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윤(왼쪽)과 김주원(오른쪽)이 '신시'의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문화뉴스] "최고의 무용수가 제값을 하는 무대로 거듭날 수 있는 극이 필요하다"는 국수호 안무가의 열정이 묻어나고 있다.

 
서울시무용단이 27일과 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춤극 '신시(神市)'를 재공연한다. '신시'는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한 춤극으로 웅족, 천족, 호족이 갈등과 전쟁 끝에 상생을 이루고 평화로운 나라를 건설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신시-태양의 축제'의 완성도를 높여 재공연하는 레퍼토리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 전체를 활용하는 스펙터클한 축제 장면, 전쟁을 표현한 역동적인 군무, 농염한 사랑무 등 화려한 볼거리를 갖췄다.
 
'창작 무용의 거장'인 국수호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총괄안무를 맡았다. 여기에 다시 합류한 김태근 작곡가가 음악의 선율을 보완했고, 유희성 연출가가 뮤지컬의 표현방식을 도입해 한국 무용극의 고정관념을 넘어서고자 했다.
 
여기에 이번 공연은 일반적인 한국 무용극에서 만나기 힘든 발레리나, 현대 무용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관객에게 신선함을 안긴다. '웅녀' 역엔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발레리나 김주원과 서울시무용단 솔리스트 김경애가 캐스팅됐다. '환웅' 역엔 국립무용단 수석 무용수 출신의 이정윤과 서울시무용단의 스타 무용수인 신동엽이 출연한다. 끝으로 강렬한 춤사위를 선보여야 하는 '호족장' 역엔 예능 프로그램 '댄싱9'의 스타 윤전일과 서울시무용단의 기대주인 최태헌이 출연해 서로 다른 춤을 선보인다.
 
이를 알리기 위한 기자간담회가 1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무용단 연습실에서 열렸다. 이번 기자간담회엔 예인동 서울시무용단 단장을 비롯해 국수호 안무가, 유희성 연출, 주역 배우인 김주원, 이정윤, 윤전일, 김경애, 신동엽, 최태헌이 참석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 예인동 서울시무용단 단장이 작품 소개를 하고 있다.
 
올해 '신시'를 다시 올린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작품에 참여하는 소감을 전해 달라.
ㄴ 예인동 : 세종문화회관의 대표 레퍼토리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대중성, 역사성, 축제적 양식을 맞는 작품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국수호 선생님께 안무를 부탁드려서 '신시'를 올리게 됐다. 지난해 초연 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제작 시간이 짧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 레퍼토리로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그래서 수정과 보완을 거쳐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무용단 본연의 레퍼토리를 하려 한다. '신시'는 분열이 아닌 하나를 의미한다. '환웅'과 '웅녀'의 결합은 분열이 아니라 창조를 의미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분열되고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사상은 우리의 현실로 보여주고 싶었고, 시민들이 힘든 시기에 이 작품으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유희성 연출은 뮤지컬 연출로도 유명하지만, 무용도 연출한 바 있다. 그래서 서울시뮤지컬단원 20여 명이 출연하는데, 어떻게 결합할지도 궁금하다. 
 
국수호 : 지난해 '신시'를 맡은 큰 이유는 광복 7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에 맞는 서울시무용단의 작품이 뭘까 했다. '신시'는 새로운 도시이자 새로운 건국신화를 의미한다. 요즘 정신이 아시다시피 피폐해져 간다.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시민의 정신적 혁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군의 탄생 신화를 보여주고, 미래엔 우리가 어떤 인물을 탄생시키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춤 작가'로의 사명감이 주어진 것 같았다. '신시'가 고리타분하고 고전 같기도 하고, 전설이자 설화이기도 한데, 틀림없이 이 시대가 있으므로 지금이 있다고 봤다. 새로운 70년을 출발하기 위해 만들게 됐다.
 
   
▲ 국수호 안무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세종문화회관
 
개인적인 무용단을 하고 있지만, 개인 자격으로 할 수 없는 곳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다. 이곳에서 조그마한 소품을 가지고 춤을 출 순 없었다. 지난해 호평을 받아서 그런지, 세종문화회관 이승엽 사장님을 비롯해 서울시무용단 예인동 단장님이 기획하셔서 올해도 맡겨주셨다. 올해는 좀 더 나은 '신시'가 어떻게 보이지고, 레퍼토리화될까 했다. 지난해 연출한 유희성 연출이 뮤지컬 연출자이기 때문에, 남녀 코러스 단원 20명을 보완해 '신시'의 내용을 이끌어가고자 했다.
 
