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연극 '어머니', '아버지' 기자간담회

 

   
27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윤철 예술감독, 윤소정 배우, 박근형 배우, 이병훈 연출가, 박정희 연출가

[문화뉴스]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Florian Zeller)의 대표작 '어머니(Le Mére, 2010)'와 '아버지(Le Pére, 2012)'의 기자간담회가 동시에 27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렸다.

젤레르는 3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희곡상을 수상하며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고 재능 있는 작가다. 두 작품 모두 90분 내외로 짧은 희곡이지만 노령화, 치매, 빈 둥지 증후군, 우울증 등 현대사회의 사회적, 심리적 병인들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독특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으로 충격과 감동을 선사한다.

이번 기획은 이례적이다. 한 작가의 작품 두 편을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개막하기 때문이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국립극단 2016년 기획주제인 '도전'에 따라 기획적인 도전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윤소정 배우, 박근형 배우, 이병훈 연출가, 박정희 연출가가 참석했다. 한편, 원작자인 젤레르가 국립극단이 주도한 획기적인 기획에 감동받았다는 후문이 들렸다. 한국에서 초연되는 작품이자, 이례적인 기획이 돋보이는 이번 연극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소하다면, 이번 간담회에서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 먼저 살펴보고 관극하는 것을 추천한다.

 

 

 

   
 

하나의 무대에서 두 작품을 올리는 도전적인 기획이다. 연극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기획이다. 서로 다른 두 작품을 어떻게 접했고, 한 무대에 두 작품을 올린다는 기획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ㄴ 김윤철 예술감독 : 젤레르라는 작가는 유럽 연극에서 정점을 이룬 헤롤드 핀트에 견줄 만큼 새롭게 떠오르는, 이미 전성기에 접어든 듯한 젊은 작가다. 소설과 희곡을 동시에 쓰는 작가이며, 연극적 상상력이 헤롤드 핀트를 연상시키는 작가다. 국립극단에는 여러 기획 주제가 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해외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를 갖는다. 이번에는 유럽 연극의 신작을 발표하자는 생각에서 자리가 마련됐다. 다행히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 국립극단이 표방하는 '배우' 중심의 연극을 구현할 수도 있게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령화 시대에,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단순히 고령화를 사회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치매 환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치매 환자가 되어 감상할 수 있게 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작품이 쓰인 시간적 차이가 다소 있긴 하지만 무대 배경이 거의 일치한다. 자기를 돌보지 않는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새 여자 때문에 자신을 더 이상 찾지 않는 어머니의 그리움과 외로움이 강력한 정서로 포함돼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인물의 치매로 인한 고통이 모성애와 부성애라는 측면에서 대위법적으로 쓰인 작품이다. 그래서 따로 공연하는 것보다 한꺼번에 보며 비교할 때 작품의 의미가 훨씬 더 관객들에게 와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 분 연출가(이병훈, 박정희 연출가)들과 다른 스태프들이 한 무대에 모이는 게 가능할까 했는데, 다들 모여서 동의하는 가운데서 진행됐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현재 유럽에서 활발히 공연 중인 작품이며 관객들의 호응도 크게 얻은 작품이다. 젤레르도 우리의 이런 기획에 대해 '굉장히 흥미롭고 기획 자체에 감동받았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현재 우리의 고령화, 기억상실, 빈 둥지 증후군 등이 병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특히 이 작품이 한국사회 현재에 크게 의미 있는 것이 이런 현상들을 단순히 '문제'로 치부하며 '복지'적 차원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인문제는 젊은이들의 문제다. 젊은 사람들에게 더 심각해질 문제다. 노인들을 보살피는 것이 사회적 문제로 더 크게 다가오게 될 텐데, 그리고 실제로 우리 사회에 빠르게 다가오고 있기도 하다. 복지적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면 이 문제는 더 깊은 사회적 분열을 조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이 좋은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들어가 아버지의 망각과 착각 등을 경험하게 해준다. 또한 어머니가 아들에 대한 편집 때문에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상황이 그대로 연출되기 때문에, 제3자의 시점이 아니라, 1인칭적인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젊은 관객들이 특별히 많이 와서 봤으면 좋겠다. 그럼 고령화 문제에 대한 실증적이고 체험적인 이해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다.

