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자간담회 및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 프레스콜

   
 


[문화뉴스]
대학로와 부산, 밀양을 아우르며 연극의 본질을 탐구하는 공동체 연희단거리패가 창단 3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3일 오후 2시에는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게릴라극장에서 연희단거리패 창단 3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와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현재 연희단거리패 대표인 배우 김소희, 극단의 예술감독인 연출가 이윤택, 故 이윤주 연출가의 부군인 극단 기술감독 조인곤(現 가마골 소극장 대표), 극단의 배우장을 맡은 수석 배우 김미숙, 이승헌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는 이들의 창단을 기념하는 '30'이라는 숫자의 의미와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소개했다. 더불어 앞으로의 극단 및 극장의 운영방침도 들어볼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이 30주년 기념작 첫 공연으로 선택한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에 대한 솔직한 뒷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연희단거리패를 대표하는 이들이 간담회 현장에서 기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자.

 

   
(왼쪽부터) 김소희 대표, 이윤택 예술감독

연희단거리패 창단 30주년을 맞이한 소감과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ㄴ 김소희 : 모르셨겠지만, 우리는 사실 매해를 기념하며 가열하게 달려왔다. 올해 30주년이 되면서 우리 극단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우리를 되돌아보자는 취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게 됐다.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를 30주년 기념하는 첫 작품으로 택했다. 이윤택 선생님 작품은 아니다. 또한 서울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아닌, 밀양과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배우들이 이번 무대를 연다. 굉장히 허름한 복장으로,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삐딱하게 질문을 던지는, 대단히 민중적인 코미디극이다. 이 작품이 우리 극단 성격에 가장 잘 맞고, 우리 레퍼토리의 대표라 삼을 만한 작품이라 여겨, 30주년 기념작의 첫 작품으로 택하게 됐다.

올 3월에는 콜롬비아 보고타 연극제(Ibero-American Teatre Festival of Bogota)에 초청 받았다. 거기서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을 공연하게 됐다. 올해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다. 그것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서울에서는 9월 즈음에 선보이게 될 것 같다. 4월에는 게릴라극장에서 '벚꽃동산'을 공연하게 됐다. 이윤택 선생님께서 연극을 시작하게 한 작품이다. 연극한 지 30년 만에 처음으로 연출해서 올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7월에는 윤대성 선생님의 치매 노인에 대한 창작 신작을 올린다. 하반기에는 배우 이승헌의 '햄릿'을 보실 수 있다. 또한 '꽃을 바치는 시간', 베케트의 '마지막 연극'도 준비 중이다. 이밖에 게릴라 극장에서 황선택, 오세혁, 오동식, 이채경 연출가와 김지훈 작가의 신작이 이어지는 '젊은 연출가전'도 마련돼 있다.

ㄴ 이윤택 : 오늘 이 자리를 기획하면서 우리의 '30주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고민했다. 지난 해 오태석 선생님의 극단 목화가 30주년을 맞이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와 극단이 정말 이런 처지에 봉착해야 되는가 의문이 들었다. 30주년 기념 공연을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0주년 기념해서 왕창 쉬어버릴까도 생각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30, 40주년이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 30주년을 맞아 예술감독으로서 '방바닥 긁는 남자'를 내세우기로 결심했다. 30주년 기념 공연을 큰 극장이 아니라 게릴라극장에서 하자는 결심이었다.