신화적 인물을 '볼거리'로 보여주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지난해에 부족했던 점이 있다. 우리는 미래를 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동엽, 최태헌, 박수정 씨를 지난해 원톱으로 공연했는데, 원톱으로는 자기가 뭘 하는 지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일 공연을 하게 됐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국립무용단에서 6일이나 8일 공연을 하면 완전 매진이 됐다. 지금은 어느 사이에 사양이 되고 있다. 극장 구조나 단원의 사회적 구조를 더 발전시키면서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이정윤, 윤전일, 김경애 씨를 캐스팅해서 청팀과 홍팀으로 만들어서 서울시무용단으로 개방하고자 했다. 서로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상승을 가져보려는 '춤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연습을 진행하면서,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시무용단 단원들도 두 팀을 보면서, 무언가 의식도 달라지고, 보는 눈도 달라지는 등 참여하는 힘의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유희성 : 작년에 '신시'를 연출하면서 황홀한 체험을 했다. 집단무를 통한 서울시무용단의 저력, 세종문화회관의 인프라에 자부심을 느껴 올해 다시 하게 됐다. 국수호 선생님의 예술적 안목과 혜안, 그리고 새롭게 참여한 국보급 무용수, 여기에 뮤지컬 배우들과 함께하는 '신시'는 총체적 작품으로 가능성을 보고, 함께 체험하며 작업하고 있다. 단군신화를 가지고 하는 작품이 동시대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를 주안점으로 두고 있다. 단순하게 예로부터 내려진 단군신화가 아니라 동시대에 주목받는 용서, 상생, 화해라는 주제로 우리가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지, 함께 내일을 꿈꾸는 작품이 되길 희망한다.
 
   
▲ 발레리나 김주원이 '웅녀'를 연기한다.
 
작품에 출연하는 소감은?
ㄴ 김주원 : 발레리나로 한국무용 참여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국수호 선생님과도 인연이 10년 되는 것 같다. 10년 전, '사도세자' 작품에서 '혜경궁 홍씨' 역할을 했다. 여기에 국립발레단 있을 때, '왕자 호동'의 연출도 맡아주셨다. 그래서 국수호 선생님의 언어가 아주 생소한 언어는 아니다.
 
이번이 세 번째 작업인데, 훌륭한 서울시무용단에서 국수호 선생님, 유희성 연출, 좋은 무용수와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내 느낌에 발레라는 서양무용과 한국 전통무용이 가진 정신은 비슷한 것 같다. 같이 작업하면서 상의하고, 움직임이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너무나 재밌고, 큰 공부가 되는 것 같다. 기대를 많이 하고, 공연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이정윤 : 국수호 선생님과 작품을 많이 한 편이다. 국립무용단에서도 그랬고, 어린 시절 '오셀로'부터 시작해, '도미부인'까지 선생님 작품에서 좋은 춤 철학을 보여준 기회가 있었다. 무용이라는 장르에서 80명의 배우와 세종문화회관에서 시대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올리는 것은 쉽게 오지 않는다. 여기에서 주역을 맡게 되어, 긴 호흡을 잘할 수 있도록 동료들이나 서울시무용단 단원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행복하게 리허설 하고 있다.
 
작년에 첫 공연을 객석에서 관람했지만, 올해는 어떻게 작품이 진화하고 발전하는지, 우리는 어떤 식으로 보일지에 대한 도전을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무대에 섰다. 기본에 충실한 환웅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윤전일이 작품 출연 소감을 전하고 있다.
 
윤전일 : 한국무용은 처음이다. 그래서 국수호 선생님과 같이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호족장' 역할을 맡아서 하게 되는데, 그래서 내가 바라는 점은 이 작품의 '호족장'은 윤전일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인상을 주는 것이다. 서울시무용단 분들과 잘 스며들 수 있는 작품으로 인사를 멋있게 드리겠다.
 
김경애 : 작년에 조연으로 열심히 뛰었다. 올해 영광스럽게 주역 맡았다. 목표라기보단 서울시무용단에 젊고 예쁜 재원이 많다. 작년에 국수호 선생님이 지켜보시고 나를 선택하신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고 본다. 전단에 '서울시무용단의 히든카드'라고 안내가 나갔다. 타이틀에 걸맞은 좋은 춤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지금 와주신 것처럼 앞으로 서울시무용단 활동에도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다.
 
신동엽 : 작년에 '환웅' 역할을 맡았다. 작년에 개인적으로 아쉬운 후회 아닌 후회가 들었다.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생각에 끝나고 나서 많이 아쉬웠다. 다시 하게 되어서 작년보다 좀 더 큰 책임감으로 노력하겠다.
 
최태헌 : '호족장'은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랑을 거부하자 이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는 역할이다. 분노의 극적인 모습을 좀 더 성숙한 움직임으로 보여주려 한다. 작년과 다르게 이번엔 1회만 공연하니 하루 만에 모든 것을 다 보여주도록 집중하겠다.
 
