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까지 TOM 연습실A에서 연극 '사이레니아' 공연

[문화뉴스] 연극 '사이레니아'의 등대지기로 열연 중인 배우 이형훈을 만나다.

연극 '사이레니아'는 1987년 10월의 어느 수요일, 8년간 홀로 블랙록 등대를 지켜오던 '아이작 다이어'가 실종되기 전 21시간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는 작품이다. 2인극으로 등대지기 '아이작 다이어' 역에 홍우진과 이형훈이, 폭풍우에 떠내려온 의문의 여인 '모보렌' 역에 전경수와 김보정이 출연한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매력적인 꿀피부에 나긋나긋한 목소리, 질문 사이에도 "맞아요 맞아요"를 연발하던 성실한 태도와 인터뷰 내내 이어진 웃음소리가 인상적인 배우 이형훈. 연극 '사이레니아'의 등대지기 아이작 다이어로 열연 중인 그와 1987년의 블랙록 등대인 양 폭우가 내리던 날 대학로의 어느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 특성상 관객과 매우 가깝다. 관객들 행동에 대해 영향을 받는지.

ㄴ 최대한 받지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상대 배우가 한 명밖에 없으므로, 오롯이 그 배우만 보고 있다. 매우 좁고 관객과 배우들 사이, 관객들 간의 사이도 가깝다. 나보다 관객들이 더 불편할 것 같다. 소리에 대한 반응도 격하지 않고 조심스럽게들 보시는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가지고 보시는 것 같다. 배우를 위해 배려해주시며 차분하게 봐주신다.

개막 후 시간이 약간 지났다. 공연 하는 느낌이 궁금하다. 처음과 비교해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ㄴ 처음에는 관객들이 없는 상태에서 연습하다 보니, 신경을 안 쓰고 상대 배우만 집중하며 공연했다. 하지만 여기는 관객들이 정말 가까이 있고, 연습실과 다르게 무대에서 고립된 등대를 만들다 보니 그런 현장감이나 몰입감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연습실에서 봤던 상대방에 대한 시선이나 감정도 달라진다. 지금 내가 조심해야 될 것은, 두 달 동안 공연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 공연 기간이 장기라고 느껴진다. 장기 기간 동안 감정선을 잘 유지해야 하는 거고, 관객들이 가까이 있으니 최대한 신경쓰지 않고 상황과 상대방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의상, 조명, 음향 등을 통해 오히려 현장에서 더 집중되는 감이 있다.

   
 

더블 캐스트 공연이 처음이라 들었다. 더블캐스트 공연의 묘미를 하나 꼽아본다면.

ㄴ 더블 캐스트가 처음이다. 원 캐스팅일 때는 혼자이기 때문에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아진다. 장점이라면 장점이랄 수 있는 게 오롯이 나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으므로, 책임감이 무거울 수도 있지만 나를 조금 더 다지게 되는 계기가 있다. 더블은 내가 하는 역할을 다른 사람이 하므로 그 사람의 연기를 보게 된다. 그게 단점이 될 수 있다. 다른 배우와의 비교가 단점이 될 수 있다. 장점이라면, 그러면서 캐릭터를 같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나. 캐릭터 하나를 둘이 나눠 할 때 내가 보지 못했던 이 캐릭터의 면모를 상대를 통해 보며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관객석에 앉아서 본 적도 있는지.) 아직 상대 배우의 공연을 관객석에서 본 적은 없다.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다. 객석이 너무 좁다 보니 섣불리 보러 가기 그렇다. 신경 쓸 것 같아서. 그 배우에게 실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보시면 재밌을 것 같다.) 우진이 형에게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웃음).

스토리피 측의 설명에 의하면 오픈된 30석 외에 입구 옆 4석의 유보석이 있어서 혹시 모를 사고나 폐소공포증이 우려되는 관객을 위해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면이 객석이다 보니, 어는 자리에 앉든 잘 안 보이는 부분들이 각 자리마다 있다. 객석 위치마다 잘 보이고 안 보이는 부분이 달라서 여러 번 봐야할 거 같았다. 관객이 여러 번 보게끔 만들어가고 있는지.

ㄴ 사면의 객석이 현장성을 더 느끼게 해줄 수 있어서 장점이기도 하지만, 시야가 방해받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고 객석 때문에 얼굴이나 몸을 계속 틀게 된다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배우들의 행동뿐 아니라 동선 등을 통해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관객들한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도 한계는 있다. 노력하지만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릴 수 없기에 안타까운 부분이다. 굳이 시야 때문에 여러 번 보게끔 하지는 않았다. 한 번 보시더라도 잘 보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서 어디서 앉으시든 즐기고 가셨으면 좋겠는데 객석의 한계상 아쉽다는 이야기다. 구태여 동선을 바꾸거나 한다면 관객들의 집중선이 깨질 수 있으므로 두 배우가 감정적으로 만나는 장면에선 동선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혹시 자리별 관람 포인트를 짚어줄 수 있나. 예를 들어 쇼파에선 이게 잘 보인다든가.

