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망원동 브라더스' 중 '삼동이' 역을 맡은 배우 황규인, 이형구 인터뷰

   
지난 1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에서 '삼동이' 역으로 출연 중이 (왼쪽부터) 배우 이형구, 황규인을 만났다

[문화뉴스] 유쾌하고 솔직한 연극, 그리고 진솔한 배우들.

사람냄새 나는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가 현재 서울 마포아트센터 플레이 맥에서 활발히 공연 중인 가운데, 극중에서 있는 척, 잘생긴 척, 아는 척하는 삼척동자 '삼동이' 역을 맡은 배우 황규인, 이형구를 지난 1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는 소설가 김호연의 동명 장편 소설을 극화한 작품이다. 8평짜리 옥탑방에서 함께 모여 살게 된 네 남자 오영준, 김부장, 싸부, 삼동이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중 삼동이는 고시원에 살고 있는 공시(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다. 그러나 그에게 숨겨진 과거가 있었다면?

연극에서는 삼동이의 과거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으나 삼동이 역을 맡은 황규인, 이형구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삼동이의 놀라운 반전 과거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실제로도 삼동이와 비슷한 모습을 꽤 갖고 있는 배우들이었다. 청년들의 달콤한 인생을 부정해버리는 혹독한 사회. 삼동이가 겪은 절망을 비슷하게라도 겪어보지 않은 청년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꿈을 가질 줄 알고, 뜨거운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이들은 여느 보통의 청년이라기엔 다소 특별해보였다. 그저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의 일상과 연기 이야기. 아래에서 두 배우의 진솔한 입담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배우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출신이라고 들었다.

ㄴ 황규인 배우 : 나는 아니다. 세종대 출신이다. 언제부턴가 박(배우 윤박)이와 형구와 함께 '한예종 출신'으로 불렸다. 학벌 세탁하려고 한 건 아니다(웃음).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듯하다. 박이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동네 친구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김호연의 동명 소설을 연극화한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은 읽었는지.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ㄴ 황규인 : 공연 연습 들어가고 나서 책을 읽게 됐다. 원작이 장편 소설이라 연극에서 많이 단축시키다 보니, 연극에는 넣지 못한 각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가 원작에서는 보다 상세히 들어가 있다. 삼동이는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부자며, 삼동이는 서자다. 그래서 있는 척, 잘생긴 척, 아는 척하는 '삼척동자'가 된 거다. 원작 중에 삼동이가 형들과 바다에 가는 장면이 있다. 차가 없는 형들이 렌트할까 전전긍긍하니, 삼동이가 자기 소유의 차가 있음을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밝혀지는 사실이, 삼동이가 으리으리한 평창동 대궐 같은 집의 서자라는 것이었다. 형들과 삼동이가 바다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데……

ㄴ 이형구 배우 : 삼동이가 음주 운전을 했나?

ㄴ 황규인 :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웃음). 원작에는 여성인물이 선화, 주연 말고도 더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작품을 각색하다보니 두 인물로만 추리게 됐다. 연극도 초연에서는 여성이 일인다역을 했다가, 올해는 딱 두 명의 여성 인물만 등장하고 있다.

'지역문화센터'에서 공연한 적 있는지? 관객층이 아주 어린 학생부터 지역 중장년층까지 다양했다. 공연을 하는 사람으로서 일반 극장과의 차이점이 피부로 와 닿을 것 같다.

ㄴ 황규인 : 극장이야 원래 지역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지만, 대학로 안의 극장들도 모두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이번 극장이 불편한 것은 분장실이 밖에 나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마포구에서 오래 산 주민으로서 개선되어야 할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분장실이 극장 밖에 있는 복도에 칸막이만 쳐져 있다. 냉방이 아예 되지 않는다. 여름이라 너무 덥고 답답하다. 더구나 공연장 내 객석도 냉방이 그리 시원하지가 않다고 들었다.

좋은 점은, 연극이 망원동 옥탑방 한 여름 이야기인데 무대에 등장하기 전에 몸을 더운 상태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공연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배우들은 참아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관객들은 자기 돈을 주고 공연을 보러 오는 것인데, 편하게 관람할 환경을 조성해드려야 하는 게 마땅하다. 두 시간 가량 앉아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환경에 대해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ㄴ 이형구 : 공연장 특성 상 현장 관객이 없다. 동 떨어진 곳이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문화센터이기 때문에, 객석에는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먼 곳에서 우리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공연장 기온을 보다 쾌적하게 맞춰드려야 하지 않나 싶다.

