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지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동대문운동장 유적'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칼' 보존처리 결과 19세기 말 근대식 소총(小銃)에 사용된 총검(銃劍)으로 밝혀져
19세기 이전 조선의 칼과는 전혀 다른 형태 지닌 총검임을 확인
현재 동대문 역사관에서 상설 전시 중

[문화뉴스 장연서 기자] 서울역사박물관(관장 배현숙)은 조선시대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분영인 하도감 터(下都監)'에서 출토된 19세기말 근대식 소총에 사용한 총검을 보존처리하여 동대문 역사관(중구 을지로 281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 내)에 공개하였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설을 위해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이루어진 동대문운동장 발굴조사 과정에서 하도감 관련 '칼'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보존처리 결과 조선 후기인 19세기 말 국내에 들여온 근대식 소총에 사용된 총검(소총에 장착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 검)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총검은 보존처리 전까지 훈련도감의 분영인 하도감과 관련된 일본제 칼인 것으로만 추정하고 있었다. 하도감 터는 19881년에 설치된 신식 군대인 별기군(別技軍) 이 훈련한 장소이다. 또한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난 현장이며, 군란의 원인으로 지목된 별기군이 해체된 이후에는 군란을 진압한 청군(靑軍)이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일본에 패하기 전까지 주둔한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 실시된 보존처리 과정에서 칼의 전체적인 형태와 MRD(Muzzle Ring Diameter) 정밀 측정 결과를 근거로 볼 때 조선 후기인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개발된 소총에 사용된 총검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 과학적 보존처리 결과 및 총검의 사료적 가치

사진=서울시 제공 / 보존처리 후 총검의 상태
사진=서울시 제공 / 보존처리 후 총검의 상태

이 총검은 전장 71.6cm, 도신 57.5cm, 자루 13.5cm의 크기로 손잡이는 동물성 가죽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보존처리 전 총검은 손잡이 부위를 제외하고는 금속 부식 화합물로 인해  세부 형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으며, 특히 검집과 관련하여 유일하게 남아있는 검집 금속 장식의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연못이라는 수분이 많고 공기가 차단된 환경에 매장되어 금속에 비해 재질적으로 취약한 동물성 가죽 손잡이가 잘 남아 있었다.

보존처리 결과 유물을 덮고 있었던 금속 부식 생성물이 대부분 제거되어 총검이 지니고 있었던 형태적 특징들이 복원되었으며, 검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검집 일부분인 금속 장식은 음각된 문양과 세부 형태 그리고 금 도금된 표면이 표출되었다. 

하도감 터 출토 총검은 중국 또는 일본을 통해 19세기 말 국내로 유입되어 조선군이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서양식 총검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유물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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