ㄴ 아무래도. (잠시 생각) 제가 말하긴 어려운 것 같다. 다 잘 보이는데 장면마다 보이는 위치가 다르니까. (추천하는 자리가 없나) 진짜 없다. 다 다르니까. 일부러 동선을 그렇게 만들었다. 다른 모든 곳에서 각기 잘 보일 수 있도록. 계속 모보렌과 아이작 위치를 바꾼다. 모보렌이 쇼파에 있다면 아이작이 좀 더 많은 움직임을 보인다던가 하는 식으로. 극장에 와서도 많이 바뀌었다. 조명의 조도 같은 부분 등 여러 가지가 공연 초반이랑 비교해도 좀 바뀌었을 거다. 두 달 공연을 하다 보면 처음과 끝이 바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것이 공연의 현장성이 아닐까.

   
 

보도자료 보니 100여 가지의 등대 속 디테일이 있다더라. 연기하며 무의식적으로 보게 되는 물건이 있다던가.

ㄴ 의식이라면 의식이겠다. 딱히 보게 되는 것은 없다. 등대라는 공간 자체가 아이작이 8년 동안 살고 있는 공간이니까 자연스럽게 생각하려고 한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저는 항상 바닥에 누워 있다. 그럼 천장을 많이 보게 된다. 아니면 일부러 소파가 아이작에겐 침대 같은 공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보니 거기 앉아서 멍하게 있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바닥에 누워있다니 의외의 대답이다.

ㄴ '이터널 선샤인'포스터처럼 누워있다(웃음). (그 장면 좋다) 불 다 꺼놓고 프리셋 조명 밑에서 누워있다. 그럼 오퍼하는 친구가 프리셋 노래 틀어준다.

디테일 질문한 이유가 뭐냐면 공연 막바지에 보니까 1987년 달력이 걸려있더라. 놀랬다.

ㄴ 맞다. 굉장한 디테일이다. 무대 디자이너님 대단하신 것 같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다. 저희가 연극을 하는 것만 봐선 모른다. 날짜가 나오지 않으니까. 모보렌이란 이름도 안 나온다. '그쪽은', '당신은' 이라고 나오니까. (라디오 같은 소품도 인상적이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처음 등대 들어온 뒤 체크하고 쓰고 있는 판이 있다. 그것도 진짜 저널처럼 등대지기들이 쓰는 그런 거다.

   
▲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조씨고아' 역을 맡은 이형훈 배우.

연극 '필로우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세일즈맨의 죽음' 등에서 진지함과 익살스러움이 공존하는 배우라는 평을 들었다. 이번 '사이레니아'에서도 순간순간 젊을 적의 아이작에서 그런 면모가 보인다. 순간적으로 연기 톤을 조절하는 방법이 있는지.

ㄴ 연기의 톤을 잡는다는 것, 나이의 톤을 잡는다는 것. 솔직히 말하면 내가 평상시에,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한 가지의 모습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람을 만날 땐 이런 모습, 이런 사회에 속할 때는 이런 모습처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16세 아이작일 때는, 실제로 제 친구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들려고 한다. 등대에 있을 때의 32세의 아이작은, 내가 실제로 32세도 아니고 8년 동안 등대에 있어 보지도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잃어버린 적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간접적인 경험을 얻는다. 등대지기에 관련된 소설을 읽는다거나, 비슷한 이미지나 비슷한 상황. 같은 고통에 처한 인물이 나오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봐서 표현하려 노력했다.

16세 아이작이 매우 장난스러워 보였다. 순간적으로 개구쟁이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나이를 휙휙 뛰어넘더라.

ㄴ 평상시에 장난치는 것 좋아한다.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부정적인 건 사람들한테 자꾸 말한다. '아 나 힘들어.' 이런. 힘든 것들을 주변인들에게 해소한다. 자꾸 다른 이야기 하는 것 같다(웃음).

   
 

힘든 일 해소는 역시 술인데(웃음). 술 좋아하시는지.

ㄴ 자리를 좋아한다.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니까. (공연 중일 땐 컨디션 관리 차원에서 마시기도 힘들겠다.) 맞다. 저희는 감정소모가 많고 해서. 또 술을 많이 마시거나 즐기시는 분도 없다. 그래서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수다 떨고 한다.