요 근래에 개인적으로 검열 문제와 같은 정치적 문제로 내가 회자되면서, 함구하며 있었다. 나는 정치적 인물이 아니니까 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들 물었다. 그러나 얼마 전 다른 자리에서 그에 대한 표명을 아주 살짝 내비췄다.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저항할 것도 없다고 말이다. 이후에는 말을 시작했으니 확실히 말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0주년을 기해서 연희단거리패의 30주년 의미보다는, 우리가 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방향을 택할 지에 대한 입장 표명의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연희단거리패의 30주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공연을 하지 않겠다. 지금 우리 연극이 어디로 가야 되느냐, 지금 우리 연극의 입장이 어떤 상태인가, 여기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결정을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첫째는, 연극이 자꾸 정치적으로 예속되며 언급되고 있다는 문제다. 그리고 왜 연극은 자꾸 큰 극장으로 몰리며, 도대체 한국 연극의 허파와 같은 소극장은 자꾸 사라지면서도 연극을 하겠다는 사람들과 관객은 왜 자꾸 늘어나는가에 대한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에 대한 원인을 생각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2년 정도 국립극단이 사라졌다가 다시 만들어지고 할 때, 나는 우리나라의 공공극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2년 동안 열심히 명동예술극장이나 국립극단에서 연출도 맡고 국립국악원에서도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남는 게 없었다. 괜찮은 작품을 하면 계속 공연돼야 하는데 자꾸만 없어졌다. 지난 해 큰 쇼크를 받은 작품이,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드디어 세계적 연극을 만들었구나 하는 망상에 빠졌다. 미국이나 프랑스에 가서 공연해도 전혀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공연을 아무도 안 봐줬다. 관객도 좋아했지만, 그냥 넘어가버린 연극이 됐다. '길 떠나는 가족'이란 작품도 20년 만에 작업했다. 전석매진이 됐음에도 비평도 안 나오고, 쓱 지나가 버렸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도 아니고 말이다. '혜경궁홍씨' 앵콜 공연 때도 앵콜에 대한 반발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계속 새로운 것만 한다는 흐름에 대해서 말이다. 중대극장도 레퍼토리라는 것이 필요한데 말이다.

작년에 대전의 기획자가 제안해,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백석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과분한 찬사를 받았다. 헷갈렸다. 이후 연희단거리패 30주년 방향을, 연극이 연극답지 못하게 만드는 분명한 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냉정한 입장에 초점을 맞췄다. 결론은 좌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좌우의 이데올로기로 연극을 평가하면 안 된다. 내가 연극을 시작할 때부터 그 문제로 검열 받았고, 지금까지도 좌우의 굴레 속에서 연극이 계속 이렇게 흔들려야겠는가 싶다. 20세기의 이데올로기를, 21세기의 연극은 넘어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

