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100% 이성모 프로듀서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성모 프로듀서가 연출, 배우, 스태프 앞에서 사죄를 했다. 저희도 그렇고, 제작팀 모두가 같이 분노했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배우 송용진은 밝은 표정과 어두운 표정이 공존해 있었다. 자신이 꼭 하고 싶었다는 작품을 연기한 신념에 대해선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했지만, 연극 '보도지침'을 놓고 벌어진 논란들에 대해선 책임을 통감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질문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 [단독인터뷰] 말의 힘 보여주겠다던 기대작 '보도지침'의 말실수…'홍보지침은 없었나?'

연극 '보도지침'은 1980년대 제5공화국 시절, 언론에 대한 정부의 통제방식을 폭로한 김주언 기자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새롭게 각색된 부분도 있으나, 당시 언론계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던 권력의 하부구조와 소통, 성장의 과정은 사실스럽게 묘사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지 장기영 기자는 "'보도지침'은 하기 어려운 말을, 하기 어려운 시공간 속에서 꿋꿋하게 해내고 있는 용기 있는 연극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며 "연극은 1980년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꾸며졌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결코 1980년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본인들이 직접 나서서 한다는 것은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밝혔다.
 

   
▲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 ⓒ 벨라뮤즈

그러나 관객들은 이 작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작품을 관람한 '20대 여성' 관객 A씨는 "좋은 작품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성모 프로듀서의 '여성 폄하' 발언이 머릿속에 남아 혼란스러웠다"며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퇴색되어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이 지점에 대해 김주언 기자를 각색한 인물 '김주혁' 기자를 연기한 송용진은 "지금 오시는 분들이 찝찝한 기분으로 작품을 보게 되는 것에 마음 아프고 죄송한 마음이 매번 든다"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송용진 배우는 이 작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연극 '보도지침'이 주는 힘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 송용진은 "1980년대 언론자유가 거의 없던 세상인데,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대놓고 하지 못할 뿐이지, 마찬가지라고 본다"며 "배우가 이 세상에 무언가를 이바지할 방법이 있을 거라 보며, 작품 선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과연 송용진 배우가 말하고자 한 작품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영상으로 인사말을 확인해본다.

올해의 모든 계획을 '보도지침'을 중심으로 짰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ㄴ 작년 초에 대본 초고를 받은 후, 이야기를 들을 때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재 인물인 김주언 기자의 마지막 법정 진술 중 "자신의 딸을 위해 '보도지침'을 폭로했고, 내 딸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내용이 있다. 당시 내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단순하게 SNS로 쓰는 것보다 내 직업으로 세상을 바꾸는 메시지를 전한다면 미약하게나마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1980년대 언론자유가 거의 없던 세상인데,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대놓고 하지 못할 뿐이지, 마찬가지라고 본다. 배우가 이 세상에 무언가를 이바지할 방법이 있을 거라 보며, 작품 선택을 하게 됐다. 요즘 캐스팅 제안이 1년 전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먼저 선택한 후, 겹치는 작품은 선택하지 않고 앞뒤로 다른 작품을 출연하게 됐다.

이 작품이 2016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작품이고, 기대도 커서 최선을 다했다. 작품적인 면에선 후회도 없다. 연출, 배우, 작가가 다 똘똘 뭉쳤다. 극단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데 작가나 연출이 우리 작품이 외부 프로덕션이 아니라 극단 작업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열과 성을 다해 만든 것이라 그 결과물에 대해 만족스럽다.
 

   
 

실존 배경 인물인 김주언 기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
ㄴ 선생님이 연습실로 찾아오신 적이 있다. 오시기 전에 '어떤 분일까?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의 분이실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배우 생활을 하며 많은 기자를 만났다. 어느 정도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는데 각자 다 개성이 다르다.

