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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가학적으로 자신의 제자를 괴롭히고 능욕한 교수에 대해 사람들은 공분했다. "이제 네 얼굴에 똥을 바를 차례"라며 인터넷에 그 교수의 사진이 마구 돌아다니기도 했다. 과거에 놓지 못한 악몽을 꾸는 듯 많은 이들이 자기 일인 양 분노했고, 그건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법의 물방망이가 이번만큼은 엄중한 잣대를 대고 매섭게 내려치길 바랐고, 그에겐 징역 10년형이 구형됐다.

문득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낀 것은 뉴스에 달린 답글들을 읽고 있을 때였다. 피의자를 성토하는 글들 사이로, 피해자가 무저항으로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피해자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커졌다. 라는 이상한 논리들이 자주 나오는 것이다. 앞의 상대가 돌을 던지면 피해야지 왜 맞고 있느냐고 따진다. 욕들이 난무하고, 2년이 넘는 기간 가학적인 행위에 상처 입은 피해자에게 소금과 후추를 뿌리며 때린 사람보다 맞은 놈을 탓하고 조롱한다.

10년 전쯤 중학생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학교폭력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폭력이나 가혹 행위가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의 의지를 꺾고 자존감을 깎아놓는다. 자신은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사람처럼 느껴져 가게 한다. 그런 마음을 가진 순간부터 끝장이다. 한없이 떨어지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있게 된다.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음에도 끝도 없이 참아낼 수 있게 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 상황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 폭력에 벗어날  방법이 여럿 있음에도 그 폭력을 참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 낸다. 한번 만들어진 사슬과 굴레는 쉽사리 벗어날 수없게 된다.

자신이 존경하던 이, 성공한 미래가 보이는 계획. 이 두 가지를 가슴에 품은 피해자는 정말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런 가혹 행위에서도 참아내고 버텨 냈을 것이다. 그리고 긴 인고의 시간을 겪으며 폭력이 만든 자신의 틀을 깨어내고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지, 피의자에게 사건을 받아 키우는 존재가 아니다.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갑자기 뜬금없어 보이지만 위 그림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다.젠틸레스키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여러 가지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최초의 여성 전업 화가이고, 최초의 강간사건의 피해자다. 이미 기원전부터 있었던 강간사건에 대해 1500년대 말 사람이 어떻게 최초의 강간사건 피해자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녀가 바로 최초의 강간사건 고소자이기 때문이다. 17세 때 아버지의 친우이자 스승인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를 고소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타시의 10개월 감옥행 그리고 손가락 고문, 산부인과 검사까지 받으며 진행한 재판에서 겪은 치욕, 좌절이었다.

그녀의 그림은 폭력적이 되었고, 잔인하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고 처음으로 그린 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통해 자신이 품고 있던 분노를 표출하고 복수한다. 화가가 성서의 인물에 자신의 얼굴을 대입하는 경우는 여럿 있지만, 여성화가가 증오와 살의를 표출하는 표정의 얼굴을 대입하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저 그림의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이 타시를 닮았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즉 그녀의 복수는 1600년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저 그림이 보임으로 현재 진행형이 된다. 자신이 증오하는 이를 그림으로 살해함으로 그녀는 완벽한 복수를 보여준다.

죄를 지은 자, 그리고 그 죄에 고통받은 자 모두 기억해야 하는 그림이다. 400년이 넘게 목이 베이는 타시와 목을 치는 젠틸레스키를…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변종목 bjmman123@mhns.co.kr 먹는 게 좋아 요리사가 된 평범한 주방 아저씨. 검·춤과 음악에 중독된 나름 낭만주의자, 60살까지 바짝 벌어 40년간 놀고먹는다는 원대한 꿈을 위해 살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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