두 번째는 언제부턴가 연극에서 담론이 사라지고, 세상 잡소리만 무성해졌다는 것이다. 심각하게 물어봐야 할 문제다. 종편의 악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 '구라'와 '썰'들이 난무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세상에 대한 순발력과 재치 있는 내용만 주가 된다.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담론이 없어지며, 새로움이 무성해졌다. 그러면서 연극은 자꾸 밀려났다. 어제 진중권이라는 분과 라디오에서 대담을 했다. 담론이 사라지고 세상의 새로움만 설치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 연극의 특징은 담론이니, 우리 연극이 이제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담론을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세 번째는 경제적 독립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지원 상황을 자세히 보면, 현저하게 지원금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많은 지원이 문화콘텐츠, 융합 쪽으로 넘어가버리고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이 거의 사라졌다. 이런 판국에서 순수를 논하는 사람은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 차라리 이번 기회에 지원에서 독립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면 받겠지만, 안 주면 안 받는 것으로 말이다. 지원에 매달려서는 안 되며, 다시 가난한 연극을 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콘텐츠', '브랜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든 작업이 기울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다들 '융합'이라고 하는데 짬뽕도 자장면도 아니다. 연극이 말만 하든지, 몸만 하든지 해야 분명히 보이는데, 노래도 찔끔, 영상도 찔끔, 움직임도, 말도 섞이니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버렸다. 융합의 원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에서 비빔밥처럼 섞이며 모든 돈을 끌어가고 있다. 왜 모든 예술이 미적인 형식 갖추기 전에 콘텐츠와 브랜드가 되는지, 언젠가 이런 것들이 거대한 쓰레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연희단거리패 30주년은 다시 유격적인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연극인들은 진정한 '게릴라'가 돼 다시 시작해야 된다. 좌와 우, 남과 북, 그리고 지역감정이라는 낡은 이분법적 세계로부터 연극은 한 단계 성장해야 한다. 연극인들이 연극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세속화된 사회' 때문이다. 대중 제일주의, 담론은 없고 새로운 잡설만 무성한 세태, 그리고 콘텐츠 융합, 이런 현상들이 바로 세속화된 사회의 산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것들에 대한 저항이 시작돼야 한다. 여기서 김수영의 시 '하 …… 그림자가 없다'의 내용을 언급하고자 한다. 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환멸, 무책임함을 느끼며, 내가 내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깊게 생각하며 세상과 직면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동안 너무 물렁물렁하고 쉽게 세상과 만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나부터 심각하게 한다. 이제부터라도 깊이 반성하고, 연극의 본령인 소극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미래를 절망적으로 보지 않는다. 중대극장은 중대극장대로 중산층 위한 웰메이드 연극을 만들어내고, 소극장은 소극장대로 갔으면 한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맞서며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싹쓸이다. 전부 몰려가버린다.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소극장 연극을 시작하면서 맞서야겠다는 생각이다. '방바닥 긁는 남자' 다음 프로그램 중에 극단 해적의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이라는 보기 상스러운 연극을 한다. 그 다음에는 김은성 작가, 오세혁 연출이라는 젊은 연극인들이 무대를 꾸민다. 그리고 창단 40주년을 맞은 극단 76의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극단 76은 현재 배우도 없고 기국서 연출가만 남았다. 기국서가 다시 쓰는 리얼을 5월에 극단 76의 40주년 공연으로 올린다. 극단 76은 1976년도에 파격적인 '햄릿'으로 시작한 극단이다. 배우 송승환도 여기 소속이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남아 있지 않고 아무것도 없다. 가장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연극을 해온 곳이었는데 말이다. 현재 기국서 씨가 무얼 하고 있는지 살펴봐주시기 바란다. 70년대 한국연극을 이끌었던 사람이 연극을 하지 못하고 육체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 도대체 한국사회가 이렇게 야만적일 수 있는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극단 연출가가 생계 유지위해 아주 비천한 노동을 하며 살아야하는가 싶다.

이번에 살펴보니 나와 오태석 연출가, 이강백 작가 모두 창작산실에서 떨어졌다. 이 사람들을 떨어뜨리는 한국사회는 얼마나 잘 났는가 궁금하다. 지금까지 연극을 해왔던 이윤택, 오태석, 기국서가 얼마나 못났기에 젊은이들과의 경쟁에서 떨어지고 있는지. 나에 대한 분노가 생긴다. 이제 우리 삶에 대한 자존심이다. 이제 제대로 싸워보고자 한다. 우리는 무식하게 싸우지 않고, 블랙유머로 싸우겠다. 20세기라면 비장하겠지만, 21세기에 비장하게 싸우지 않는다. 비장하게 싸울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개판의 시대에는 깽판으로 갈 것'이다. 이제부터 소극장에서 세속화된 세상에 대해 저항을 하고자 한다. 블랙 유머로 말이다. 대단히 화끈하고, 징그럽고, 불편한 연극을 할 것이다. 소극장이 살아있음을 누군가는 증명해야 하는데, 모두 무기력해져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너무 쉽게 이 세상을 양도하고 물려줘버렸다. 별것 없는 담론 없는 세상이다. 다시 저항을 시작해야겠다. 나름대로 거칠고, 한편으로는 격조 있게 '맞짱 뜰' 생각이다. 심심한 관심과 애정 부탁드린다.

ㄴ 김소희 : 가마골 소극장이라는 곳은 7월에 부산에서 열었다. 부산에서도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 상황이 힘들어져서 다시 밀양으로 옮겼다. 이번에 30주년을 맞이해 다시 부산에 가마골을 재개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조인곤 씨가 준비를 맡아서 하고 있다. 김미숙 배우는 극단의 저변을 넓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 우리 극단도 전통극, 가족극을 하려고 하는데, 단순한 아동극이 아닌, 어릴 때부터 연극을 접하게 되는 교육적 차원으로서의 가족극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에 윤대성 선생님의 연극에서 조연으로 나온다. 이승헌 배우는 '햄릿' 등의 작품에서 관객들을 만날 것이다.

