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무대에 녹여낸 '노배우'들의 2016 상반기 활약상

   
tvN 1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 tvN

[문화뉴스] 얼마 전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종영됐다.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그리고 그 드라마를 꾸미는 배우들이 굵직한 연기 인생을 보여줬던 원로배우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우리는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슴 먹먹하면서도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를 기대하곤 했다.

그러나 그네들이 보여준 노년의 인생은 여유롭고 우아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사소함이 모이고 모여 어지럽고 거칠고 투박한 잔뼈들이 즐비한 이야기였다. 오직 노배우들만이 해낼 수 있는 걸쭉한 인생이야기가 담담하고 소박하게 그려졌다.

"경험 없는 내 자신이 조개껍질처럼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고, 온갖 세상일을 겪은 늙은 어른들이 거대하고 대단해보일 때가 있다"

박완(고현정 분)은 늙은 친구들을 곁에서 지켜본 젊은 친구다. 노인들의 드라마를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그 시선의 각도는 첫 회와 최종회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는 것. 완이가 성장하는 만큼,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바라보는 젊은 시청자들의 시선도 그만큼 성장해가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를 통해 '노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즈음, 2016년 상반기 결산 기사를 기획하며 연극계를 든든하게 장식해준 노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올 상반기 노배우들의 파워를 실감하게 해준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의 연기 인생은 무대에서 어떤 빛을 발했을까?

 

노배우, 자신의 이야기 : 연극 '장수상회', 연극 '아버지', '어머니'

 

   
지난 5월 5일부터 29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 연극 '장수상회' ⓒ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지난해 봄, 노년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극장에서 관객을 웃고 울렸던 강제규 감독의 영화 '장수상회'가 올해 5월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는 배우 박근형이 연기한 까칠한 노신사 '김성칠' 역을 배우 백일섭이 맡아 무대에 섰다. 백일섭은 '장수상회'를 통해 약 23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왔다. 더불어 배우 이호재, 김지숙, 양금석 등이 출연해 노년의 사랑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사랑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알기 힘들었던, 혹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던 노년의 사랑을 그리는 이 작품에 노배우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내고 있었다.

 

   
 

한편, 현재 국립극단은 두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리는 획기적인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그 두 작품은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를 담은 플로리앙 젤레르(Florian Zeller)의 대표작 '어머니(Le Mére, 2010)'와 '아버지(Le Pére, 2012)'다. 짧은 희곡이지만 노령화, 치매, 빈 둥지 증후군, 우울증 등 현대사회의 사회적, 심리적 병인들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독특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으로 충격과 감동을 선사한다. 연극 '아버지'에는 배우 박근형, 연극 '어머니'에는 배우 윤소정이 출연해 각자 '아버지'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겪어온 세월과 현재 겪고 있는 순간의 경험까지 고스란히 연기에 적용해 무대를 꾸며간다.

 

중견연극인창작집단의 연극 '바냐 아저씨'

   
지난 1월 27일부터 2월 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 연극 '바냐 아저씨' ⓒ SCN 엔터테인먼트

배우 기주봉, 김지숙, 곽동철, 고인배, 이재희, 이용녀, 이봉규 등 몇 십 년간 대학로를 지키며 활동해온 배우들이 한데 뭉쳐 만든 '중견연극인창작집단'이 2014년 극단 '전설'과의 합작 공연인 '현자나탄' 이후, 지난 1월 단독공연을 올렸다. 안톤 체홉의 4대 장막극 중 하나인 '바냐 아저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젊고 아름다운 옐레나 역부터 바냐, 아스뜨롭, 세례브랴꼬프 등 주요 배역을 중견연극인들이 직접 담당했다.

중견연극인들의 협동 효과는 대단했다. 젊은이들이 즐비한 대학로 거리에 중년 관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체홉의 '바냐 아저씨'는 블랙코미디 요소가 가미돼 웃음과 비극이 공존한 다채로운 무대가 되었다. 이번 연극은 중견연극인들이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그들만의 무대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중년의 관객들을 대학로에 발걸음을 이끌게 하는 선순환의 첫걸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원로배우와 연출가의 만남 : 원로연극제

 

   
지난 달 3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원로연극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하유상 작가, 오태석 연출, 김정옥 연출, 천승세 작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 달 3일부터 2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원로연극제'를 열었다. 한국 연극사의 거목인 김정옥(85), 오태석(77), 하유상(89), 천승세(78)의 작품이 다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김정옥의 '그 여자 억척어멈', 오태석의 '태(胎)', 하유상의 '딸들의 연인', 천승세의 '신궁'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연극제가 돋보였던 이유는, 연극계의 거장들을 도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이 연극 무대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특히나 연극 '태'를 풍요롭게 꾸며준 배우 오현경과 성지루, 손병호 등의 열연은 대단했다. 오태석 연출가 특유의 언어미학과 한국적 정서를 구현하는 데 최적화된 이 배우들은 다시 한 번 오태석의 명성과 극단 목화 출신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이 건사하고 있음을 증명해줬다.

 

무대를 장악하는 원로배우들 : 윤석화의 '마스터클래스', 주호성의 '빨간 피터'

   
지난 3월 10일부터 20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연극 '마스터 클래스' ⓒ 돌꽃컴퍼니

원로배우들의 무대장악력은 대단하다. 올해는 쟁쟁한 원로배우들이 자신의 연기 인생을 회고하며,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다. 대표적으로 배우생활 40주년을 맞이한 윤석화는 임영웅 연출가와 함께 지난 3월 '마스터 클래스'를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렸다. "꼭 잘돼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연극을 40년 동안 한 나 자신을 반추했다"는 윤석화는 '마리아 클라스'라는 역할을 통해 무대 위에서 40년 간 치열했던 배우인생을 돌아보고, 자신이 꿈꾸는 예술의 모습을 표현해내고 있었다.

 

   
지난 3월 23일부터 4월 3일까지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된 연극 '빨간 피터' ⓒ 후플러스

한편, 연극 '빨간 피터'는 프란츠 카프카의 1인칭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로 세계 각국의 많은 배우가 모노드라마로 공연한 유명한 작품이다. 지난 3월 배우 주호성은 13년만에 국내 연극 무대에 올랐다. 세계적으로 많은 배우가 배우로서 자신의 모습을 심판받기 위해 모노드라마로 많이 하고 있는 이 작품에 도전한 주호성은 출구를 잃은 모든 현대인들에게 원숭이가 되어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연극을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그는, 그렇게 꾸준히 도전하는 자세로 여전히 밀도 높은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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