 

 

   
 

삼동이는 옥탑방에 가장 늦게 합류하는 캐릭터다. 무대에 등장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그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는 편이다. 캐릭터의 전사를 구축할 때 어떤 것을 참고로 했는지.

ㄴ 이형구 : 사람의 어떤 성향은 유전이나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삼동이의 세 가지 척(있는 척, 잘생긴 척, 아는 척)하는 것도 그런 영향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내가 파악한 삼동이의 성향은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삼동이가 맨 처음 고시를 준비한 것도 본처의 아들이 고시를 준비했었는데 낙방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됐다. 고시를 패스하면 인정받을 것 같아서 도전했다가 안 되니까 공시(공무원 시험)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잘 안 된다. 모든 인간은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부와 명예를 얻고 싶어 한다. 삼동이라는 캐릭터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다.

삼동이는 오히려 숨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는 걸 숨기고 그러는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모르니까 튀어나오는 것 같다. 삼동이를 비롯한 '망원동 브라더스'의 등장인물들이 약간 결핍이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공감도 많이 되고 현실적인 극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너무 현실적이면 보기 불편할 수 있는데 '망원동 브라더스'는 그런 현실적 부분을 보다 아기자기하고 유쾌하게 만들어낸다.

 

 

   
 

극중 삼동이의 비중이 굉장히 작다. 불만은 없는지?

ㄴ 황규인 : 불만은 없지만 삼동이의 분량이 보다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ㄴ 이형구 : 나도 불만은 없다. 사실 개인적으로 레퍼토리화된 공연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초연부터 고착된 게 있기 때문이다. 선배들의 경험을 존중하지만, 고착화될수록 새로 맡는 배우들에게는 정해진 제약이나 제한이 많아진다. 그런데 이번 공연 팀은 다행히도 그런 게 별로 없었다. 삼동이의 비중이 작아진 것은 그동안 입지가 적은 배우들이 역을 맡다보니 이렇게까지 역할이 축소된 것은 아닌가 한다.

ㄴ 황규인 : 공연을 많이 보는 2, 30대의 현실을 대변하는 이들이 삼동이와 영준인데, 그들의 이야기가 그다지 많지 않고, 삼동이의 아픔이 크게 부각되지 않아 아쉬웠다.

ㄴ 이형구 : 주어진 상황과 텍스트에서 우리의 엄청난 전사를 보여주는 건 불가능하고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ㄴ 황규인 : 맞다 삼동이는 기능적 인물이다.

ㄴ 이형구 : 그래서 부끄럽지는 않지만 아쉽다.

삼동이는 시험에 떨어지고 난 이후 말없이 사라진다. 뭘 하다 왔을까?

ㄴ 황규인 : 삼동이와 나는 약간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 나는 아직 배우로서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또한 삼동이처럼 부자는 아니지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상태다. 그러면서도 삼동이처럼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한다. 주변 사람들이 '너 살만 하잖아'라고들 말하면 '그건 부모님 얘기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다.

내가 삼동이 상황에 처한다면 숙소를 잡고 하염없이 누워있을 것 같다. 펜션은 비싸니까 여관 가서 누워 있을 것 같다.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하염없이 2, 3일을 그렇게 지낼 것 같다. '왜 살고 있지' 등의 별 생각을 다 하다가 밖에 나올 거다. 그러면 치유가 하나도 안 된 상태일 거다. 그렇게 일주일정도 더 있다가 일상으로 돌아와서 사람을 만날 것 같다.

결국 삼동이도 멀리 여행을 다니지는 않았을 것 같고 조용한 데 박혀서 멍 때리고 있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치유를 하기 위해 일상으로 돌아올 것 같다. 진짜 가족 같은 형님들이 계시는 망원동 옥탑방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ㄴ 이형구 : 이형구라는 삼동이는 산에 가서 비박을 할 것 같다. 그래서 무대에 다시 등장할 때 모래도 묻히고 산에 갔다 왔다는 표시를 하고 싶은데 그런 걸 'too much'라고 한다(웃음). 의상과 모자 정도로만 산에 갔다 왔음을 표시한다. 나도 절대 본가에는 못 들어갔을 것 같다. 고시원에서 천장을 보며 지내다가 정신 차리고 나갔을 것 같다. 옥탑방에 돌아갈 힘도 없어 아무 데나 나가는 거다.