연극은 나이 드신 배우님들이 연기할 때 감동이 훨씬 배가 된다. 이제 우리 관객들도 원로배우가 출연하면 더 기대하고 감동을 받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번 작품들에서 윤소정 배우, 박근형 배우, 이호재 배우, 이 세 배우로 하여금 여러분께 깊이와 품격, 그리고 감동을 드릴 수 있다고 확신하며 이 기획을 과감히 실천하게 됐다.

 

 

 

   
 

윤소정 배우는 2013년 '에이미' 이후로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왔다. '어머니' 희곡을 보고 재밌다며 선뜻 출연 결심했다가, 연습하면서 정말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맡은 역할에 대한 소개와 이번 작품의 출연 결심이 궁금하다.

ㄴ 윤소정 배우 : 처음에 이 희곡을 읽었을 때 '희곡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며 깜짝 놀랐다. 작가가 우리의 고정관념을 막 흩뜨리고 우리가 '이거다'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 장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1장이나 2장이나 같은 얘기다. 같은 얘기 같은 장소이지만, 전혀 다르게 표현을 한다. 정말 대단한 작가다, 배우로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도전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만큼 내가 주제파악을 못했구나 싶었다. 지금은 신경성 위염에 걸려서 소화가 안 될 정도다(웃음).

하지만 이런 고통이 없으면 작업하는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너무 쉬운 것은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약간 잘난 척 같아 보이지만, 어려운 것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든다. 이 작가가 특별히 여러 장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남편이 이 어머니한테는 아들이고, 아들한테서 남편을 본다는 것이다. 이 부인은 평생 해온 것이 가족을 위해 집에서 준비한 것이 다였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아내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나이 먹고 남편도 아들도 여자가 생겨 혼자 남겨지니, 내가 더 이상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상대가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행복할거리가 없어졌다. 그때부터 그녀는 빈 둥지 증후군을 앓게 된다.

참 안타깝긴 하지만, 작가가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면서도 흩뜨리고, 여기에서 얘기한 것이 저기에서 중복이 된다. 안나는 빨간 원피스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이 빨간색의 의미가 뭘까 고민했을 때 '피'를 의미한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피는 생명이다. 여성이 폐경 됐을 때 여성의 삶이 끝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빨강'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이 빨간색을 보여주며 남편과 아들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 하는 간절함, 그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사실 '나의 일'이 있었다면 그녀가 그렇게까지 공허하거나 우울증에 걸리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엄마한테는 아들과 남편을 위한 것이 자신의 삶 전부였기에 이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관객들이 연극을 통해 이런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자기 일을 가지는 것이다. 너무 한 가지에만 집착하지 말고, 자기가 즐길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게 내 나름의 관객들을 향한 관람 포인트다.

 

 

 

   
 

 

박근형 배우는 1960년대 국립극단을 대표하는 배우로 활동했다가 TV와 영화에서 오랜 시간 활동했다. 1967년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를 끝으로 국립극단을 떠났다가 2012년 '3월의 눈'으로 국립극단을 다시 찾았다. 40년 만에 명동예술극장에 다시 선 박근형 배우가 오랜만에 연극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또한 역할에 대한 소개도 부탁한다.

ㄴ 박근형 배우 : 김윤철 예술감독님한테 제안 받고 이 '아버지'라는 작품을 읽어봤다. 말씀하신대로 극작법이나 표현방법이 여느 작품과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초연하는 작품이자, 퍽 재밌게 읽었던 지라, 단숨에 하겠다고 말했다. 일정을 조율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연극은 나의 모태다. 언제든지 돌아오고 싶었고, 어디서든지 얘기하면 좇아가서 하고픈 욕망이 있었다. 더구나 이 극장이 그때(박 배우가 국립극단 단원이었던 때)시절과 달라져서 감회도 새롭다. 관극하러 올 때마다 '나는 언제 한 번 다시 저 무대에 서나' 하곤 했다. 1958년도에 가졌던 소망을 2016년에 와서 이루었다.

