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서울연극인대상' 극작상 수상자, 오세혁 작·연출을 만나다

   
 
[문화뉴스] "의미가 있어야 한다. 거창하거나 폭넓은 의미가 아니다. 이 시대에 왜 이걸 써야 할까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찾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오세혁 '작가'가 쓴 작품을 살펴보면 '시대를 의식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지난 4월에 열린 제3회 서울연극인대상에서 그에게 각본상을 안겨준 '지상 최후의 농담'은 제주 4.3 사건 당시, 진압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 여수 14연대의 모습을 모티브로 했다. 6명의 포로가 죽음을 앞두고 농담을 하는 것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 공포와 웃음, 비극과 희극 등 양면의 아이러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또한, 12일까지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보도지침'은 1980년대 제5공화국 시절, 언론에 대한 정부의 보도 통제방식을 폭로한 김주언 기자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보도지침'은 당시 언론계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던 권력의 하부구조와 소통, 성장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화가 1980년대를 뛰어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케 해줬다.
 
   
▲ 제3회 서울연극인대상 시상식에서 오세혁 작가가 소감을 남기고 있다. ⓒ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그러나 단순히 오세혁을 '작가'로만 규정짓는 것은 그의 일부만을 살펴보는 것이다. 오세혁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하자!'와 '우리의 공연이 필요하면 어디든 간다!'라는 목표로 2005년 안산에서 터를 잡은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이하 극단 걸판)의 창단 멤버이자, 현재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극단 걸판에서 극작, 연출, 심지어 배우로도 활동한 바 있는 '연극인' 오세혁은 위에 언급한 작품 외에 '홀연했던 사나이', '아름다운 동행',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너를 지켜줄게', '레드 채플린', '우주인', 'B성년', '30만원의 기적', '게릴라 씨어터', '페스트', '분노의 포도' 등을 쓰거나, 지휘하거나, 연기했다.
 
또한, '연극인' 오세혁은 '10분 연극'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한·중·일 연극인 화합의 장인 '베세토 연극제'를 위해 일본 공연 합동 연출을 준비 중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한 그를 대학로에 있는 문화뉴스 사무실로 초대했다. 근황과 더불어 그가 최근에 발표한 작품, '10분 연극' 운동, 글쓰기 철학, 극단 걸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영상 메시지를 확인한다.
 
 

 

 

요즘 근황을 듣고 싶다.
ㄴ 이것저것 많이 하고 있다. 극단 걸판과 관련된 작업 매일 하고 있다. 외부 작업도 매일 하고 있는데, 최근엔 일본도 다녀오고 했다.
 
본인의 이름을 좀 더 대중에게 많이 알린 계기는 최근 공연 중인 '보도지침'이었다. 작품을 쓴 계기는 무엇이었나?
ㄴ 변정주 연출님은 페이스북 친구였기만 했고, 뵌 적은 별로 없었다. 활동하시는 모습이나 그간 써놓은 작품들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아서 페이스북 친구로 서로 많이 눌러주고 했다. 어느 날 메시지가 왔다. '보도지침'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약간 취해있을 때라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사건을 검색해보니 이게 '살벌한 사건'이었다. 말을 내뱉었으니 하겠다고 했는데, 정말 작품을 하길 잘한 것 같다.

그러나 '보도지침'은 공연 첫날 불미스러운 발언으로 위기를 맞이했다. (▶ 관련 기사 보러 가기)
ㄴ 공연 첫날, 낮 공연을 보게 됐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 극단의 관객들과 작은 소극장에서 한 적은 있었지만, 수현재씨어터라는 좋은 극장에서 많은 관객과 한 적은 없었다. '보도지침'과 같은 역사를 다룬 좋은 극장에서 할 때, 많은 관객이 찾아와서 같이 좋아하면서 볼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 떨렸다.
 