김주언 기자의 인상 깊은 사진이 있었다. 심각한 분위기의 법정에서 웃고 계신 사진이었다. 그래서 연습실에서 "어떻게 법정에서 그렇게 여유로웠을 수 있는가?"를 여쭤봤다. 김주언 기자는 "우리를 응원해주는 일반 시민,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 사람들이 많았다"며 "두렵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스테레오 타입이 될지 모르겠지만, 가장 멋있는 정의로운 인물, 정의를 외치는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법정에서 쫄지 않는, 정의의 아이콘으로 하게 됐다.

배우와 기자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ㄴ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바라보는 것이 있다. 기자들은 펜으로 세상을 말한다면, 배우들은 연기로 세상을 말한다. 연기를 위해 인간의 본질을 배우면, 동시에 사회를 배우게 된다. 연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그래서 배우들은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여러 서적이 작품에 등장한다.
ㄴ 대학 시절로 돌아갈 때 나오는 책은 작가나 연출가가 골라왔다. 브레히트의 책도 그렇고, 김지하 시인의 '오적'도 그렇다. 이 작품은 사회만 비판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판하기도 한다. 연극도 비판하는데, 연극을 하는 분도 느낄 것이다. 권위적인 운동권 학생층도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을 보여주면서 비판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그래서 그러한 작품들을 생각하고 골라온 것 같다.
 

   
▲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 ⓒ 벨라뮤즈

첫 공연을 봤는데, 작품의 중반에 엄청난 로봇 춤을 춘다. 어떻게 된 것인가?
ㄴ 첫 공연 이후 그 장면이 잘렸다. (웃음) 연출님께서 더 막춤을 추라고 했다. 그래서 그 이후엔 더 막춤을 추게 됐다.

'김주혁' 기자가 마지막에 혼자 남아서 "몰라서 묻나?"라고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ㄴ 판사 역할인 '박원달'의 마지막 독백을 들으면, 거의 80% 이상 사람들이 '원달'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자기 삶을 위해 균형을 지키려는 사람이다. "몰라서 묻나?"는 '원달'뿐 아니라 '회색분자'(편집자 주 : 소속, 정치적 노선, 사상적 경향 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인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정의와 용기의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는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연극은 마지막 '최후 독백'을 위한 작품이다. 대본을 받고 아내와 이야기할 때, "이건 완전 연기 대결이 되겠다"고 했다. 이 독백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배우의 연기 내공이 다 드러나겠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첫 공연과 다르게 공연의 러닝타임 문제로 살짝 줄여졌다.

내가 하는 독백은 김주언 기자가 실제 법정 기록에서 가져온 것과 90% 이상 똑같다. 어미만 자연스럽게 바뀌었을 뿐이지 거의 같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의 독백은 극적인데, 내 대사는 덜 극적이다. 이 독백을 극적이게 표현 해야 해서 힘들었다. 김주언 기자가 강단 있고 대단한 분이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뮤지컬 '헤드윅: 뉴 메이크업'이 공연 중이다. 팬 중엔 이번 공연에 '쏭드윅'이 출연하지 않아 아쉽다고 말한 이들도 있다.
ㄴ '헤드윅'은 이제 364회 했다. 정말 많이 했다. '헤드윅'을 더 하고 싶다는 미련은 크게 없다. 언젠가 좀 더 나이를 먹고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이번 버전은 대극장으로 크기가 커졌고, 설정은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그래서 큰 메리트가 없었다. 올해는 연극을 많이 하고 싶었다. 전에 한 작품도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인데, 뒤 스케쥴도 연극이 꽤 있다. 물론 '마마 돈 크라이' 뮤지컬도 있지만, 최대한 연극 무대에 서보고 싶다.
 

   
 

연극을 더 많이 서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ㄴ 내가 뮤지컬을 한 지, 햇수로 17~18년 됐다. 중간중간 연극 경력을 쌓으면서, 연극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연기를 진중하게 하려면, 뮤지컬보다 긴 호흡의 연극 연기가 더 좋아서, 연기를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다. 나이를 먹어 40대가 되니, 연기의 깊이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뮤지컬이 아닌 연극 무대에 서게 됐다. 연극을 하다 뮤지컬로 돌아가면 또 깊이가 달라져 있지 않을까 싶다. 좀 더 나이에 맞는 깊이 있는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또한, 배우가 작품을 잘 고르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렵더라도 도전하고 싶은 작품을 하려고 한다.