 

   
김소희 대표

우리 연극계가 원로들이 존재하기 힘든 곳이다. 일본은 6, 70년대의 앙그라(언더그라운드) 운동의 전통이 살아있으며 관객과 지지층이 남아있다. 한국은 당시에 대한 지지층이 남아있지 않다.
ㄴ 이윤택 : 글쎄 말이다. 니나가와 유키오도 작년에 LG아트센터에 초청됐다. LG아트센터에서 니나가와 유키오는 초대하고 오태석은 초청하지를 않는다. 우리나라 공연기획자들 안목의 문제다. 니나가와 유키오는 오태석과 같은 레벨의 연출가다. 일본에서는 오태석을 알아주는데, 왜 한국의 공공극장에서는 그의 이름이 사라졌는가? 이윤택에게 너무 많은 특혜를 주었다는 말들이 있다. 잘하니까 주는 것이지만, 한국은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잘나도 다른 이들과 똑같이 경쟁해야 한다는 사고다. 한국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보편주의, 평준화의 문제다. 한국사회의 모든 문화정책은 '골고루'다. 골고루 줘야 된다는 말은 참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요 근래에 어쭙잖게 중견 연기자 그룹에 가봤는데, 예산이나 제작환경이 정말 비참했다. 김지숙 배우는 9년이나 무대에 서지 못했고, 곽동철은 8년이나 서지 못했다. 물론 나이든 사람들이 지나치게 권위를 과시하고,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자업자득으로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늙은 사람들을 박대하는 것은 무슨 현상인가 싶다. 이게 바로 세속화의 결과라 생각한다. 즉 천민자본주의다. 그리스 시대에는 노인들이 존중 받지만 로마에서는 박대 받는다. 지금 한국 사회가 로마 말기인가?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세상인가? 사회학적으로 진단해봐야 되는 문제라 생각한다.

ㄴ 김소희 : 이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게 된 배경은 작년에 있다. 오태석 선생님이 작년에 밀양에 오셔서 하소연하신 적 있다. 작년이 극단 목화 30주년이었는데, 오 선생님께서 30주년 기념작으로 '봄봄' 공연을 하겠다고 어느 극장에 초청받은 것도 아니고 대관신청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떨어졌다고 하셨다. 그런 하소연을 들었던 배경이 있다.

ㄴ 이윤택 : 오 선생님께서 '나에게 연극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하셨단다. 현재 입장에서는 늙은 사람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저항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의 권익과 명예를 위해 맞서야겠다는 것이다.

 

   
조인곤 기술감독

니나가와 유키오는 어느 정도 상업적인 흐름과 조율했기 때문에 대극장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앙그라 정신을 이어감에도 지지를 받는 그룹이 있다.
ㄴ 이윤택 : 그 문제는 연극만 하는 나보다는 기자들의 비판적 시선에서 분석해보길 바란다. 저널리즘에 대해 상당히 기대한다. 나도 지방기자 출신이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의 기자들은 단순한 기자가 아니었다. 당대의 비평적인 시각을 갖추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학자나 공무원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연극담당 기자들이 취재하기 이전에 본인이 연극 기자로서 최소한의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자기 관점, 입장을 가졌으면 하고, 한국연극계에 대한 거시적 시선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공연에 대해 잘 써달라는 게 아니라,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글을 써줬으면 한다. 어딘가에서 김구와 이승만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둘이 완급조절을 하며 시대를 이끌어갔다는 것이었다. 상당히 공감했다. 둘을 대립의 관점이 아닌,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지며 당시를 이끌어가는 균형감각에서 본 것이다. 김병희라는 문학비평가의 글이다. 그런 균형 감각이 깨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만약 한국사회 평론가나 기자들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한 공존과 인정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싹쓸이 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집단이기주의적인 시선이 난무해져 불균형한 사회가 초래된 것 아닐까?