감정소모가 큰 극인데 공연이 짧다 보니 연기하기 어려운 점이 있나.

ㄴ 어차피 쉬운 연극은 없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연기는 다 힘든 부분인데 우리 공연은 많은 시간 안에 이야기에 변주가 많으므로 감정 잡는 게 힘들긴 하다. 순간적으로 어렸다가 다시 돌아가고, 24살에 프로포즈했다가 다시 32살의 등대지기로 돌아가고. 16년의 세월을 순간적으로 바꿔야 하다 보니, 건너뛰었을 때 그 시간의 갭을 관객들이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감정선을 따라가게 해야 하니까, 그런 것들을 채우는 것이 섬세하고 어려웠다.

세이렌 전설이 모티브다. 상대역의 두 모보렌이 어떻게 다른지.

ㄴ 신기한 게, 저희는 네 배우가 다 다르다고 한다. 우진이 형만의 아이작, 저만의 아이작. 더블하면서 이번에 배운 게 뭐냐면, 양쪽의 모보렌이 있다. 한뿌리에서 시작됐지만. 그럼 그 사람의 모보렌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모보렌을 가지고 가면 안 된다. 정경수라는 배우의 모보렌을 그대로 순간에 받아들이고, 김보정이라는 모보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이다. 그날그날 조금씩 다를 때가 있다. 순간에 집중하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믿고 가다 보면 그대로 따라가 진다.

무대 뒤로 가면 뭘 하나. 특히 입장 문으로 나갔을 때. 등, 퇴장 에피소드가 있나.

ㄴ 정말 시간이 없다. 극 중에 젖어서 나오는 장면이 있으면 물 뿌리고, 늘 소품을 하나씩 가지고 와야 한다. 뒤는 엄청 어두운 거 아시지 않나. 연습실이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관객들은 잘 모르겠지만, 장면에 따라 물 맞는 정도도 다 다르게 하고 나온다. 폭삭 젖었을 때, 비를 조금 맞았을 때, 태풍이 올 때.

   
 

등, 퇴장이 잦다. 후기 중에 '배우들이 자꾸 날 두고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ㄴ 우리가 계속 나가니까 그렇다. 등대에 참여해 계신 거니까 관객들이 등대 안에 남겨진 현장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등대 안에 홀로 남겨져 있는 느낌이랄까.

공연 도중 실수나 어떤 에피소드가 있는지.

ㄴ 마지막에 성냥을 켜야 하므로 중간에 나오는 성냥은 계속 안 켜져야 하는데 불을 켜려고 하다가 성냥이 부러지거나 그런 적이 있다. 사소한 그런 약속들이 틀어져 버리면 다른 것으로 메꿔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성냥이 두 동강 났을 때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한 번은 젖은 성냥을 계속 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성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없어진 적도 있다. 흔들다가 성냥이 떨어졌나 보더라. "미안해요, 성냥이 젖어서 안 켜져요" 가 아니라 "미안해요, 성냥이 없어요" 라고 한 적이 있다(웃음). 김보정 배우와 할 때였는데… 일종의 현장성이랄까. "저도 알아요" 할 수는 없는지 "…예…" 하더라(웃음).

   
 

이번엔 작품의 아쉬운 점을 꼽자면 내용이 아니라 포스터가 미스테리 스릴러를 표방한 느낌이었다. 실제 극 느낌은 달라서 당황했다.

ㄴ 작품을 본 뒤의 느낌은 어땠나. (로맨스...? 마지막 장면에서 살짝 울컥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으셨던 것은 아닌지(웃음). 이 공연 자체는 멜로도 멜로지만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외로우니까. 아이작이 가지는 외로움, 모보렌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에 대한 얘기다. 이런 외로운 존재들이 만났을 때. 등대라는 존재 자체도 외로운 곳이다. 그 안에서 각자의 아픔과 기다림, 연민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만났을 때라고 생각해서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럼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작품이길 원하나?

ㄴ '달랜다'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우리 공연 같은 경우는 외로움을 보여준 것이다. 아이작이 노래를 부르며 걸어나간다. 이후엔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다. 달래준다기보다는 보여준 것이다. 그것 자체가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감정적인 해소가 될 수도 있다. 슬픈 감정은 엉엉 울고 나면 풀리지 않나. 관객 각자가 느끼는 것이 분명 다를 것이다. 예술을 접한 분들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나.

