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 대전공연

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몇 년 전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의 내한공연에 단지 500여 명의 관객만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입장해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올해 2021년 10월 하반기에 피아니스트 부흐빈더의 위상은 싹 바뀌었다. 내 개인적으로 지난 10월 19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루돌프 부흐빈더의 리사이틀은 첫날 피아노 소나타들의 공연이 매진돼 우연히 후반부 공연만 관람하고 10월 21일 목요일 저녁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부흐빈더의 대전공연에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베토벤 소나타 베스트 앙코르와 디아벨리 프로젝트 공연으로 구미 당길 만한 요소 충분

올해 부흐빈더의 위상이 이렇듯 싹 바뀐 이유와 배경은 뭘까. 지난 60년 넘게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 음반을 여러 번 녹음해 현존하는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회자되는 부흐빈더가 올해 베토벤 소나타 베스트 앙코르와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진 디아벨리 프로젝트 공연으로 국내 피아노 공연 관람 애호가들의 관심과 구미를 당길 만한 요소는 충분했지만,

10월 초 내한공연을 하기로 했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국내 공연 일정을 취소한 안드라스 시프의 취소영향도 어느 정도 반사작용 했을 듯도 싶다.

안드라스 시프 역시 바흐의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D단조 카프리치오 Bb 장조 음악의 헌정중 3성의 리체르카레와 부흐빈더가 들고 온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D단조 템페스트 26번, Eb 장조 고별 32번 C단조를 연주하는 것 외에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 한 대의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포핸즈 콘서트’로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등을 포함한 포핸즈 프로그램들을 연주해 두 아티스트가 선곡한 서정성 짙은 프로그램 및 예술적 언어의 아티스틱한 경지의 피아니즘을 들려줄 것으로 애호가들의 상당한 기대를 모았었기 때문이다.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관객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부흐빈더. (사진=대전 예술의 전당)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관객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부흐빈더. (사진=대전 예술의 전당)

 

지난 10월 21일 대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부흐빈더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첫곡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에서부터 1악장 달빛이 흐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마지막 부흐빈더의 연주곡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에 이르렀을 만큼 내게는 짧게만 느껴졌던 부흐빈더의 피아노 리사이틀이었다.

부흐빈더의 피아노 연주의 경력이 농축되듯 70세 중반의 손마디라고 느낄 수 없을 만큼 무리가 가지 않는 부흐빈더의 부드러운 타건들이 많은 대전 클래식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부흐빈더, 당대 최고의 작곡가 군단이 변주한 디아벨리 변주곡(1824)을 좀 더 고전적으로 해석

대전공연에서 부흐빈더는 후반부에 콘서트홀의 어쿠스틱에 좀 더 적응한 모습을 보이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0번의 2악장 연주에서 노련미가 돋보이는 연주와 3악장의 스케르초의 담백함이 내 개인적으로 느껴졌다.

서울 공연과 마찬가지로 이날 대전공연의 하이라이트였던 베토벤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은 피아니스틱한 매력과 동시에 88개 건반을 넘어선 무한한 상상력, 그 웅대한 세계를 멋지게 펼쳐낸 예언적인 걸작의 피아노곡으로 꼽히는데,

코다 부문에서 부흐빈더가 리스트의 작품에서나 볼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인 옥타브와 이중 트릴, 글리산도 등 건반 위에서 펼칠 수 있는 당대의 테크닉이 총출동하며 화려한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등 부흐빈더는 이런 하이라이트적 요소를 충분히 보여줬다고 본다. 

올해 부흐빈더의 내한공연에서 화룡점정은 2020년 베토벤 250주년을 맞이해 부흐빈더가 직접 선택한 현대 작곡가 11인이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 <디아벨리 프로젝트>의 연주가 아니었나 싶다. 

10월 20일 부흐빈더의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디아벨리 프로젝트>의 연주는 나로서도 놓칠 수 없는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의 1부에서 부흐빈더는 현존하는 모든 디아벨리 변주곡의 주제가 된 안톤 디아벨리의 왈츠 C장조로부터 시작해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곡가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새로운 디아벨리 변주곡, 훔멜 리스트 슈베르트 등 베토벤과 동시대를 살아가던 당대의 최고의 작곡가 군단이 변주한 디아벨리 변주곡(1824)을 좀 더 고전적으로 해석했다.

이어 2부에서는 베토벤이 작곡한 변주곡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의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이 연주되어 약 200년 사이의 긴밀한 시대적 연결고리를 부흐빈더가 풀어내며 관객들로부터 너무 감동적이라는 평들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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