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섭 화가의 사진과 제사상이 차려진 가운데, 이윤택 연출이 축문을 읊고 있다.

[문화뉴스]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에서 예술가들은 결국…."

 
잠시간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힘들었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이 대학로에서 공연되기까지의 과정과 화가 이중섭의 삶은 유난히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이 10일부터 25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연희단거리패의 30주년 기념 공연이면서, 작품의 초연 25주년 및 화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4월 7일 세상을 떠난 김의경 작가를 추모하기 때문이다. 
 
'길 떠나는 가족'은 천재 화가 이중섭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예술세계를 그렸다. 식민시대와 조국의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이중섭의 인생은 그야말로 '각본이 있는 드라마'였다. 식민지 치하 시대에서 일본 여인과 결혼을 했고, 6.25 전쟁 중에 일어난 1.4 후퇴로 인해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예술가를 억압하는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빈곤에서 치열한 예술혼으로 맞선 이중섭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 윤정섭 배우가 '이중섭'을 연기한다.
 
연희단거리패도 올해 이 공연을 서울에서 올리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난 3월, 콜롬비아에서 열린 '이베로 아메리카노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5회 공연을 했지만, 정작 서울에서의 공연은 여의치 않은 환경으로 올릴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었다. '어머니' 역할을 맡기도 한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올해 밀양축제에서 공연을 보신 윤호진 선생님께서 이곳으로 공연장 주선을 해주셨고, 고희경 극장장님도 도와주셨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홍익대학교와 화가 이중섭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중섭의 절친 화가 한묵은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로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재직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 100주년 기념 전시 중인 그림 '흰 소' 역시 홍익대학교 박물관에 소장 중인 작품이다. 뮤지컬을 위주로 올린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리는 첫 번째 연극 공연이라는 의의도 있다.
 
6일 오후 작품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1956년 9월 6일 세상을 떠난 이중섭 작가의 기일을 맞이해, 공연 시작 전 무대엔 제사상이 마련됐다. 이어 이윤택 연출은 "연극쟁이 이윤택이 환쟁이 이중섭 선생 영전에 고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제문을 읊었다.
 
이 연출은 "선생은 나이 40에 일찍 가셨지만, 선생의 단짝 친구 한묵은 지금 102세의 초고령으로 살아 계십니다. 지금 프랑스에 계셔서 이곳에 오시지는 못하지만, 연극에는 출연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 곧 무대에서 선생님과 함께할 예정입니다"라고 전했다. 전막 시연 후 진행된 질의·응답을 통해 이윤택 연출, '이중섭'을 연기한 윤정섭 배우,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 김시율 음악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이윤택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연을 올리는 소감을 들려 달라.
ㄴ 이윤택 : 1991년 현대극장 초연을 연출할 때, '이중섭' 역할엔 김갑수 배우가, '어머니' 역할로 나문희 선생님이 하셨다. 이후 2001년 서울시극단에서 할 땐 기국서 연출이, 2009년 서울연극제 당시엔 임형택 연출이 했었다. 그리고 2014년 명동예술극장 연출 당시엔 지현준 배우가 '이중섭'을 연기했다. 올해 연희단거리패에서 콜롬비아 이베로 아메리카노 페스티벌을 다녀왔고, 서귀포 이중섭 기념관, 대전, 대구 지방공연을 거쳐 드디어 이중섭 화가 기일에 서울에서 공연하게 됐다. 초연 25주년인데, 파란만장하게 공연이 이어갔다.
 