많은 관객이 와서 큰 감동을 했고, 이 이야기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어서 기뻤다. 잘됐다 하고 우리 극단의 '늙은 소년들의 왕국'이 대학로에서 저녁 공연을 해 기분 좋게 보러 갔는데, 그런 잘못이 벌어지고 있었다.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며칠 동안, 화가 났다.
 
시간이 지나니 내가 만약 이런 프로덕션에 오래 있었다면, 나는 거기서 떳떳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내 무의식중에서 나왔다. 나 또한 이 작품의 팀원으로 무게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작품은 말의 힘에 관한 이야기다. 한 번 뱉은 말은 역사에 남는데, 역사에서 뱉어진 말들이 이후에 벌어지지 않도록 앞으로 열심히 공연하려 한다.
 
   
▲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 ⓒ 벨라뮤즈
 
 
'보도지침' 작품엔 여성 배우는 '멀티역'으로 한 명만이 등장한다. 그리고 배역 중 하나로 자주적인 위치에 있는 연극동아리 여자 선배는 결국 모든 희망이나 바람을 남성 후배 혹은 선배에게로 향한다. 이렇게 캐릭터를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ㄴ 극단 걸판 작품의 초기엔 남자 주인공들이 많았다. 생기고 7년이 넘어서야 여성 주인공 작품이 많이 등장했다. '분노의 포도'도 그렇고, 마당극으로 일제강점기 평양 고무농장 출신 여성 노동자가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 농성을 한 이야기도 그랬다. 멕시코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를 한다면,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보도지침'은 실제 사건 당사자가 남성이었다. 사실 원래 '보도지침' 대본엔 멀티 역할들이 모두 없었다. 대본을 쓰다가 남자, 여자 멀티 역할을 넣었고, 남자 멀티역은 부정적으로, 여자 멀티역은 낙천적이면서 긍정적이고, 전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넣으려 했다. 대본 초고엔 연극동아리 여자 선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교수님에게 나가겠다고 말도 하는데, 주인공에 대한 시선이 모이는 것이 어려워질까 봐 바뀐 것이 있다. 극의 전개와 사건의 집중을 위해 편집된 부분이다.
 
여성 캐릭터는 상당히 소중하고, 좀 더 잘 담아내고 싶었다. 오는 12월에 이태원 뮤지컬 프로젝트를 할 예정인데, 그땐 여성 배우 4명이 주인공이고, 남성 배우 2명이 멀티역으로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작품에 따라 주인공은 변할 수 있다.
 
최근 서울시극단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인 '템페스트'와 '헨리 4세'를 각색했다. 김광보 단장은 작가를 '오구라'라고 칭찬을 했다. 두 작품의 각색은 어떤 방향으로 하고 싶었나?
ㄴ '템페스트'는 같이 작업을 많이 했던 김한내 연출님께 제안을 받아서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 제작일정이 더뎌지면서 각색을 짧은 시간에 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다행히 연출님의 스타일을 알다 보니 잘 된 것 같다. 기분이 좋은 것은 '템페스트'가 끝나고 나서,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님이 '헨리 4세'의 작업이 준비 중인데 연락이 온 것이었다.
 
김광보 연출은 작업을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누구나 작업을 하고 싶은 분인데, 제안이 와서 기분이 좋았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내년 가족음악극 '십이야'를 할 예정인데 이번에도 본의 아니게 같이 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템페스트'는 온 가족이 봐야해서 무조건 쉽고 재밌으면서도 할 말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 '헨리 4세'는 김광보 단장님의 초연 당시에 구성한 대본이 있었다. 본인이 주제에 맞게 선택을 잘한 것을 다듬은 후, 내가 할 말을 슬쩍 넣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 지난 1월, 음악극 '템페스트' 프레스콜 모습. 오세혁 작가가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하는 대목에 대해 답하고 있다.