나는 연극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 표현에 대해서는 배우가 '연기를 잘 한다, 못한다'가 아니라 그 배우가 '그 역할에 성공했다, 실패했다'로 가름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 아버지는 권위적인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사랑을 갈구하지만 자기 시각에서는 다른 인물로 표현되는 이중성, 사회 고발성 등이 함축돼있다. 배우로서는 이 작품을 표현한다는 사실이 연기의 폭을 넓히게 해주는 기회일 것이다. 40년 만에 다시 명동의 이 무대에 선다는 자체만으로도 기쁘다. 항상 두근거리고, 연극이 내 일생에서 내 인생의 가는 길에 꽃을 피워줬듯이, 내가 가는 마지막 길에도 꽃을 피워줬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어머니'는 빈 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성을 그린다. 작년 '키 큰 세 여자' 통해 한 여인의 삶을 세심하게 그린 바 있다. 이번 '어머니'는 어떻게 표현되나?

ㄴ 이병훈 연출가 : 사실 여성과 어머니는 굉장히 다른 것 같다. 여성들은 이해할 것 같은데, 이번에 '어머니'를 작업하면서 어머니란 존재는 정말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생물학적 비극이라 생각한다. 동물들은 새끼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보내게 돼 있다. 이것이 자연의 순환이자 섭리다. 그러나 어머니라는 존재만은 너무 많은 진통을 겪으면서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특별한 존재다.

나도 어머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프랑스에서 이 연극을 본 관객이 '공연 끝나고 어머니한테 전화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어머니의 심정이 이 작품에 잘 녹아져 있다. 누구나 어떤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작품은 어머니가 극한 상황에 처했음을 그린다. 현실과 환상에 대한 구별이 사라지면서 어머니의 의식이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현실이야'라고 생각했다가도 '비현실이었나?' 싶게 되는 식으로 현실과 비현실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다. 또한 자식이 어머니를 떠나는 방법이 어머니를 죽이고 갈 수 밖에 없고, 어머니 또한 그걸 받아들인다. 어떤 묘한 신화적 요소도 배경으로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우리 현대인들한테 주는 메시지라는 건 '어머니'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미래가 암 다음으로 제일 많은 병이 우울증이라고 하는데, 이게 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현대인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 등을 표현하며 현대성을 띤다. 결국 우리의 삶 자체가 끊임없이 남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불합리성과 모순도 드러난다. 결국 이 어머니가 끝나는 장면에서 아들에 대한 집착을 하지만, 이제는 관객들한테 주체적인 삶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고독함, 절망감 등이 잘 표현되길 바란다.

 

 

 

   
 

지난해 연말 개막 전부터 전석 매진이 됐던 연극 '시련'의 연출을 맡았다. 이번에는 일반인이 아니라 치매에 걸리는 인물의 시선이 독특한 작품 연출을 맡았다. 국내 관객들에게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나?

ㄴ 박정희 연출가 : 대본이 이루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내가 연출로서 잔재주를 부려도 소용없는 작품이다. 어떻게 하면 대본을 충실하고 깊이 있게 해석해서 무대에 형상화할까가 가장 큰 문제였고,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품은 마치 작가가 치매에 걸린 것처럼 자기 기억을 잃어가면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인칭 화법으로 이뤄진 작품이며, 매우 독특한 형식이다. 시간이 퍼즐처럼, 그리고 영화 '메멘토'처럼 하도 쪼개져 있어서 처음에는 거기에서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정리가 다 됐고, 그걸 다시 한 번 구축하는 단계에 있다.

이번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싶냐 하면, 이 작품은 가슴을 매우 묵직하게 하고 서늘해지게 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체성이 과연 어떻게 구축되고 있는가에 대한 얘기긴 한데, 한편 알츠하이머나 치매가 물론 암 다음에 가장 현대인들이 공포스러워하는 병이라고 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것도 무섭지만, 자기가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 무섭다는 것이다. 이 얘기가 던져지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할 것 같고, 젊은 관객들이 와서 봐도 좋고, 중장년층 관객은 보면서 울 것 같다. 이 작품이 던질 수 있는 정서적 가치는 굉장히 다양할 것 같다.