2014년 공연과 비교하면 길도 생기는 등 무대가 달라졌다.
ㄴ 이윤택 : 2014년엔 김의경 선생님이 연출 부탁도 해주셨다. "대본 하나도 고치지 않으며, 가능한 초연의 느낌을 살려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명동예술극장 공연은 초연에 가깝게 했다. 명동예술극장 공연에 오디션을 통해 뽑는데, 아무래도 지현준 배우도 우리 연희단거리패 출신이긴 해도 지금은 아니었고, '마사코'를 연기한 전경수 배우도 뮤지컬배우여서 소속이 달랐다. 움직임이나 앙상블을 크게 기대할 수 없어서 개인기 위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에 연희단거리패로 작품이 이전되고, 콜롬비아 이베로 아메리카노 페스티벌도 나가다 보니 서사 중심으로도 당연히 '이중섭' 연기가 뛰어나야 하지만, 전체적 앙상블을 통해 문학성에서 벗어난 연극성을 강화하려 했다. 여기 참여하는 배우들이 합숙하는 배우들이다 보니 움직임도 조직화했다. 무대 가운데 길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추가하게 됐다. 명동예술극장이 좀 더 대중적이고 전통극적인 분위기였다면, 여기는 민간극단 '연희단거리패'이니 실험적이다. 현대극장에서 시작해, 서울시극단을 통해 민간극단 연희단거리패로 돌아왔으니, 연희단거리패의 '길 떠나는 가족'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 배우 윤정섭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중섭'을 연기한 소감을 들려 달라.
ㄴ 윤정섭 : 내가 이중섭 선생님을 연기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나는 여러 주변 환경이 그분과는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전혀 잘 어울리지도 않았고, 얼굴도 닮지 않았다. (웃음) 이 분을 어떻게 연기 해야 하지라는 부담이 많았다. 문득 그런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줄어들게 됐다. 나는 연희단거리패 소속 배우니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선배님이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외로웠고 불안했다. 그 불안함이 인물의 불안함과 잘 작용한 것 같다. 그림 그리는 것도 그림이 썩 잘 그리진 않았지만, 그리면서 땀방울이 흐를 정도로 숨이 벅차고 체력도 소모된다. 작품을 하면서 하나둘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소희 : 밀양 축제 공연을 할 때, 작곡가인 故 손목인 선생님의 부인께서 공연을 우연히 보셨다. 손목인 선생님과 이중섭 선생님이 술을 매일 만나면 그렇게 드셨다고 하셨다. 사모님이 공연을 보시더니, 우리는 윤정섭 배우가 '이중섭'과 비해 턱이 짧다고 늘 그랬는데, "어떻게 중섭 씨와 똑같은 배우를 데리고 왔어요"라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다. 키도 큰데 구부정한 모습이 똑같다고 해서, 이게 연극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연극이 들어가면 배우들이 곧 캐릭터의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 김시율 음악감독이 음악 작업 방향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 내내 등장하는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설정했는가?
ㄴ 김시율 : 초연 영상을 처음 받아볼 때, 음악이 화려하지 않았다. 딱 피아노 한 대를 가지고 하셨다. 단순하고 함축적으로 나왔는데, 이윤택 연출님이 다시 제작하시겠다고 이야기하면서 피아노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피아노와 국악기, 드럼을 준비하면서 배우의 호흡을 따라가는 작곡을 했다.
 
연출님이 원하시는 디렉션이 확실히 있으셨는데, 그게 배우와의 호흡이었다. 연희단거리패 음악은 이번이 세 번째 작업인데, 그동안 쌓은 호흡을 바탕으로 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성으로 음악을 찾아가고자 노력했다. 단적으로 오늘 같은 경우 첫 부분에 '이중섭'이 불에 타 쓰러지는 장면에 같이 쓰러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퍼커션을 들고 쓰러지는 호흡을 했었다.

단색의 소품과 스케치로 구성된 소품 역시 작품의 백미였다. 어떻게 꾸며졌나?
ㄴ 이윤택 : 이영란 미술감독이 1등 공신이다. 초연할 때는 프랑스에서 갓 한국으로 온 젊은 미술가였다. 이중섭 인형을 하나 만들었는데, 정말 좋았다. 그래서 2014년 공연할 때 무대, 의상, 소품 등 모든 것을 다 책임지라고 했다. 그리고 서술적인 이야기가 아닌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모든 설명적 이야기를 다 지워버리자고 했다. 모든 것을 기호화시켜서 작품의 본질에 집중하자고 했다.
 
   
▲ 배우들이 공연 커튼콜 시간에 인형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허가예 배우가 연기한 '마사코'만 작품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ㄴ 이윤택 : '마사코'가 작품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일본인이어서, 이국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넣게 됐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딱 한 사람만 하게 했다. 이것도 김시율 씨가 작곡한 음악이다. 사실 이 작품이 초연할 때도 그랬지만, 서사 중심의 서술적 연극에서 미장센을 만드는 연극이라고 이야기가 나왔다. 자유롭게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과 노래가 자유롭게 뒤섞여 "연극이 말에서 해방되는 것"을 초연 때부터 꿈꿨다. 갈수록 그게 강화된 셈이다.
 