 

'템페스트'에 등장하는 '곤잘로'의 대사 중 "멋지다! 왕이 백성을 버리지 않고, 선장이 승객들을 버리지 않고, 요리사가 요리재료를 버리지 않는 세상!"이 있다. 세월호 참사와 연관되는 대사였다.
ㄴ 내가 활동하는 극단 걸판이 단원고등학교가 있는 경기도 안산에 있다 보니, 이 말이 이상할 수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써지는 것이 있다. 의도적으로 "이걸 해야지"가 아니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앙금을 남긴 것이 세월호 참사였다.
 
'보도지침'에도 그런 내용이 직접 없지만 그런 내용이 있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헨리 4세'를 보고 그런 말을 하신 분이 있다. '헨리 4세'에서 '핫스퍼'가 "젊은이가 희생을 당해야 하나"라는 말이 있고, '보도지침'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이유도 없는 죽임을 당해야 했나"라는 대사가 있다. 한 번도 그 사건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없지만, 안산에 있는 극단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고, 평생 잘못을 가져가겠다는 것을 담게 됐다. 막 나서진 않더라도, 내 어깨 위에 계속 있을 것 같다.
 
여러 작품을 지금까지 써왔는데,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한 작품은?
ㄴ 홍상수 감독의 명언을 떠오르고 싶다. 홍상수 감독은 "최신작이 최고작"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보도지침'은 내가 가장 최근에 쓴 작품이다. 글을 쓰면서 내가 쌓여온 것과 성장한 것을 보여줬으니, 가장 충실하게 썼다는 생각이다.
 
   
 
 
 
지난 5월 18일 광주에서 '페스트'를 공연했다. 어떤 작품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ㄴ 작년 2월, '산울림 고전극장'을 통해 연출한 작품이다. 산울림 소극장에서 열리는 '산울림 고전극장'은 좋은 의미의 페스티벌이다. 평소에 알고는 있지만, 읽어보지 못하는 작품들을 지금 이 시대에 소개한다. 좋은 기회로 참여하게 됐다.
 
알베르 카뮈의 작품인데, 지금 '페스트'는 여름에 공연될 뮤지컬을 통해서 좀 더 연관 검색어로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웃음) '페스트'를 각색하고 연출하게 된 이유는, 어떤 재난이 벌어지고 난 이후에 변화되는 사람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페스트'가 한 번 찾아오는데, '페스트'가 어떻게 퍼지고 됐는지는 없다. '페스트'로 인해 사람이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이 재밌었다.
 
도망가는 사람, 싸우는 사람, 이걸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 계엄령을 선포해 활동가를 잡아들이는 정권의 이야기 등이 있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재난이 찾아온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재난에 대한 대처방법을 말하고 싶었다. 천재인지, 인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난이 정기적으로 많이 온다. 대처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페스트'는 관객분들이 좋아하신 공연이었다. 부산에서도 공연했는데, 서울 공연을 보신 분들이 부산까지 내려오시기도 했다. 광주에 있는 푸른연극마을 극단이 운영하는 씨어터 연바람 측에서 "5.18 기간에 꼭 너희를 부르고 싶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간엔 온갖 곳에서 행사를 한다. 그래서 여기서 공연을 한다고 해도 몇 명이 올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한 명이 오더라도, 관객들에게 '페스트'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감동해 무조건 한다고 답했고, 관객분들도 많이 오셨다.
 
   
▲ '수현재 10분 극장'을 앞두고 오세혁 작·연출이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5월 20일 열린 '수현재 10분 극장'의 첫 작품으로 본인이 쓴 작품 '사랑은 가루를 싣고'가 공연됐고, '정리'를 연출했다. 이번 기획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ㄴ 극단 여행자의 이대웅 연출, 극단 청년단의 민새롬 연출, 극단 서울괴담의 유영봉 연출, 극단 엔드씨어터의 전윤환 연출 등이 10분 연극 운동을 하고 있었다. 전윤환 연출이 영어를 해서, 마크 하비 레빈의 10분 희곡 라이센스를 가져와서 공연할 기회도 됐다. 미국엔 10분 연극 협회도 있고, 10분 연극 작품 책도 나오고 있다.
 