ㄴ 김소희 : 박근형 연출가가 극단76 출신이다. 그분이 작년에 '내년이 극단 76의 창단 40주년인데, 공연 해줄 수 있냐'는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존재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한 작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역사 속에서 씨줄과 날줄이 이어진 가운데에서 작품들을 봐주셨으면 한다. 전체의 가운데에 있는 존재로 연극을 봐주신다면,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문제들에 보완이 되지 않을까 한다.

ㄴ 이윤택 : 게릴라극장에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 '길 떠나는 가족'은 김의경 선생의 작품이다. 현재 김의경 선생은 병원에 계신다. 암이라는 중증을 앓으셔서 아무 말도 못하시고 수화로 말씀하신다. 그리고 기국서 연출은 노동자가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윤대성 선생님은 일방적으로 대본을 보내오셨다. 자신의 대본은 더 이상 공연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극단 쎄실의 채윤일 선생님도 작년에 맞은 쎄실의 40주년 기념 공연을 무대에 올리지 못하셨다. 창작공모에서 떨어졌다. 나이 든 선배들의 연극적 욕구도 수용해야 하고,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친구들의 욕구도 수용해야 하는 것, 이게 게릴라극장의 역할이다. 이 조그만 극장에서 하는 연극적 의미가 매우 당당하다고 본다. 모든 이들이 자신이 하는 일의 연극적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판단을 했으면 좋겠다. 연희단거리패의 30주년을 반성과 자각을 하며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계기를 만들어보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연극도 고심한 끝에 불편한 연극을 택한 것이다. 솔직히 요즘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들만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호불호가 갈릴지라도 문제제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입맛에 맞는 것들만 해왔다는 것에 대해 자책해본다.

 

   
이승헌 배우

대학로에 극장을 하나 더 짓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향후 진행 방향이 궁금하고, 새로 짓는 극장과 현재 게릴라 소극장의 운영방향은?
ㄴ 이윤택 : 게릴라 극장은 현재 지원이 전혀 없다. 관객도 많이 있지 않은데 매달 우리가 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에 맞닿았다. 성균관대 쪽에 '30스튜디오'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비상업적 입장에서 금, 토, 일요일만 공연하는 극장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분들이 말만 듣고 보지 못했던 연희단거리패의 연극들을 계속 올리려고 한다. 젊은 연극인들의 발표무대, 워크숍, 연습실 등의 공간이 될 것이다. 연극의 종합적인 작업 공간이 되는 것이다. 게릴라극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름 그대로 가고자 한다. 원래 게릴라극장은 젊은 연출가들의 메카, 등용문으로 만들고자 했던 곳이다. 즉 연희단거리패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힘들겠지만 이 성격을 유지하며, 연희단거리패는 좀 더 비상업적인 공간으로 옮겨간다고 보면 된다. 그쪽은 새로운 공간이 될 것 같다. (사정이 악화되면) 게릴라극장이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30스튜디오는 운영비가 따로 들지 않기에 작업공간으로 활용하기에 괜찮다. 그래서 미리 공개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게릴라극장을 공동으로 운영할 사람을 찾는다. 우리 힘만으로는 할 수가 없다(웃음). 뜻있는 젊은이들이 같이 운영 자금을 모아 운영했으면 한다. 현재 몇 분과 연락하며 살펴보고 있는데, 공개적으로도 게릴라극장을 운영해보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을 모집하고자 한다. 최소한 1억 정도는 들고 오셔야 한다(웃음).

극장 운영방식을 주식회사나 조합으로 운영하는 것은?
ㄴ 김소희 : 그런 방법도 생각중이다. 우리는 레퍼토리극단이다. 2주일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30개가 넘는 레퍼토리를 모두 공연으로 올릴 수 있다. 그런데 게릴라극장을 운영하다 보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연극들이 생긴다. 그래서 30스튜디오에서 연희단거리패의 보고픈 레퍼토리 공연들을 선정해 자주 올리고자 한다. 상시로 공연되는 것이다. 게릴라는 이미 오픈돼있지만 더 오픈해서 다른 연극그룹과 만나볼 생각인 것이다.