내가 2012년 1월에 전역했는데, 전역 전 말년 휴가 즈음에 개인적으로 엄청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인생관이 바뀔 정도로 말이다. 전역하고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대구에 내려갔다. 대구에는 할머니만 계신다. 거기서 시간을 보내다가 올라와서 일상과 똑같이 살았다. 삼동이도 비박하고 산에 갔다가 아무렇지 않게 돌아올 것 같다.

ㄴ 황규인 : 이형구 배우가 실제로 삼동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ㄴ 이형구 : 나는 약간 마이너 감성이 있다. 왜 멋있게 입고 다녀야 하는지, 왜 내가 스스로 마케팅을 해야 하고, 인맥 자랑하고 다녀야 하는지 모른다. 아까 내가 준면이(엑소 수호)와 친구라는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우리 나이 정도의 연기 전공한 사람 주변에 연예인 없으면 그게 이상하다. 당연히 나는 같은 학교를 나온 2, 30대 연예인들과 굉장히 친하게 지낸다. 그러나 말하고 다니고 싶지 않다.

 

 

   
 

극중 제일 매력적인 캐릭터는 누구인가?

ㄴ 이형구 : 김부장님과 싸부가 떠오른다. 4, 50대의 어른, 곧 아버지 세대의 애잔함이 잘 묻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가장 매력적인 것은 슈퍼할아버지다. 영재 선배(송영재 배우)의 슈퍼할아버지는 희노애락 모든 걸 다 보여주신다. 그런데 삼동이라는 캐릭터는 그게 어렵다.

ㄴ 황규인 : 나는 삼동이와 오영준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단, 현재 공연에서의 삼동이 말고 원작에서의 삼동이 말이다. 지금 나와 가장 맞닿아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내가 명확하게, 그리고 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에게 더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김부장, 싸부, 슈퍼할아버지도 모두 매력적이지만 그들은 내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그래서 내 또래의 남자배우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게 된다. 실제로 술 마실 때나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남자들끼리의 으쌰으쌰를 좋아한다. 내가 배려를 잘 못하는 스타일이라 여성들과의 모임이 어렵다. 편안한 대화를 좋아한다.

사람 냄새 나는 그곳에서 서로를 가족처럼 아끼는 '망원동 브라더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대하면 대할수록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렵다는 점을 발견하는 중이다. 배우들에게도 '○○○ 브라더스'라 부르며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주변인들이 있는지?

ㄴ 황규인 : 많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윤박 씨와 친해진 게 실제로 망원동에 살 때부터였는데, 당시 나는 친구들 집 돌아다니며 밖에서 놀자고 부르며 다니는 애였다. 가장 최근에는 볼링 모임을 하고 있다. 거기 윤박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이 참여하고 있고, 일반 회사에 다니시는 분도 있다. 그 분들과도 그런 관계다.

딱히 한 팀만 꼽기가 어렵다. 생각해보면 인간관계를 잘해놓은 것 같다. 그래서 여름에 휴가가기가 쉽다. 같이 가자고 하는 팀이 많기 때문이다. 여름은 휴가 다녀오기 위해 한두 달 정도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웃음).

그래도 현재 제일 '망원동 브라더스' 같은 분들은 실제 함께 공연하고 있는 분들이다. 공연하면서 선배님들과 정말 많이 친해졌다. 실제로 배우들끼리 평소에도 아쉬워서 함께 술을 마시곤 한다. 망원동 브라더스처럼 똑같이 논다. 연극에서의 배우들이 하는 얘기가 진짜 밖에서 하던 얘기를 애드리브로 하고 있는 거다. 이번 연극은 우리 팀의 일상이, 직업과 이름이 바뀌어서 그대로 올라간 것 같다. 지금 함께하는 동료, 선배들이 나의 브라더스다.

ㄴ 이형구 : 나는 규인이 형과 약간 달랐다. 사람을 잘 믿지 않고, 염세주의다. 이전의 한 계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라면 휴대폰에 '사랑하는 규인이형'이라고 저장했다면, 이제는 이름만 저장한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고 사회는 악하다고 생각한다.

한때 친한 동료 배우들을 다 빼앗긴 적이 있다. 내가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들을 원망할 수 없는 게 그분들도 그쪽으로 넘어가는 게 훨씬 이득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이번 공연의) 형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다. 이전에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를 일 년 반 넘게 공연했다. 그곳에 친한 선배, 좋아하는 선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6개월 동안 선배들에게 계속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형'이라고 부르질 못했었다. 그런데 여기 공연 팀은 금세 '형'이라고 부르게 됐다.

ㄴ 황규인 : 형구 말에 동의한다. 우리 팀에는 친근하게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분들이 많다.