카페, 공원, 로비, 이런 데에서 다 공연이 된다. 갈수록 대한민국에 극장은 사라지는데, 카페는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 카페에서 공연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10분 희곡을 열심히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했다. 그래서 웹진 연극인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10분 희곡 릴레이 코너를 만들었다. 10분 희곡 투고를 하면, 무조건 실어주고, 연극센터에서 공연도 한다. 그러한 10분 연극이 벌써 50편이 넘었고, 희곡집도 2편 나왔고, 일본 도쿄에서도 공연이 됐다.
 
이렇게 10분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서 펼치고 싶었는데,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보도지침'을 할 때, 수현재씨어터 프로듀서를 만났다. "수현재씨어터 7층에 옥상정원이 있어서 활용하고 싶고, 10분 연극도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해서 우리가 하겠다고 했다. 뭐가 되든 한 번 해보자 해서 바로 공연하게 됐다. 장비도 수현재씨어터에서 빌려주셨다. 현재 두 편이 공연됐고, 이달부터 매주 금요일에 선보일 것 같다. 주변 젊은 연극인이 도전한다면, 옥상에서 더 긴 공연도 할 수 있을 텐데, '햄릿'을 해도 멋질 것이다.
 
   
▲ 연극 '정리'의 한 장면.
 
 
10분 희곡의 매력은?
ㄴ 아직 우리나라에선 갈 길이 멀다. 10분 희곡의 역사는 미국이 긴데, 작품이 많이 쌓여 있어서 재미난 게 있다. 신혼부부가 침대서 일어난 후 대사가 있는데, 공책이 대본이어서 부부가 할 말이 다 적혀 있다. "당신, 무슨 말이야?"나 "밥 먹을 거야"라는 대사는 공책을 볼지 안 볼 지로 정해진다. 이런 것도 있다. 커플이 포츈 쿠키를 열었는데, 남자가 열면 당신은 살해당할 것이라는 글귀가 계속 나온다. 여자가 열면 다른 글귀가 나온다. 그래서 시작부터 빠져들게 한다.
 
장소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옥상, 분장실, 공원 등 보는 관객이나 연기하는 배우나 서로 부담이 없다. 요즘 작가로 인정을 받으려면, 신춘문예 말곤 거의 없다. A4로 한 20장을 써야 하는데, 10분 희곡은 A4로 2~3장이면 된다. 이게 쌓이면 더 긴 작품이 될 수 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중에 10%는 10분 연극을 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다. 
 
많은 작품을 쓰고 있는데, 집필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가?
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얻는다. 뿌듯한 것이 내가 놀라운 상상력이나 문체는 없지만, 기억력이 좋다. 어렸을 때부터 겪은 일을 다 기억한다. 몇 년이 지나면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있다. 재미난 장면이나 인상 깊은 사건이 있으면 다 기억했다가 무엇을 쓸까 하면 쓰게 된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만화책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다. 방금도 만화책방에서 만화책을 읽다가 인터뷰하러 왔다. 화법이 만화에서 온 것이 많다.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어떤 만화를 추천하고 싶나?
ㄴ 최근에 본 것 중에 '히스토리에'라는 만화가 있다. '기생수' 작가인 이와아키 히토시가 그린 것인데, '알렉산더 대왕'의 궁정 서기관 '에우메네스'의 이야기인데 엄청난 것이 있다. 내 성격이 밝은 걸 좋아하는 편이라, 보통 반대를 접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아까 전엔 어떤 작품을 읽고 왔나?) 데즈카 오사무의 'MW(뮤)'를 봤다. 끝내줬다.
 