   
▲ 최태헌이 '호족장'을 연기한다.
 
옛이야기로 동시대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작품은 어떤 점을 보여주려고 했나?
ㄴ 유희성 : 단군신화와 우리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훙산문화'(편집자 주 : 현재의 중국 북동부에 존재했던 신석기 시대의 문화)는 학자들이 좀 더 깊게 공부하는 경향이 있다. 논문을 통해 사상을 이야기하는데, 작품에선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젊은이들도 이런 것에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데, 전할 것이 없지 않나 싶었다.
 
국수호 선생님과 상의하면서 그런 제안을 많이 해주셨다. 예술적 혜안도 있으시지만, 학문적인 깊이도 갖고 계신다. 동북아시아를 토대로 한 역사적 고증에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군신화를 그대로 올릴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풍토를 어떻게 희석하고 완화하면서, 새롭게 출발할지에 대한 구성을 많이 했다.
 
   
▲ 유희성 연출이 지난해와 달라진 점을 말하고 있다.
 
세계적 발레리나부터 현대무용 스타를 캐스팅한 배경은 무엇인가?
국수호 : 먼저 달나라를 향해 가려면, 절대 광석부터 캐면 안 된다. 달나라를 가는 데 쓰는 것만 필요하다고 본다. 내 작품은 그 자체가 움직임이다. 움직임 자체가 어떠한 목표를 향한 움직임이다. 예를 들어, '웅녀'를 표현할 때 움직임의 테크닉을 증폭할 수 있다면 거리낌 없이 발레리나도 쓸 수 있다. 현대무용도 내 작품에 용해되어 남지, 현대무용이라 이질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최고의 무용수가 제값을 하는 무대로 거듭날 수 있는 극이 필요하다. 단상에 올려놓고 목적을 향해가는 지혜로운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예를 들어, 외국의 안무가들이 음악을 쓸 때, 김소희 명창의 판소리를 쓴다. 프랑스 파리에서 현대무용 공연을 보는데,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을 김소희 선생의 판소리를 쓰는 것을 봤다. 잘 어울렸다. 음악적 요소나 동작도 바르다고 생각해 그런 공연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이번 공연의 두 팀 무용수의 매력은 전부 다 뛰어나다. 먼저, '브누아 드 라 당스'라는 무용계의 노벨상을 받은 김주원 무용수가 있다. 우리는 세계적인 스타를 대접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유명한 발레리나"라고 하면서 그냥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불안하다. 이런 최고의 무용수가 '신시'에서 '웅녀' 역으로 나와서 서울시무용단의 작품을 빛내준다면 정말 금상첨화가 아닌가 싶다. 김주원은 자기 몸짓의 언어를 최대한 발휘하면서, '백조의 호수'나 '지젤'을 통해 감정의 기폭을 잘 보여준다. 이번에 한국적인 춤극인 '신시'로 담아내, 역사에 기록될 '웅녀' 역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다.
 
   
▲ '호족장'을 맡은 윤전일이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이정윤, 윤전일 씨도 마찬가지다. 특히 윤전일 씨는 눈여겨봤다. '왕자 호동'때 '호위무사' 역할을 하는데 최고였다. 역시 다른 나라 발레단에 가서 주역을 하다가 프리로 한국에 오게 됐다. 김주원 씨가 추천을 강력하게 했고 믿었다. 나는 내가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을 쓰지 않는다. 내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무용수가 있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신동엽, 최태헌 씨도 작년에 했으니 믿음이 왔다. 그런데 '웅녀' 역의 김경애 씨는 작년엔 조연이었다. 물론 '약관의 나이'는 지났지만, 19년 동안 서울시무용단을 지켜오며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년에 하는 것을 보니, 서울시무용단의 존재 이유에 대한 족보와 같은 무용수, 지킴이 같은 역할 같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앞으로도 서울시무용단을 지켜달라는 이유로 '웅녀' 역에 기꺼이 바치게 됐다. 열심히 지금 하고 있어서, 앞으로 남은 2주 동안 죽을 각오로 할 것이라 믿는다.
 
   
▲ 김경애 서울시무용단 단원이 '웅녀'로 캐스팅됐다.
 
'웅녀'를 연기하게 된 소감을 들려 달라.
ㄴ 김경애 : 작품에 마음을 다하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 모자람이 있어 보이지만, 정신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 오랜만에 대극장 공연이 이뤄졌고, 춤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접했고, 훌륭한 분들과도 같이해서 조연인 내가 주연처럼 오버한 것 같다. 그런 점을 높게 봐주시고 지켜봐주신 것 같다. 올해 좋은 기회가 와서, 이번 기회에 내가 살아있고, 발전해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려 한다. 사회도 어수선한데, 우리가 주는 사랑의 메시지로 희망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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