정체성을 잃어가는 한 아버지는 자신이 키워 온 가정 안에서 이물질로 작용되고 있는데, 그 관계에서 딸과 딸의 남자친구 등이 아버지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 사회적 문제를 약간 느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소멸해가고 있는 한 인간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이물질을 다루는 그 주위사람들이라는 사회적인 문제. 이 두 가지를 병행하려고 한다.

 

 

공연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근형 배우는 작품 준비하는 과정에서 "열심히 연극하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빛이 났던 순간이다"라 말했다고 전해진다. TV드라마나 영화와는 다른 연극만의 매력은?

ㄴ 박근형 배우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배우다. 그리고 연기하는 것이 내 인생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갑자기 생긴 꿈에서 시작해, 집착하고 고생하고 정말 많은 동료들을 만났다. 나는 연극이 밑바닥이던 시절부터 상업극으로 가는 교차점에서 연극을 했다. 배우가 존재하게 해준 밑거름이 바로 연극이다. 배우 박근형이 있게 해준 모태이기도 하다. 연극 활동은 8년 정도 했는데, 이때 연기로 꽃피지 않으면 배우로서 죽고 싶을 정도로 치열하게 연기했다. 그래도 그거 하나 바라보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게 그 시절이 지금 보면 가장 꽃인 것 같다.

내가 칠십이 넘었다. 이제 겨우 배우로 시작한다. 후배 배우들은 여러 교육을 통해 몇 십 년의 교육기간을 압축했지만, 우리는 몸으로 부딪히며 배웠다. 나는 이제야 시작하는 것이다. 예전에 이 극장은 1200명 정도가 들어올 수 있는 극장이었다. 지금은 시설이 많이 좋아져서 TV, 영화 수준의 음향을 갖추고 있는 극장이 됐다. 이번 작품에서는 과장하지 않고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호흡하고자 한다.

 

 

 

   
 

이번 작품에서 무대에 13번이나 같이 호흡을 맞췄던 이호재 배우와 또 부부로 만났다. 이호재 배우와의 호흡은? 또한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어떤 점이 매력적일지?

ㄴ 윤소정 배우 : 13번의 상대역을 한 이호재 배우와의 호흡은 뭐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겠죠(웃음)? 남편 이외의 가장 가까이 한 남자가 이호재 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다른 인물이기 때문에, 또 만들어야 하는 복잡한 절차나 긴장이 필요하다. 나도 이호재 배우도 매번 다른 인물로 만나며 다른 관계를 설정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잘하고 있고 또 이번에도 잘하도록 하겠다.

매력에 대해 일일이 말하기는 힘들다. 연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건 좀 심한 것 같다. 나는 연극을 보면서 공감할 수 있는, 곧 같이 웃고 슬플 수 있는 몇 장면을 건진다면 공연을 보기 위해 하루를 투자한다는 것에 대한 보답이 충분히 될 거라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것을 얻어가려고 한다면, 그거에 미칠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무대에서 각각의 작품이 펼쳐진다. 각 작품의 특징 살리기 위해 무대 구상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ㄴ 이병훈 연출가 : 우리한테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셨다. 같은 작가가 썼지만, 굉장히 다른 작품이다. 그럼에도 두 작품을 같이 올린다는 취지가 매우 신선했다. 여러 아이디어를 나눴지만, 이 연극이 특징으로 삼는 것과, 연극 자체의 본질이 일치한다. '역시 연극은 배우와 텍스트와 공간만 있다면 모든 것이 된다, 그리고 연극의 꽃은 배우다'라는 단순한 명제다. 이를 통해 관객과 깊은 밀착을 추구하려 한다.

무대를 굉장히 단순히 하고, 기본 공간이나 세트는 같이 쓰게 되고, 소품이나 등장로만 조금 다르다. 조명도 같은 사람이 두 작품을 맡았다. 꽤나 진통을 겪었지만 에센스만 남았다. 이 작품들은 결국 배우가 중요하다. 배우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배우를 쫓아가면 아주 좋은 성과를 얻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무언가를 매칭할 때마다 손상된다는 연출로서의 어려움이 있지만 이 또한 과제로 삼으며 노력하고 있다.

ㄴ 박정희 연출가 : 이병훈 연출님과 같은 생각이다. 미니멀하게 시작해서 어떤 장면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의해 관객들이 많이 상상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겠다.