   
 
 
 
작품을 쓰면서 개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ㄴ 의미가 있어야 한다. 거창하거나 폭넓은 의미가 아니다. 이 시대에 왜 이걸 써야하지라는 그 의미를 스스로 찾는다. 연극을 하는 사람은 시간이 비교적 자유롭다. 글을 쓰다가 낮술을 마시고 잘 수도 있다. 반면 관객들은 일하는 시간에 작은 틈을 내는 시간을 바쳐서 찾아오는데, 어떤 의미를 줘야 한다. 가치, 즐거움, 흥분, 용기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를 스스로나 관객분들 모두에게 다 드려야 한다. 두 번째는 재미다. 나한테도 관객분들한테도 해당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다.

작품을 쓰는 것과 연출을 하는 것의 차이는?
ㄴ 사실 작가는 제일 자유로운 존재다. 혼자 쓰면 된다. 종종 배우와 이야기도 하는데, 자기 생각을 온전히 해서 마음껏 써볼 수 있기도 하다. 연출은 그 그릇이 중요한 것 같다. 배우나 스태프들과 밥도 같이 잘 먹고, 술도 잘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는 등 믿음이 생겨야 한다. 자기 그림으로 이것저것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스태프나 배우를 포용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내가 연출하는 게 맞겠느냐라는 생각도 했다. 
 
연출이 가장 최후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 모든 스태프나 배우가 존중하지만 가까워지기 힘들 때도 있다. 내가 연출을 하면 이상하게 그런 게 있었다. 그들은 존중하지만, 많이 친하지 못한 경우다. 술자리 테이블에서 내가 오른쪽 끝에 가면 다른 이들은 반대쪽 끝에 가는데, 나는 그런 걸 감당해야 한다고 본다. 연출이니까 내 색깔을 보여줘야 할 때도 있다.
 
그게 아니면 화를 냈는데 요즘엔 그림을 만들고 싶지 않고, 욕심이 생긴 것이 배우들에게 독백을 길게 주는 것이 있다. 존경하는 박근형 연출 선생님도 배우들에게 독백을 하나씩 준다고 한다. 그러면 배우들이 발전하고, 빛이 난다고 했다. 예전엔 이렇게 저렇게 합을 맞추고 했는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 ⓒ 벨라뮤즈
 
 
그래서 '보도지침'의 마지막 부분 독백이 인상적이었다.
ㄴ 원래는 길지가 않았다. 배우들이 처음 모였을 때가 생각난다. 엄청난 배우들이 있다. 뮤지컬배우도 있고, 상업 연극을 많이 했던 배우도 있고, 장용철 형님처럼 소극장을 지킨 배우도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 배우들이라면 말을 얼마든지 길게 써도 되겠다 싶었다. A4 용지 반 장 분량이 한 장 넘어가고, 두 장이 넘어가기도 했다.
 
연출님께서 많이 줄이시긴 했지만, 이 배우들이라면 하고 싶은 말을 막 던져도 다 소화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송용진, 김준원, 김대현, 안재영, 이명행, 김주완, 이시후, 장용철, 이승기, 에녹, 최대훈, 김대곤, 강기둥, 이봉련, 박민정 등 배우들이 관객에게 하는 말은 다 믿음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꼭 다 적어 달라. (웃음)
 
극단 걸판이 2005년 생겨서 이제 11년 차를 맞이했다. 당시 초심은 무엇이었고, 지금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ㄴ 2005년엔 아무 생각 없이 창단을 같이했다. 2000년에 대학에 들어왔는데, 점수를 맞춰서 들어온 것이라 뭘 하며 살아야지 했다. 어느 날 낮에 잔디에서 선배가 술을 마시는데, 장구와 꽹과리를 동시에 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알고 보니 대학 풍물 동아리였다. 동아리 활동하면서 장구를 치고, 민요도 배우고 했다. 그 선배들이 어느 날 과천에서 열린 마당극 축제로 데려갔다.
 
