 재벌 가문 속에 얽혀있어서 내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마리오네트'(편집자 주 : 실을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처럼 가면을 쓰고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하지만 의연하게 아무렇지 않아 하며 상처를 가면처럼 쓰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함익'의 자아는 아픔이 쌓여 '엄마'가 죽었을 때, 처음 '함익'이 본드를 불어서 만난 환영이다. '환영'은 내 모습일 수 있다. 관객들 보시는 나름의 해석일 텐데, 나는 어렸을 때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다. 친구 같고, 내 말을 대변해주는 해석이 있는데 그게 나인 것이다. 평상시 하지 못한 것을 '분신'인 내가 한 것이다. 물론 실제로 본드는 불지 않았지만, '함익'이 본드를 분 것을 통해 내가 용기를 내어 하지 못한 것을 솔직하게 해주고, 용기를 못 낸 모습을 비춰내고 있다.
 
   
 
 
이러한 인물의 개성이나 이미지는 평소 어떻게 만드나?
ㄴ 배우가 인물을 만날 때, 다가가는 지점이 있다. 그 첫 번째는 '만일 나라면?'이다. '나한테 비슷한 경험이 뭐가 있을까?'로 시작한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결국 '나는 이 인물을 비슷하게 하려 해도 내가 아니다'로 넘어가 인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작가가 쓴 인물은 그 인물이고, 내가 아니므로 작가님, 연출님, 동료 배우들과 이야기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간다. 슬픔이나, 분노, 고통을 표현하고자 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누구나 있을 수 있다. 그런 지점은 바로 말하지 않고, 어떤 불편함이나 내적 갈등이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함익'이라면 어떻게 느낄지 고민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이해 70대 대배우들이 선보인 '햄릿', 김강우 배우가 소화한 '햄릿 - 더 플레이' 등 다양한 '햄릿'이 열렸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비교하면서 보지 않을까?
ㄴ '햄릿 - 더 플레이'나 국립극장 '햄릿'을 접했다. 우리 작품은 초반에 이야기한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다르다. 작가님도 "'햄릿'의 모티브를 따와서 전혀 다르게 신선하고 과감한 도발, 반항을 해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실제로 400주기 기념공연 외에도 '햄릿'의 외국영화들이 많이 있었다. 그 플롯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셨다.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고, 익숙해서 플롯이 싫증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분들이 비교하기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이미지에 있는 다른 이야기를 풀어보는 새로움을 보셨으면 좋겠다.
 
   
▲ (왼쪽부터) '함익'의 김은성 작가, 배우 윤나무, 최나라, 이지연, 김광보 연출이 제작보고회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세종문화회관
 
'젠더 스와프' 콘텐츠는 올해 문화계의 이슈다. 영화로는 '고스트버스터즈', '국가대표2' 등이 있고, 앞서 언급한 '햄릿'에선 김성녀 배우가 남성 배역인 '호레이쇼'를 연기했다. 본인 역시 이런 '젠더 스와프' 콘텐츠의 주역으로 출연한다.
ㄴ 여성성은 좀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최근 여성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우리나라도 보수적이거나 남성주의적인 사상이 있었다. 그러나 여성의 자아 주체성 확립이 좀 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햄릿'을 여성으로 바꾼다면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 이 시점이니까 가능하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시대가 많이 변했고, 여성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주체성 강한 여성이나 여성 리더, 지도자도 나오는데 같은 여성으로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본다. 그리고 많은 희곡을 살펴보면 여성주인공이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뜻깊은 작업이다.
 
   
▲ 윤나무(오른쪽)와 최나라(왼쪽)의 호흡도 이번 작품의 관람 포인트다. ⓒ 세종문화회관
 
'연우'를 연기한 윤나무와의 작업은 어땠나?
ㄴ 되게 겸손했다. 출연 작품은 다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만 했고, 몇몇 작품도 봤다. 연극에 임하는 자세가 굉장히 적극적이고, 성실하고, 진지하다. 
 