콜롬비아 공연 당시, 관객들의 분위기는 어땠나?
ㄴ 이윤택 : 콜롬비아에서 5회 공연을 했는데, 이만한 극장 사이즈에 관객이 가득 찼다. 죄송한 말이지만, 한국 관객들보다 이해가 빨랐다. "내가 시인인데, 세상이 나한테 벌어먹여 줘야 한다"라는 구절이 자막으로 나온다. 한국에선 웃지 않았는데, 콜롬비아에선 다들 자막을 보고 웃어줬다. 콜롬비아에선 TV 드라마도 거의 없는데, 그러다 보니 연극을 TV 드라마 보듯이 하셔서 수준이 높은 것 같다. 한국적이어서 작품이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햄릿' 이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 '마르케스 100년간의 고독'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산 자와 죽은 자, 귀신이 왔다 갔다 하는 세상이니 계속 교류할 것 같다.

작품을 다시 올리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ㄴ 이윤택 : 명동국립극장에서 공연할 때와 지금 공연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좀 축제적인 분위기였고, 좀 더 대중적이었다. 지현준 배우가 많이 울었다. 세상과 단절되는 이야기가 낭만적으로 그려진 연극이었다. 지금은 '백석'과 '이중섭'을 소재로 한 연극을 하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프로그램에도 썼지만,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에서 예술가들은 결국(잠시간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었다.
 
   
▲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한 장면.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했다. 백석도 힘들고, 이중섭도 정말 힘들었다. 한국 예술가들은 상업주의나 여러 가지 대중의 취향 등으로 쓸모없을 땐 버려질 때가 많았다. 백석, 이중섭을 보면 가난, 시기, 몰이해, 억압, 빨갱이로 오인당하는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에서 힘든 삶을 살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한국에서 예술가가 예술가답게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모습으로 희생된 희생자 같았다. 그래서 힘들었다.
 
결국, 북에 남은 백석, 남에 남은 이중섭 모두 불쌍하게 죽었다. 화가가 굶어 죽는 세상에서 예술가가 사는 것은 무엇이냐고 생각해서 윤정섭 배우에게 울지 말고, 냉철하고 힘들게 연기하라고 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초연이나 명동예술극장 공연 때보다 좀 더 조용할 것 같다.
 
김소희 : 이중섭 선생님의 삶이 매우 어려웠는데, 저희 공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콜롬비아 공연 때도 티켓이 많이 팔린 상황에서, 항공료 지원이 나오지 않아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 콜롬비아 측에서 전화가 왔다. 본격적인 국제 연극축제이고, 한국 유일의 작품인데 표가 잘 팔리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취소하는 것은 한국의 문화 인상이 안 좋아질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24시간 체류하는 형태로 힘들게 다녀왔다. 
 
서귀포, 대전, 대구 등 지방공연을 하니 다들 좋아해 주셨고, 몇몇 분은 기립도 하셨다. 서울공연을 하고자 SPAF(서울국제공연예술제) 신청했는데, 떨어져서 이 작품이 꼭 하고 싶은데 연이 없구나 싶었다. 30 스튜디오에서 하기엔 무대도 작았는데, 밀양축제에서 공연을 보신 윤호진 선생님께서 이곳으로 공연장 주선을 해주셨다. 고희경 극장장님도 도와주셨다. 어제 이윤택 선생님이 연습하면서 "여기서 하게 되는구나"라고 하셨는데, 배우들도 감사하게 공연을 준비했다.
 
   
▲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연희단거리패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앞으로 남은 한 해 일정은?
ㄴ 김소희 : 하반기엔 30주년을 맞이해 '30 스튜디오'를 개관한다. 게릴라극장을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만 운영하고 나머지 시간엔 낭독, 워크숍을 하는 스튜디오를 10월 말에 개관하려고 준비 중이다. 30 스튜디오에서 소극장 레퍼토리를 공연할 예정인데, '백석우화'도 준비됐다. 히라타 오리자 작·연출의 '서울시민 1919'도 일본어와 한국어로 공연하는 기획이 준비됐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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