ㄴ 이형구 : 형들이 인간적으로, 서슴없이 잘해주신다.

ㄴ 황규인 : 송영재 선배님한테도 가끔 '형'이라는 말이 입 밖에 튀어 나온다. 워낙 편하기도 하고 가족 같은 사이이기 때문이다. '형'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분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은 우리의 선생님이자, 선배님이기 때문에 오래된 존경심이 있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진심이 있다.

 

 

   
 

아직 이형구 배우의 '○○○ 브라더스' 얘기를 못 들은 것 같다(웃음).

ㄴ 이형구 : (웃음) 'AM7'이라고 술 마시지 않고 아침 7시까지 노는 그룹이 있다. 커피를 2차까지 간다. 그리고 이후 옵션이 볼링을 치느냐, PC방에 가느냐다. 그렇게 밤을 새고 나서 헤어질 때는 맥모닝을 먹는다. 취한 것도 아니고 다 멀쩡한데 맥모닝 먹으며 돌아간다(웃음). 그들이 내 '브라더스'다. 그런데 가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는다. '너 변했다, 뜨더니 변했다'고. 억울하다. 난 뜨지도 않았고 변하지도 않았다(웃음).

ㄴ 황규인 : 중학생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멀어진 적이 있다. 그 친구들이 어느 순간에 자꾸 나와 박이를 보면 '변했다'고 말했다. 20살 때부터 그 소리를 들었는데, 나는 변한 게 아니라 새로운 것에 눈이 가고, 시간도 그때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을 뿐이었는데, 모임에 나가면 친구들이 나를 계속 그런 식으로 핀잔을 줬다. 한 두 번이어야 참을 만한데, 취할 때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그게 싫었다. 너희들도 너희의 삶이 있듯이, 나도 내 삶이 있는데, 내 삶에 관여해 인성까지 컨트롤하려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공연을 쉬는 월요일에는 주로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ㄴ 황규인 : 형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 일을 돕거나 영화를 보러간다. 그리고 술을 워낙 좋아해서 일을 안 하면 거의 술 마시러 가는 편이다. 또한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도 한다. 촬영이나 공연이 없으면 거의 알바 아니면 음주라고 보시면 된다(웃음). 많이 취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좋은 음식에 곁들이는 술을 매우 좋아한다. 반주를 즐기는 타입. 술만 마시지는 않는다. 반면, 형구 씨는 예전에 술을 혐오하는 사람이었다(웃음),

ㄴ 이형구 : 형들과 공연하면서 '혐오' 대신 '주의'로 바뀌었다(웃음). 규인이 형, 윤박 형과 셋이서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한다. 형들이 요리를 잘하신다.

ㄴ 황규인 : 너무 더운 날, 30분 내에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박이와 나는 장을 보고 빨리 집에 와 먼저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형구가 올 때가 지났는데 안 오더라. 그러더니 나중에 와서는 숟가락만 딱 얹더라(웃음).

   
▲ 배우들이 인터뷰 후 직접 보내준 그때의 사진

이형구 배우의 쉬는 날은?

ㄴ 이형구 : 나는 쉬는 날엔 무조건 운동을 한다. 프로의 모습이라면 오늘(인터뷰 당일)도 운동을 하고 왔어야 하는데 오늘은 늦잠을 자고 말았다(웃음). 단순하게 산다. 연기할 때는 연기하고, 아닐 때는 운동, 커피, 영화 등을 즐긴다. 재미없게 사는 것 같다.

ㄴ 황규인 : 아니다. 충분히 재밌게 살고 있다.

ㄴ 이형구 : 사실 왜 내가 핫플레이스에 가야 되는지, 멋있는 옷을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왜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 삶이 소중한데 말이다. 어제도 그래서 공연 끝나고 나를 위한 선물을 했다. 두 편의 영화를 보는 것. '데몰리션'과 '제이슨본'을 봤다. '데몰리션'을 강력히 추천한다.

 

 

   
 

배우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ㄴ 황규인 : 옛날에는 목표가 많았는데 지금은 몇 개 없다. 지금의 목표를 솔직히 말하자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살 수 있을 정도의 페이를 버는 것이다. 유명해지는 것과는 별개다. 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벌고 싶다. 내가 고민하며 준비한 것을 거품 없이 보여주고 싶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내 것을 덜어내는 것 없이, 이 사회에서 내가 노력하는 만큼 정당한 페이를 받고 싶다. (배우 생활이) 앞으로도 정말 힘들 거라는 걸 안다. 한 단계 뛰어서 거품 있는 페이를 받게 될 때가 온다면, 나는 (거품을 덜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또 다른 목표는 내가 연출을 맡아 꾸린 영상, 무대, 조명의 팀의 공연을 올리고 싶다는 것이다. 연출 욕심도 있고, 모노드라마 욕심도 있다. 혼자 있을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좋은 영화, 공연 등을 보면서 '이런 것들을 내 공연에 올려야겠다'는 생각.