 

   
김미숙 배우

이 연출이 신작 발표가 기대된다. 아까 언급하기로는 '깽판 놓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깽판 치는 신작을 내놓을 것인지? 그리고 소극장이나 극단 운영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희단거리패가 30주년이나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ㄴ 이윤택 : 연희단거리패는 같이 먹고 사는 공동체 집단이다. 나는 우리가 뭉쳤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확신한다. 많은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60명이 함께 먹고 자는 집단이 있냐고 묻는다. 개인주의적 삶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이런 삶이 낯설다. 그러나 여러분도 한 달만 살다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같이 모여 사는 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곳에 들어와서 자신이 할 일이 있어야 하고, 인간 간의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재능을 보고 뽑는 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만남의 방식을 고민하며 뽑는다. 그게 버티는 힘이라 생각한다. 우리와 비슷한 해외 극단들도 이제는 거의 남지 않았다. 이제는 연희단거리패가 매우 희귀한 극단이 됐다. 같이 산다는 것이 연희단거리패의 힘이다. 또한 우리는 재능을 위주로 사람을 택하지 않기 때문에, 예술보다 삶이 우선되는 극단이다. 같이 사는 게 좋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신작에 대해서 말하자면, 깽판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마구잡이로 거칠게 깽판 치는 젊은이들의 방식이 있다. '방바닥 긁는 남자'는 신나게 이런 방식으로 깽판 친다. 참고로 내가 이 무대예술을 맡아 동아연극상을 받은 바 있다. 돈 들이지 않고 하는 연극이었다. 그러나 내가 하려는 연극은 '벚꽃동산', '꽃을 바치는 시간', '마지막 게임'이다.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굉장히 세련되게 깽판 칠 것이다. 우리가 리얼리즘으로 알고 있는 '벚꽃동산'은 부조리극 혹은 음악극으로 연출할 것이다. 이게 바로 나이 든 사람의 깽판이다. 내가 직접적인 깽판을 쳐도 되겠지만 가능하면 젊은이들에게 맡기고자 한다. 그리고 '꽃을 바치는 시간'의 경우에는 연극이 가능할까 싶은 작품이다. 읽기는 좋은 희곡인데,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배우들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꼭 쓰고 싶은 배우가 두 명 있다. 유인촌과 명계남이다. 두 사람을 반드시 무대에 세우겠다. 두 사람은 정치적인 틀에 갇혀서 너무 배우로서 제약받고 있다. '마지막 게임'에 유인촌이란 배우를 앉은뱅이 독재자 역할로 앉힐 생각이다. 물론 안 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웃음). 그리고 유인촌 배우의 상대역으로 이승헌 배우를 세울 것이다. 또한 '알프스의 황혼'이란 작품에는 김소희와 명계남을 무대에 세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정치적인 멍에에 갇혀서 재능이 제한되는 불상사를 허물어버리자는 것이다. 30주년을 기해서 내게 맡겨진 책무라고 생각한다. 확정되지 않지만 확실히 얘기하겠다. 명계남과 김소희, 유인촌과 이승헌의 연기를 기대해주시기 바란다. 아직 본인들에게는 말하지 않은 상태지만 말이다(웃음). 이것도 하나의 깽판이다. 다양한 각도에서의 깽판을 칠 것이다. 기존의 인식에 대한 반발, 그리고 명계남과 유인촌을 무대에 세우는 것, 즉 판을 흔들어 숨통을 쉬게 하는 것이 연희단거리패 30주년의 목표이다.