5월 1일부터 개막하는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연습을 하다가 인터뷰 장소에 왔다. '보도지침'과 동시에 작품 연습을 하는데, '상투적 표현'이지만 부담감은 없나?

ㄴ 다행히 '보도지침'을 끝내고 합류를 한다. 연습을 미리 하면서, 이번엔 '마마 돈 크라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더 깊이 있게 잘하고 싶다. 그동안 3번이나 했는데, '마마 돈 크라이'가 좋은 것은 소재 자체가 특이하기 때문이다.

천재 과학자가 사랑을 얻기 위해, 타임머신을 만들어 인류 역사상 가장 매력 있는 남자인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러 간다. 그 사람을 만나 '뱀파이어'가 되어 돌아간다는 것인데, 이 소재 자체가 매력 있고 뮤지컬에서 잘 없는 소재들이다. 잘 엮은 것 같다. 여러 차례 공연을 통해 작품이 발전했고, 안정되어왔다고 본다.

여기에 여배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절절한 로맨스가 있어서 관객 여러분이 참 좋아하신 것 같다. 그래서 노력하고 캐릭터도 잘 살려보려고 한다. 배우들은 힘들지만, 보시는 분들은 재밌게 보도록 하겠다. (웃음)
 

   
 

이제 오늘 자리에서 꼭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첫 공연 이후 이성모 프로듀서의 부적절한 발언이 논란이 되며, '예매 취소' 등 보이콧 사태가 등장했다. 이에 대한 송용진 배우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다.
ㄴ 100% 우리 프로듀서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잘못했다. 이성모 프로듀서가 공연 전에 연출, 배우, 스태프 앞에서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저희도 그렇고, 제작팀 모두가 같이 분노했다. 내부에서도 힘들고 답답했다.

배우들끼리 "우리가 이 작품의 힘을 믿자"고 했다. 마음을 돌리신 관객분들을 붙잡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연기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초심을 끝까지 잃지 말고 용기 있게 하다 보면, 작품의 힘을 보시고 관객분들이 언젠가 찾아주시지 않겠냐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고 있다.

나 역시 프로덕션의 한 사람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사죄하는 마음은 열심히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퀄리티로 끝까지 하는 것이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테니, 언젠가 노여움이 풀리신다면 한 번쯤 봐주셨으면 좋겠다. 이대로 무너지기엔 아쉬운 작품이다. 사실 많은 배우가 다 손해될 것을 각오하고 참여한 작품이다. 희생을 감수해서 참여한 건데 불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만들고 있다.
 

   
 

첫 공연 당시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ㄴ '우리가 이 극장을 꽉 채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첫 공연 끝나고 오세혁 작가가 너무나 감격했었고, 김주언 선생님도 잘 보셨다고 했다. 우리가 연습실에서 흘린 땀이 빛을 발한 것 같았다. 무대에서 이 작품이 힘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자마자 밤에 이 상황을 알게 됐다. 대학에서도 공연 관련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나는 제일 중요한 게 '관객'이라고 가르친다. 드라마나 영화는 매체나 필름을 통해 기록이 되지만, 무대예술은 매체가 아니라 같이 호흡하고 공유하는 관객의 머릿속에만 있으므로, 관객이 없는 공연은 공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유할 사람이 없다면, 공연은 없으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관객 여러분의 힘이 세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관객분들의 리액션이 재밌어질수록 더 즐겁게 보는 공연인데, 지금 오시는 분들이 찝찝한 기분으로 작품을 보게 되는 것에 마음 아프고 죄송한 마음이 매번 든다. 그래서 매일 공연 전에 하는 이야기로, 객석에 관객분들이 많지 않더라도 항상 힘있게 끝까지 하자고 말한다. 그러면 언젠가 진심이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글]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사진·영상]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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