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연극들을 보다 보면 절실하게 글을 쓰고 싶어지는 연극을 만날 때가 있다. 지난 달 30일 그런 연극을 만났다. 연희단거리패의 '백석우화'라는 연극이다. '백석우화'는 작년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작품상과 연기상(오동식 배우)이라는 2관왕을 기록한 바 있다. 이 연극을 보고나니 하고픈 말들이 마구 떠올라서인지, 이번 글은 보다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구성의 감상평보다는 개인적 체험에 의한 감상평에 편중됐다는 점을 미리 털어놓는다.

시인 백석은 그동안 내게는 단순한 '월북 시인'이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만난 백석이란 사람은 문학적 재능은 뛰어났으나 정치적 관념이 남한의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고 여겼기에,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생각은 해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 마주한 백석은 매우 달랐다. 백석의 인생관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은 바로 이곳이다.

 

   
 

"인간은 어디서건 살아나가야 하는 거요.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살아나가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실제로 오동식 배우가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연기상을 수상하며 소감을 마무리할 때도 인용한 부분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인 생(生)에 대해 말하는 백석에게서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존경심을 느꼈다. 백석은 이 대사 이후, 남쪽의 친구 신현중에게 편지 형식의 에세이 '붓을 총·창으로!'라는 글을 짓는다. 연극은 이 부분을 대남 선전방송의 형식을 빌려 이념의 도구로 쓰인 백석의 모습을 비참하게 다루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타인을 쉽게 힐난하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됐다. 더불어 가치관과 신념대로 살지 못해,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는 무기력한 자신을 창피해하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월북 시인이냐 아니냐를 떠나, 백석은 남과 북이 갈리게 된 원인, 즉 시대가 반영된 이념을 뛰어넘어 훨씬 중요한 가치를 염두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가치는 바로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삶'이었던 것이다. 목숨보다 중히 여기던 가치와 신념이라는 보편적 명제. 우리는 이것에 대해 반기를 들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역사적인 영웅으로 추앙받고 위인으로 존경받는 인물들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과 조국의 안위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당시의 지배적 사상을 거스르는 것. 그것이 위대한 가치의 필수조건이 되어버렸다.

"제가 북조선에서 글쟁이로 살아가려 하는데 제 능력이 모자라 감히 시를 쓸 엄두는 못 내고,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려 해도 사상이 모자라……"

백석의 극중 대사다. 여기서 나는 가치관과 사상에 파묻혀버린 한 사회를 발견한다. 백석의 말처럼 백석은 모자랐다. 보잘 것 없었다. 왜냐하면 한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을 체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석을 통해 우리가 간과한 점들을 발견한다. 가치와 신념이라는 것 또한 삶을 전제로 할 때에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솝우화는 애달픈 삶을 살아가는 백석의 말을 대신해준다. 정치적 이념에 의해 번번이 시와 동화시 창작에 쓴물을 들이켜야 했던 백석은 곧 외국 문학의 번역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이솝우화 이야기를 한다. 하고 많은 이야기 중에, 연극이 선택한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언짢은 일들은 다 조그만 혀끝에서 생기는 것"이라 말하는 이야기였다. 검열에 의해 다시 사상을 의심받게 된 백석은 이렇게 외친다. "그 글은 제가 쓴 게 아니라 이솝이 쓴 우화입니다"라고 말이다. 삶의 진리를 가장 단순하게 담고 있는 우화들을 통해, 그는 결국 하고픈 말을 내뱉고야 만다. 검열이 일상화가 되어버린 시대에서, 백석이 문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바로 남의 입을 빌리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안위를 가장 큰 가치로 생각했던 백석임에도 불구하고 글쟁이로서 이 시공간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나 보다. 그는 결국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 읊조리며 산골로 쫓겨난다.

 

   
 

백석이 없는 백석의 시(詩)를 공부하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한 사람의 생애를 다시 마주하며,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마지막으로, 연극 '백석우화'가 다른 연극보다 훨씬 사무치게 다가온 데에는 바로 그들의 연극적 구성이 탁월했기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동화시 '까치와 물까치' 등의 낭송은 입체적이었다. 때에 따라 그의 시는 목가적인 멜로디가 덧입혀지기도 하고, 우리의 구성진 소리와 만나기도 하고, 어린이들이 깔깔대며 좋아할 재미난 몸짓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더욱 주목할 점은 그의 '산문'조차 배우들에 의해 리듬감 있게 재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껏 나의 머리와 가슴은 백석이라는 시인의 '살아있음'을 느껴보지 못했던 중에, 시와 백석, 그리고 연극 자체가 살아있는 '백석우화'라는 작품을 만났다. 드디어 백석은 나에게 살아있는 시인이 되었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연희단거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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