 

   
 

한 나라의 문화 정책이 해야 하는 일을, 이 작은 소극장이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살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 동안 운영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그리고 밀양의 식구들은 어떤 비전으로 10, 20, 30주년을 맞이하게 될지?
ㄴ 김소희 : 전문적인 것이 부족한 편이다. 오히려 각 분야에서의 능력자들이 내 동료다. 다행이도 이들이 한두 살씩 어리다. 그래서 항상 의논을 한다. 이 선생님은 지표를 가지고 계시고 말이다.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일, 의미 있는 일에 평생을 걸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이 계속 남는 것이다. 그래서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별로 큰 아쉬움은 없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아쉽게 생각하는 이들은 대부분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상주의 공동체'라고 했는데, 어릴 때는 무작정 이상을 향해 달리다가도 잠시 멈추는 때가 오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까지 달릴 수 있는지를 보고자 한다. 이 선생님은 본질적이면서도 현상을 놓치지 않는다. 현재 연희단거리패는 5~60명의 단원이 있다. 사실 여름이 되면 80명이 될 듯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흩어지는 세상에서 묶어서 가고, 서로 구속하지 않는 세상에서 구속하며 살아간다. 지표를 향해 같이 달려가는 것이 좋은 사람들을 80~100명 모으는 것은 딱히 어렵지 않은 일이다. 힘든 것은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경제적인 문제다. 또한 현상적으로 뿌리면서도, 개개인적인 발전을 동시에 챙기는 게 쉽지 않다. 다 같이 나누는 것을 계속 실천하며, 후배들도 그렇게 교육하고 있다. 30대 초반의 단원들이 가마골에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도 그게 좋은 사람들이어서 남았다. 어떻게 이어질까에 대해서는 매일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한 작품이 취향이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어디로 향해 가는 길에서 이런 저런 것들이 있다고 봐주셨으면 한다.

ㄴ 이윤택 : 연극은 우리 시간의 30%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70%가 먹고 사는 문제에 있다. 지난 번에 진명여고 기념행사에서도 돈을 받고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엄상궁이 설립한 학교기 때문이다. 고종의 계비(繼妃)인 엄 상궁을 김소희 배우가 연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돈을 벌고자 한다. 개인이 아니라 같이 벌고 같이 쓴다. 수입이 없으면 월급 못 주고, 있으면 반드시 준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맡겨지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ㄴ 이승헌 : 우리 단원들이 생각하는 (연희단거리패가 30주년을 이어올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투명성이다. 이 선생님도 책정된 봉급이 200만원이다. 그러나 명동예술극장 등의 외부 작품 맡으실 때는 그 봉급도 받지 않으신다.

ㄴ 김미숙 : 같이 먹고 자는 생활이 힘들지 않냐고들 한다. 그러나 솔직히 직장생활도 어렵다. 위치만 다를 뿐이지, 살아가는 것은 똑같다. 뭔가 달라 보이기 때문에 신기하겠지만, 결코 우리도 다르지 않다. 제시해주신 길 따라서 한 가지 방향으로 따라간다. '이곳에서 30, 50년 있어야지' 해서 있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살다보니 이 자리에까지 왔던 것이다. 보람차다.

ㄴ 이윤택 : 조명기 감독이 굉장히 잘 나가는 조명감독이다. 이 사람이 외부에서 작업하면 20%를 우리에게 바친다(웃음).

ㄴ 조인곤 : 11살된 딸이 있다. 2살 때부터 무대감독이 키워주다 보니 딸이 벌써 11살이 된지도 몰랐다. 나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결혼을 한 사람이다. (아내인) 故 이윤주 선생님은 정말 독한 분이었다.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 시간을 풍경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차와 등속도로 달리는 물체처럼 여겼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특별한 선생님을 만나, 특별한 직업을 갖게 됐다. 가장 중요한 버팀목은 세상에 대한 눈치를 보지 않는 것,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마련해주신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것 때문에 앞으로 이 선생님과 선배들이 계시지 않더라도 후배들이 계속 가지고 극단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으로부터 독립된 세계에서 얼마든지 밀리지 않고 해야 될 연극과 있어야 될 연극을 하는 것, 그리고 지금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연극을 한다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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