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방문' 중 진영과 진석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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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아버진 나쁜 사람이었어."
"(고개를 저으며) 슬픈 사람."
은은하고 세밀한 연극 '방문'에서의 마지막 대사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아무 이상 없어 보이는 이 가족은 극이 전개되면 될수록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들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느 평범한 목회자 가정인 것만 같아 보이던 가족. 원로목사인 아버지, 아버지를 이어 목사가 된 진석, 다큐멘터리 감독인 진영. 느닷없는 연락과 서서히 밝혀지는 비밀들. 극이 진행될수록 이들의 평범함이 얼마나 표면적이기만 한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극 내내 오븐에서 맛나게 구워지던 고기의 냄새는 따뜻하고 고소하다. 냄새로 가득 찬 객석과 무대는 벽이 없어 서로의 후각을 공유한다. 그러나 그 냄새를 기억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듯이, 형제는 아버지를 다르게 기억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를 쌓고 있던 장벽에 미세한 균열들이 일어나며, 두 형제 진석과 진영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워낙 성향이 달랐던 두 형제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모습마저 다르다. 아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고 해야겠다. 아버지를 나쁘다고 말하는 진영과 그렇지 않고 슬픈 사람이었다고 고백하는 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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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진영이 언급하는 '사막에 한가운데 있는 공중전화와 부스'라는 소재가 아주 인상 깊다. 이제 그 부스는 자신이 이곳에 존재했었다는 흔적마저 지워진다. 그러나 여전히 전화번호는 존재하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우연한 소통을 이뤄간다. 아주 특수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개인들. 흔히 '가족'을 '울타리'라 표현하는 우리는 가족 구성원 간의 긴밀함을 강요하지만, 과연 그 긴밀함이 얼마나 농도 짙은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오히려 공중전화로 목소리를 나누던 그 우연한 사람들에게 더 마음 깊숙한 고백이 쉬워졌다.
소통으로 관계를 맺어가고 유지하는 것 같지만, 정작 관계함으로 인해 소통의 농도는 옅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이 모호한 메커니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 연극 정보
- 연극 제목 : 방문
- 공연날짜 : 2016. 2. 4 ~ 21.
- 공연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작, 연출 : 고영범, 박정희
- 출연배우 : 이호재, 김정호, 강진휘, 김성미, 이서림, 김승철, 김기범 등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