 

 

 

   
 

 

'아버지'는 박정희라는 여성 연출가가, '어머니'는 이병훈이라는 남성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뚜렷한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ㄴ 김윤철 예술감독 : 굉장히 선명한 의도가 있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이해하려다 보니까, 아버지를 향한 딸의 시선이 매우 중요했다. 돌보면서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안느의 입장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어머니'라는 작품의 주인공 또한 안느다. 젤레르가 끊임없이 묘사하는 인물이 '안느'다. '어머니'의 안느도 '아버지'의 안느처럼 남편을 그렇게 대하지 않았나 싶었다.

여성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봤고, 지겹게 간섭하고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아들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봤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 연출가를 교차시킴으로써, 이 작품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구도가 성립되지 않을까 싶었다.

질문에 상관없이 이 연극의 장점을 말하고자 한다. 굉장히 짧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길어야 1시간 반, '어머니'는 1시간 정도로 러닝타임을 잡고 있다. 짧으면서도 젤레르의 완전한 연극을 본 듯한 정서적 힘이 있는 작품들이다. 1시간짜리 연극이지만 5시간짜리 못지않은 임팩트 있는 작품들이다.

 

 

박근형 배우가 지난해 영화 '장수상회'에 출연했다. 영화 '장수상회'에 이어 이번 연극에서도 치매에 걸린 노인 역할을 연기한다. 두 작품의 차이점은? 그리고 올해 '장수상회'라는 연극에 백일섭 배우가 출연했는데 선배로서 조언해준 것은 있는지?

ㄴ 박근형 배우 : 치매 연기를 이태동안 했다. 단막극에서도 한 적이 있고 말이다. 내가 그동안 했던 치매 환자는 보이는 치매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극은 치매 걸린 노인의 내부가 그려진다. 보는 이들은 우습게 보일 수 있지만, 연기하는 이로서는 진실성이 묻어나는 역할이었다. 보는 이들에게 충분한 충격이 될 것이다. 연극이니까 가능하고, 영화나 다른 미디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작품이다. 실제로 무대에서 연기할 때 내부에서 비롯되는 연기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개막해 백일섭 배우가 출연한 연극 '장수상회'는 영화보다 아늑했다. 재밌게 잘 봤던 기억이 난다.

 

 

 

   
 

각자 실제로 어머니, 아버지로서 이 작품을 하면서 공감가는 대목이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의 '앙드레' 역이 미국에서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박근형 배우에게 부담감은 없었는지?

ㄴ 윤소정 배우 : 대본에서 맨 마지막 장면에, 기다리는 아들에게 한 번도 전화하지 않고,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을 거라 생각하고 미워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둘 뿐이다. 남편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남편한테 하는 대사 중에 "애들은 우리 인생에서 사라졌어. 애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려. 그리고 우리한텐 아침의 추억만이 남아 있어.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서 아이들을 위해 준비했던 아침들"이라는 말이 있다.

연극에서는 마흔 일곱의 여자인데, 나도 마흔 일곱을 살아봤다. 애들은 부모한테 그렇게 관심 없다. 나도 그랬다. 그게 순리라고는 하지만 가슴 아프다. 아이들은 떠나게 돼 있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 의해 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 처절하게 '가슴 아프다, 슬프다'라고 느끼지 않는다. 당연한 거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내 시간이 참 필요한데 어떤 사람, 어떤 일을 위해 집착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ㄴ 박근형 배우 : 공감은 엄청나다. 나이 들며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가족 간의 사랑을 많이 느꼈고, 내 욕심대로 하고픈 대로 살다 보니 가족에게 불행을 겪게 했던 점도 있다. 그냥 봐도 공감이 되는 작품인데, 더구나 치매 때문에 과거의 기억과 현재라는 시점이 교차되는 게 절실하게 공감된다. 특히나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말을 할 때 너무나 공감돼 눈물이 난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구분 없이 관객들에게도 공감을 충분히 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는 '연기를 잘 한다 못한다' 보다 '그 역할에 성공했다, 실패했다'가 중요하기 때문에, 토니상과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배우 박근형으로 열심히 연기하고자 한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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