인간 황규인의 목표는 우리 할머니와 관련 있다. 나는 할머니와 같이 산다. 조카까지 4대가 함께 사는 집인데, 할머니에 대한 애착이 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용돈벌이 위해 폐지 줍는 노인 분들 보면, 힘듦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시려고 노력하는 그런 노인 분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힘든데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에 한해서 일자리를 드리는 사업을 하고 싶다.

ㄴ 이형구 : 나의 최종 목표는 밝힐 수 없다. 밝히면 무의미해진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라는 점이다. 말하는 순간 무의미해져서 말씀드릴 수 없다. 배우로서의 목표를 말씀드리자면, 배우니까 당연히 연기를 엄청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다.

연기는 비전공자들 중에서도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분야다. 하물며 나는 연기를 전공한 사람이니 더욱이 욕심이 생긴다. 가끔 연기를 하며 이게 예술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도 있고, 꼭 배움을 통해서만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배움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어떤 배우 분이 이렇게 말하더라. "현재 활동하는 친구 중에 연기 전공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것 같다. 셰프의 요리는 당연히 맛있어야 한다. 데코레이션이나 서비스는 그 다음이다. 그런데 배우는 연기를 잘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주변에서는 이렇게들 위로한다. "지금 경험하는 거니까" 혹은 "처음 하는 거잖아"라고 말이다. 나도 실제로 그런 위로를 받은 적 있다. 나는 그래도 돈을 받고 방송이나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인데, 그 경험은 실전 이전에 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다. 배우는 당연히 연기를 잘해야 한다.

나는 톰 하디를 정말 사랑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만나본 적이 있다. 나는 톰 하디가 맡았던 역할들, 즉 그의 연기를 사랑한다. 그는 연기 스펙트럼이 정말 넓으니 행복해보인다. 우리가 연기 처음 시작할 때, 보통 '여러 삶을 살 수 있으니까' 배우라는 직업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정된 역할만이라도 잘하는 게 엄청난 거라고 생각한다.

ㄴ 황규인 : 나도 여러 삶을 살아볼 수 있으니까 배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느끼는 것은 연기란, 본인의 삶을 그 인물들에 녹여 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ㄴ 이형구 : 맞다. 그래서 연기는 '본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정리하자면, 연기를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게 부럽다. 인간이 연기를 할 때 있어서, 은근히 간과하기 쉬운 게 의상과 신체다. 의상과 신체는 연기의 영역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신체나 의상으로부터 아예 다른 사람이 될 여지가 비롯된다. 그래서 몸을 많이 바꿔보고 싶다. 입금을 하며 신체 스타일을 바꾸라고 하면 얼마든지 바꿀 의향이 있다.

그리고 요즘 열정페이라는 것들이 있다. 여기는 그게 너무 당연하다. '우리 때는 더 했어', '너네는 당연히 참아야지', '너는 젊으니까', '여자니까', '대학 졸업 안 했으니까' 등의 갖은 이유를 붙여 열정페이를 허용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너는 유명하지 않으니까', '티켓파워가 없으니까'라는 이유를 언급하며 페이를 말해주면 차라리 이해라도 간다.

한편으로는 '너 아니어도 돼'라는 말이 참 슬프다. 내 자존감이 사라진다. 우리는 누구나 창작자가 되고 싶다. 매 순간 그럴 수는 없겠지만, 작품마다 내 역할이 있으니 그것을 실현시킬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한다. 나만 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예전에 학교에서 공연 '안녕, 사서들'을 한 적이 있다. 그 작품 때문에 내가 대학로에 나오게 됐다. 당시 내가 목숨을 걸고 하는 공연이었다. 수명을 갉아먹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고, 언젠가는 꼭 다시 같이 하고 싶은 팀이다. 그때가 행복했다. 나는 장수를 바라지 않는다. 때로는 내 수명을 갉아먹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연기에 임하는 것도 멋있는 것 같다.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는 오는 21일까지 서울 마포아트센터 플레이 맥에서 공연된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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