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선웅 연출이 6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문화뉴스] 고선웅 연출도 자신의 작품을 보며 울었다.

 
시대 속에 잊힌 천재작가 함세덕의 첫 희곡 '산허구리'가 최근 가장 핫한 천재연출 고선웅 연출을 통해 되살아났다. 국립극단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여섯 번째 공연으로 '산허구리'를 7일부터 31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인다. 국립극단의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는 근현대 희곡을 통해 근대를 조명하며, 동시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묻고, 규명하고자 준비됐다.
 
지난해 오영진 작·김광보 연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김우진 작·박정희 연출의 '이영녀', 유치진 작·김철리 연출의 '토막', 올해 이근삼 작·서충식 연출의 '국물 있사옵니다', 김영수 작·윤광진 연출의 '혈맥'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로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시리즈의 6번째 작품인 '산허구리'는 함세덕 작가가 1936년 '조선문학'을 통해 21살의 나이에 발표한 첫 작품이다.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의 궁핍한 현실을 사실적인 내용으로 고발한다. 동시에 당시 참담한 사회상과 시대 모순을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현실을 극복하자는 의지의 내용도 함께 던진다. 특히 2012학년도 수능 언어영역에 '산허구리'의 마지막 장면 지문이 등장해 그 관심도도 높아졌다.
 
   
▲ 김용선(왼쪽) 배우가 '노어부의 처'를 맡았다.
 
이러한 '산허구리'를 연출한 고선웅 연출은 지난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올해의 연출가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출상, 동아연극상 연출상 등 거의 모든 연출상을 휩쓸었다. 그 밖에도 '변강쇠 점찍고 옹녀', '칼로 막베스', '푸르른 날에' 등 비롯한 연극, 뮤지컬, 창극부터 공연 예정인 오페라 '맥베드'까지 다양한 화제작을 선보인 스타 연출가다. '각색의 귀재'라는 별명답게 독창적인 연출 콘셉트를 선보인 고선웅 연출이 대학 시절 이후 오랜만에 '사실주의 연극'에 도전했다.
 
그렇다면 과연 고선웅 연출이 이 작품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일까? 6일 오후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고선웅 연출은 기본적인 작품의 틀을 따라가는 동시에 자신만의 해석을 말미에 보여주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우상전, 김용선, 정재진 등 오랜기간 무대를 지켜온 배우들의 열연도 인상적이었다.
 
한편, 고선웅 연출은 '감성적 연출가'답게 공연 이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눈물을 닦고 기자간담회 시간에 참석한 고선웅 연출과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미리 살펴본다.
 
   
▲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이번 작품을 올리게 된 배경과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를 소개해 달라.
ㄴ 김윤철 :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국립극단이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굳게 믿는다.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는 우리의 정체성을 현재와 과거로 분리할 수 없으므로, 과거로부터 정체성을 찾아보는 시간으로 마련했다. 근대극의 큰 흐름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실험극도 다양하게 있지만, 근대극의 메인 스트림은 사실주의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라 보며 사실주의 발전을 토대로 작품을 선정하게 됐다.
 
우리 근대극의 천재작가들이 많다. 김우진, 유치진, 오영진, 오늘 선보인 함세덕 등 거대한 극작가들의 큰 바위는 오늘날에 발견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에게 이렇게 위대한 유산이 있구나 싶었고, 그 유산을 폄하하진 않았느냐는 자성적 생각도 많이 했다. 함세덕 작가가 21살 때 이 작품을 썼다. 극적인 상황, 전개, 인물의 언어나 성격 창조 등 어느 하나 뚜렷하지 않은 게 없는 수작이다.
 
함세덕의 이 작품은 지금까지 했던 어떤 작품보다 이른 나이에 쓰였지만, 걸작으로 향한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초연인 줄 알았는데, 2009년 미아리 언덕에 있는 작은 극단(극단 노릇바치)에서 '산허구리' 공연을 10여 일 간 한 적이 있다. 본격적으로 연극을 사랑하시는 관객 전체를 대상으로 제작한 것은 처음이어서 발굴의 의미도 있다. 이러저러 이유에서 '산허구리'를 6번째 작품으로 선정했다.
 
   
▲ 연극 '산허구리'의 한 장면.
 
"작품에 써진 그대로를 올리고 싶다"는 약속을 지난 3월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 있다. 마지막 장면은 원작엔 없는 내용인데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ㄴ 고선웅 : 그 약속을 지키려 했고 바꾸지 않았다. 원작에선 맨 끝에 '윤첨지'(정재진)가 "자네 한 잔 쭉 들이키고 수염 닦는 듯이. 어서 초상 준비나 하게. 상엿집에 휑하니 다녀올 테니"라고 말하며 막을 내린다. 그대로 막을 내리면 정리를 못하고 마음만 심란해져서 추가 장면을 넣게 됐다. '복조'(임영준)가 아무리 생각해도 실성하신 '어머니'(김용선)의 눈에 보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넣으니 훨씬 낫다. (웃음)

대학 시절에 사실주의 연극을 했지만, 이번이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하는 사실주의 작품이다.
ㄴ 고선웅 : 사실주의 연극이 TV 드라마와 구별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세극단에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엄청난 프로덕션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하나씩 고증도 해야 한다.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조개껍데기도 진짜로 준비한다. 배우들도 정확한 캐릭터의 연배로 캐스팅해야 하므로, 쉽지 않을뿐더러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국립극단과 작업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처음인 것 같다. 많이 울었다. 옛날 분들 정말 심란하게 사신 것 같다. (웃음)
 
   
▲ 정재진(오른쪽), 박재철(왼쪽) 배우가 한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김윤철 : 연습장에서도 가끔 고선웅 연출이 우는 것을 봤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연출할 때, 40년 넘게 연극판에 있었지만, 연습장에서 연출이 우는 것을 처음 봤다. 배우들 지휘하는 연출자가 꺼이꺼이 울고, 오늘도 뒤에서 보니 훌쭉훌쭉한 것이 감기 걸린 줄 알았다. (웃음)
 
고선웅 : 호르몬이 바뀌는 것 같다. (웃음)
 
김윤철 : 그게 장점인 것 같다. 연극이 그리는 세계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있다. 인물이 겪는 픽션의 고통을 실제처럼 느끼는데, 그 아픔을 공유하는 마음이 고선웅 연극의 장점이다. 이 작품으로도 잘 전달되길 바란다. 오늘(6일)이 첫 드레스 리허설이었는데, 음악적 리듬이 좀 더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 배우들이 공연을 거듭할수록 자신이 생기면, 금방 리듬이 나와서 작품 완성도를 높일 것이라 믿는다.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감성의 연극을 만들어준 '감성적 연출' 고선웅과 함께하게 되어 감사하다.
 
고선웅 : 감사하다. 이 작품을 하게 된 동기는 '석이'(박재철)가 "왜 그런지 생각해볼 테야. 긴긴밤 계속 조개 잡으며, 신작로 오가는 길에 생각해볼 테야"라는 대사 때문이었다. 어린애의 자아로 우리는 왜 울고불고 생각하는가. 일제시대 궁핍한 삶을 살아야 하는 깨달음이라고 봤다.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실천이나 행동은 언급이 없다. 과연 생각한 후에 무엇을 해야 할까를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보시고, 더 좋고 행복한 인생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여기 있는 모든 분이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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