스토리피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반대로 생각하자면 중간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그들이 아이작을 끝까지 보듬어주고 같이 데려왔다면 그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아이작을 몰아간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그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고 선택을 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내가 외롭다고 느끼기 전에, 누군가에게 외로움이나 상처를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의도가 있었다. 아이작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고, 아이작이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연기자든 작가든 '내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형훈 배우는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ㄴ 전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만드는 건 전데 보는 건 관객이다. 제가 이렇게 만들어도 관객들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항상 인정하고 있는 편이다. (힐링극이라는 후기도 있었다.) 그렇다. 엄청 재밌는 연극이어도 울고 갈 수 있고, 슬픈 공연인데 즐겁게 보실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다이어는 자살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싶었는데 대답을 이미 하신 것 같다.

ㄴ 대답 못 하는 부분이다. 제가 생각하는 부분을 말해버리면 제가 말하는 대로 다들 느끼실까 봐 말을 못하겠다.

차기작은 어떤가. 평소 작품 선정은 어떻게 하는가.

ㄴ '조씨고아'는 10월에 중국 가고, 내년에 국립극단에서 한 번 더 하게 됐다. 다른 작품은 아직 과정 중이라 말씀드리기 어렵다.

해외공연이 처음인가?

ㄴ 해외공연은 처음이 아니다. '노다 히데키' 선생님의 '반신'이란 공연을 명동예술극장에서 했었다. 이후 도쿄에서도 하고 했다.

원작인 '반신'이 일본 작품인데, 일본에서 공연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

ㄴ 그때 선생님께서 재미난 이야기를 하셨다. '반신'은 대사가 시적이고 이해가 잘 안 간다. (후기가 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쓰여 있더라.) 이 공연 자체가 시적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제게 영향을 많이 미쳤다. 해석은 입시공부에서 하지, 시를 보면서 해석하지는 않는다. 시를 쓴 작가의 상황에 부닥치는 것처럼 그저 시를 만나게 된다. 그 연극도 그랬다. 이 대사가 이해가 안 간다고 하면 눈을 감고 "형훈. 눈을 감아봐. 눈을 감고, 고등학교 때 축구 했었어? 점심때를 떠올려봐. 점심을 먹고 네가 운동장에 앉아 있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야. 애들이 찬 공이 머리위로 딱 올라가. 파란 하늘에 공이 점이 돼서 올라가. 보여? 그 느낌이야." 네?(웃음) "그게 자유야"라고 하시더라. 공연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일본에서 한국말로 연기하지 않나. 도쿄예술극장은 관객들에게 이어폰을 나눠준다. 그럼 우리가 하는 모든 대사를 두 명의 성우가 일본어로 동시통역해주신다. 그런데 감정이 없이 모노톤으로 얘기해주신다. '나 너 사랑해!'하면 '나 너 사랑해.'(웃음) 그러니 대부분 주무신다. 자장가 같아서.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마지막에는 감정이 올라와서 시를 보듯이 감정선을 그대로 느끼시며 보시더라. 말이 통하지 않아도. 공연의 장점이랄까. 영화는 외국어를 잘하거나 자막이 없으면 볼 수 없지 않나. 연극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있고 실제로 현장에서 보시니까 감정을 그대로 느끼시는 부분이 참 신기하다.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지만 배우로서의 철학을 꼽아보자면.

ㄴ 술을 한잔하면서 말해야 될 질문 같다(웃음). 이건 목표에 대한 질문이 아니니까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해보자면, 여러 작품을 하게 된다 앞으로. 못 할 수도 있겠지만(웃음). 내가 각각의 공연에 들어갔을 때, 공연을 어떻게 만들고 싶다는 방향성이 항상 있을 것이다. 그 방향과 가치관에 부합해서 같이 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 캐릭터의 도달점에 맞춰서 같이 갈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제가 가지고 있는 배우에 대한 철학이 그렇다. 전체적 목표 안에 내 목표가 들어갔으면 하는 것이다. 내 목표가 너무 강해지면 따로 가게 될 것 같다.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봤다. 마지막으로 팬들을 위해 인사해달라.

ㄴ 안녕하세요. 저는 이형훈입니다. 물병자리구요. 이런 말은 안 할 거다(웃음). 지금 '사이레니아'라는 공연하고 있다.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한 번 보더라도 또 보고 싶어지는, 흥미가 계속 가는 공연, 입석으로라도 보고픈 공연이 되었으면 좋겠다. 편안한 마음으로 보셨으면 좋겠다. 한 시간 동안 우리가 하는 얘기를 그냥 보고 가셨으면 한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저는 항상 여러분한테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배우로서의 목표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 배우로서의 목표. 철학이 아니라. 개인적인 목표다. 궁금해하지 않으실 수도 있고(웃음) 궁금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거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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