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권의 하이라이트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 절창의 아름다움
글: 여홍일(칼럼니스트/평론가)
오페라 매니아들이 오페라 공연이 있을 때마다 오페라 공연을 찾을 수밖에 없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오페라였다.
지난 10월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 열린 국립오페라단 생상스의 ‘삼손과 데릴라’는 지난 7월1일부터 4일까지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국내 초연됐던 푸치니의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 못지않게 40여 년 만에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두 번째로 오랜만에 재연된 무대여서 일찍이 매진을 기록, 오페라 팬들이 표를 구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관심을 끌어모았다.
필자는 10월 10일 일요일 오후 3시 마지막 공연을 감상했는데 바카날(Bacchanale)을 통해 지휘자 세바스티안 랑 레싱이 코리안심포니의 연주로 스피디하게 이끄는 생상스의 이국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음악,
데릴라와 다곤의 대사제가 노래하는 이중창과 그 유명한 메조소프라노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를 맛볼 수 있었던 데릴라와 삼손의 이중창이 라이트모티브 비슷하게 이 오페라의 중심을 이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는 구약성서에 있는 고대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스펙터클한 전 3막의 오페라이다. 성서의 영웅 삼손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무대는 기원전 1150년 무렵, 이스라엘의 가자이다.
오페라의 줄거리보다 관객의 흥미 이끈 것은 오히려 데릴라와 삼손의 이중창과 후반부의 바카날 장면 등 흥미로운 오페라 장면들의 라이트 모티브(Leit Motiv)
원래 오리지널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무대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에서 휠리스티아(불레셋, 필리스테, Philistines)인 지배 아래 사는 히브리인은 괴로운 생활을 강요당하며 살아간다.
가자의 광장에서 휠리스티아인 병사를 거느린 아비멜레크 태수(太守)가 여호와 신을 비웃었으므로 괴력(怪力)을 지닌 히브리 청년 삼손이 나와 태수를 쓰러뜨린다. 기세등등한 히브리인들 앞에 주눅이 들어 휠리스티아인들은 꽁무니를 뺀다. 다공 신전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대사제는 앞날이 위태로움을 깨닫는다.
저녁이 되어 다공 신전에서 나타난 휠리스티아인 처녀들 속의 요염한 미녀 델릴라의 춤이 삼손을 괴롭힌다. 대사제의 부탁을 받고 기다리는 델릴라의 집에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삼손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유대인 해방을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괴력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드디어 삼손은 델릴라의 계획대로 집을 둘러싼 휠리스티아인들에게 사로잡힌다. 괴력의 원동력이었던 머리칼이 잘리고 돌절구를 끄는 삼손. 색욕(色慾) 때문에 하느님을 배반한 사실을 후회하는 삼손. 신전에서는 괴력의 원흉을 잡은 일을 축하하는 축하연을 베풀고 있다.
그때 어린이 손에 이끌리어 나오는 삼손에게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델릴라, 거기 모인 자들의 가진 욕설과 악담을 받는 속에 필사적으로 하느님에게 기도하며 신전의 두 기둥에 손을 댄 삼손은 있는 힘을 다해 흔들기 시작한다. 그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괴력이 되살아나 대신전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리고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을 깔아 버린다.”
이런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원래 줄거리가 이번 10월에 국립오페라 무대를 통해서는 2021년 연출가 아흐노 베흐나흐의 프로덕션에 의해 이 작품의 무대가 1930년대 독일로 옮겨져 왔다.
특히 1938년 11월에 있었던 일명 ‘수정의 밤’이 연출의 핵심이라고 연출가 베흐나흐는 밝혔는데 이 사건은 히틀러 통치의 국가사회주의 정권이 지시하고 조직한 유대인들에 대한 광기 어린 폭력으로 11월7일부터 13일까지 수백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고 최소 3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1,400개 이상의 회당과 기도실, 상점과 묘지 등이 파괴되었다.
독일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무대배경으로 사용되는 장치와 독수리 문양의 나치 문양 등 영상에 나오는 건축물들을 통해 관객은 이런 무대 스토리 배경의 전환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지만, 오페라의 줄거리보다 관객의 흥미를 끈 것은 오히려 데릴라와 삼손의 이중창과 후반부의 바카날 장면 등 흥미로운 오페라 장면들에 많이 좌지우지 주도됐다고 내 개인적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내게 강렬했던 대목들을 꼽아보자면 1막 초반부문의 삼손 국윤종이 “주여! 진정 당신을 알았던 민족들이 영영 멸망하기를 바라시나이까?”하며 절절히 힘 있는 아리아 부문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날의 주역 가수 테너 국윤종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오페라 팬들을 오페라 공연무대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 마력적인 바카날(Bacchanale)
데릴라로 분한 메조 소프라노 김정미의 아리아들은 외국의 메조소프라노들의 음색을 방불케 할 만큼 내게 더욱 감미롭고 황홀한 느낌들을 가져다주었는데 2막 6장의 데릴라의 아리아 “향기로운 은방울꽃이 아무리 달콤하다 해도 나의 키스보다 감미롭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윽한 만드라고라의 즙도 나의 키스보다는 못할 것입니다”부터 시작되는 데릴라의 아리아들이 그런 경우들이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역시 2막 3장 “새벽의 입맞춤에 꽃잎이 열리듯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네! (...) 다시 말해줘요. 그때의 맹세를, 내가 사랑했던 그 맹세를! 아! 내 사랑에 응답해줘요, 나를 환희로 넘치게 해줘요!”의 압권의 하이라이트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Mon coeur s'ouvre a ta voix)“는 절창의 아름다움이었다.
특히 2021 국립오페라단 <삼손과 데릴라>의 연출을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키워드 중에서 바카날(Bacchanale)은 삼손과 데릴라 오페라 무대의 내게는 가장 흥미로운 오페라 장면들로 기억에 남는다.
바카날은 고대 로마 신화 속 바쿠스의 축제라는 뜻으로 춤과 술이 곁들여지는 여흥의 음악으로 음악사를 통틀어 <삼손과 데릴라> 3막에 등장하는 바카날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프랑스 오페라의 특징인 웅장하고 화려한 발레와 춤인 이 바카날은 삼손을 붙잡은 블레셋 사람들이 축하연을 베풀면서 술, 춤과 음악, 여인이 어우러지는 관능적인 장면으로 오페라 팬들을 오페라 공연무대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적(魔力的)인 오페라 장면으로 내게는 비쳐졌다.
2021년 국립오페라단 버전에서는 이 바카날이 여인들의 체조 장면으로 대치됐는데 히틀러는 각종 스포츠와 체조를 통한 신체 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나치 치하 여성들은 체조를 통해 육체를 가꿔야 했다고 한다.
이번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는 오페라 팬들을 오페라 무대로 이끌 수밖에 없는 한계를 모르는 문학적 확장성과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적 감동의 어떤 거부할 수 없는 매혹스러운 많은 매력적 요소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기원전 1100년경 블레셋인의 핍박을 받던 유대인과 1930년대 독일 나치즘에 따라 학살당한 유대인 사이에서 민족과 민족 사이의 갈등과 폭력, 이를 넘은 광기 어린 대학살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문제라는 무대의 콘셉트가 연출 면에서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는지에 대해 이의도 있었지만,
관객들은 거부할 수 없는 오페라의 매혹에 빠져 국립오페라단은 지난 7월 초의 <서부의 아가씨들>에 이어 40년 만에 무대에 올린 <삼손과 데릴라> 오페라에서도 관객들의 많은 박수를 받은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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