박철민 선배님이 나오는 '대한민국 김철식'을 보며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했다. 학교를 거의 그만두고, 연극과 마당극만 보러 갔다. 군대 다녀와선 대학 동아리 선배들과 극단 걸판을 만들어, 열심히 뜨겁게 살아왔다. 그때는 최대한 공연을 한 번 더 하는 게 목표였고 즐거움이었다. 이제는 피곤해지는 나 자신을 봐서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다시 초심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걸판 창단했을 땐 5명으로 출발했는데, 이젠 30명이다. 목표는 그 30명이 빛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선생님처럼 그릇이 크고, 능력이 되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 중이다. 여기에 최현미, 우현용, 이빛나 등 다양한 배우들이 빛나는 것이 목표다.
 
   
 
 
 
지난달 안산문화재단의 신규 상주예술단체로 선정됐다.
ㄴ 기분이 너무 좋은 게 2005년 안산에 터를 잡고, 올해로 11년째가 됐다. 안산에 간 이유는 우연의 일치다. 대학을 안산에 다녀서였다. 11년 동안 안산이 좋아졌다. 안산문화재단,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안산국제거리극축제 등이 있는데, 안산에서 예술 담당하시는 프로듀서분들이 마인드가 상당히 좋다. 그래서 안산에 뼈를 묻을 생각이다. 2014년 4월 이후엔 몸만 안산에 있지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그 이후엔 안산에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안산문화재단에서 도쿄 극단과 교류 사업하고, 신작도 만들고, 어린이극단도 만들고, 청소년 10분 연극도 하는 등 많은 것을 할 계획이다.
 
'안산X도쿄 10분 연극전' 참석을 위해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줬나?
ㄴ 상당히 좋아하셨다. 한국 배우들이 눈치도 안 보고 거침없어서 좋았다. 일본 관객분들은 한국과 달리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신다. 공연을 보는데 약간 별로다 싶으면 팔짱 끼고 뒤로 젖히면서 보다가, 재밌으시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앞쪽으로 숙이신다. 내색도 하지 않다가, 끝날 땐 그 박수가 다르다.
 
공연할 땐 조용히 보시길래 "뭐지?"했는데, 잘 보신 거셨다. 그게 좋았다. 질문을 많이 하셨다. 일본 공연 관극 문화에 그런 게 있었다. 과자 같은 것도 배우들에게 선물로 주는 문화가 있었다. 영세한 극단이라 도움도 많이 받았다. 페이스북 일본 친구분들도 공연 많이 봐주셨는데, 요코하마나 이바라키에서 도쿄까지 와서 공연을 보시기도 했다.
 
 
   
▲ 오세혁 작·연출은 오는 9월 '베세토 연극제'에서 '맥베스' 합동 연출을 할 예정이다. ⓒ 오세혁
 
'제23회 베세토 연극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
ㄴ 베세토(BeSeTo) 연극제가 한국, 중국, 일본의 연극인이 매해 교류를 하고, 주최를 번갈아가면서 하는 페스티벌이다. 베이징(Beijing), 서울(Seoul), 도쿄(Tokyo)의 결합인데, 일본에선 올해 9월에 열린다. 공동작업으로 한국, 중국, 일본의 젊은 연극인 연출가가 3분의 1씩 맡아서 '멕베스'를 연출한다. 한국에선 내가 가게 됐다.
 
9월에 같이 합숙을 하면서 만들게 되는데, 연출과 배우들이 같이 인사하고 워크숍을 하러 지난달 말에 다녀왔다. 일본의 돗토리 지역인데, 한적한 시골로 한국의 밀양연극촌 비슷한 버드씨어터가 있다. 웃긴 것이 돗토리 현이 '명탐정 코난' 작가인 아오야마 고쇼의 고향이라, 지역이 '명탐정 코난' 일색이다. 지역 공항 이름도 '코난' 공항이다. (웃음)
 
[글]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사진·영상]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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