'템페스트', '헨리 4세 - 왕자와 폴스타프' 등 다양한 작품을 김광보 연출과 소화했다. '미니멀리즘의 귀재'로 통하는 그와 함께한 작업은 어땠나?
ㄴ 좋다. (웃음) 연출님의 연극을 구현하는 방식은 자세하고 설명적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친절할 수도 있다. 상징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편집자 주 : 최소한의 요소만을 사용해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예술사조)은 연극 안에 없는 대표성을 표방해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깊게 농축한 것이 함축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의 단선적인 의미뿐 아니라 연출님이 추구하신 인물, 인물의 표현, 무대 등 농축된 덩어리 힘이 강렬하다.
 
그렇게 다가가니 인물에 대한 폭이 넓어지고, 더 깊이 있게 공연하게 된다. 힘든 부분도 있다. 표현이 단조로울 수 있지만, 그 안에 많은 게 필요하다. 연출님이 원하는 선까지 배우가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한다. 한 번에 오케이 된 적이 없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응축된 느낌을 받는다. '헨리 4세 - 왕자와 폴스타프' 때도 받았다. 내가 연기한 '퍼시 부인'을 영화나 일반 희곡처럼 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역할이었는데, 그 인물도 단장님의 미니멀리즘 아래 탄생할 수 있었다.
 
   
▲ 지난 봄, '헨리 4세 - 왕자와 폴스타프'에서 최나라 배우는 '퍼시 부인'을 연기했다. ⓒ 문화뉴스 DB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이어 출연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매력은?
ㄴ 역시 고전은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 교수님이 학부 시절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고전은 어느 시대에 가서도 통용이 된다"인데 고전의 힘을 피부로 느꼈다. '템페스트', '헨리 4세 - 왕자와 폴스타프', '함익'까지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인간 근원의 문제, 정치 이야기 등 어느 시대에나 맞닿을 수 있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고, 셰익스피어의 힘인 것 같다. 셰익스피어 작품 안의 인물은 해석하기에 따라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템페스트'의 '에어리얼'은 수다쟁이 아줌마 같았다. 어떻게 해석해도 힘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이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

상투적인 질문인데, 연극은 어떻게 하게 됐는가?
ㄴ 이런 질문을 사실 별로 받아본 적이 없다. (웃음) 어린 시절 꿈은 아나운서였다. 초등학교 방송반도 했다. 나는 크리스천인데, 교회에서 대학로에 연극연출을 하신 분이 있었다. 교회에서 구두닦이 소년이 주인공인 성극이 있었다. 연출님이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했는데, 나는 '구두닦이 소년'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용기 내서 말을 걸어, 오디션도 보고, 소년을 소녀로 바꿔서 연기했다.
 
그게 첫 출발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아나운서가 아니라 연기가 하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가 중학생 때였다.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워보고 싶어서 예고를 알아봤는데, 안양예고 진학을 한 계기가 됐다. 예고 선생님을 통해 연극에 대한 진지함을 갖게 됐다.
 
   
 
 
2008년 서울시극단 입단 이후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ㄴ 8년 차인데, 입단 후 4년까지 정신없었다. 서울시극단에 들어오기 전, 대학로에서 극단에서 공연했었다. 국공립 단체가 돌아가는 흐름은 대학로와 굉장히 달라서, 그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 5~6년 차 됐을 때, '내 연기가 이런 부분은 이렇게 채워져야겠구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됐다.
 
이제 가장 열심히 활동할 나이인 것 같다. 막내 단원도 작년에 들어왔다. 계속 막내였는데, 너무 뛸 듯이 기뻤다. 착한 친구가 왔다. 단장님 오신 것도 개인적으로 좋다.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서울시에서 처음 도입한 시즌·연수단원 분들도 너무 좋으셔서, 좋은 사람들과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연극 작업은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인데, 기량적인 면이나 인성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다. 인터뷰 때문에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좋다. (웃음)
 
끝으로 작품을 볼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ㄴ 셰익스피어의 '햄릿' 플롯이 어떻게 풀렸는지 궁금하시기보다, '햄릿' 속에 있는 인간의 고독이 이 작품에서 어떻게 풀리고 지금 이 시각에 어떻게 변화했는지 새롭게 보시면 좋을 것 같다. '함익'은 관계성이 모자란 인물이다. 사람들과 관계하는 방법을 모른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많다. 내 의지와 다른 말이 튀어나오고, 다른 생각을 하고, 난관에 봉착해 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가면을 쓰고 지내며, 내 의지대로 처신하지 못한 어려운 점들에 공감하고 보신다면 '함익'을 이해하고 보실 것 같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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